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 on the moon
이른 저녁의 하늘은 검푸른색이었고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는 서서히 붉은기를 감추기 시작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창을 열어 고개를 비죽, 엄마 몰래 내어 하늘을 바라보면 정확히 중간을 갈라 한쪽은 보랏빛이었고 한쪽은 검푸른색이었다. 보라색 하늘을 따라 수평선을 바라볼 때면 주홍으로 이글이던 해의 털끝도 보이지 않겠지. 가장 끝 차선으로 달리던 터라 위험할 일이야 없었지만 잘한 행동은 아니었기에 엄마가 사이드 미러를 보기 전에 얼굴을 넣었다. 결혼식은 네 시 즈음에 끝났다. 적당한 시간이었지만 식장은 집으로부터 세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고 엄마는 운전을 느릿하게 하는 편이니까. 휴대폰 홀더를 누르면 액정에 뜨는 숫자는 여섯시 십오분, 아마 박지민은 곧 도착할 거다. 내가 집에 도착하기 삼십분이 덜 돼서.
배터리는 이십이퍼센트에 다다랐고 이제 휴대폰 홀더를 누르는 것만 해도 금세 배터리가 닳을 거란 건 잘 아는 사실이다. 심심하게 굴러가는 자동차 바퀴는 덜컹이는 것 하나없이 잔잔하게 흘러갔고 차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는 부드러웠다.
세상 너무 좁네. 오랜만에 지민이 본 소감은 어때?
소감이고 말고가 어딨어, 그냥 그런거지… 무심하게 말을 뱉고는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덜컹이는 자동차에 머리가 울린다. 맥 없긴, 엄마가 말을 이었다. 사실은 그렇게 재미없지 않았다 그저 그렇지도 않았고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좀 부끄럽기도 했고 반갑기도 했다. 어렸을 땔 기억하는 건 김태형만으로도 벅차서 쪽팔려 죽겠는데 갑자기 박지민이 나타날 건 또 뭐람. 시도때도 없이 어릴 적 이야길 들먹이면서 시시덕대는 김태형 덕에 쉬는 시간이 버거운데 나중에 둘이서 합세하면 어쩌지. 이따위의 생각이 머리에 남았다. 시간은 여섯시를 넘었고 김태형은 지금쯤 학원에서 마쳐 내가 보낸 카톡을 읽었을 거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나 박지민 만남. 이라고 보낸 카톡을.
득달같이 달려들 김태형의 연락 세례는 뻔하고 데이터를 끈 채로 텅 빈 뒷좌석에 몸을 뉘었다. 무릎까지 오던 남색 원피스의 끝단은 허벅다리 중간까지 밀려올라갔고 흰색 양말의 밴딩 부분도 접혀 내려간지 오래다. 아침에 급하게 고데기로 말던 머리카락의 웨이브는 어디갔는지 온 데 간 데 모습이 없고 꼴에 화장 좀 해보겠다고 바른 틴트도 쥐도 새도 모르게 지워졌다. 열아홉이면 꾸밀 만한 나이는 벌써 접어들었는데 오랜만에 보는 박지민과의 대면식이 이런 차림이라는 게 창피하다. 입으로 앓는 소리를 내고 시트를 주먹으로 쿵쿵, 두드리면 엄마는 백미러로 날 보곤 혀를 찬다. 아마 속으로 생각하겠지 쟤가 또 저러네. 하구.
아!
배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진동을 울림과 동시에 김태형을 속으로 육백 번도 더 욕하면서 전화를 받는다. 김태형 개새끼 김태형 개새끼 배터리가 이십퍼센트밖에 안 되는데 적당히 알고 카톡이나 해놓지 개새끼 김태형 개자식.
여보세,여주야 집 잘 들어갔어? 아, 아직 집 아닌가? 아니네!어, 박지민이야?응 나야! 누군지도 안 보고 받았어?아니 난 김태형인 줄 알구 …
전화선 너머로 들려오는 건 김태형의 굵직하고 큼지막한 목소리가 아닌 박지민의 조곤조곤한 말투와 낮은 미성이었다. 어느새 창밖으론 보랏빛으로 축축하게 물든 구름은 모습을 숨기고 있었고 온전히 검은색의 하늘이 눈알에 박히기 시작했다.
혹시 내일 학원 같은 데 가?내일 일요일인데 …혹시 모르니까! 우리 고삼이잖아.그, 렇지? 나 내일 집에 있어. 왜?집에 아줌마도 계시지? 내일 저녁에 너희 집 갈 것 같아서.
어? 당황스러움이 역력한 말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왜? 싫어 …? 박지민이 말꼬리를 길게 늘리며 묻는 어조는 꼭 장화 신은 고양이 같아가지곤. 급하게 아니라면서 보이지도 않을 손사래를 해대며 거세게 부정한다. 다시 백미러를 통해서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엄마의 표정은 한결같이 저놈 기지배 남자 생겼나? 하는 얼굴로. 지금 중요한 건 엄마의 아니꼬운 시선이 아니라 박지민이 내일 우리 집에 온다는 사실이다 장정 삼십분이나 걸려서! 우리 집에! 게다가 내가 있는지 안위까지 묻고서!
근데, 근데 왜 와?엄마가 오랜만에 만나 봬러 가고 싶으다 셔서 …, 아 아줌마한테 벌써 말씀 드렸댔는데엄마한테? 우리 엄마?역시 말씀 안 하셨구나. 여전하시네.
휴대폰 너머로 박지민이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린다. 여전하네. 여전히 박지민은 흔한 남고생과는 달리 말이 느렸고 어조가 부드러웠으면서 잘 웃었다. 늘 한결같은 표정과 목소리로, 조금 당황스러운 게 있다 싶으면 눈이 커져서는 양입술이 다물어질 줄도 몰라 하면서. 웃을 땐 먼저 눈꼬리가 매매 접히는 게, 그 눈웃음으로 분명히 여자 여럿 울렸겠다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었다. 방년 19세면 남의 인생 줄줄 읊을 줄 알아야지, 박지민은 분명 지금 휴대폰을 쥐고 그렇게 웃고 있겠지.
몸을 바로 고쳐 앉아 귀에 전화기를 대곤 엄마의 귓가에 지민이야. 하고 조용히 속삭였다. 옛날부터 엄마는 딸내미의 애인 유무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아니라고 해도 근 이틀 동안은 놀려댔으니까. 당장에 아니라는 말뚝을 박아놓아야 했다. 지민이라는 이름이 들리자마자 엄마는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신다. 누구 엄마 아니랄까 봐 …
여주야어?내 방 천장에는 별자리 스티커 붙어있다.아 … 이사가서도 붙였어?응, 매번마다. 요즘엔 그런 거 잘 안 팔아서 구하느라 힘들었어.맞아, 너 별 좋아하지. 옛날에도 별 뜨면 보러가자고 난리였잖아.응 나 별 좋아해, 기억하네?응 그걸,
어떻게 잊어. 마지막 말은 속으로 삼켰다. 수화기 너머로 뭐라구 여주야? 하는 박지민의 말이 들렸지만 모른 체 하고서 말을 돌린다. 내일 오기 전에 문자 줘, 마중 나갈게. 그렇게 끊긴 지민이와의 통화 시간은 2분 13초. 숫자가 두어 번 화면에 뜨더니 배경화면으로 돌아간다. 홀더를 누르고 창에 이마를 대고 하늘을 보면 별 하나 안 보이는 하늘이 어두컴컴했다. 서울은 원래 이렇지, 서울의 밤은 항상 이렇지. 어렸을 때라도 별 조금 보이던 게 다행이었지. 실제로 박지민이 별을 좋아했는지는 모르겠다. 별이 뜨면, 별 떴어! 하며 너는 부리나케 찾아오곤 했는데 그게 단순한 어린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별을 좋아하는 걸 알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늦은 시간에도 종종 걸음으로 큰 슬리퍼를 끌며 옥상까지 올라가는 것도 고역이었던 어린 시절에, 잠까지 버리고 별을 보러 올라갈 만큼에 별을 좋아하는 걸 알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딸, 북극성 보이네.
창을 내리면 찬 바람이 차내로 들어온다. 차 안에 틀어놓은 노래는 열린 창문을 통해서 흘러나간다. 앞머리가 갈라지고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찬 기운에 입술이 바싹 말랐다. 얇은 스타킹은 바람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눈을 빼꼼히 올려 연하게 보이는 북극성은, 혼자서만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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