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 씨. 현재 위치.]
"아, 지금 X-03."
치직하는 잡음과 함께 들려오는 무전. 내 답과 함께 소음은 사라졌고 나는 쿨럭이며 내 뒤의 세 명을 바라보았다. 얼굴부터 몸까지 덮는 특수 활동복을 입고 투명한 막으로 보이는 얼굴은 지쳐보였다.
[저, 저기. 박사님. 그만 돌아가면 안 돼요?]
아니나 다를까, 가장 어린 김유권이 숨을 몰아쉬며 무전을 날렸다. 나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이제 겨우 3이야. 지난 번 대원들은 7까지 갔었다고."하고 대답했다. 김유권의 얼굴이 질려갔다.
[내 생각에도 일단은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지금 다들 상태가 정상이 아니고, 7까지 갔던 연구팀도 1명 빼고 모두 사망했잖아.]
이번엔 이민혁이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앞을 바라보았다. 방사능과 함께 알 수 없는 불순물질들이 섞인 바람이 휘몰아치며 앞을 가리고 있다. 저 너머엔 뭐가 있을까. 계속 이 궁금증으로 이 곳을 끊임없이 탐험하고 있지만, 한 번도 이 끝을 본 적이 없다.
[김유권!]
날카롭게 울리는 목소리에 놀라 귀 쪽을 꾹 누르며 뒤를 돌아보니, 김유권이 바닥에 쓰러져 한 눈에 보기에도 괴로워 보이게 몸을 들썩이고 있다. 빠르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어깨를 보니 더는 안 될 것 같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이민혁과 안재효가 김유권의 어꺠를 붙잡고 일으키고, 나는 한숨을 쉬며 본부로 무전을 보냈다.
"...현재 위치 X-02. 철수하겠습니다."
[허락합니다.]
띠리릭하고 전자음과 함께 들리는 낭랑한 목소리에 나는 한숨을 푹푹쉬며 김유권에게로 걸어갔다. 그 때, 김유권의 목소리가 쇳소리를 내며 들렸다.
[박..사님. 뒤, 뒤에...]
"어?"
뒤를 돌아보는 순간, 눈 앞을 가로막고 있던 불순바람이 사라지고 검은 물체가 보였다.
키이이이잇-
"이런 미친! X-02 컬테로 출연! 컬테로 한 마리 출연! 시발, 좀 대답 좀 해!"
낭랑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잡음만 들리더니, 갑자기 남자의 목소리가 대뜸 들렸다.
[표지훈, 지금 뭐라고 했어?]
"이태일 박사님? 아니, 시발 그건 둘째치고 지금 컬테로"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검은 물체에서 촉수가 뻗어져 나오며 내 옆을 후려갈겼다. 땅이 흔들리는 덕분에 난 넘어졌고 모두의 비명이 섞여 내 귀로 들어왔다. 으으,하고 몸을 일으키는데 이태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X-02? 아니, 거기에 컬테로가 왜 출연해? 컬테로는 05이상에만 있잖아.]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미친,지원이나 좀 보내던가!"
촉수를 휘날리며 귀를 찢어버릴 듯한 소리를 내는 컬테로에게서 나오는 전자파에 통신이 먹통이 되버렸다. 뒤를 돌아보니 안재효, 이민혁, 김유권. 이 세사람은 안 보인다. 가시거리 2미터 내에서 벗어났는지 보이질 않는다. 어디갔어? 설마 죽었어? 대답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통신이 먹통인 이 상황에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또다시 나를 향해 날아오는 촉수에 뒤로 펄쩍 뛰어 피하자 또다른 촉수가 내 머리를 강타한다.
"윽!"
머리를 울리는 충격에 낮은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고 옷이 찢기는 느낌이 들었다. 아 존나 좆됐네. 내게로 스멀스멀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에 욕을 내뱉으며 혼미한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고개를 꺾어 위를 보니 5미터 높이의 컬테로밖에 안 보인다. 저 새낀 뭐 저리 커? 어지러운 정신에 흔들리며 보이는 모습에 눈을 질끈 감았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
볼을 어루만지는 느낌에 천천히 눈을 떴다.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한 기분. 내 앞에 보이는 건,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의 얼굴이다. 끽해봐야 스물이나 됐나. 아직은 앳되보이는 얼굴의 쭉 찢어진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물었다.
"누구야?"
내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갸웃하는 녀석. 놈은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내 머리를 누르는 데 집중한다. 윽, 아까 맞은 곳인데. 이상하다. 녀석에게 맞았는데 어떻게 살아있지.
그러고보니, 내 헬멧은?
몸을 벌떡 일으키며 내 얼굴을 만져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이 지역은 X구역. 사람들의 출입을 절대 금지하며 특수 제작한 옷을 입지 않을 경우 3분 내에 폐에 불순물질이 쌓여 사망한다. 그런데 여기서 헬멧을 벗고 뭐하는 거야, 내가 지금? 아니, 이 녀석이 벗겼나?
"너 이 새끼 미쳤어?"
놈의 멱살을 덥석 붙잡았다. 하얀 천옷이 그대로 잡아 올려지며 놈의 고개가 뒤로 꺾였다. 쭉 찢어진 눈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놈은 천천히 내 손목을 붙잡았다. 아니 잠깐만, 여기도 아까 넘어지면서 옷이 찢어졌는데. 내 몸을 보니 특수 제작복은 어디가고 안에 입었던 체육복과 면티가 끝이다.
"니가 벗겼...."
질문을 끝내지 못했다. 녀석도 허벅지까지 오는 하얀 면옷이 끝이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검은 눈을 깜박이며 나를 바라보는 녀석은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어디 세상 사람이란 거야?
숨을 한 번 크게 들이 쉬었다. 연구소에 들어갈 때 했던 불순바람 대비 훈련 때, 불순바람에서 빼낸 극소량의 불순물질을 넣은 공기에서 숨을 쉬는 훈련을 한 적 있었다. 그 때도 거의 죽을 뻔했는데, 여긴 불순 바람이 부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호흡이 너무나도 편하다.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바라보았다. X구역에서의 가시거리는 2미터. 그런데 지금 내가 보는 이 곳의 가시거리는 적어도 10미터 이상. 아니 뭐야, 여긴 X구역이 아닌가?
"여긴 X구역이 맞아.
내 귀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녀석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그러고보니 또 이상한 점. X지역에선 강력한 바람으로 인해 귀가 찢어지면 모를까 대화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대화가 가능하다는 건? 그리고 여기가 X지역이 맞다니?
"당신들이 말하는 X지역이라면 여기가 맞아."
"넌 뭐야? 어디서 온 거야?"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 말을 잇지 못한다. 답답해서 가슴을 치다가 녀석의 손을 보니, 뭐야. 한국말 가이드 책? 저런 책은 또 어디서 난 거래? 아, 잠깐. 저거 내가 가방에 넣었던 건데. 저 책을 넣을 때 뒤에서 그걸 왜 챙기냐며 비웃던 이민혁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또렷하다. 그럼 저 녀석이 내 옷을 벗긴 게 맞나보지.
"너 지금 그거 보고 말 한 거야?"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이 녀석은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건가? 그렇다고 지금 반응을 보아서는 외국말이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눈살을 찌푸리며 뒤통수를 긁다가, 머리를 부딪치며 생겼던 상처가 사라진 걸 깨달았다.
"어?"
아, 저 녀석. 뭔가 있어.
허리춤에 꽂고 있던 권총을 꺼내 녀석을 향해 조준했다. 놈은 까만 눈만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 아무런 대항도 하지 않았다.
"움직이..."
[표지훈!]
어디선가 들리는 무전소리. 아? 하고 귀를 만져보니 인이어가 그대로 꽂혀 있다.
"이민혁? 너 지금 어디..."
굉음과 함께 내 앞으로 미끄러지는 검은 물체. 엄청난 속도로 나타난 것에 비해 5미터밖에 안 미끄러진 트럭의 창문이 내려가며 이민혁의 얼굴이 나타났다. 녀석은 내 복장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표지훈 너 지금 옷차림...]
나는 갑자기 풀린 긴장에 총을 떨어뜨리며 쓰러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