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집이요.
당당히 말하는 한마디에 대꾸 할 말을 찾지 못해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거짓말이에요. 그냥 식당 많은쪽 온거에요. 나 제안하려고 온거니까 표정 풀어요.
능글맞게 씨익 웃어보이는 그를 따라 일단 걸었다.
"뭐야. 진짜 아니네요?"
"그냥 가볍게 밥먹으면서 제안하려구 왔다니까. 진짜 안믿네요. 신뢰도가 떨어지나봐요."
"그렇잖아요. 근데 뭐 먹을거에요?"
"뭐 먹을래요?"
"나 여기서 삼겹살같은거 먹는다고 하면, 눈치없어보여요?"
"오히려, 편해서 좋네요."
"돈부리 같은거, 좋아해요?"
"가리진 않아요. 그쪽이 먹는다면 따라갈 의향은 있어요."
"그럼 가요. 삼겹살 냄새 배기는 거, 오늘은 생각해봐야겠네요."
조용한 어색함이 감돌았다. 주변에 가볍게 식사할 수 있는 일본식 가게를 찾아 들어가자 그가 금새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뒤적이다가 하나를 골랐다.
정말 별로 가리는 타입은 아닌가보다. 아니면, 이미 돈부리를 자주 먹어봤다거나.
알바생을 불러 주문을 하곤 물을 따라 앞에 놓았다. 그리고 멀뚱히 자리에 앉아 그를 쳐다보았다.
"왜요? 이제 보니 매력이 넘치는 것 같아요?"
"자뻑도 병이라더니, 영원히 안고쳐지겠네요."
"차갑다 못해 쟈갑네요."
"푸흐,쟈갑다는 또 뭐에요."
그냥 그쪽 차갑다구요.
다정함을 바탕으로 항상 정석 표준어만 구사할 것 같은 그의 입에서 '쟈갑다'라는 말이 뱉어지는 순간 그 언밸런스함에 푸스스 웃어버리고 말았다.
마주보고 웃는 그의 입에도 평소와 같은 웃음이 걸려있었다. 매력이 없냐며 툴툴대는 그에게 글쎄요 라는 의미모를 애매한 말을 던지곤 둘이 한참을 큭큭거렸다.
알바생이 와서 주문한 음식을 세팅하고는 금세 사라졌다.
"본론은 언제 말 할 거에요?"
"생각보다 전형적인 한국인이네요."
"뭐, 진짜 맞으니까 대꾸는 뭐라 못하겠네요."
"원한다면, 지금 해줄까요?"
"먹으면서 하면 되죠."
항상 빈틈을 안주네요. 차가워!
처음으로 삐죽이며 말 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다시한번 웃었다. 저런 얼굴도 가지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한 입 앙 하고 입안에 무니 오늘도 빤히 쳐다본다. 오늘은 죽이 아니라 말을 하려 입을 열면 튈 것 같아 조용히 우물우물 씹기만 했다.
가게 안에 흐르는 음악이 파고들만큼 정적이 흘렀다.
"지금은 그 '쟈가운'말 안 할 것 같으니까 지금 말 할게요."
"... 왜 그렇게 급한데요?"
"맘에 드니까요. 그쪽. 그리고, 불안하니까."
돌려서 말 할 것만 같았던 그가 어느 정도는 알아먹을 직구를 날려왔다. 숟가락질을 멈추곤 쳐다보자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한 쪽으로 돌렸다.
"나 되게 떨려요, 지금. 고백하려는데 멀뚱히 쳐다보면."
"..."
"난 미사여구 붙이는 것 보단 간결한게 좋아요. 진심이 잘 전해질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좋아해요."
아까 한참을 식혔던 얼굴이 다시 귀 끝까지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의 어색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편안함이 주도하는 떨림을 맛보았다.
아무 말 없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고개를 숙이자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오늘은 빨랐죠? 받아줄 때 까지 계속 들이댈텐데, 귀찮은 거 싫어하면 빨리 받는게 좋을걸요"
협박아닌 귀여운 협박에 말간 웃음이 번졌다. 달아 오른 귀를 그대로 후드에 묻어버리곤 열심히 밥을 먹었다. 테이블 옆에 거울로 좁게 인테리어가 되어있어
옆쪽으로 고개를 돌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숟가락만 놀렸다. 한참을 혼자 쩔쩔매며 다시 열을 식히기에 바빴다.
밖으로 나오자 색색의 우산들이 돌아다녔다.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부슬거리는 비가 손바닥 위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내밀어진 손을 뒤에서 누가 잡아내렸다.
"가요. 비 맞지 말고."
후드를 폭 눌러 씌워주곤, 묘하게 딱딱해진 듯한 목소리에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서서히 더뎌지는 걸음에 그가 뒤를 돌아볼때까지 나는 멍하니 빗방울을 바라보았다.
가로등에 비춰지는 부슬비의 가느다란 물방울에 이상하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톡- 하고 조금 더 굵어진 빗줄기가 웅덩이에 떨어질 때 이유모를 눈물이 한줄기 흘렀다.
그가 어느 새 옆에 서서 눈물을 닦아주며 안아 도닥였다. 그렇게 도닥여주던 그가 차로 이끌어 그대로 집에 갈 때 까지 우리 둘 사이에는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소나기였는지 다시금 가늘어진 빗줄기가 창문을 타고 흘러내렸다.
집까지 따라 들어온 그가 날 침대에 앉히곤 능숙하게 핫초코를 타서 가져왔다. 머그컵을 손에 꼭 쥐어준 그가 그대로 머리꼭지를 쳐다보는 듯 했다.
양 어깨를 꼭 부여잡아 그대로 다가왔다. 그렇게 바닥을 보다 눈을 꼭 감았다. 그 특유의 부드러운 향이 은은하게 풍겨왔다.
"잘자요.울지말구요."
꼭 뭐라도 할 것 같았던 그가 작은 한숨을 방안에 뱉어내곤, 잘자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나갔다. 도어락이 잠겨지는 소리가 오늘따라 크게 방에 울렸다.
꼭 쥐어준 머그컵이 서서히 온기를 잃어갈 때 까지 그 자리에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식어빠진 핫초코를 절반쯤 입안에 머금다가 사이드테이블에 내려놨다. 덩그러니 남겨진 모양새가 이상한 기분을 갖게 했다.
그리고 오늘 밤에는 문자가 오지 않았다.
어제 온 소나기로 웅덩이였던 곳들이 군데군데 젖은 모습을 나타냈다. 혹시 몰라 무지개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알바가 없는 날이라 그냥 생각없이 이리저리 걷고 싶었다. 저번에 멍하니 서 있던 가로등 근처에는 오늘도 고양이 한마리가 주변에서 눈치를 보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늦은 오후라 한적함이 묻어났다. 딱히 갈 만한 곳도 생각 나지 않아 집 근처의 놀이터를 찾았다. 학원 갈 시간인지 하나 둘씩 놀다가 사라지는 모습에 비어버린 놀이터가
넓다랗게 보였다. 말라가는 그네에 앉아 조용히 발을 굴렀다. 그넷줄이 끼익끼익 소리를 냈다. 왠지모를 심술이 솟아나 손에 들고 있던 우산의 끄트머리로
모래를 폭폭 찔러댔다. 벨소리가 주머니 안에서 흘러나왔다. 왠일로 매너모드를 안해뒀나보다.
"여보세요"
"왜 또 답장 안해요?"
"몰랐어요."
"나 이번엔 꽤 오래 기다렸는데."
"저번에도..."
"응? 뭐라구요?"
"아니에요. 그보다 웬일이에요?"
"내가 언제는, 일이 있어서 연락했어요? 어? 다른사람이랑 착각한 거 아니에요?"
그럼 나 아파요.
어린애 같이 투정을 부리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넷줄의 끼익거리는 소리가 잦아졌다.
"지금,어디에요?"
"안 알려줄래요."
"왜요?"
"그냥 심술부리고 싶어서요."
말이 없어 혹시 끊긴건가 하고 핸드폰을 들여다 보았다. 통화시간이 가고 있는 걸 보니 할 말을 찾지 못했나보다. 1초,2초 흘러가는 시간을 보다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를 놓쳤다.
"뭐라구요?"
"오늘은 알바 안해요?"
통화라는걸 깜빡 잊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피커에서 새어나오는 웃음소리를 듣고서야 내가 무엇을 한건지 깨달았다. 창피함이 몰려와 발로 모래를 퍽퍽 차다가
신발 안으로 모래가 밀려들어와 그만두었다. 핸드폰을 어깨와 얼굴 사이에 끼우곤 신발을 벗어들어 탈탈 털었다. 많이도 들어갔네.
통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만 딴짓을 해 말을 놓치는 내가 짜증이 날 법 한데도 계속 말을 꺼내왔다.
"짜증 안나요?"
"뭐가요?"
"나 계속 말 놓치잖아요."
"그럼 우.."
"아 또 집 들어오라고 할거잖아요."
"아닌데?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알아요."
"그럼 뭔데요?"
우리 사귈래요?
--
으앍- 이거 진도가 느므 빨라요.. 쓰고도 주체를 못하겠어요. 얘네가행쇼하는건 좋지만,, 흑..
그나저나 김유권 행쇼~ 깨지지마라, 차이는건 미녁신으로 족해요.
이제 겨울인데 올해도 솔로크리네요 ㅠㅠ 난 누구랑 행쇼하지.. 전 누구랑 행쇼해야할까요
망가리님 미노님 강친님 마가레뜨님 헬리님 사랑해요~♥
그리고 덧글주신 독자님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4편이 맞았던가..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2026년, 드디어 '쉬었음'청년 사라질 전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