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or, death
검고 질척한 이 시대에 버려진 핏덩이에게 눈을 돌리는 사람들은 열에 하나 있을까 말까했다. 우리는 거무죽죽한 이 어두운 밤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국가의 희생양. 오오, 가엾은 아이야, 너는 오른 손 가득 핏덩이를 쥐고 태어난 짐승이구나. 이 가엾은 아이를 누가 거두어 갈 텐가요. 물론 버린 이가 누구인가 따위는 묻지 않을 것이다. 본래 머리 거믄 짐승은 가두어 가는 법이 아닌데, 모 아니면 도야. 챙이 넓은 검은 모자를 쓴 여인이 검은 세단에서 몸을 일으켜 아이의 얼굴을 가냘프게 쥐면 주위에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차기에 바쁘다. 저 여인네가 벌써 노망이 났구만.
요 어린 것은 틀려, 나는 마담. 네가 나를 보며 머리를 조아릴 때까지 나는 영원히 마담.
아이의 손에서 검붉은 핏덩이가 곤두박질치면 그 보드라운 손이 여인의 왼쪽 뺨에 가까워진다. 하하, 깜찍하기는. 본래, 핏덩이를 쥐고 태어난 아기는 전 고원을 지배한다는 설이 있다. 모 아니면 도. 가끔은 어둠으로 위장한 빛 따위도 있는 게 나쁘진 않잖아. 그렇지 남준아. 네가 내 손등에 입을 맞추고 코끝을 비빌 때까지. 기다린단다.열일곱의 어린아이는 얼굴에 핏자국에 가득한 채로 검은 세단으로 집어삼켜진다. 그날을 5구역 사람들은 마담의 흙먼지라고 불렀다.
출생은 6구역, 거주지는 2구역 론 타운. 취득한 시민권의 최상단은 1구역. 세력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 스물넷의 마담은 시궁창들에게 까마귀라는 속칭으로 불리곤 했다. 밀가루를 흥건히 묻히고 다니는 검은 까마귀. 출생 구역은 3구역이니 7구역이니 하는 말이 오가기도 했으며 마담의 핏줄은 시장과 둘째 부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항간에 떠돌곤 했다. 그런 시궁창에서 떠도는 소리를 마담이 모를 리가 없었지. 까마귀는 언제나 무리를 몰고 다녔고 귀가 밝았으며 그림자 같은 작자였으니, 그 새빨간 눈으로 신원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부패된 시체를 내리깔아보는 부리를 시궁창들은 기억하고 있다. 시궁창의 쥐새끼들은 동고동락했던 그 까마귀 무리를 잊을 수 없어 종종 술에 거하게 취한 채로 욕설을 꼬라박곤 했는데 때마다 쥐꼬리만 남겨놓고 삼켜버리는 것이 까마귀였다. 시궁창에 널린 게 까마귀의 죽은 눈이었고 피 묻은 부리였다. 까마귀는 시궁창 태생이니. 그럴 수밖에.
마담의 유년 생활을 알면서도 살아있는 시궁창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마 마담이 죽는다면 커튼 콜에는 그 누구도 나오지 않겠지. 친모는 마담이 여섯 살이 되던 해 집을 나가버렸고 친부는 마담이 열 살이 되던 해 죽어버렸다. 그러니까 마담이 죽여버렸다. 그리고 죽어버렸다. 그 살갗이 찢기는, 살생의 날을 기억한다. 날카로운 칼끝으로 목구멍을 찢어발겼고 젓가락으로 들쑤셨다. 젓가락으로 성대를 꾸욱 눌렀을 때, 마담은 엉엉 목을 놓아 울었다.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이 아니라 더러운 피가 눈 안으로 들어가버렸다는 두려움 때문에. 혹시나 내가 병에 걸려 죽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일말의 무서움이라는 게 마담을 씹어먹었다.
"준아, 나는 마담, 영원히 마담이라 부르렴."
"그럼 돼. 나는 마담이고 너는 영원히 …"
강아지인 걸로 하자, 마담이 웃으며 말을 흐렸다. 남준이 허망한 눈으로 마담과 눈을 섞었고, 그럼 마담은 기이하게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눈 내려야지. 열일곱의 남준은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이나 일말의 반항심 따위는 머금지도 않았다. 이런 식의 개새끼가 되는 게 차라리 나았을 테지. 빈부격차. 빈익빈 부익부라는 해시태그는 써클 시티에 걸맞았다. 모든 길은 1구역으로 향하도록, 원 모양으로 다듬어진 써클 시티는 가장 중심지의 1구역부터 외각의 7구역까지 나뉘어져 있었으며 5구역부터 아래론 시궁창이라고 불리기 일쑤였다. 시궁창은, 시궁창이니까.
"마담, 그럼 저는 마담의 개새끼인가요."
"준아, 개새끼라니. 너무 마음 아프잖니."
"그럼 난 뭔가요, 옆의 경호라도 되나요."
"경호라니 남준아, 넌 내 핏덩이야. 핏덩이."
핏덩이란 말에 남준이 웃음을 머금었다. 가당치도 않지. 방금 만난 본인에게 핏덩이라니, 전혀 알지도 않는 사이이면서. 머리 검은 짐승을 주워온 사람이면서. 꼭 6계 직속 혈통의 고귀한 신분이라도 되듯이 부드럽게 보듬는 마담에 속이 울렁거렸다. 좋았다. 이런 무자비한 사랑을 받는 것도 오랜만이어서. 토할 것만큼이나 좋았다.
이곳에 미성년이란 남준 외엔 없다. 불친절로 가득했던 시궁창에서 구원의 손길을 받은 마담의 충견들은 하나같이 친절했고 부드러웠으며 명석했다. 식사를 하며 예절이란 걸 배웠고 침상에 누우며 옷차림에 대한 충고를 들었으며 혼이 나며 언행을 고쳤다. 마담의 성 안에서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남준은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기다리는 법을 깨우쳤고 고아라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냅킨을 쓸 줄 알았다. 나이프와 포크를 두는 방향까지,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의 순서를 모조리 외웠고 구역별로 나뉘는 식사 시간 대화의 차이를 알았다.
여성이라곤 보이지 않는 마담의 성은 까마귀들의 집합소, 온통 정장 차림에, 조금 흐트러진 모습이라면 자켓을 입지 않고 잉글랜드식 베스트와 넥타이를 한 댄디 가이의 격식이 최대치였다. 남준과 마담을 제외한 이들의 나이는 성인에서부터 마흔이 가까워질 때까지, 연령대는 다양했다. 남준이 넉 달 가까이 이곳에서 묵었을 즈음, 깨달았다. 아- 마담은 늙은이에게까지 최면을 걸어두는 마법사와 마찬가지구나. 하고.
"남준, 마담의 부름이야."
"마담은 소리도 없이 돌아오시네요."
"그게 마담이지."
하루는 1구역으로 나갔던 마담이 보름만에 집으로 돌아오던 날이었다. 마담이 없으면 본 저택에 갈 일은 마담의 비서가 부를 때를 제외하곤 없었으니, 본 저택에 가는 것도 보름만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몇 백 미터 떨어지지 않은 별관에서 묵는 게 다였다지만. 마담의 부름을 알려준 건 같은 방을 쓰는 서른의 미스터였다. 미스터는 한결같이 베레모를 쓰고 한 손에는 가위를 쥐곤 정원을 돌아다니는 게 일이었고, 이 마담의 저택에서 가장 쓸모없는 짓을 하는 사람을 고르라면 남준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를 택할 수 있었다.
미스터가 관리하는 장미 정원을 지나면 본 저택으로 가는 쪽문이 나온다. 아직꺼정 봉오리밖에 맺지 않은 장미의 봉오리를 툭, 건드리고 쪽문으로 고개를 숙여 들어가면 금세 마담이 있는 본 저택이 나온다. 남준은 늘처럼 쪽문으로 마담을 만나러 다니고, 남준은 그런 부분에서 희열감을 느껴 혼자서 밀회를 했다. 그런 남준을 아는지 모르는지, 쪽문과 가장 가까운 저택의 방에서 차를 마시며, 온통 유리로 도배된 창을 통해 남준을 내려다보면, 김남준은 오롯하게 눈에 마담을 담아낸다. 발가벗겨 버릴 그 눈을 가지고.
"태형아, 저 애는 물건이야. 잘못 길들이면 큰 일이 날게 뻔해."
"아시면서요 마담은."
"그런데 손을 엇나가는 게 너무 귀엽지 않니, 꼭 어릴 적 널 보는 것 같아."
"다 지난 일이라지만 언급하시면 아직도 심장이 아려요 마담."
마담이 앉아있는 테이블의 옆에 서있던 건 오 년 전 쯤에 성인식을 치뤘던 태형이었다. 이곳의 시간은 무수히 빠르게 흐른다. 물론 시간의 흐름이 엇나가, 다르다는 뜻은 아니되 이곳은 시간의 척도가 조금 달랐다. 18세가 되던 해 마담의 아이들은 성인이 되고 성인식을 꼭 거쳤다. 성인식이라니 꼭 성대한 파티라도 되는 마냥 아는데, 페이퍼 컴퍼니 주제에 아이들 여럿을 케어할 배짱이 두둑하지도 않았으며 그럴 만한 속도 없는 사람이다 마담은. 가끔, 아주 가끔. 2년에 한 번 정도, 성인식을 거치는 아이들이 있기도 했으며 그 중 하나가 남준일 뿐이다. 물론 그 아이들이 오로지 마담을 위해 충성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이들은 모두 마담의 충성스런 개로 길러지니. 충성하지 않으면 반란, 아니면 죽음이었다. 그 누구도 마담의 집에서 반란을 성공한 자는 없었으며 시궁창의 꼬리표는 꽤나 길었다. 죽음에 이르거나 영원한 꼬리표를 달든가. 물론 후자로 살아남는데도 살아있는 게 아니었다. 몸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을 테고 시궁창은 말 그대고 마담이 씹어삼킨 곳이었으니까. 꼬리표라는 게 이래서 무서운 거다. 멍청하기는. 남준아, 너는 꼭 내 손등에 영원도록 키스하렴.마담이 웃었다.
마담, 저 왔어요.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태형이 문을 열어주면, 이제부터 태형이 있던 자리에는 남준이 선다. 마담의 석류 같은 미소를 등지고 태형이 자리를 비키면, 마담은 자연스레 맞은 편 의자에 손짓을 한다. 남준이 앉는다. 귀여워했던 태형도 함부로 앉을 수 없는 자리, 귀중한 사업 파트너가 온다고 해도 앉히지 않는 야외식 테이블과 의자. 이곳에는 남준이 유일한데 그걸 그는 몰랐다.
"쉬이- 그동안 나 보고싶었니 준아"
"정말이지 마담은, 아직 제가 열일곱이란 걸 왜 몰라요…"
"그게 여기서 무슨 상관이야 준아, 이곳의 시간은 세 배는 빠르게 흘러, 알잖니."
남준이 고개를 숙여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른의 마담은 익숙한 눈길로 눈을 접어 조용히 웃는다. 남준의 푸석한 머리카락이 갈라져 얼굴 표정이 다 드러났다. 어린 애는 속내든 밖이든 감추기에 미숙했다.
열일곱의 김남준, 스물넷의 마담. 남준은 허벅다리 위에 쥔 주먹의 부들거림이 멈출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치기어린 마음임을 잘 안다. 이 시궁창 냄새가 흥건한 땅바닥에서 애들은 보호가 아닌 먹잇감으로 치부되기 일쑤였으므로 남준은 어른답게 굴곤 했었는데, 마담과 함께한 이후론 어긋나버린 것이었다. 조금 더 사랑 받길, 1구역은 바라지도 않았다. 못해도 4구역의 시골 깡촌에서 사는 평범한 열일곱의 애들처럼 사랑을 받길 원했다. 그걸 원한다.
"남준아."
"네 마담-"
"내가 널 몇 월에 데려왔더라."
"유월이에요."
"지금은?"
"성인이 될 때까지 두 달밖에 안 남았네."
남준이 고개를 들었다. 허망한 눈길이 마담을 집어삼켰다. 목 끝까지 채웠던 단추가 답답해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 단추가 갑자기 괴물처럼 변해서 남준의 목을 졸라버릴 것만 같았다. 마담과 남준이 눈을 마주하면 마담은 아기를 달래듯 입으로 쪽, 소리를 낸다. 하하, 하, 하-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넘기고, 남준이 소리내어 웃는다. 마담에게 어리광 부릴 날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음을 느꼈기에. 미스터에게 들은 바로는, 마담은 성인식 이후론 부르지도 않았더라고. 곁에 남아있는 태형이 용한 거라했다. 이들 중 가장 명석했기에 마담의 곁에 남을 수 있었던 건지 아니면 그 잘생긴 얼굴로 마담을 기쁘게라도 해주는 건지. 그런 이유따위는 남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중요한 건 마담의 곁에 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요즘 회사 상황은 어때요."
"그런 걸 물어보고 말이야, 다 컸네 준아."
"곧 성인이잖아요."
"나쁘지 않아,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을 만큼 말이야."
"다행이네요, 마담."
마담의 말 뜻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 식어버린 홍차를 입술에 한 번 적시고 남준이 여유롭게 웃었다. 속이 비틀렸다.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을 거라니. 그 말은 즉슨, 남준이 아무리 기고 날아도 성인 이후로의 사랑은 기대하지도 말란 뜻이었지. 남준의 태도에 마담의 눈길은 글라스 너머로 정원에 가위질을 해대고 있는 미스터로 향했다. 미스터, 어쩌면은, 마담이 가장 아끼는 건 태형도, 남준은 물론 아니고, 미스터일지도 모른다. 이 거대한 글라스로 보이는 건 하루 종일 정원에서 살다시피 하는 미스터였으니까. 마담, 언젠간 이 글라스를 스테인드 글라스로 만들어줄게요. 밖은 보지도 못하게, 나만 보도록요. 남준의 비릿함은 마담으로부터 비롯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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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신도림 소매치기입니다
그간 글을 올리지 못했는데 ,, 사실 많은 사유가 있었어요
남준이 글도 왜 지워진지 모르겠더라구요
제 실수인지 아니면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는데 다시 재업합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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