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월이 다 끝나가는 무렵인데,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다. 내 뺨을 아주 갈기듯이 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내 몸이 조금 더 움츠러들었다. 게다가 눈도 많이 와서 길이 아주 깡깡 얼었다. 워낙 거절이라는 걸 못하는 성격이라 지난 학기 말 어거지로 맡아버린 집부장이 일학년들 입학식까지 나를 끌어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씨,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 그냥 거절하는 건데……. 낭패다 싶으면서도 종현이 니가 좀 해주라 으응? 으으응? 하고 양 팔을 잡고 조르던 동기 여학우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또 마음이. 어우.
“대강당이 어디더라….”
두툼한 패딩 주머니에 양 손을 찔러넣은 채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는 학교로 걸음을 옮겼다. 거의 3개월만에 온 학교라 그런지 강당이 어디였는지도 가물가물했다. 사람 많은 곳이면 되겠지. 어흐, 추워. 패딩 안으로 얼굴을 더 밀어 넣고는 종종거리며 강당으로 향하는데 순간 큰 그림자가 앞을 덮는다. 어어, 할 틈도 없이 몸이 꽝 하고 부딪혀 바락으로 넘어져버렸다. 아니 대체 이 학교는 바닥에 눈도 안 치우고 뭐했대?! 얼얼한 엉덩이를 손으로 문지르며 끙끙거리고 있으니 누군가의 손이 척 하고 내밀어진다.
고개를 드니 그 사람 뒤로 비추는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셔 잔뜩 얼굴이 찡그려졌다. 빛이 강렬해서 얼굴은 잘 안 보이는데, 확실히 나보다는 키가 컸다. …아, 그러니까 나만 넘어졌구나! 어버버 거리며 내밀어진 손을 잡았다. 내 손을 꽉 잡은 남자가 힘을 주어 나를 벌떡 일으킨다. 남자가 매고 있던 회색 목도리의 수술이 내 뺨을 스쳤다.
“아, 아,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아픔이 조금 가시자 밀려오는 창피함을 어찌할꼬..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한 나는 벌개진 얼굴을 감추려 최대한 고개를 숙이곤 강당을 향해 뛰었다.
로맨틱캠퍼스
Romantic Campus
민호X종현
“경영학부! 경영학부 13학번 이리 오세요!”
대문짝만하게 출력한 ‘경영학부’ 팻말을 든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뭐 이렇게 무겁게 만들었대? 투덜거리자 옆에 서있던 기범이가 내 어깨를 툭 치며 한마디 한다. 야, 저기 온다. 어? 누가 오…헉. 진짜 온다. 입학식을 끝낸 신입생들이 떼를 지어 강당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절로 침이 꼴깍 넘어간다. 이번 학번에는 다 착하고 이쁜 애들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려는 찰나 내가 들고있던 팻말을 기웃거리던 신입생들이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학과가 아닌 학부라 신입생 정원을 다 하면 60명정도 됐다. 내가 남 앞에 서고 이러는 체질이 아닌데…. 슬그머니 들고있던 팻말을 내리고 기범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야, 어떻게 해…. 니가 해.
“이거 수강신청 안내서고요. 한부씩 가지고 뒤로 쭉 돌려주세요. 그리고 오티는 내일모레 서울역에서 모여서 갈 거에요.”
이 많은 신입생들 사이에서도 기범이의 목소리는 낭랑하게 퍼졌다. 나같이 어버버거리지도 않고, 당황하지도, 쑥쓰러워하지도 않는다. 저런 애가 집부장을 해야지 왜 나를 시켜가지고! 툴툴거리며 은근슬쩍 뒤로 빠지는데 툭 하고 등에 뭔가가 닿는다. 으응? 하고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돌리자 제일 먼저 회색 목도리가 눈에 들어온다. 요새는 회색 목도리가 유행인감. 아. 아까 그 사람이 하고 있던 거랑 되게 똑같…?
“…어?”
우뚝 멈춰 서 아래위로 훑어보니 길쭉한게 아까 그 사람이 확실했다. 단정한 검정색 머리에 마찬가지로 검정색 코트를 입고, 회색 목도리를 하고 있다. 손에는 13학번 수강신청 안내…어?! 우리 과 신입생이었어?
놀라서 반배 쯤 커진 눈을 꿈뻑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 남자, 아니아니 신입생도 나를 쳐다보고 있다. 아따. 이 놈 참. 자, 잘생겼네.
“이, 이거 주, 중요한 거니까 잘 들어요.”
눈은 마주하고 있지, 할 말은 없지, 민망하지, 나는 얼른 집에 가고 싶지…. 머리는 굳어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지. 결국 더듬더듬 말을 뱉고는 급하게 다른 쪽으로 발을 디디는데, 하필 거기서 또 발이 미끄러질 건 뭐람! 순식간에 기우뚱 몸이 넘어가고 이번엔 진짜 아플 것 같아서 눈을 질끈 감는데 단단한 손이 내 팔을 끌어당긴다. 바로 눈을 뜨니 역시나 이번에도 그 남자.. 아니, 신입생이었다. 도와준 사람 치고 너무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냥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는데, 나는 그게 또 못견디게 민망해서 요리조리 눈을 굴렸다. 알아서 잡고있던 팔을 놓은 신입생이 앞에서 돌리는 안내문을 받아들고는 무심한 표정으로 다시 나를 본다.
“조심해요. 다쳐.”
입에서 나온 하얀 김이 공중으로 퍼지며 신입생의 얼굴을 가렸다. 나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그 연기가 공중에서 다 사라질 때 까지 그 얼굴을 쳐다봤다.
목소리도…되게 좋다.
안녕하세요 안녕안녕
보고싶었어요 그래서 종강하자마자 바로 뭔가를 쓰긴했는데 거지 같다는게 함정;
사랑해요 돌아온 다시다랑 같이 따뜻한 겨울 보내요 그리고 감기 걸리지 말아요
나는 걸렸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