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E, 오직 당신만의.
W. JPD
02
"며칠 전에 우연히 너희 학교를 지나쳤어, 밤에. 넌 아쟈 끝내고 나오는 건지 그때 딱 나왔고."
"..."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그 뒤엔 바빠서 찾아가지도 못했어, 오늘에서야 간 거지."
워낙에 서울에서도 유명한 학교였고, 꽤 번화가인 곳에 위치해서 학교 자체에서도 방음에 굉장히 많은 신경을 쏟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학교 내부에 있으면 들리지도 않던 소음들이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귀를 때렸고. 근데 가끔은 그게 소름 돋기도 했다, 내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것 같다는 느낌에.
"뭐가 자꾸 떠오른다면서요, 한 번이면 자꾸라는 부사를 사용하진 않거든요."
"생각했어, 계속."
"뭐를요."
"너를."
어쩌면 너무 당연한 질문을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말문이 막혀 가만히 있자, 남자가 말을 이어갔다.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설명, 같은 것들이었다. 마치 이미 내가 자신의 제안을 수락했다는 것처럼.
"하고 싶은 거 하고, 가고 싶은 곳 가고, 가지고 싶은 거 사줄게. 모든 건 내 돈으로."
"그럼 저는 어떤 걸 줘야 하는데요."
"너의 시간."
나의 시간, 수능만 끝나면 한동안은 넘쳐날 거라고 예상되는. 이건 나에게 너무나도 유리한 조건인데, 이 남자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그런 것들이 제 시간에 대한 보상인 거네요."
"아니, 보상은 따로. 방금 전 말한 것들은 네가 제공하는 시간 동안 할 일들이고."
"... 이쯤 되면 궁금하네요,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지."
"그러게, 나도 궁금하네."
이건 또 무슨 태도인가. 남자는 말에서 여유가 넘쳐났다, 방금뿐만 아니라 항상 말이다. 내가 본 급한 모습이라곤 거리에서 주위를 둘러볼 때, 그때를 제외하곤 없었다. 실제로 보이진 않지만 마치 내 머리 꼭대기에서 나를 조종하는 것 같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마치 이용당하는, 그런 느낌. 기분이 더러워졌다.
"내 할 말은 다 했는데, 언제 만날까."
"저는 수락 안 했는데요."
"만나서 정해."
"수능 일주일 전이에요."
"끝난 날 보자, 내가 연락할게. 공부 열심히 하고."
그렇게 통화가 끊겼다. 멋대로 구는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게 아니라 몸에 배어있다, 이건 분명 그 남자의 성격이다. 더더욱 수락하기 싫어진 기분을 애써 털어내고 난 다시 펜을 들었다. 그리고 달렸지, 수능을 향해.
-
더 큰 사회를 향해 내딛는 첫 발걸음, 나를 판단하는 첫 잣대. 어쩌면 앞으로의 인생이 달려있을지 모르는.
대학 수학 능력 시험
<교육>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적격자를 선발하기 위하여 교육부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시험.
그것을 향해 달려가야 할 열아홉. 아니, 그보다도 훨씬 전부터 달려왔던 열아홉.
"야, 봤냐? 존나 아침부터 울었다고..."
"매년 봤는데 정작 내가 당사자 되니까 더 감동적이야, 씨발..."
"민윤기 이 나쁜 남자야!!!"
제 귀에 들리는 그 남자의 이름에 잠시 동안 잊고 있었던 얼굴과 목소리가 떠올랐다. 인기가 많긴 많구나,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주제가 되기도 하는 거 보니... 근데 뭐를 봤다는 거지, 괜히 궁금하게. 아, 수능이라 응원 메시지 이런 거 남긴 건가.
'단 몇 시간 만에 인생이 결정될 것 같은 날이지만 돌이켜보면 별거 아닌 그런 날이 다시 찾아왔네요 다들 긴장하지 마시고 해온 만큼만 해냅시다 우리가 앞으로 겪을 미래는 수능을 준비한 시간보다 기니까요! 모두들 파이팅! -SUGA-'
검색을 통해 겨우 찾아 들어간 글, 예상했던 대로 수능 응원 메시지가 맞았다. 말할 땐 되게 딱딱하고 무서웠는데 글만 보면 진짜 발랄하네... 어쨌든, 해내야지 나도.
그렇게 사회를 향한 문은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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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나락간 연예인들 보면... 반응도 좀 무서울 때 있음.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