X 같은 선배와의 전쟁
by. 탄덕
04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의 기준에서 사람이라는 개체는 서로를 다 좋아할 수 없다. 그러니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적대심과 같은 감정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이라는 유일무이한 무기를 사용해 감정을 이용할 수 있는 거겠지. 그러므로 전국 각지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좁은 캠퍼스 내의 모든 사람들도 날 무조건적으로 좋아할 순 없다. 거리낌 없이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러다 어찌된 게 나를 죽어라 싫어하는 한 명을 우연찮게 만나게 되었다. 방년 내 나이에 겪기엔 조금은 아니, 아주 못돼처먹은 그에게 시답잖은 조언 따위도 많이 들었다. 돈으로 해결하는 게 후져보인다나 까불지 말라는 둥 하도 귀에 때려박아서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해졌다. 가만 보면 별 거 아닌 나에게 뭐가 그렇게 바라는 점이 많으신지 불만 사항도 참 많은 인간이다. 분명히 난 그에게 사과도 했고 먹지 않을 걸 대비해 커피까지 직접 대령했다. 뭐, 물론 내 돈 아까워서 그랬다는 이유가 70프로를 달성하지만 현재의 키워드에서는 벗어나는 말이니 뒤로 제쳐두기로 하고 그런데도 싫대, 이 인간은. 버릇처럼 턱을 손에 괴었다. 나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거북스러운 건지 면전에 대고 직접 묻고 싶을 정도였으니 말 다한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꼬박 이틀을 책상 앞에서 밤을 샜다.
딸깍- 볼펜이 스프링의 반동으로 인해 튀어오르다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이, 귀찮게. 볼펜을 줍기 위해 몸을 구부리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만, 구석에 박혀있던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 짧게 조소가 비쳤다. 강자에게 약점이 없다면 그 약점을 만들어주면 되지 않는가. 그리고 만약 그 약점이 나라면? 생각치도 못한 흥미로운 소재 거리로 간단해져 버린 정답을 찾은 기분에 손을 들어 입술을 매만졌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선 강자도 약해지는 법이니까 자기가 고양이라고 기세등등한들 쥐인 날 사랑해버린다면 상황은 달라질 거 아니겠는가. 어깨를 으쓱이며 시선을 가방으로 옮겨놓고서 볼펜을 돌렸다. 날 좋아하게 만들어놓고 그를 농락하는 것, 꼬박 이틀 밤잠을 설쳐가며 내놓은 자칭 최고의 복수책이었다.
베어버릴 것만 같은 오똑한 콧날에 날렵한 턱선, 그럼에도 단정한 외모라 여학생들의 워너비 선배이긴 하겠네. 버릇처럼 손으로 턱을 괴고서 다른 줄에 앉아 있는 선배의 옆모습을 훑어봤다. 오히려 그 모습에 되도 않는 오기가 생겼다. 이 정도면 어때서 꿀리진 않지, 그러다 인물과 몸매를 생각하자니 양심이 찔리는 게 영 그 분야론 밀어붙여선 안 될 것 같고 이 지랄맞은 성격을 염두하자니 더욱 답이 나오지 않는 현실에 입을 앙 다물고는 책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 번 사는 인생 뭐 있나. 다들 도전하면서 사는 거지. 그럼에도 떨쳐낼 수 없는 주눅감에 10분이라는 공백이 지나고 나서야 파묻고 있던 얼굴을 들어 옆에 있던 친구에게 머리를 쓸어넘기고서 나름 분위기 있는 낯빛을 들이밀었다.
" 어때? 좀 괜찮지 않냐."
" 뭐래, 이게 자다가. 네 면상을 찬찬히 둘러봐봐. 이성적인 호감이 생기나."
" 그게 지금 나한테 해줄 수 있는 최선이냐."
" 어, 교수님이 너 쳐다봤다. 저 교수 알지? 좆같이 과제 내기로 유명한 거."
친구의 자본주의 미소와 함께 아니나 다를까 본수업에 집중을 하지 않는다는 불호령이 떨어졌고 난 뜻하지 않는 과제를 맞이했다. 여튼간에 정호석 저 인간하고만 있으면 인생에 도움날 일이 없어요, 아무도 보이지 않게 조심히 선배의 뒷통수에 주먹을 들어올렸다. 그럼에도 신경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몰려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나 좋아하게 만든다, 이것만이 하수인 내가 내 머리 꼭대기에서 신명나게 판을 두드리는 고수를 무너트릴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었다. 단단히 꼬여버릴 실타래를 풀어헤칠 자신도 없으면서 능청스럽게 단정한 뒷통수를 쫓았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난 머리를 벽에 박으면서까지 현실을 부정했지만 이 망측하고 거지 같은 프로젝트 축하 파티에 끼어있는 중이었다. 축하 파티는 지랄, 술 파티겠지. 집게를 한 손에 들고 고기를 세게 가위로 잘랐다. 선배님들의 술잔이 채워졌고 이에 따라 선배들은 후배들과 같이 건배를 하며 구호를 외쳤다. 오늘 정리 담당은 보나 마나 나랑 태형 선배겠구만. 벌써부터 다가오는 귀찮음에 잔에 담긴 사이다를 원샷하고서 묵묵히 고기만 굽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는 호석 선배가 정면으로 보였다. 순간 이틀 전의 쓰레기통에 꽂아버린 커피가 생각나 평온한 그의 얼굴에 소주잔을 들이붓고 싶은 걸 간신히 참으려고 했는데도 도저히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내 사전에 아닌 건 아닌 거니까, 탁- 고기를 굽다 집게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앞에 앉아있는 그에게 삼자 대면을 신청했다. 이내 소란스러웠던 술자리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여러모로 눈에 띄는 행동만 하는 게 억울하기도 했다.
" 선배는 제가 그렇게 싫습니까."
" 싫진 않아. 다만 따박따박 덤벼드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지."
" 그럼 커피는 왜 버리셨는데요? "
내가 못 볼 줄 알았나보지. 거짓말이 들켜버렸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모양새가 퍽 웃겼다. 나름 복잡해진 상황에 선배가 팔짱을 끼며 자세를 고쳤다.
" 난 원래 아메리카노 안 마시니까. 그 점은 내가 사과할게. 네가 볼 줄은 몰랐어, 정말."
" 그럼 다른- 아닙니다. 드세요, 타요."
" 저번부터 너한테 궁금한 게 있는데 관심이야? 아니면 버릇인가, 남의 일에 끼어드는 거. 넌 내 모든 사정에 태클을 걸잖아."
불판에 의해 뜨겁게 달궈지던 고기를 뚫어져라 보던 눈길이 곧 나를 올려다봤다. 궁금해서요, 뭐 저런 싸가지가 다 있나.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들이 연기와 함께 허공으로 사라졌다. 애정 어린 원망이라고 해두죠, 별 다른 뜻 없이 시선을 거두고선 입을 열어 심드렁하게 대꾸해주고서 젓가락을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연거푸 술잔을 비워냈다. 뭐같은 인생 취해보자는 일념 하나로 소맥을 말아마시는 것 또한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란 듯이 난 얼굴을 테이블에 꼬라박았다. 정확히 짚자면 완전히 술독에 빠져버렸다. 이미 취해버린 나에겐 똑바른 선택을 하게 만드는 이성이란 끊어진 지 오래였다. 호석 선배- 그의 이름을 불렀고 엇갈리던 시선이 서로를 향했다.
" 일반적으로 심리학에선 싫어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 몇 퍼센트에요?"
" 그건 왜 궁금한데."
" 선배가 저한테 반하게 꼬실거거든요."
" 네가 날?"
" 네, 선배 이제 큰일났어요."
" 100프로, 내가 너한테 흔들릴 수도 있는 퍼센트."
" 점수가 좀 후하네요, 선배답지 않게."
의외의 대답에 쥐고있던 술잔을 놓칠만큼 놀랐지만 애써 별 일 아닌 척 표정을 관리했다.
" 그게 네가 원하는 대답일 것 같아서. 그럼 반대로 넌 얼만데, 네가 나한테 넘어올 확률."
" 백프로 0이요."
내 대답에 선배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입꼬리를 말아올리더니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 과연 0일까, 아마 네가 날 작정하고 유혹하는 것보단 내가 널 꼬시는 게 더 빨라보이는데."
들켜버렸다. 스파이가 술김에 적에게 확실한 정보를 넘겨줘버렸으니 꼬리를 밟혀버릴 만도 하지, 주도권을 뺏겨버릴 것만 같은 불안한 예감에 동물이 먹잇감을 감추듯이 나 또한 부리나케 손에 잡아쥔 약점을 세게 움켜쥐었다. 부러 주제와 다른 대꾸를 하면서 말을 돌렸다.
" 맞다, 그리고 제가 사과도 드렸는데 진짜- 하필이면 쥐새끼래. 좀 듣기 좋은 걸로 해주시던가. 그럼 선배는 뭔데요? 순진한 강아지를 닮았으니까 개새끼인가."
나도 모르게 베시시한 웃음이 터졌다. 우리에게 시선이 집중되어있던 테이블에 웃음보가 터지려는 소리가 들려왔다. 개새끼를 개새끼라고 부르는 게 뭐가 저렇게 웃겨, 주변을 둘러보니 입술을 보이지 않게 하고서 웃음을 참으려는 기색들이 역력했다. 나의 발언은 그를 향한 명백한 도발이었고 정작 본인은 그것도 모르고 술에 취해 볼에 살짝 홍조를 띄곤 웃고 있었다. 그러다 맞은편에서 호탕하게 진실된 웃음이 터져나오는 호석 선배 덕분에 다들 입술을 더욱 세게 다물었다. 눈치를 보는 곁눈질이 시작되었고 이건 분위기가 고조되었음을 알려주는 신호를 뜻하기도 했다. 개새끼라, 술잔을 빙빙 돌리던 선배가 잔을 비우기 위해 남아있던 술을 한 번에 털어넣었다.
" 좋네, 선후배가 애칭으로 하기."
" 애칭하니까 그닥 끌리진 않은데요."
" 넌 쥐새끼, 난 개새끼. 애칭말고는 연관성이 없잖아."
" 좋아요. 그럼 그 연관성을 애칭으로 바꿔보죠, 우리."
" 하여간 술만 들어가면 당돌해."
" 담판 지으러 갑시다, 선배."
확률에서 0 이라는 숫자는 장담할 수 없다는 거 알지, 묘한 눈매가 물음을 던졌고 이에 자신만만한 낯빛으로 대꾸해줬다. 그건 선배 착각이고요. 끈적어린 시선이 빤히 나를 향하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선 술잔을 흔들었다. 이내 잔에 담겨있던 술이 파동을 일었다. 창문 틈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스며들었고 난 자연스럽게 이불에 몸을 말고는 눈살을 지푸렸다. 뭐야, 떠지지도 않는 눈으로 유독 눈부신 집 안을 둘러보다 눈을 비비던 손놀림이 서서히 멈췄다. 무언가 한참 잘못되었음을 감지했다. 설마, 내 방이 아닌 익숙하지 않은 낯선 집에서 난 아침을 맞이했다.
♥ 저의 탄님들 ♥
[ ●달걀말이●] [지팔] [희라] [하찌] [유자청] [광어] [토끼누이] [뉸기찌] [아침 8시]
잘 지내셨어여!! 요즘 밖에 날씨가 춥던데 감기 걸리시며 안 되시니까 다들 따뜻하게 입으시구 이제 벌써 설날이 다가오고 있네요!!
독자님들과 저의 탄님들과 모든 분들이 설날 잘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새해엔 항상 행복한 일만 가득하세여♥
그런 의미로 우리 호비 새벽짤 한 번 갈까요.....ㅎr.....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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