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시간째 같은 곳을 빙빙 돌고있었다. '같이 걷고싶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손잡고 걸으려던 곳이 있다며 환하게 웃는 모습에 나는 흔쾌히 허락했었다. 우리는 한참전부터 서로의 소원을 들어주는 중이었다. 날씨도 춥고 바람은 자꾸만 날카롭게 볼을 찢어놓았다. 그럼에도 서로 잡은 손은 내 주머니 속에서 여전히 뜨겁게 타올랐다. 어쩌지? 크리스 볼 얼었는데 걷고싶다 한바퀴만 더 걸어요. 미워할 수 없게 그는 굴었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여서 나로 하여금 무한한 인내를 갖게 만들었다."아, 크리스는 모르죠? 여기가 어떤곳인지."우리가 아까부터 돌던 곳은 한 초등학교 운동장이었다. 얼어버린 모래 운동장위에 부지런히 발 네개를 움직이며 곳곳을 쏘다녔다. 약간은 둥그런 형태를 띄고 있었다. 철봉과 미끄럼틀, 정글짐 등은 수돗가 옆에 자리해 있었다."어떤곳인데?""내가 어렸을때 여기서 크게 다쳤었어요. 저기 정글짐에서 떨어졌어요. 여기저기 까져서 피도 나고 팔도 부러지고."그는 이 부분을 말하며 재밌는 일인듯 유쾌하게 웃었다. 이 뒤에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 둔해서 벌어진 일 같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손가락 끝은 저 구석의 정글짐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얀 피부가 달빛을 받아 창백했고 손끝은 별빛이 그대로 보일만큼 고왔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실룩이며 나는 가만히 그의 추억을 공유했다."너무 아파서 막 울고있었는데 그때 내가 너무 무서워했던 선생님이 날 제일 먼저 발견했어요."그는 얘기를 할수록 더 어려지는것 같았다. 착각인가. 내 착각이든 뭐든 어린시절의 천진한 모습을 발견할수록 나는 그에게 심취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손이 시려웠던듯 그는 손에 입김을 분 뒤 주머니에 쏙 집어넣었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입김이 나왔다 사라졌다."매일 혼내고 잘 웃지도 않으시던 분인데. 실례지만 그냥 지나치실 줄 알았어요. 병원에서 정신차리고 나니까 선생님이 먼저 보였는데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니까요."그의 눈동자가 빛나는듯 약간 흐릿해졌다. 그러면서도 속의 영롱함을 유지하는 그가 보였다."물론 저만 선생님 싫어했던 거겠지만 종종 생각나서 왔었는데요 처음에 크리스가 그 선생님 같았어요."그는 내 눈을 바로 마주하며 말했다. 나는 약간의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순하고 여린 눈빛이 무엇이 그리도 무서웠을까를 생각해본 결과에서도 나는 다시한번 당황했다."눈빛도 막 이글이글한데 그러면서 화 많이 냈잖아요. 다 멍청해서 그런걸 생각하면 억울해요.""멍청?"나는 걸리적 거리는 단어 하나를 콕 집었다. 내 지적에 그는 다시 크게 웃었다. 내가 그렇게 멍청했었나. 그는 잡은 손에 살짝씩 힘을 줬다 뺐다하며 내 주의를 끌었다."나 잘못한거 없는데 화냈을때 너무 슬펐어요. 혼자 많이 울었었는데. 이래도 안 멍청해요? 좋아하면 말을 하지."그는 진실로 상처 받은 목소리를 하고 나섰다. 그때의 생각이 난듯 그는 이 자리에서 눈물을 쏟을것만 같았다. 그제야 미안함이 제대로 밀려온 나는 늦게나마 그에게 사과했다. 내가 멍청했다고까지 인정하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왔다."그 선생님도 결국 좋으신 분이었고, 크리스도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며 웅얼거리는듯 하더니 이내 내 품안에 들어와 커지는 울림이 되었다. 내 몸속 혈관 하나하나 세포 하나하나를 울리는 그 떨림을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걷기 싫죠?"그는 고개만 올려 나를 바라보았다. 장난끼가 다분히 서려있었다. 알면서도 굳이 나의 대답이 필요한듯 그는 자꾸만 보채기 시작했다. 신나서 이것저것 말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어린 그의 모습과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크리스 걷는거 싫어하는거 다 알아요.""알면서 나 괴롭힌거야?""응."그는 다시 아이처럼 웃었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가 얄밉기 보다 오히려 귀엽게 느껴졌다. 잠시동안 웃던 그는 내 품에서 떨어져 나왔다. 한참을 잡고 있던 손이 떨어지자 그 사이로 한기가 밀려들어왔다. 나는 손을 주먹 쥐었다. 그는 한발자국 뒤로 물러난다음 고개를 뒤로한채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슬슬 달려가는듯 싶더니 이내 큰 소리로 외쳤다."크리스, 이번엔 나랑 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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