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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샤이니 온앤오프
grotesque 전체글ll조회 910l 1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따뜻한 나무 내음이 잔뜩 풍기는 조용한 카페에서 문 여닫을 때 나는 종소리 하나로 나의 모든 기억은 오롯이 돌아왔다. 주인장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나를 반겼지만 나에 대해서는 하나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만큼, 오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평소 잘 먹지도 않던 코코아를 시켰다. 이리 달디 단 걸 마시러 이곳을 찾던 여고생 하나가 생각났다. 사실 회사를 그만두다시피 하며 나오자마자 기억을 더듬어 이곳을 찾은 이유도 딱 그 아이 하나였다. 혹시나 하며 찾은 이곳은 역시나, 라는 대답을 안겨주었다. 하복을 입은 더운 여름 날 손 부채질을 하면서도 코코아는 뜨거워야 제 맛이라며 개구지게 웃던 아이였다. 그 아이를 닮은 진한 코코아 김이 뜨겁게 올라와서 안경에 가득 서렸다.




기억의 습작 - 1, 여고생




몇 해가 지나면서 어느 때 문득, 그 여고생이 생각나곤 했다. 정말 문득, '아' 하는 헛웃음 나는 감탄사와 함께 불현듯이 떠올랐다. 이번 크리스마스도 그랬다. 무언가를 찾으려고 찬장 위를 둘러보던 나는 작은 상자를 발견했고, 그 안에는 꽤 가득히 종이카드 들이 담겨있었다. 빛바랜 카드를 하나하나, 한참 들여다봤다. 그리고 그 여고생이 보낸 크리스마스카드를 상자에 다시 집어넣으며 말했다.


"너도, 메리 크리스마스."


천진난만, 한없이 밝으면서도 내가 아는 또래에 비해 총명하고 성숙한 아이여서 때로 놀라기도 했다. 내가 그 아이를 따라 이 카페에 들린 것도 이 맘 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추운 겨울 날, 눈보다 더 냉정하게 얼른 가봐야겠다며 잰걸음으로 달려가는 그 아이를 추격하듯 따라 들어온 카페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깔끔하게 앞치마를 메고 가볍게 흘러내린 머리를 가진 남자였다. 머그잔을 들어 올리던 남자는 내가 낸 종소리에 살짝 몸을 틀어 나를 보았고, 그때도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겼다.

여고생은 먼저 닷지에 앉아 턱을 괸 채로 내가 옆에 앉은 걸 아는지 모르는지 주인장만 바라봤다. 나도 별 다른 관심을 끌려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저 옆자리만 지킬 뿐, 그것만으로 편하고 좋았다. 기분 좋은 카페였다. 기분 좋은 사람들과, 기분 좋은 날이었다. 코코아를 받아든 여고생은 조금은 큰 소리로 주인에게 고맙다는 표현을 했고, 주인은 눈을 동그랗게 떠 보이더니 금세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표정하게 그것을 바라보던 내게 기대하지 않았던 코코아 한잔을 건네줬고, 홀짝 홀짝 코코아를 빠르게 마셔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잔을 다 비워내고 나서야 나를 쳐다봤고, 그리고서 다시 내 앞에 놓인 머그잔을 번갈아 쳐다봤다. 결국 한 입도 못 댄 머그잔을 다시 그 아이에게 밀어줘야했다.


"내 꺼예요, 저 사람. 그러니까 탐내지 마."

"탐 안 낼테니까 천천히 마셔, 입천장 다 까지겠다. 입도 좀 닦고."

여고생은 입 주변에 까맣고 둥그런 코코아자국을 묻히고는 배시시 웃으며 다시 주인을 바라봤다. 그게 이 카페에서의 처음 기억이다. 지금 내 옆을 지켜주는 아이가 없다. 코코아, 주인, 카페. 다 그대로인데 그 아이만 홀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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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그로테스크, 라고 발음하는 것이 맞나요? 그로테스크 작가님 안녕하세요. 글잡담에서 일반 소설을 읽어본 적은 처음인데, 글 분위기에 홀딱 반해버려서 이렇게 신알신까지 하게 되네요. 코코아에 담긴 여고생에 대한 기억이 아련해서 진짜 ㅠㅠ 다음 글도 기다리고 있을게요. 만약 암호닉 받으신다면, 열대어로 할게요!
10년 전
독자3
필명은 그로테스크인데 내용은 참 따뜻한 게 믹스매치 기법..은 개소ㄹ...
ㅋㅋㅋ잘 읽고 갑니다.좋네요.

10년 전
독자4
여전히 좋아요 잘 읽고 갑니다! 신알신 할게요....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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