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고기로케
“선배, 한솔 선배가 추가 분량 찍은 것도 편집 미리 해 놓으시래요.”
순간 상스러운 욕을 내뱉을 뻔했다. 내 앞에서 눈썹을 내리며 내게 가루 비타민을 내미는 김동영의 표정을 보고서는 겨우 욕이 튀어나가려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편집실에만 틀어박혀 있은지 몇 시간이나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줄곧 편집실 컴퓨터 앞에만 앉아 영상을 만져대고 있었으니 이젠 모니터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신물이 났다. 그런데 추가 분량을 더 편집하라니. 선배고 나발이고, 당장이라도 저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 난 못합니다! 선배 네가 하십시오! 하며 소리치고 싶었다.
“동영아, 나 지금 죽을 것 같다.”
비타민의 노란 포장지를 손수 뜯어 내게 건네는 김동영에 한껏 울상을 지어 보였다. 그에 그 마음 백 번도 더 이해한다며 그는 제 의자를 내 옆으로 끌고 와 앉았다. 그런 그를 보며 난 가루 비타민을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으아, 셔. 눈썹을 괴상하게 꼬물거리며 입을 오물거릴 때, 김동영이 내 손에 쥐어진 빈 비타민 포장지를 도로 제 손으로 가져가서는 휴지통에 버리더라.
“선배, 그러지 말고 좀 쉬어요. 나머지는 제가 할게요.”
“에이, 됐어. 어떻게 그래. 내 일인데 내가 해야지. 말만으로도 고맙다 야.”
“됐긴 뭐가 돼요. 난 괜찮으니까 이리 줘 봐요.”
손사래를 치며 내 쪽으로 팔을 뻗는 그를 밀어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결국 마우스를 그에게 내어준 나는 무안하게 방황하는 손을 어쩔 줄 몰라 하며 그저 마우스 주변을 맴돌았다. 선배, 괜찮아요, 제가 마무리할게요. 김동영은 제 손 주위를 어쩔줄 몰라하며 맴돌던 내 손이 신경 쓰였던 것인지, 내 손등을 가볍게 감쌌다. 순간 잡혀버린 손에 한 번, 내 손등에 얹힌 그의 커다란 손에서부터 전해져오는 따스한 온기에 두 번 놀라 그를 토끼눈으로 쳐다보았다.
“가만히 있어요, 제가 할게요.”
나를 보며 한 번 씩 웃더니 제 손안에 있는 내 손을 내 무릎 위로 가져다 놓고서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는 그였다. 여전히 내 손에 약간 남아있는 그의 온기에 멍하니 그의 옆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그의 옆태를 빤히 쳐다보며 감상하고 있었다. 곧게 뻗은 콧대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턱 선에 얘도 한 외모 하는구나, 하며 소리 없는 감탄을 내뱉고 있을 때, 편집실의 문이 덜컥 열렸다.
“얘들아, 점심 먹으러 가자.”
휴대폰 화면에 고개를 박은 채 들어오는 한솔 선배에 오늘은 웬일로 점심을 제때 먹으러 가자고 하나 의아해졌다. 슬슬 배고파지던 시간이었는데, 잘 됐다 하며 지난번에 정재현과 갔던 새로 오픈한 한식집이 문득 떠올랐다.
“오 점심은 그럼 요 앞에 새로 생ㄱ…”
“나 갑자기 순대가 당긴다 야. 우리 순대 먹으러 가자. 부산은 순대 쌈장에 찍어 먹는다 아이가.”
아니 부산이 순대를 쌈장에 찍어 먹든 된장에 찍어 먹든 나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더군다나 난 순대 좋아하지도 않는데 순대라니?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제멋대로 점심 메뉴를 결정해버리는 한솔 선배에 다시 한 번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가 소리 지르고 싶은 충동이 마구 끓었다.
![[NCT/동영/태일/재현] 방송학개론 03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11/06/1/70ef511e36b1951de3693af31786971c.gif)
“이거 봐봐라. 이렇게 쌈장에 한번 찍어 먹어봐라.”
한솔 선배는 나 보란 듯이 먹기 좋게 썰린 순대를 하나 집어 쌈장을 듬뿍 찍고서는 제 입으로 가져가 보였다. 하하, 참 맛있겠네요. 난 억지로 눈을 접으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되지도 않는 연기를 하며 최대한 순대를 좋아하는 척하려 했다. 막연하게 순대를 싫어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또 딱히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누가 억지로라도 먹이면 먹을 수는 있는데, 순대 껍질은 꼭 까서 먹어야 했다. 순간 순대 껍질을 하나하나 다 벗겨주며 내게 무슨 공주님이라도 되는 줄 아냐고 비웃던 정재현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떠올라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선배, 순대 별로 안 좋아해요?”
젓가락으로 소금을 휘적이고만 있던 나를 신경이 쓰였던 것인지 물끄러미 보는 김동영이었다. 이내 내 눈높이에 맞춰 고개를 살짝 숙이고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어왔다. 내 맞은편에 앉은 그는 순대가 싫으면 다른 거라도 시키라며 입을 쭉 내밀어 보인다.
“아, 아냐. 순대 좋아!”
나 구라 잘 치네? 나는 내 구라 실력에 조금 놀랐다. 혹여 동영이가 걱정할까 허허 웃어 보이며 순대를 하나 집어 들어 입으로 쏙 넣어버렸다. 껍질도 벗기지 않은 것을 씹고 있으려니 얼른 뱉고 싶었지만 눈을 내게 고정시킨 김동영에 거짓 눈웃음을 지으며 물을 들이켰다.
“거짓말. 선배 껍질 안 까면 안 먹는 거 다 알아요.”
“어?”
김동영은 제 고개를 휘휘 저어 보이더니 이리 줘 봐요, 하며 내 접시를 제 앞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아기같이 이렇게 껍질 다 벗겨서 먹어야 하고. 되게 손이 많이 가요 선배는.”
칭찬인지 욕인지. 제 젓가락으로 손수 껍질을 벗겨주는 김동영을 바보처럼 보고만 있었다. 그는 미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껍질을 다 벗긴 그릇을 내 앞에 다시 놓아주며 얼른 먹으라는 듯 눈썹을 한번 으쓱해 보였다.
고마운 자식, 날 위해 껍질까지 벗겨주고, 눈물이 날 뻔했다. 내가 고맙다며 우는 시늉을 하자 김동영은 꺄르르 웃으면서 소금 그릇을 내 앞으로 밀어준다. 어서 먹어요. 나 챙겨주는 거 세계 최고네.
“선배 내가 안 챙겨주면 어쩌려고 그래요.”
“네가 안 챙겨줘도 내가 잘 하거든?”
“에이.”
아닌 것 같은데. 못 믿겠다는 표정의 동영에 나는 맞다며 내 손수 순대 껍질 까는 것을 보여주었다. 봐 나 잘까지?
“네에.”
뭔데 이 음성 데자뷰는..? 입속으로 순대를 가져가서 씹는 나를 계속 보는 김동영에 턱을 한두 번 추켜올려보였다. 뭐. 왜.
“선배, 우리 저번에 저녁 먹기로 했잖아요 같이.”
“응.”
“오늘 먹으러 가요, 우리.”
By 고기로케
“소주 두병 주세요!”
결국 퇴근 후에 동영과 고깃집으로 직행해버렸다. 점심엔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거 먹었으니 저녁은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사주고 싶다던 동영의 꼬드김이 작용한 것이 한 몫 했다. 고깃집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끌시끌했고, 우리는 그 속에 스며들어 앉았다.
여기 손님 많다, 그치. 김동영이 자기가 자주 가는 고깃집이라며 나를 데리고 온 터라 여기가 처음인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고, 주변은 회식을 하러 온 회사원들로 가득 차 있었다. 벌써 취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얼굴이 벌게져서 호탕하게 웃어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 선배랑 여기 꼭 와보고 싶었는데.”
“나랑? 왜?”
“그냥요.”
내 잔에 소주를 따라주며 날 보곤 한번 웃는 것도 잊지 않은 동영이다. 서로 안면은 튼 기간에 비해 빨리 친해진 우리였다. 김동영의 친화력과 붙임성이 한몫 한데도 있지만, 저 사람 좋은 웃음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달까. 그래서 나도 자연스레 김동영과 친해진 것 같다.
“너 인기 많으면서. 같이 올 사람 많잖아.”
김동영은 잘생기고 싹싹하기까지 해서 인기가 많았다. 내 또래의 여 동기들은 처음 김동영이 들어오자 잘생겼다며 내게 꺅꺅거리던 것을 기억한다. 처음에는 저 얼굴이 잘생긴 건가, 싶었는데 계속 보다 보니 호감상이긴 했다. 마치 토끼를 닮은듯한 외모 때문에 내 동기들은 ‘잘생긴 토끼 후배’라고 부른다는 걸 김동영만 모를 것이다.
“인기가 많긴, 뭐가 많아요. 선배가 더 많아요.”
“야, 나 인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이야, 나 슬프게 이거 왜 이래.”
“인기 많던데.”
내가 인기 많다고? 처음 들어보는 소리다. 한번 인기가 많아져보는 게 내 소원이다. 내 주변에 남자라고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데. 해봤자 정재현이나 문태일같은 사람들 뿐이니. 그 둘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에 김동영은 고기를 뒤집으며 아니라는 듯이 나보다 더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선배 주변에 남자가 되게 많던데.”
“내 주변에? 도대체 어디에 있니.”
“왜 있잖아요, 정재현 아나운서 분 같은.”
저번에 회사 앞에서 셋이 마주쳐서 하는 소리인가. 나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손사래를 쳐댔다.
“아니야, 걔는. 걔는 그냥…”
“그냥?”
내 대답을 기다리는듯한 그의 눈이 고기가 노릇노릇 익고 있는 불판에서부터 내 얼굴로 옮겨졌다. 나는 생각했다. 정재현. 걔를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말끝을 흐리며 아주 잠깐 고민에 빠졌다가는 이렇게 문장을 완성시켰다. 친한 친구지, 엄청 친한.
“친구요?”
“응.”
곧이어 들려오는 다행이네,라고 중얼거리는 말은 혼잣말이었을까,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을까. 뭐가 다행이냐. 내 잔을 다시 채워주는 그에게 물었다. 조그마한 소주잔이 물수제비와 같은 맑은 소리를 내며 천천히 채워졌다.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 정도는 있겠다 싶어서?”
특유의 입동굴을 보이며 크게 웃어 보이는 그는 제 술잔을 들고 내게 같이 건배를 하자는 듯한 눈짓을 주었다. 뭔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그의 말에 난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빼 내 잔을 그의 잔에 살짝 부딪혔다. 투명한 두 개의 잔이, 마찰의 충격에 의해 조금씩 흔들리는 술을 그대로 비추어냈다.
-
슬슬 취기가 올라오는듯했다. 알싸한 알코올의 맛과 환상적으로 합을 이루어내는 고기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동영에게 더 따르라며 헤벌쭉 웃었다. 역시 술이 최고야. 가게 안을 비추는 누르스름한 조명이 더하는 무르익은 분위기가 좋았다.
“선배, 더 취하기 전에 그만 마시지.”
“아니야 안 취해. 더 마실 수 있어. 날 뭘로 보고.”
남들은 날 알쓰 일명 알콜 쓰레기라고 불렀지만, 납득하지 않았다. 날 알쓰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 대표적으로는 정재현이 있었는데, 술 마실 때마다 매번 그런 날 놀려대곤 했다. 언젠가는 술에 떡이 되어 정재현 앞에서 온갖 애교란 애교는 다 떨고 최신 유행하는 여자 아이돌의 춤을 췄는데, 그 모습을 영상으로 남긴 정재현이었다. 그 영상을 아침에 일어나서 보는데, 부끄러워서 뒤지는 줄 알았다. 못 된 자식, 친구를 놀려먹기나 하고. 순간 울컥한 마음에 동영아 너는 그러지 않을거지 하고 푸념을 했다.
“뭐가요?”
벌게진 얼굴의 나를 보며 물어온 동영과 동시에, 테이블에 올려둔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려댔다. 누군가 하고 보니,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더니, 정재현이었다. 전화 좀 받을게. 김동영을 보며 휴대폰을 향해 손가락짓을 몇 번 해 보이자 그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보십시오.”
- 어디야? 퇴근 안 했음 내 차 타고 같이 가자.
“재현이냐. 나 지금 밖에서 저녁 먹고 있는데.”
- 저녁? 누구랑?
“어 나 여기, 저번에 말했지? 내 후배 동영이랑.”
- 동영?
순간 건배를 외치는 다른 테이블 손님들의 소리에 묻혀 재현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결국 김동영에게 잠시 전화 좀 받고 오겠다고 하고 자리를 떠 밖으로 나갔다. 커다란 유리문을 열자마자 바깥의 서늘한 가을 공기가 내 피부에 닿았다.
“어 재현아, 뭐라고?”
-그래, 지금 그래서 그… 김동영이라는 후배랑. 같이 있다고?”
“어? 어… 근데 왜.”
- 아니 됐다. 나 빼고 남자는 다 조심해라 한 거 알지?
“참, 내가 무슨 애야? 걱정 마.”
- 응 너 애야.
“죽는다.”
옆에 있었으면 주먹을 들어 보이거나 눈을 찌르는 시늉을 해 줬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가게 안쪽을 들여다봤을 땐, 나를 보고 있던 것 같은 동영의 시선과 마주쳤다. 동영은 약간 놀란 듯했지만, 이내 사람 좋은 미소를 씩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 술 적당히 마시고.
“그래. 알아. 이만 들어가 봐야겠다.”
- 집 가면 나한테 전화하고.
“예예 알겠습니다. 끊어.”
- 야!
그렇게 재현의 마지막 마디를 듣지 못한 채 전화는 끊겼다. 아니, 내가 끊었다. 분명 저거 잔소리하려고 했을 거다. 혼자 두고 온 동영이 신경 쓰여 얼른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고 가게로 다시 들어갔다. 왔어요? 하며 나를 반기는 동영에 많이 기다렸냐 묻자 아니라며 고개를 저어 보인다.
“근데 누구예요?”
“아 정재현.”
“아…”
술 많이 먹지 말라고 또 잔소리네. 생긴 것만 말끔하게 생겼지 성격은 아주 잔소리 대마왕이라고 한숨을 쉬며 생긴것만 보고 믿지 말라며 충고를 해주는 나였다. 그에 동영은 그러냐고 허허 웃어 보인다.
“둘이 되게 친해 보여요.”
“어? 그렇지.”
“좋겠다.”
제 술잔을 입으로 가져다 들이키는 김동영이었다. 뭐가 좋다는 건지. 맨날 잔소리나 들어먹고 산다며 얼굴을 구기며 싫은 표정을 해 보이자 김동영이 또 웃는다. 난 개그맨이 아닌데, 난 의도치 않게 김동영을 자꾸 웃긴다. 난 얘한테 개그맨 같은 존재인가…하고 자아성찰을 해보았다.
“아, 나도 선배랑 친해지고 싶다.”
제 손으로 얼굴을 받히고 턱을 괴는 김동영이었다. 그의 눈빛이 내게로 닿았는데, 조금 어딘가 묘했다. 술기운이 돌아서 그런지, 노르스름한 조명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냥, 묘했다. 그에 나는 소주 병을 기울이며 이미 친한데 뭐,라는 대답을 했다.
“그래도, 좀 더 친해지고, 가까워지고 싶어요.”
“난 충분히 우리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나만 혼자 친분 쌓은 거야?”
장난스럽게 울상을 해 보이니 또 웃는다. 아, 나 자꾸 개그 캐릭터로 이미지 남기면 안 되는데.
“더 친해져서, 선배랑 둘이서 영화도 보고.”
“그래, 영화 보면 되지.”
“데이트도 하고 싶어요.”
그 말을 끝으로 해맑게 입꼬리를 늘어뜨리며 술잔을 들이키는 김동영이었다.
![[NCT/동영/태일/재현] 방송학개론 03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5/15/22/eec9ad6adbae903080f628152ea8644c.gif)
재현시점
김동영. 약 한 시간 전쯤 전화를 했을 때 김여주 입에서 나온 그 이름에 마음이 안절부절해 당장 그 애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전화기 건너편에서 여주의목 소리와 섞여 들려오는 김동영의 목소리에 내 가슴 저편에서 작은 불씨 같은 것이 피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더 이상 손에도 머리에도 들어오지 않는 일을 정리하고 곧바로 차를 몰고선 여주의 집으로 향했다. 불안사라는 게 있다면 아마 내가 그렇게 죽었을 것이다. 여주의 집으로 곧장 가지 않았으면 불안해서 죽었을 것이다.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도 괜한 의심받기 싫어서, 내 이런 마음을 들키기 싫어서, 핸드폰에 자꾸 머물려 하는 손가락을 떼어버렸다. 그 애의 집 앞에서 그렇게 한 이십분을 기다렸나, 저만치서 밝은 헤드라이트를 밝히고 들어오는 택시에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김동영이라는 그 후배는 김여주를부 축하며 택시에서 내렸는데, 나도 모르게 얼굴 근육이 굳어졌다. 제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여주의 허리에 감싸진 김동영의 손에, 김동영의 어깨에 둘러진 김여주의 손에,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혀가 잔뜩 꼬여 알 수 없는 소리만 해대는 김여주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상 근심 하나 없는 표정으로 헤벌쭉 웃어대고 있었다.
“어? 오! 내 사랑스런 친구 재현! 여얼 반갑다!”
반갑긴 개뿔. 술도 잘 못 마시는 게 어디서 이렇게 다른 남자랑 마시고 와서는.
“여주는제 가 안쪽까지 데리고 들어갈게요. 얘 바래다줘서 고마워요.”
김동영의 어깨에 둘러졌던 여주의팔 을 떼내어 내 목에 두르게 했다. 그리고선 김동영을 한번 슥 보고는 고개를 까딱해 간단한 예의를 갖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 정재현 아나운서 분 맞으시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순간에 김동영이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대로 몸을 반쯤 틀어 짤막하게 대답을 했다. 네, 맞아요.
“그쪽은, 김동영 피디시죠? 여주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이번에 새로 들어왔다고.”
“아 네…”
저를 안다고 하는 내 말에 조금 놀란 듯했다. 하긴, 아나운서가 예능국 피디를 아는 일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 더더욱 그게 새로 들어온 신입 피디라면. 그럼, 조심히 가세요. 작게 눈인사를 하고는 다시 뒤를 돌아 현관문을 열었다.
“저기!”
“네?”
“혹시, 실례가 되지 않으시다면 같이 밥 한번 먹어요. 여주선배랑같 이.”
나를 붙잡은 김동영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밥을 먹자니. 나랑? 여주랑 셋이서? 대체 왜? 조금 의아해서 그를 쳐다보니 김동영이라는 그 남자는 인상 좋은 웃음을 입가에 띄며 저가 밥을 산다며 눈썹을 추켜올렸다.
“네, 그러죠 뭐.”
나는 예의상 한 말이겠지, 하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아나운서 하려고 연습한 미소를 이런데 써먹을 줄이야. 이렇다 할 분명한 이유는 없지만 김동영이라는 저 남자, 별로 마음에 안 든다. 성격이 좋아 보여서 김여주가좋 아할 것 같거든. 나 원래 사람 막 판단하고 그런 사람 아닌데, 솔직히 좀 걱정이 돼서 그랬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한심했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사람 마음이 생각대로 움직여지는 게 아니니까. 그랬다면 내가 이 고생을 하진 않았겠지, 적어도.
“그럼, 쉬세요!”
저 말을 끝으로 택시를 타고 가는 김동영을 한 번, 어느덧 내 가슴팍에 기댄 김여주의 얼굴을 한 번 보았다.
-
“야, 침대 가서 자.”
집 문을 열자마자 제멋대로 신발을 벗어던지고는 거실 바닥에 픽 쓰러지는 김여주였다. 바닥이 침대인 줄 아나, 술 좀 적당히 마시라니까. 나는 작게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김여주의팔 을 흔들었다.
“싫어….”
이 계집애가. 그 와중에도 대답할 함은 있는지 웅얼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얼굴을 묻는다. 바닥 추우니까 침대 가서 자라는 말에도 그저 싫다며 꼼짝을 안 한다. 바닥은 차갑다고 침대에 누우라고 해도 요지부동이요, 이 애를 누가 말릴까.
“됐다, 넌 그냥 가만히 있어.”
보다 못한 내가 결국은 여주를 들어 올린다. 내 양 팔에 여주의다 리와 등을 올린 채 방으로 들어갔다. 매일 와도 바뀌지 않는 여주의 향기가 그대로 방 안에 스며든 듯 남아있었다. 향수처럼 인위적인 냄새가 아닌, 이 애 그대로의 향. 마치 봄날의 정원을 거닌듯한 따스하고 부드러운 그 향기가 내 코를 맴돌았다.
침대에 여주를 조심스레 눕히자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그러더니 또 조용해진다. 참 신기해, 하며 나는 이불을 잡았다. 순간, 이불을 끌어당기는 내 팔을 덥석 잡아왔다. 따뜻하고도 조그마한 손이, 내 팔을 낚아채듯이 제 쪽으로 끌어당긴다. 동시에, 내 심장도 하염없이 그 속도를 가하기 시작한다.
“재현아.”
내 이름을 웅얼대며 부르는 여주가 미웠다. 지금 내 기분을, 심정을 모르는 그 애가 미웠다. 여주의 손에 의해 끌어당겨진 나는, 그 애의 옆에 나란히 누워버렸고, 눈을 살짝 뜬 그 얼굴과 마주했다.
“재현아, 너도 같이 코 자자.”
코 끝 사이 3cm. 그 정도로 가까웠다.
그 애가 끌어당긴, 꼭 감싸 안은 내 팔은 데일 것처럼 뜨거웠고, 그 애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코 끝은 그보다 더 뜨거웠다. 온몸의 피가 마치 코 끝으로 쏠리는 것처럼.
“너무한 거 아니냐. 같이 코 자자니.”
내가 남자로 보이긴 하는 거니. 묘하게 서글픈 기분이 들었지만, 색색거리는 소리를 내며 잠든 그 애의 모습에 금세 한 번만 안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뒤덮였다. 무슨 아기도 아니고. 다 큰 애한테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게 나 스스로도 우스웠지만, 이 순간에도 미친 듯이 뛰어대는 심장이 더 우스웠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좋아하게 돼버렸을까. 조금만 덜 좋아하고 싶다, 싶다가도 내 앞에서 꼭 감긴 눈꺼풀을 보면 그저 예쁘다, 예뻐죽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야 좋아한다고.”
잠든 후에나 내뱉어본다. 자칫 잘 못 했다가는 영영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릴까 봐, 날 다신 보지 않겠다고 할까 봐, 겁이 나서, 잠이 든 후에나 내 진심을 내뱉어보았다.
내 팔을 꼭 감싸 쥐고 있는 작은 손을 바로잡고서 절대 김여주 앞에서 당당하게 하지 못 할 말을 되뇌어본다.
좋아해.
-
오랜만입니다 고기로케입니다,,
제가 사정이 생겨가지고 한 5개월 못 썼네요..ㅜㅜㅜ
작은 수였지만 그래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너무 죄송스럽구요ㅠㅠ
이젠 열심히 써보도록 할게요
엉엉 감사드려요
(아 지금 이름 넣는게 왜 안....????????????????? 죄송해요 제가 최대한 빨리 고칠게요ㅠㅠㅠㅠㅜ)
꼬미 / 재현아 윤오해 / 재횬짱 / 고기로케러브 / ㅇㅇㅈ/ 우재 / 우주 / 맠둥이 / 미뇽천사 / 127 / 더꾸 / 이마크 / 달탤 / 오렌지 / 꿀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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