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오직 당신만의.
W. JPD
04
"시작하네요."
-
자신이 데려다주겠다는 걸 겨우 말리곤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건물을 나올 때 이리저리 눈치를 많이 보긴 했지만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잘 벗어난 것 같았다. 오늘 본 영화는 나쁘지 않았고, 같이 본 남자 또한 나쁘지 않았다. 수능 때문에 걱정이 되게 많았는데 그 시간 동안엔 정말 거짓말처럼 아무 생각도 안 했던 것 같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도 별생각이 안 들었던 게 사실이다, 나는 멀미를 해서 버스보단 지하철을 더 자주 이용하는데 항상 지하철을 타고 가는 시간 동안 온갖 잡생각들을 했다. 걱정, 상상, 계획, 뭐 그런 것들. 근데 오늘은 멍만 때리다 집에 도착했다.
"아직 안 들어오셨네."
수능날인데도 아무런 문자나 전화도 없던 부모님, 아직 집에도 들어오지 않으셨다. 가끔 이렇게 바쁜 날에는 연락도 없이 늦을 때가 있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부담 주기 싫어서 이러시는 거겠지. 또 나를 위해서, 그렇게 희생하고 계신 거겠지. 고민하면서, 걱정하면서, 한편으론 궁금해하면서.
"어디야? 안 들어올 거야?"
"이제 들어왔어? 가야지, 우리 딸만 괜찮으면 외식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좀 애매하네."
"이 주변에서 방황하고 있지? 어딘데, 내가 갈게. 아니면 배달음식이라도 시켜놓을까?"
"그래, 배달음식이 좋겠다, 우리 딸이 좋아하는 치킨 먹을까?"
"응, 두 마리 시켜도 돼?"
"그럼, 당연하지."
"빨리 와, 기다릴게."
"아빠가 왜 자기한테는 전화 안 하냐고 찡찡거린다."
"알아서 잘 달래고 들어오셔."
수능에 대해서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그저 평소처럼 날 대해주는 모습에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런 부모 밑에서도 부담된다며 속으로 불평했던 내가 밉고 또 밉다. 분명 오늘 외식한다며 신나서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연락이 없고 집에도 안 들어오니까, 내가 힘든 상황이라는 걸 깨닫고 나니까, 그냥 집을 비운 채로 멀리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거겠지, 멀리서 나를 지켜보고 스스로 일어나도록, 그렇게 평소처럼, 항상 내 뒤에서.
-
"수능, 안 궁금해?"
"... 어?"
"안 궁금하냐고."
"궁금하지."
"근데 왜 안 물어봐."
"그냥."
"그냥은 무슨."
"다 부모의 마음이야, 그런 게."
"... 미안해."
"에? 너 그런 말하는 거 아니다, 그깟 수능이 왜!"
"그리고 고마워."
발끈하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괜히 또 웃음 나오게. 난 그래도 참 복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좋은 가정에 태어나서 적어도 집 안에 있을 땐 불행하지는 않았으니까.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까, 내가 앞으로 책임지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적어도 나는, 불행한 사람은 아니다.
-
"오늘 영화 재밌었고?"
"네, 그쪽도요?"
"그쪽이라니, 이거 호칭 이상하네."
"그럼 아저씨라고 할까요?"
"야, 우리 나이 차이 그렇게 많이 나지는 않는다, 적어도 우리 팬들 중에 너 같은 학생들은 다 오빠라고 불러."
"그래서 지금 저보고 오빠라고 부르라는 건가요."
"싫으면 말고."
"우선 그건 적응되고 나면요."
"적응기간 끝난 거 아니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방으로 들어와 잘 준비를 다 끝내고 침대에 누우니 뭔가 후련하면서도 아쉬운 느낌이었다. 그래도 내가 드디어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는구나, 이제 성인이라는 그 시작점 앞에서 새로 시작하게 되는구나. 그렇게 기분 좋은 생각들을 하고 있으면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그 남자. 이젠 제법 통화가 자연스러웠다, 불편하지도 않았고 어색하지도 않았고. 딱 친구 같은 느낌.
"근데 너 우리 노래 들어봤어?"
"무슨 노래요?"
"그냥 우리 노래."
"뭐, 특별히 추천해주실 곡이라도?"
"최근에 나온 것도 좋고."
"네, 최근에 나온 거. 그리고요?"
"화양연화 시리즈라고 검색해보면 나올 건데, 작년에 나온 앨범으로 들어도 되고 올해 5월에 나온 걸로 들어도 되고."
"시리즈... 되게 긴가 봐요."
"5월에 나온 걸로 듣는 게 편할 거다, 거의 합쳐져 있으니까."
"알았어요, 꼭 들어볼게요. 근데 뮤즈면 제가 뭐 도와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냥 가만히 있어, 어디 가지 말고."
"아, 예."
"잘 자고."
"네, 그쪽도요."
"끊는다."
'그 앨범들은 너한테 꼭 들려주고 싶었어.'
이렇게 말하니까 더 들어야 될 것 같잖아, 그냥 예의상 듣는다고 말한 거였는데. 침대에 누운 상태로 핸드폰을 들어 검색을 했다, 방탄소년단. 앨범, 더 보기... 아, 있다. 화양연화. 이게 무슨 뜻이지... 앨범 창을 놔두고 새로운 창을 켜 검색을 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좋은 말이네, 뭔가 있어 보여, 그 남자한테 잘 어울리는 단어인 것 같다. 뭔가 애매한테 신비스럽고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느낌. 그 남자가 말했던 5월의 앨범을 들어가 첫 번째 CD의 마지막 곡을 클릭했다. 제목은 Young Forever.
"... 노래는 좋네."
그렇게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암호닉
땅위 / 윤기윤기 / 굥기 / 봄 / 굥기윤기 / 왼쪽 / 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난 나락간 연예인들 보면... 반응도 좀 무서울 때 있음.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