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열X백현]
겨울병동
w.레녹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백현의 침대를 확인하는 일이 버릇이 된 모양이었다. 어제 내내 비어있던 백현의 침대에 백현이 가만히 누워 있었다. 새벽에 다시 일반 병동으로 옮겨
진 듯했다. 요 이틀 간 얼굴색이 더 파리해졌다. 입술도 말라 갈라졌다. 찬열은 제 침대 옆 수납장에서 립케어를 찾아냈다. 깨금발로 백현의 침대로 다가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 백현은 아직도 잠들어있었다. 약 먹은 병아리처럼. 찬열이 립케어를 입술에 발라주는 중에도 백현은 기척 한 번 없었다. 립케어 뚜껑을 닫고, 백현의 환자복 주머니에 넣어주
었다. 찬열은 흐트러진 백현의 앞머리를 정리해주었다. 기운 내. 찬열이 작게 속삭였다.
마른 손이 제 손을 잡는 느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마 백현을 보다 깜빡 잠이 든 것 같았다. 찬열의 눈과 백현의 눈이 마주쳤다. 백현이 웃었다. 찬열도 활짝 웃었다. 좋은
아침. 어제 내내 못 본 뒤에 첫 인사치고는 어색한 인사였지만 백현은 가만히 웃었다. 몸은 좀 어때? 찬열의 물음에 백현이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별로. 예상했던 대답이었
다. 찬열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백현이 물어왔다. 나도 별로. 찬열이 대꾸했다. 거짓말. 백현이 웃었다.
나 계속 걱정했니? 백현이 또 물어왔다. 찬열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났는데 니가 없어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찬열이 작게 말했다. 백현이 제 손을 더 세게 잡
아왔다. 고마워. 백현의 말에 찬열이 어? 하고 되물었다. 나 걱정해주는 친구는 니가 처음이야. 백현의 말에 찬열이 웃었다. 나도 친구는 니가 처음이야. 찬열이 말했다. 어줍짢
은 날파리들이랑은 비교도 안되는 친구.
찬열은 웃으며 말했다. 너 나랑 친구하는 거 맞지? 찬열의 물음에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 난 친구가 없었어. 너처럼 병원에 오래 있는 것도 아니었구, 그렇다고 왕따
도 아닌데. 그런 거 있잖아. 진정한 친구라고 해야하나? 진짜 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어. 찬열이 말했다. 여전히 백현의 손을 꼭 잡은 채였다. 백현
은 우물쭈물하며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는 찬열을 빤히 쳐다보다 다른 손으로 찬열의 어깨를 토닥였다. 다들 내 뒷배경만 보고 다가오는 거였어. 아부하고 내 앞에서는 빌빌 길
었지만 뒤에서는 날 엄청나게 깠을 게 분명해. 찬열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 게 난 너무 싫었어. 사람의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게 무섭잖아. 백현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인 찬열의 어깨를 토닥였다.
찬열이 병실에 처음 들어왔던 날이 생각났다. 고가의 게임기며, 노트북이며 바리바리 싸들고 온 찬열을 보며 백현도 찬열이 잘사는 집 아들이라는 걸 짐작했었다. 그래봤자 저
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처럼 찬열에게 잘 보여서 줄을 잘 탈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었고, 찬열에게 붙어서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애탈 필요도 없었다. 저에게
는 찬열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저 자신과 싸워서 사는 게 중요했었으니까. 백현은 축 처진 찬열의 너른 어깨를 보며 생각했다.
그런데, 난 니가 좋아. 그냥 이유없이. 찬열이 제 어깨를 토닥이는 백현을 보며 말했다. 만난 지 얼마 안됐지만, 끌리는 뭐 그런 게 있어. 찬열이 그렇게 말하고는 수줍게 웃었
다. 아, 뻘쭘하다. 찬열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있지…. 백현이 입을 열었다. 사실은 나도 알고 있어. 나 얼마 못 산다는 거. 백현의 말에 찬열의 표정이 굳어졌다. 왜? 왜 그렇게 생각해? 찬열의 물음에 백현은 아랫입술
을 꾹, 깨물었다. 내 몸은 내가 알아.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내 몸에서 하나둘씩 뭔가가 사라지는 거 같아. 찬열은 그렇게 말하는 백현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살고 싶
어. 욕심일지 몰라도, 난 살고 싶어. 아무리 병이 날 죽이려고 하고, 내가 죽어가고 있지만…. 백현의 입에서 '죽는다'는 말이 나오자 찬열은 백현의 손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백현이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냈다. 그래도 이렇게 마지막으로 친구를 만들게 되서 기뻐. '마지막'. '마지막'이라는 말에, 기어이 찬열의 눈에서도 눈물이 툭, 하고 떨어
졌다.
*
날이 가면서 백현의 머리카락이 빠져가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도 숱이 많이 적었던 백현이었는데, 이제는 털모자까지 써야할 만큼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다. 털모자를 쓰며 눈
물을 뚝, 뚝, 흘리는 백현을 보며 찬열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면서 눈물을 참았다. 찬열이 가만히 백현을 끌어안았다. 나 진짜 죽나봐. 백현의 말에 찬열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찬열의 말에도 백현은 엉엉 소리내며 울었다. 머리카락도 빠지고 멍도 늘고 세미코마 상태까지 왔다갔다해. 또 감기도 잘 안 낫구. 백현은 불안함에 더 소리내어 울었다.백현
은 한참을 울다 지쳐 잠들었다. 잠든 백현을 보며 찬열도 울었다. 백현이 깰까봐 소리도 내지 못하고 끅끅 거리며 울었다. 하루하루 멍이 늘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치료에 지쳐
서 우는 백현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 찬열을 그렇게 생각했다. 찬열은 두 손을 모았다. 정말로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있는 거
라면, 백현이 낫게 해달라고. 만약 백현이가 잘못되면 가만 안두겠다고.
*
눈이 내렸다. 백현과 찬열이 병실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함박눈이 내리는 걸 쳐다봤다. 병원에서 두 번째 겨울이야. 백현이 작게 말했다. 찬열은 아무 말 없이 백현이 쓴 털모
자에 달린 방울을 손으로 만졌다. 첫 눈을 먹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대. 찬열의 말에 백현이 웃었다. 거짓말. 찬열은 진짜야! 하고 대꾸하고 창문을 조금 열어 손바닥에 눈을 받
았다. 녹을 세라 서둘러 혀로 눈을 핥았다. 백현이 낫게 해주세요. 찬열은 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었다. 이번엔 니 소원이야. 눈을 받아 다시 핥았
다. 백현이 낫게 해주세요. 찬열은 다시 소원을 빌었다. 뭐 빌었는데? 백현이 물었다. 찬열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니가 나 좋아하게 해달라고. 찬열의 말에 백현이 웃었다. 나
너 좋아해. 백현의 말에 찬열이 고개를 저었다.
친구로 좋아하는 거 말구. 찬열의 말에 백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찬열을 쳐다봤다. 난 너 좋아하는데, 백현아. 친구로 말구. 찬열이 말했다.
저가 백현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것, 백현이가 안 나으면 하나님이든 뭐든 가만 안 놔두겠다고 기도했던 것도, 매번 저보다 백현을 먼저 챙기는 것도. 다, 좋아해서 그랬다는
걸 찬열은 요 며칠 전 깨달았다. 백현이 안 보이면 불안하고, 백현이가 울면 저도 울고 싶고. 가끔 백현이 쓰러져 침대에 누운 채로 중환자실로 실려가는 걸 볼 때는 가슴이 찢
어지는 것만 같고.
찬열이 가만히 백현의 손을 잡았다. 난 얼마 못 사는데도 내가 좋아? 백현이 물었다. 난 머리카락도 없구, 몸이 비쩍 말랐구, 눈물도 많아. 그래도 내가 좋아? 백현의 물음에 찬
열은 가만히 백현의 손을 쥔 저의 손에 힘을 주었다. 난 머리카락도 없고, 몸도 말랐고, 눈물도 많은 니가 좋아. 니가 오래살든 짧게 살든 난 니가 좋아. 그냥 너니까. 찬열의 말
에 백현이 울었다. 난, 나는…. 찬열은 손을 뻗어 백현의 눈물을 닦았다. 나도 니가 좋아, 찬열아…. 백현이 말했다. 근데 있지. 나 따위가 너 좋아하는 건 너무 못된 짓인 거 같
아. 넌 이제 나아서 퇴원하면 나 같은 것보다 더 이쁜 애들 만날 수 있잖아. 백현의 말에 찬열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변백현 너 하나야. 찬열의 말에 백현은 결국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 레녹 |
레녹입니다!
겨울병동은 다음편이나 담담편에서 끝이 날거같아요
댓글달아주신 치킨님 착한사람님 백야님 카스타드님 너무 감사드려요
비회분독자분도 감사드립니다!
사실 댓글이 적은 편입니다ㅠㅠ 그래도 저는 뭐 좋아요! 몇분이라도 봐주시고 댓글달아주시는 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합니다! 그래도.......'잘봤어요' 라는 한마디라도 써주셔도 저는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ㅎㅎㅎ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내일뵈요~ |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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