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아이를 처음 만난 건 아마 내가 기억하는 그때일 것이다.
공연 확인서를 내야한다는 승철이 형의 연락에 급히 뛰어가다 옆을 채 확인하지 못하고 그만 누군가와 부딪혀버렸다.
그때 그 누군가가 바로 그 아이였고,
살면서 누군가와 이렇게 갑작스럽게 마주친 적이 한 두번이 아닐텐데도
나는 날 바라보는 그 아이의 눈빛에 말려들어 곧바로 어떠한 말도 쉽사리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저 그 늪에서 빠져나오려 버둥대는 한 마리의 개구리만 있을 뿐
그렇게 머릿 속으로 허둥대다 정신을 차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날은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그 아이를 지나쳐 버렸다.
"야 빨리 확인서 내. 너만 내면 돼."
"..."
"야. 권순영, 확인서 내라고"
"어어.. 알겠어"
무슨 느낌이라고 정의해야 할까..
꽉 막힌 듯 처음 느끼는 그 감정에 아무 말 없이 멍만 때리다,
곧장 몸을 털어대며 그저 기분 나쁜 감정일 것이라 치부해 버리고 말았다.
***
정신 없는 새 학기 기간에 수업은 평소보다 빨리 마쳤고,
그 덕에 강의실에서 튀어나오자마자 드러눕기 편한 장소로 달려갔다.
동방 소파에 앉아 휴대폰만 쳐다보다 귀찮게 매달려오는 석민이를 떼어내자 마자 낯선 듯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 들었다.
"안녕하세요. 16학번 부승관 입니다"
"안녕하세요. 16학번 김여주 입니다."
..또 마주쳐버였다. 그 기분 나쁜 감정..
어색한 듯 동방을 둘러보는 너를 쳐다보다
다시 그 꽉 막힌 듯한 감정이 찾아오는 것 같아 눈을 마주치기도 전에 고개를 돌려버렸다.
여기엔 왜 온 걸까
관심 없는 척 몰래 듣다보니 우리 동아리에 관심이 있어서 제 발로 이곳에 찾아온 건 아닌 듯 했다.
"더 빼지 말고 그냥 우리랑 동아리 같이 해보자."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애쓰는 석민이의 말에 슬쩍 고개를 들자마자
당황스럽게도 눈이 마주쳐 버렸다.
그러나 더 당황스럽게도 먼저 그 눈을 피한 건 내가 아니라 그 아이였다
"..네! 그럼 저도 할게요!"
또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뒤이어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갈 곳을 잃은 내 두 눈이 티나게 흔들려버렸다.
기분 나쁜 감정, 어쩌자고 함부로 막 들어오는거야
역시 이석민.
넌 진짜 어디가서 말빨로는 절대 안 질 애다..
두 신입생이 나감과 동시에 폭풍이 휘몰아 쳤던 심장이 한 순간에 고요해졌고,
그 탓에 갑자기 힘이 빠져버린 몸은 그대로 소파에 기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아..."
"형 대박. 신입생 모집 시작이 좋은 거 같아요! 한꺼번에 두 명이나 찾아오다니"
그래라 그래.
머리 아프니까 말 좀 걸지 말아줄래?
난 지금 이 꽉 막힌 걸 푸는 게 엄청 중요해서
***
"저 잠시 바람 좀 쐬고 와도..."
벌써 세 번째다 이 느낌
차라리 최대한 마주치지 않았으면 했는데..
이 아이가 뭐라고 이렇게 보자마자 숨이 턱 막힌다.
어떤 미친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자리를 피하려는 그 아이의 뒤를 바로 뒤쫓았다
"야! 권순영 어디가"
텁텁한 공기를 가르고 문을 열고 나오자 마자 곧장 문 옆에 쭈그려 앉은 그 아이를 마주할 수 있었다.
함부로 그런 데 앉는 거 아닌데...
"저기.."
무슨 용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꽉 막힌 숨을 토해낸다는 것이 그만 말로 뱉어내 버리고 말았다.
생각지도 못한 나의 미친 짓에 후회할 틈도 없이, 소리의 근원지로 돌아본 그 아이의 눈빛에 빠져 또 한 번 더 숨이 막혀버렸다.
그 어느 누구도 먼저 마주한 눈을 피할 수 없었고 처음 제대로 마주한 그 눈동자의 끝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네..?"
"어.. 술 많이 마셨어..?"
사고회로가 고장난 것이 분명했다.
뇌를 거치지 않은 말들이 마구 튀어나오는데도
그 아이 앞에 선 뒤로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니요. 그냥 조금 답답해서요."
"..."
"..."
"아.. 그렇구나..
오티 때 부딪힌 거는 괜찮아..?
그때 사과를 제대로 못해서.."
"저는 괜찮아요! 세게 부딪힌 것도 아니고 다친 데도 없어요."
이제 와서 조심스레 건낸 말이었지만
들려오는 대답에 갑자기 꽉 막혔던 숨이 트여버렸다.
놀랍게도 정신없이 흔들리던 내 사고회로의 틀도 제대로 맞춰진 듯 흐릿해지던 정신을 똑바로 잡아주었다.
이거였었나. 그동안 무언가를 꽉 막고 있던 게..
"아.. 다행이다
추운데 너도 얼른 들어와."
갑자기 트인 숨에 알 수 없는 느낌이 다시 날 사로잡았고
그 느낌을 견딜 수 없어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말로만 다행이지 정신은 전혀 다행이지 못했다.
"미친놈아, 말도 없이 어디 갔다 왔어."
"아아- 원우야 나 취했나봐. 아니면 진짜 미쳤나봐."
"뭐라는거야, 진짜. 이 미친놈이"
텁텁한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원우의 팔에 매달려 징징거리기도 잠시 우리 앞에 다시 그 아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주야- 자 너도 한 잔해, 어서 잔들어"
뭐야, 진짜 미친놈은 여기 있었네.
갑자기 뭔 술을 먹인다는 거야, 딱 봐도 불편해 보이는구만
"뭘 또 한 잔해. 그만 먹여."
술병을 잡고 들어올린 원우의 팔을 끌어내리며 내뱉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너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아 어색하다
그 공기를 차마 이겨내지 못하고 이번엔 내가 먼저 피해버렸다.
티 나면 안되는데...또 이렇게 머저리같이 티를 내고야만다.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 괜히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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