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푸딩 한 접시에 네가 웃었으면 좋겠어
네가 힘든 걸 잊고 웃을 수 있었으면 나는 다른 소원은 없어.
오늘은 네가 집에 돌아오면 말랑말랑한 바나나 푸딩을 한 접시를 만들어 너에게 대접할게. 하루 종일 업무에, 책임에, 사람들에, 그 사이에서 살아내는 게 얼마나 힘이 들었니.
퇴근하는 길에도 집 문 앞에 서서도 하루 종일 너를 괴롭혔던 생각들이 잊히지 않는다는 걸 나는 알아.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고, 동시에 쥐고 있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것도 알아.
아무도 해결해주지 않는 사람의 인생에서 어떻게든 잘 살아내 보려고 발버둥 치는 너의 발끝이 보여. 그래서 오늘은 바나나 푸딩을 만들어주고 싶었어. 발버둥 치는 너의 발끝이 가벼운 저녁의 재즈 음악에 리듬을 타는 발끝으로 변한다면 나에게는 더 이상의 사랑은 없거든.
바나나 푸딩은 별거 아닌 재료들이 들어가. 하지만 그것들이 합쳐지면 얼마나 말랑거리고 부드러운지 아니? 그 달곰한 맛에 네가 오늘 하루를 잊었으면 좋겠어. 오늘 눈을 뜨면서 생각했던 회사 업무. 아침 회의에 듣기 싫었던 쓸데없는 상사의 푸념들. 점심시간에 나누었던 의미 없는 동료와의 대화들.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봤던 사람들의 불쾌함. 집으로 돌아오는 오르막길에 찼던 숨까지. 모두 네가 잊고 달곰함으로 하루를 채웠으면 좋겠어.
이런 것들이 매일 반복되면 얼마나 권태스러운지 알고 있어. 그래서 네가 바나나 푸딩 한 접시를 모두 비웠을 때 웃었으면 좋겠다. 그 길고 긴 권태를 포기하지 않은 너를 위해. 잠깐의 달콤함을 주고 싶어.
오늘 네가 웃으면 내일도 바나나 푸딩을 만들어 놓을게. 그러니까 오늘 하루 힘들었던 거는 모두 잊고 웃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