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X크리스탈] 전학생 2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9/c/6/9c660de4f4cb1c50dc63c926738ece3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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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아 뭐하니. 안 자?"
방문이 열렸고 들어온건 엄마였다. 살짝 헝크러진 머리, 얇은 실크 잠옷 위에 흰색 가디건을 걸치고 짙은색 실내화를 신으신. 수정에겐 엄마는 우상같은 존재였다. 그녀에게 해가 바뀐다는 건, 늙는 것이 아닌, 우아함이 더해져 가는 것이었다.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자신의 방불이 켜져 있어 걱정되서 일어나신 것 같았다.
"아니에요. 잘게요. 가서 주무세요. 죄송해요."
"그래, 잘자라. 좋은 꿈꾸고."
다정한 목소리로 밤인사를 남기고. 엄마는 다시 안 방쪽으로 걸음을 돌리셨다. 50대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젊은 얼굴과 뒷태. 수정은, 엄마와 꼭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수정의 외모가 자리잡을 무렵, 중학교 입학할 때 즈음 엄마는 이런 말을 하셨다. -너도 세상 살기 피곤하겠다.- 수정은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문득 최근에 그말이 떠올랐을 땐 소름이 돋았다. 엄마도 그런 인생을 살아오셨을 테니. 전학생때문에 싱숭생숭해 쉽게 잠이 들어지지 않아, 책을 폈다. 하지만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수정은 책을 덮고 침대에 누웠다. 잠에 들기전 꿈처럼. 하나의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엄마, 생각해보니 엄마랑 중학교 이후로 눈을 마주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
눈이 뻐근했다. 제대로 자지를 못했다. 악몽을 꿨다. 계속 꾸는 꿈. 항상 같은 꿈이다. 어두운 공간 속. 눈이 부실정도로 흰 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말한다. 살려달라고. 살려줘. 구해줘 수정아. 얼굴을 볼 수 없다. 처음 그 꿈을 꿀때는 가까이 가지 못하고 도망치려고 하거나 뒤로 물러서려고만 했는데. 내성이 생겼는지 요즘에는 그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이 정도면 닿았다고 느낄즈음. 잠에서 깬다.
"왜, 잘 못잤어?"
설리가 수정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본다. 숨기려해도. 설리는 수정의 상태를 금방 읽는다. 가끔은 무서울 정도다. 지우개를 가져오지 않아 곤란했던 날. 야, 라고만 했을 뿐인데. 설리가 지우개를 건네줬을 땐, 마음을 읽히는 기분이 들었다.
"또, 그 꿈꿨어. 이번엔 얼굴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설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항상 머금고 있는 것인데. 이 꿈 얘기만 하면 설리는 항상 굳는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항상.
"...잊어버려. 너가 피곤해서 그래, 피곤해서."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거 치고는 너무 자주꾸는 것 같다 그러면. 그만 얘기하자고 한다. 무서운 거 싫다고.
"전학생은 어때? 괜찮아?"
또 딴얘기로 돌린다. 하지만 수정도 꿈얘기는 유쾌하지 않으니까 화제가 넘어가는 것에 동조한다.
"아직, 그냥."
설리는 내 뒤에 앉아있고. 내 옆. 전학생의 자리는 지금 비어있다. 발소리가 들리더니. 걔네들이 왔다. 목소리큰 그 아이와 나머지. 수정은 갑자기 두통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어제부터 왜 이렇게 재수가 없지. 그 아이가 전학생 자리에 앉았다. 경박한걸 티내려는지. 줄일대로 줄여 터질것 같은 치마가 앉느라 말려 올라갔다. 추하다.
"존나 좋아죽겠지? 잘생긴애가 옆에 앉으니까?"
입꼬리를 올리며 비꼰다. 얼굴에 화장을 떡칠해서 보기 흉하다. 수정은 교과서를 폈다. 설리가 한 소리 하려고 하자 수정이 눈짓한다. 그냥 조용히 있으라고. 필통에서 펜을 꺼낸다. 마치 그 애들이 없다는 듯 행동한다. 설리가 수정의 손이 약하게 경련하는 것을 캐치한다. 강하게 생긴것과 달리 수정은 굉장히 약한 아이였다. 티가 안나서 사람들은 모르지만.
"시발년아, 내가 말하잖아."
손이 올라갔다. 맞기까지 하는 건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손찌검이 느껴지지않았다.
"비켜."
전학생이 그 아이 팔을 잡고 끌어 당겨 내팽겨쳤다. 우당탕하고 넘어지는 소리가 나고 그 아이를 잠깐 응시하더니 의자를 빼서 자리에 앉는다. 야 괜찮아 괜찮아? 그 아이 패거리가 시끄럽다. 그 아이는 분하다는 듯이 수정한테 소리지른다.
"야 벌써 꼬리쳤냐 병신아? 여시같은 게"
"돼지, 시끄럽거든, 좀꺼져줄래."
전학생의 목소리가 낮지만 울림있게 교실을 울렸다. 어느새 조용해진 교실이 수정과 전학생에게 주목한다. 돼지.라고 불린 그 아이는 씩씩 거리다가 교실을 나갔다. 시발 존나 가만안둬 정수정. 수정은 분명히 들었다. 분노가 꽉찬 목소리였다. 일이 더 커진 것 같은 느낌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근원적인 질문이 나왔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수정은 떨리는 손으로 주먹을 꽉쥐었다.
"정수정, 정신병자주제에."
패거리 중 하나가 분했는지 한마디 보태고 돼지를 따라 나갔다. 수정은 작게 쉼호흡을 했다. 심장이 세차게 뛰고있었다.
"고마워."
수정이 작게 말했다.
"그걸듣고만있냐. 바보같이."
어제도 그러더니. 불난데 기름 붓는 것은 버릇인가. 열이 뻗쳤다. 가뜩이나 화나고 당황스러운데. 수정이 전학생쪽으로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그는 아직도 표정이 굳어있었다. 전학온 어제도 내내 무표정이었지만. 지금은 무표정보다 조금 더 차가운 얼굴이었다. 화가난 것 같은 얼굴. 전학생이 수정에게 눈을 맞춰왔다. 병신- 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칠흙같은 검은색의 눈동자.
"그럼 내가 어떡해야 하는데. 같이 싸울까? 욕해? 소리질러?"
수정도 전학생 못지 않게 표정이 차갑게 식어있었다. 어제 온 주제에 뭘안다고 이러는 거야. 지금까지 잘 무시하면서 조용히 살아왔는데. 수정은 자신의 룰을 깨는 발언을 한것에 대해 화가났다. 전학생은 계속, 지금까지 수정이 어렸을 때부터 많은 것을 포기하고 상처를 받으면서 힘들게 만들어놓은 견고한 성에다 돌을 던지고 있었다. 조약돌따위가 아니라. 직접 맞으면 죽을 수 있을 것 같은 정도의 돌.
"방금 쟤네중에 하나가 왜 너한테 정신병자라고 했는지 알아?"
그러고보니, 항상 패거리들이 수정에게 언어폭력을 하고 갈때에 정신병자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었다. 정신도 온전치 못한게- 정신병원안가냐?- 정신과 의사한테 진찰받으셔야죠, 공주님- 따위의 비꼬는 말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너는 너에대해 잘 모르고 있어. 아까 걔네들보다. 그리고 지금 너만 쳐다보고 수근대고있는 반 애들보다도."
아까부터 교실이 조용하다 했는데 같은 반 아이들의 눈이 전부 수정을 향해 있었다. 몇몇은 곁눈질하며 귓속말을 하고 있었고. 몇몇은 대놓고 불편해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은 뭐지. 내가 나에대해서 모르고 있다고? 여기지금 날 쳐다보고 있는 애들보다? 갑자기 세상에 홀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한기가 돌았다. 갑자기 이 공동체에서 버려져 소외된 기분. 이렇게 수정에게 비수를 꽂는 와중에도 전학생은 수정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근데 왜 니가 슬픈 눈을 하고 있는 거야. 혼란스러운 건 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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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성이 그렇게 견고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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