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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상자가 하나씩 늘어갔다. 물건들이 하나하나 넣어져 원래의 방 모습을 드러낼수록 기대감과 설렘도 커졌다. 그간 편안함을 주었던 방이 낯설면서도 익숙해 손에 잡힌 열쇠가 자꾸만 마음속을 쿡쿡 찔렀다. 아직 남은 계약날짜에 조금만 더 고민을 해 보고 싶어 그냥 주머니 안쪽 깊숙이 열쇠를 밀어 넣었다.
환하게 켜진 화면에 문자를 할까 말까 망설였다. 편의점에서 안주와 함께 맥주 두어 캔을 사와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운받아뒀던 예능프로를 재생시키곤 주섬주섬 캔을 땄다. 특유의 맛이 입안에서 돌았다. 허전해진 방 안이 꼭 처음 이사를 왔던 그날과 같았다. 시끄럽게 떠들고, 웃는 소리들 사이로 다른 소리가 섞여 들려 혼란스러웠다.
우와 겨우 다 끝났네. 그러니까 맥주 한잔. 뭐야, 핑계 봐. 어차피 먹을 거였는데
캔을 들고 그대로 멈췄다. 사람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말투나 행동을 봐선 친했던 것 같아, 어렴풋 스치는 그것에 아차 싶어 서랍에 있는 물건을 정리해 두었던 상자에 손을 넣어 휘저었다. 사진 뭉텅이를 손에 한가득 들고 넘겼지만, 비슷한 분위기를 띈 사람은 없어보였다.
흐트러진 사진들을 모아 정리하곤 김이 빠져버린 맥주를 들이켰다. 힘을 빼고 몸을 축 늘어뜨린 뒤에서야 벨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여보세요”
“늦었네요? 뭐해요?”
“음, 짐 정리 좀 하고 맥주 한 캔이요.”
“혼자서 마셔요? 나 부르지.”
“바쁜 것 아는데 어떻게 불러요.”
“그럼 이따가 갈게요. 그건 괜찮죠?”
응. 그때 와요.
조심스레 물어오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채웠다. 아까 들려왔던 정체모를 그것과 분위기가 닮은 것 같았다. 더듬더듬 아무도 없는 옆을 손을 들어 훑었다. 당연하게 아무것도 없을 바닥이 시렸다. 핸드폰을 들어 무언가를 하고 있을 그에게 문자 한통을 넣곤 화면이 까맣게 변할 때 까지 뚫어져라 쳐다보다 그대로 침대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문득 편안함을 느껴 부은 눈으로 일어 났을 때, 침대 위에서 눈을 뜬 것을 알게 되었다. 다 정리해버려 쓸 곳이 없었는지 탁상용 캘린더에 조그맣게 글이 남았다.
글 주위에 무언가 스치고 뭉개진 느낌이 드는 자국들이 묻어있었다.
'나도 보고싶었어요.'
그리고, 조금 이따 봐요
"아아 빨리, 빨리요."
"왜 이렇게 급해요."
"들뜨니까요. 나 청소 다 하고 왔단 말이야."
팔을 잡고선 방방 뛰는 그를 쿡 찌르고는 내려놨던 상자를 다시 들어올렸다. 입꼬리가 귀에 걸려 문을여는 그를 쳐다보았다. 두세 번을 더 상자를 들어 옮기다 그가 급하게 현관에서 손을 휘저으며 잠깐만을 외쳐댔다.
"뭐에요."
"아니, 그러니까, 음... 방은 있는데.."
"있는데?"
"아직 그쪽 방 침대가 없어요."
말을 채 알아먹기도 전에 그가 상자를 들곤 방을 찾아들어갔다. 상자를 들고 뒤를 따라 들어가자 그가 어깨를 잡아 멈춰세웠다.
"근데 나 안 물러줄거에요."
"그럴 것 같아요."
진지하게 얼굴을 굳히고 말하다 자신도 웃음이 나오는 건지 푸스스 흩어지는 웃음에 같이 웃어버렸다. 짐을 옮기고 박스를 하나하나 열다가 나란히 바닥에 널부러졌다.
벽이며 천장에 박힌 무늬들이 낯설어 눈으로 훑고만 있자 그가 툭툭 말을 던졌다.
"이사한 기념으로 짜장면 먹을래요?"
"이사는 아니고 나만 짐을 옮긴거지만, 먹을래요."
일어나 앉아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아 조물딱거리며 장난을 쳤다. 생각해보니, 내가 이름을 부른 적이 있었나..
입안에서 맴도는 이름을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우지호. 우지호..
문득 조용함에 고개를 돌렸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고도 서로 말이 없어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손에 땀이 차오는 통에 손을 놓을까 잡고 있던 손에 힘을 뺐지만, 오히려 그가 잡아왔다. 어느 새 눈앞에 다가온 얼굴과 함께 말랑한 감촉이 느껴졌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내가 도둑뽀뽀마냥 하고 달아나듯이 집에 들어갔던 때와 다르게 입술을 맞대고 멈추었다. 잡혀있던 손을 빼 옷깃을 잡고 끌어당겼다. 입술을 맞대고 있던 그가 조심스레 아랫입술을 톡톡 건드리다 입술 사이를 혀로 살그머니 훑고는 뗐다.
천천히 눈을 뜨고 쳐다보다 막 떼어진 감촉에 아쉬움이 더해져 끌어당겨 다시 입술을 부볐다.
한참을 그렇게 부비적거리다 쪽 소리와 함께 입술이 떨어지자 서로 민망함에 고개를 돌리고, 괜시리 늦는 배달원을 탓하며 헛기침을 해댔다.
초인종이 울리자마자 잽싸게 튀어나간 그가 짜장면을 들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 완전 늦게와."
"그러게요."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정적이 이어졌다. 애써 이리저리 화제를 돌리다 눈이 마주쳐 그저 웃었다. 간질간질해.
그릇을 치우고 이리저리 집안을 돌아다녔다. 베란다에서 멀리까지 탁 트인 하늘에 숨을 내쉬다, 방문을 살짝 열고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본 그의 방은 생각외로 지저분했다. 그가 당황하며 문을 막아섰다.
청소 다 했다면서요 어, 아침에 급해서 그랬어요.
변명이 너무 다급해 보여 웃음이 나왔다. 방이 하나 더 있어 손잡이를 잡자 손목을 잡아왔다.
"어,어 여긴 잠깐만요! 잠깐만!"
"야한 잡지라도 숨겼어요?"
"그건 아닌데 여긴 나중에요."
"왜요?"
"혹시 파란 열ㅅ, 아니 '파란 수염' 아세요?"
파란수염 이야기를 하려다 말이 꼬인건지 뜬금없는 파란 열쇠에 으하하 크게 웃음을 터뜨리자 민망한 듯 보였다.
그래서 파란 수염이 왜요. 그니까, 호기심은 위험해요. 뭐에요 그게.
이 방도 안치웠구나 싶어 핀잔을 주며 다른 이야기를 찾았다. 그나저나 들어오면 무슨일 하는지 알려준댔던가..
"근데 나 이제 무슨 일 하는지 알려줘요."
"네?"
"들어오면, 알려준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조금만 더요."
"어? 거짓말쟁이."
"아닌데! 아까 파란수염이랬잖아요 내가. 파란수염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일단 비밀. 조금만 기다려줘요."
"그럼 저 문 열면 나 죽어요?"
"아니요. 내가 잡아먹을거에요. 어흥."
호랑이 흉내를 내는 그에게 장난으로 배를 때리는 시늉을 하곤 소파에 앉았다.강아지처럼 쭐레쭐레 뒤를 따라오는 그를 보자 장난기가 생겨 손을 내밀었다.
"지호야, 손!"
이건 뭔가 하고 멀뚱히 쳐다보는 얼굴이 재미있어 큭큭거리며 웃자 그제서야 알아먹은 듯 내 손위에 손을 얹고선 툴툴거렸다.
"이름 불러 주길래 좋아했는데, 애인한테 멍멍이 취급이 뭐에요."
"파란수염에서 우지호로 돌아올 때까지 이럴 건데요?"
매일 새로운 면을 알아가는 것 같아 뿌듯하면서도 간질거린다. 입술이 댓발 튀어나온 모습을 보자 아까의 일이 생각나 볼을 콕콕 누르다 급히 손을 뗐다. 갑자기 손을 떼자 이상했는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춰왔다.
"어, 귀 빨개졌다. 무슨 생각했어요, 나보고?"
"아무 생각도 안했어요!"
"거짓말. 귀 빨간데."
"더워서 그래요. 더워서."
"근데 왜 눈을 못 마주쳐요?"
집요하게 물어오는 그에 점점 더 얼굴이 달아올랐다.시선을 자꾸만 피하자 손으로 얼굴을 잡아와 당황해서 손으로 밀어버렸다.
슬쩍 눈을 뜨고 보니 그의 얼굴이 손에 눌려있었다. 내심 찔리는 게 사실이라 미안해졌다.
"미안해요. 그니까 하지 말지."
"우와, 이제 막 밀어. 진짜 뭐 찔리죠?"
"아니라니까!"
얼굴이 빨개져서 지른 소리에 집안이 조용해졌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았다. 아.. 첫날인데, 주민들에게 항의가 들어올 것만 같아 초조해졌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으어얽- 하는 정체 불명의 소리를 내질렀다. 한동안 조용하던 집에 낮은 목소리가 점차 채워졌다. 그가 소리를 죽이며 웃고있었다.
처음에는 큭큭거리기 시작하더니 배를 잡고 소파 위를 굴러다녀 영문을 몰라 멍하니 쳐다보았다.
"으하하하하, 아 죽겠다. 그쪽 있잖아요.푸흐"
"내가 왜요!"
"그.. 표정이, 뭐라그래야되나.."
"내 표정이 어때서요!"
화난 토끼 같아요. 막, 토끼장 안에서 펄쩍펄쩍 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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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에요! 시선과 에버그린 사이의 텀만큼 길었던 것 같아요. 늦어서죄송해요(__)
쓰다가 지호의 직업설정때문에 애를 먹었네요. 원래 설정했던 직업에 대해서 제가 아는게 없어서 찾아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역시 배경지식이 중요하단 생각에 그저 눙무리...
에버그린을 달달함만을 추구해서 영 밋밋하고 단조로운 느낌도 많이 받았고, 생각만큼 써지지 않는 글에 몇번을 지우고 지우다보니 이렇게 된 것 같아요.
벌써 8화... 시선은 전개가 빨라 10화였는데 이번엔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암호닉♥ |
븊님 마가레뜨님 강친님 순대친구님 크림님 망가리님 쌀알님 미네랄님 헬리님 늦어서 미안하고 또 항상 댜릉해욧! ♥댜기들때문에 힘솟는거 알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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