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마저 입을 다물었다. 이태일도 아마 처음 보겠지. 높은 천장에 여기저기 뚫린 구멍으로 비추는 햇빛. 그리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그 안을 빼곡히 채운 초록빛에 이태일도 박경도 말을 잇지 못했다. 내 옆에 서 있는 우지호는 나무를 보다가, 이태일을 보다가. 왜 눈치를 봐, 너.
"도대체."
한참만에 이태일의 입이 열렸다. 원래는 만나자마자 왜 멋대로 돌아다니느냐고 화를 냈어야 하는데, 잊었나보다. 이태일이 침을 한 번 삼키고 다시 말을 이었다.
"X구역엔 대체 얼마나 더 많은 비밀이 있는 거야."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X구역의 피폭 괴물들, 10년의 짧은 시간동안 생성된 거대 동굴, 햇빛이 비추지 않는 X구역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지호의 머리카락을 간질이고 있는 햇빛. 이 외에도 의문점은 수도 없이 많다. 도대체 X구역은 얼마나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는 걸까.
"우선, 좀 쉬죠. 이틀동안 다들 쉴 틈 없이 이동하느라 지쳤고, 지금 이 곳도 둘러 봐야하고 하니 일단은 쉽시다."
박경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지호가 내 팔을 붙잡는다. '왜'하고 물으니 팔을 툭툭 잡아 당기며 뒤로 한 걸음, 두 걸음. 이태일이 주저 앉으며 '나 쉴 거니까 니 알아서 해'하고 말하고 박경이 난처한 얼굴을 한다. 빨리, 빨리. 옆에서 재촉하는 우지호 때문에 두 사람에게서 고개를 돌려 우지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많이 넓진 않았지만 걷다보니 이태일의 투정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아."
내 앞에 있는 높고 커다란 나무. 아까 우지호가 껴안은 나무보다 두 배는 큰 듯 하다. 나무의 껍질을 쓸고 있는 우지호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다. 내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 이 안에 들어오고 나서 우지호가 조금 달라진 느낌이다. 문득 녀석의 눈을 보니, 속눈썹이 제법 이쁘다. 학교 다닐 때 못생겼다고 친구 놈들이 드럽게 비웃던 내 눈을 생각하니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우지호."
"응."
"너 여기 와 본 적 있어?"
절레절레. 뭐? 없다고? 근데 왜 이렇게 익숙해. 내 반응에 시끄럽다는 듯 우지호는 휙 등을 보인다. 야, 여기 기껏 끌고 와서는. 어? 투덜대면서도 우지호의 뒤를 따라 걸었다. 햇빛 아래 갈색으로 빛나며 흔들리고 있는 머리카락. 흰 색의 손이 머리 옆으로 올라가 나뭇잎을 한 번 매만지고 다시 내려온다.
"조금은."
우지호가 여전히 등을 보인 채 입을 열었다.
"희망이 생긴 것 같아."
뭐?
무슨 소리야, 하고 물어도 우지호는 말없이 앞장서서 걸을 뿐이다. 그런 우지호의 뒤를 바라보는데, 입이 열리질 않는다.
"일단은 이 지하 동굴 전체에서 에너지 반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곳에 들어오기 전, 조금 푸른 빛을 띠고 있던 그 곳 말이에요. 거기서 에너지 수치가 갑자기 껑충 뛰어 올랐고 이 곳에 들어와서는 거의 몇 배 이상 차이가 났습니다. 고 에너지 반응이 이 곳의 모습과 뭔가 관계가 있는 모양이에요."
연구소에서 박경은 항상 말이 없었다. 말 많은 놈이기야 하지만, 회의라던가 공적인 자리에만 앉으면 입을 다물어 버리는 녀석이었다. 말이 많은 건 이태일 쪽이었고. 덕분에 지금 진지한 얼굴로 떠들고 있는 박경과 조용히 그 말을 듣고 있는 이태일의 모습이 꽤 낯설었다. 이태일이 가만히 그 말을 들으며 바닥의 풀을 만지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박경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할 거야. 연구소에 알리면 당연히 더 많은 인원을 동원해서 탐사를 보낼 거 아니야."
"그런 질문을 하는 의도가 뭔데요?"
박경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이태일이 입을 다물었다. 박경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은 사납게 변해 있었다.
"박사님, 솔직히 여기 알리기 싫구나?"
"시끄러."
"왜요, 망가질까봐?"
"시끄럽다고 했다."
이태일이 짜증 어린 목소리로 대꾸하자 박경이 히죽 웃는다. 그러다가 이내 내게로 시선을 돌려 묻는다. 표지훈, 넌?
"나? 어, 음. 우지호, 넌."
우지호는 말없이 바닥만 바라보고 있다. 풀 끝을 매만지고 있는 흰 손가락. 그 손이 이내 옆에 있는 내 손등 위에 올려졌다. 따뜻하다. 나는 천천히 손을 뒤집어 우지호의 손에 깍지를 껴서 힘을 주어 잡았다. 그러자 살짝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우지호. 살짝 흔들리는 머리카락. 마냥 하얗기만 하던 얼굴이 햇빛 아래에선 생기가 돈다.
"난 반대."
"왜."
"솔직히 말해서 고 에너지고 뭐고. 여긴 그냥 비밀로 묻어버리고 싶어. 제 아무리 조심해서 다룬다 해도 사람의 손이 닿으면 망가질 수 밖에 없잖아. 어차피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 X구역이니까. 설령 우리 말고 또 탐사를 오는 사람이 있다 해도 쓸데없이 그 개구멍을 찾아내서 들어오는 일은 없을 거야. 우리만 입 다물고 있으면 여긴 조용해."
마음이 편안하다. 꼭, 처음 우지호를 만나던 날처럼. 어릴 때 이후 처음 느끼던 완전한 편안함. 아무 걱정 없이 눈을 떴을 때 내 앞에 있던 낯설던 우지호의 얼굴. 가만히 그 날을 생각하다가 이내 웃음이 쿡하고 튀어 나왔다. 그 때만 해도 우지호가 이런 놈일지는 몰랐지. 우지호에게 총을 겨누고, 이민혁이 오고. 그렇게 쓰러지던 기억이 난다. 지금 옆에 있는 우지호의 얼굴은 그 때와 달리 조금은 편안해 보이는 얼굴. 우지호의 볼에 손을 가져다 대다가, 나도 놀라 흠칫했다. 손 끝에 닿는 부드러운 온기. 어색함이 사이를 메우려던 순간 박경의 목소리가 껴들었다.
"그럼, 비공개로 합시다."
"뭐?"
이태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왜요. 박사님은 그럼 말하고 싶어요?"
"말하는 게 당연하잖아."
"그래서 동굴 탐사 자기 안 껴주면 비공개로 한다고 하셨나?"
"그 땐 그 때고!"
심통을 부린다. 뭐가 그리 불만인지 비죽 튀어나온 입술. 안 그래도 나온 입 더 나와 보인다.
"어쨌거나, 그럼 비공개로 하던가."
"그냥 처음부터 알리기 싫다고 말을 하지."
"됐거든?"
박경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여전히 투덜대고 있는 이태일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나도 녀석을 따라 몸을 일으키고 우지호도 말없이 일어난다. 천천히 조금 미련이 남는 눈으로 안을 바라보며 입구 쪽으로 가는 박경. 우리도 녀석을 따라 말없이 걸었고, 아까의 그 푸른 빛이 감돌던 곳으로 나왔다. 문득 본 우지호의 두 눈은 여전히 초록빛으로 가득차 있다.
"우리는 이런 곳은 처음부터 몰랐던 거에요."
"그래."
이태일의 목소리 끝에서 아쉬움이 묻어난다. 나 역시도 이렇게 이 곳을 모른 척 하고 싶지 않다. 사진도 찍고, 채집도 하고. 뭐가 되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다. 하지만 여기서 뭔가에 손을 대면 끝이 없을 것이다. 욕심은 더 커지고 그만 두기도 어렵고. 누구에게도 좋지 못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고 이렇게 나오는 게 맞겠지.
박경이 아쉬운 눈으로 안을 바라보다가 이내 미련 없이 뒤돌아 섰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 나가는 박경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이태일도 뒷걸음을 치다가 뒤돌아서고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나도 따라 걸으려다가, 망부석마냥 안 쪽만 바라보며 그대로 서 있는 우지호 때문에 멈췄다.
"우..."
우지호, 안 가? 하려던 말은 안으로 넘어갔다. 안을 바라보고 있는 우지호의 눈이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살짝 벌어진 입,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이유 모를 아련함이 가득한 눈으로 안을 바라보던 우지호. 내가 툭툭 팔을 쳐 '안 가?'하고 묻자 살짝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안으로 시선을 돌린다.
"우지호."
"응."
천천히 손을 내밀어 녀석의 손을 붙잡았다. 힘없이 늘어진 손. 하지만 이내 내 손을 꽉 붙잡고 눈을 감는 우지호. 천천히 걸어서 나가는 우지호를 따라 걸었다. 야, 너. 괜찮냐? 살짝 눈치를 살피며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응."
"볼 수 있겠지."
어딘가 모르게 슬프게 돌리는 목소리. 놈의 손을 더 꽉 잡고 박경과 이태일의 뒤를 따라갔다.
"내 생각으로는 여기가 아마 정화의 광장인 거 같아."
"정화의 광장?"
"광장이라고 해야되나. 무튼. X구역 지상의 모든 불순 물질들이 정화되서 모이는 곳 같아. 저기 보이는 나무만 해도. X구역은 절대 생물이 자랄 환경이 안 돼. 그리고 여기 공기만 해도 엄청 시원하잖아. 어떤 힘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이 곳이 정화되는 데에 영향을 미치는 거 같아."
손 끝에서 흘러내리는 회색빛 가루. 박경이 작은 병에 가루를 모은 뒤 뚜껑을 닫아 밀봉한다.. 가슴에 나있는 주머니로 병을 넣고 나서 천천히 가루를 움켜쥐는 손.
"이게 불순물질이 정화된 거라고요?"
"아마."
"전혀 그렇게 안 보여요."
불순물질이라 하면, 항상 우리에게 위험한 존재이고 위협적이었다. 그에 비해 이렇게 얌전하게 쌓여 있는 가루. 아무리 봐도 불순물질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쪼그려 앉아 가루를 살펴보고 있던 이태일이 별안간 악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박사님!"
"아으으..."
"괜찮아요?"
박경이 먼저 달려가 다리를 살핀다. 몸을 떨고 있는 이태일의 다리가 힘없이 늘어져 있다.
"피곤해."
"일단 원래 있던 곳 까지는 가야되는데, 어떡해요."
"몰라, 힘들다니까."
"어휴. 애야, 애."
박경이 투덜거리며 이태일에게 등을 보인다. 그러자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동그랗게 변하는 이태일의 눈. 저렇게 보니 마냥 애같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태일이 멍하니 주저앉아 있자 박경이 신경질적으로 자기 등을 팡팡 치며 '업히라니까요'한다.
"키도 작은 게."
"박사님보단 크니까 업혀도 다리 안 끌려요."
"죽고 싶냐?"
박경이 킥킥거리며 업히기나 해요, 한다. 이태일이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박경에게 업혀 목에 팔을 둘렀다. 박경이 끙, 하고 자세를 고쳐 잡고, 이태일이 '야야, 허벅지 아파, 허벅지'한다.
"그럼 일단 아까 처음 들어온 구멍 있잖아요. 거기로 올라가는 그 나무. 거기 밑에서 오늘은 쉬죠. 여기 찾아 볼 것도 많고 하니까. 아, 아까 거기는 가면 안 되는 거 알지, 표지훈."
"니가 말 안해도 안다."
"그럼 됐어."
박경이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씩씩하게 걸어 나가고, 업혀 있는 이태일의 얼굴이 볼만하다. 살짝 붉어진 얼굴에 내가 놀라 '헐, 박사님 부끄럼 타요?'하자 날아오는 육두 문자. 킥킥거리며 웃자 옆에 있는 우지호가 힐끗, 나를 한 번 바라보다가 이내 앞으로 다시 얼굴을 돌렸다.
원래 오기로 했던 곳에 도착했는데, 박경이 망부석처럼 서 있기에 '뭐하냐'하고 앞으로 가 녀석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자 '쉿!'하고 큰일이라도 난 것 마냥 행동하는 녀석. 왜, 왜. 그러자 턱으로 이태일을 가리키는데, 어. 이태일 자냐. 어지간히 힘들었는지 곤히 잠든 모습. 박경이 조심스럽게 바닥에 침낭을 깐 뒤 이태일을 눕혔다.
"난 조금 더 둘러 볼게. 어디서건 만날 땐 여기다."
"오늘 여기서 자려고?"
"그래야지. 이태일 체력도 지금 여기서 더 가긴 무리고 여기도 찾아볼 거 많으니까. 그럼 난 먼저 간다."
박경이 휙 돌아서서 먼저 가 버리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이태일 옆에 털썩 주저 앉았다. 우지호는 어디갔지. 안 보인다. 뭐, 지가 알아서 오겠지 하고 태연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피곤하다.
"표지훈."
"아! 깜짝야."
갑자기 옆에서 눈을 번쩍 뜬 이태일 덕에 깜짝 놀랐다. 뭐에요! 놀란 덕에 횡설수설 튀어나오는 말을 이태일은 모두 잘라먹고 피곤한 눈으로 물었다.
"너 나 어떻게 생각하냐."
"예?"
"대답해."
이 인간이 왜 이래. 뭐 잘못 먹었나? 진지하게 고민을 하다가 천천히 '혹시 저 좋아하세요, 박사님?'하고 진지하게 물었다가 이태일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보고 다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냥 궁금해서 그래. 오늘 아니면 못 물어볼 거 같아서."
"왜요. 박사님이랑 저랑 앞으로도 질리도록 봐야 되는 사인데."
"그냥 그런 느낌이 드니까 그렇지. 오늘 지나면 못 볼 거 같단 생각이 들어서, 괜히."
갑자기 웬 청승이야. 투덜대다가 이내 말없이 나를 바라보는 이태일과 눈이 마주쳐서,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박사님 좋아요."
"흠?"
"성격 지랄맞고 싸가지 없긴 한데, 그래도 좋아요. 박사님."
화라도 낼 줄 알았는데, 이태일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하다. 괜히 눈치만 보다가 내가 '박사님?'하고 묻자 이내 한숨을 내쉬며 큭큭 웃는다. 웃는 이태일의 얼굴이 편안하게 보인다. 뭐야.
"고맙다."
"뭐가요."
"그래도 마지막은 좋게 기억되겠네."
무슨 마지막이요. 뭐, 설마 죽으려고요? 미쳤냐? 내가 왜 죽어? 그렇게 말하는 이태일의 얼굴이 개구지다. 아, 대체 마지막이 뭔데요. 무슨 뜻인데요. 네? 나도 모르는데. 뭐요? 왜 몰라, 자기가 말했으면서. 그러게나 말이다, 내가 왜 모를까. 그러고서 또 웃음을 터뜨리는 이태일. 항상 이상했지만 오늘따라 더 이상하다.
"표지훈."
"왜요."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드는데."
"네."
"이게 좋은 예감인지 안 좋은 예감인지 모르겠어."
이태일의 목소리 끝이 떨린다. 네? 무슨 소리에요. 말 그대로야. 모르겠어. 좋은 예감인지, 안 좋은 예감인지, 둘 다인지. 이태일이 눈을 감는다. 속눈썹 끝이 살짝 물기로 젖은 것이, 울기라도 한 건가 싶다. 하지만 쉽사리 말을 꺼낼 수가 없어서, 그냥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이태일도 말이 없고, 나도 말이 없다. 그렇게 멀어지고 있는데, 이태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표지훈."
"예?"
"몸 조심해라."
뭐에요, 갑자기. 웃었다. 그러자 이태일도 힘은 없지만 평소의 그 웃음을 짓는다. 오늘 뭐 잘못 먹었나. 그런데 갑자기 드는 슬픈 기분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다가, 나도 '박사님도요'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바로 뒤돌아서 걸어 나오는데, 갑자기 손 끝이 떨려온다. 왜 불안하지.
이태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표지훈도 없고, 박경도 없고, 우지호도 없다. 나 혼자다. 혼자 있는 시간이야 연구소에서도 많았지만, 이렇게 온전하게 혼자인 느낌이 들기는 처음이다. 정말 아무도 없구나, 여긴. 멍하니 서있다가 이내 옆의 벽을 짚고 일어났다. 후들후들 떨려오는 다리. 감각 없는 다리가 저릿저릿할 뿐이다. 고개를 들어 내가 짚고 일어난 벽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나무. 돌같아 보이는 푸르스름한 빛. 대체 뭘까. 둘레가 10m는 족히 넘을 듯한 큰 나무. 과연 이런 게 가능하기는 한 걸까. 손으로 전해지는 따뜻한 느낌에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가 천천히 손을 떼고 움직였다.
묘하다. 이 공간은 굉장히 묘하다. 어둡고 빛 하나 없는데도 랜턴 없이 앞이 보이는 것부터, 회색 가루들, 거대한 나무까지. 나무는 높은 천장을 뚫고 올라가 있어서 그 위를 확인할 수 조차 없었다. 뭐하는 곳일까.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며 절뚝절뚝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첩첩산중이다. 대충 추측만 할 뿐, 알 수 있는 건 없다. 꼭 우지호, 그 재수없는 놈 같이.
"우, 지호."
입에서 맴도는 이름. 어딘가 낯익다. 처음 우지호에게 이름을 붙여주던 날이 떠오른다. 연구실에 붙어 있는 방에 우지호를 가두고, 유리 너머로 보이던 녀석은 굉장히 평온해 보였다. 자신이 갇혔음을 인지하면서도 녀석은 반응이 없었고, 처음 나와 마주한 순간 이후로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처음 나를 본 우지호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어딘지 모를 아득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던 기분이 생생하다. 녀석의 알 수 없는 표정도. 그리고 녀석의 얼굴을 본 순간 느꼈던 것. 학생 시절부터 입에 맴돌던 우지호란 이름의 주인을 찾은 듯한 그 기분.
대체 우지호는 뭘까. 머리가 지끈거린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다가, 멀리서 보이는 하얀 물체에 멈춰섰다. 우지호.
"야, 우지호."
우지호도 나를 알아보고 멈춰섰다. 둘 다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덕분에 거리는 좁혀지지가 않고, 서로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다. 나를 보고 있는 우지호의 검은 눈이 어딘지 모르게 처량하다. 왜 넌 나만 보면 그런 눈인데? 괜히 불만이 생겨 눈썹을 꿈틀하는데 녀석이 뒤돌아선다.
"야, 야! 어디 가! 너 이리 안 와?"
잘 움직여지지도 않는 다리로 급히 녀석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감각 없는 다리로 걷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절뚝절뚝, 비틀비틀. 좀비마냥 힘겹게 걸어가 녀석의 어꺠를 붙잡아 돌렸다. 우지호!
"말 좀 해."
"..."
"뭐라도 좋으니까 하라고! 그 날처럼 말 좀 하라고! 너 그 날 말 잘했잖아, 어? 또 해보란 말이야!"
갑자기 속에서 왈칵 치솟는 뜨거운 무언가에 소리를 빽 질렀다. 내 손에 붙잡힌 우지호의 어깨가 힘없이 흔들리지만 우지호는 그저 흔들흔들, 내 손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결국 지쳐 녀석의 어깨를 쥐고 겨우 서있는데, 녀석의 긴 손가락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놈의 손이 자신의 어깨에서 내 손을 천천히 떼어내고, 이내 다시 돌아선다. 야, 가지 마라고.
"우지호!"
소리를 지르며 녀석의 얼굴을 잡아 돌렸다. 대체 뭔데, 넌. 너 뭔가 알고 있지. 넌 내가 모르는 거 알고 있지. 내가 모르는 게 뭐야? 녀석은 내 눈을 잠시 바라보는가 싶더니 이내 작게 한숨을 쉬며 시선을 회피한다. 한숨? 우지호와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말도 하지 않는 놈이 한숨은 무슨 한숨이야. 내 앞으로 보이는 녀석의 얼굴에, 갑자기 머리가 띵해졌다.
난 당신이 불쌍해.
"죽어, 그냥!"
갑자기 귀로 천둥치듯 울리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다가 이내 녀석의 목을 움켜 쥐었다. 두 손으로 꽉 쥔 목이 꿈틀한다. 우지호의 몸이 회색 가루 위로 넘어지고, 가루가 휘날린다. 우지호의 두 눈이 나를 바라본다. 당혹으로 물든 얼굴에 또 다른 얼굴이 겹쳐져 보인다. 시발, 뭐야.
"너, 너 뭐야."
손에서 힘을 빼자 녀석이 쿨럭, 기침을 내뱉는다. 괴롭게 기침을 하며 숨을 들이쉬는 녀석의 몸을 붙잡고 다시 흔들었다. 뭐냐고, 너!
"이태일!"
멀리서 들려오는 굵직한 목소리. 눈 앞이 어지럽다. 세상이 빙빙 돌고, 내 앞에 계속 어른거리는 무언가. 내가 모르는 게 뭐야. 그 때, 우지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당신이 모르는 건 없어, 이태일."
뭐?
그렇게 말하는 우지호의 얼굴이 어둡다. 없다고? 없어?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한다. 없다니. 없다니, 없을 리가 없잖아. 표지훈의 억센 손이 내 몸을 우지호와 떨어뜨리고 힘없이 몸이 끌려 나온다. 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 이태일, 이태일, 이태일! 부들부들 떨려오는 손으로 허리를 더듬어 권총을 빼내었다.
"박사님!"
박경의 목소리다. 아무렇게나 쏜 총이 탕 울리고, 총알은 어디로 날아갔는지 모를 일이다. 내 앞에 우지호, 박경, 표지훈. 이 셋이 모두 멀쩡하게 있는 걸 보면 아무도 안 맞았나 보지. 눈 앞이 어지러워서 뭣 하나 쉽게 할 수 있는 게 없다. 빙빙 도는 앞을 바라보다가 눈을 질끈 감고 손으로 비벼댔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앞에 있는 우지호의 얼굴. 갑자기 헉하고 숨이 넘어간다. 총을 든 오른손이 번쩍 치켜 올라가고, 우지호의 앞으로 갑자기 표지훈이 튀어나온다.
"이태일, 하지마!"
탕-
난 당신이 참 불쌍해.
차갑게 가라앉은 분위기.
"무슨 개소리야."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있지."
"뭐? 야."
"당신이 그 때 그러지만 않았다면, 당신은 소중한 것들을 지켜낼 수 있었을텐데."
이 목소리는, 우지호다. 그래, 그 날. 새벽. 우지호가 처음으로 내게 말한 날. 앞이 새까맣다. 우지호가 조용한 목소리로 높낮이 없이 말하고 있었다.
"닥쳐."
이건 내 목소리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머리가 배는 어지럽다.
"이태일!"
박경? 갑자기 눈 앞이 확 뜨였다. 새까맣던 눈앞에 있는 것은 박경의 얼굴. 그리고 그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것은 우지호와 표지훈의 뒷모습이다. 어지러워, 그만할래.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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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둘 내용을 여기에 입력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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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다들 무사하시죠?ㅠㅠㅠㅠ 아 전 시험기간이라 미치것네요 시험 느므늦게봐요ㅠㅠㅠㅠㅠㅠ 저 빨리 꺼야되서 급마무리에 하는 말도 엇ㅂ지만 모두 사랑해요 정람러저저정마류ㅠㅠㅠㅠ 참고로 저거 한 번 날렸따 다시 쓴거라서 내용이...아주...흡...미안해여...원래 저거보다 더 좋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