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육강식 (弱肉强食)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희생시켜서 번영하거나 또는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이가 된다는 말.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세상 이치. [콩택] 약육강식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건 당연한거야." 쨍그랑, 귓전에서 울리는 것 마냥 생생하게 재현되는 소리에 택운이 눈을 뜨고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꿈, 또 꿈이었다. 식은 땀이 송글송글한 이마를 창문을 뚫고 들어온 차가운 아침공기가 간질였다. 한기에 소름이 오소소 돋은 팔을 이불 속으로 감춘 택운이,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다가 얼굴마저 이불 속으로 밀어넣었다. 이것이, 포식자를 같은 공간에 둔 약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 결국 그 이불 아래에서, 눈물젖은 베개를 베고 누워 잠이라는 가장 편리한, 또 편안한 도피처 속을 유영하던 택운은 또 다시 꿈을 꾸었다. 아버지같던 아저씨의 손을 잡고 자그마한 6살짜리 아이와 눈인사를 하던 9살의 풍경이, 또 영화 필름이 빠르게 돌아가듯 빠르게 커나가던 제 앞의 작은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제 손에 들려있던 아저씨의 영정사진. 굳어가는 아이의 표정이, 다 커버린 아이가 제게로 던지는 작은 화병의 모습이 담긴 꿈을. "택운아, 빨리 일어나봐. 얼른!"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잠에 취해있던 택운을, 겁에 질린 표정의 유모가 흔들어 깨웠다. 눈을 뜨자 택운의 시야에 들어온 건 핏빛으로 물든 유모의 손이었다. 씨발, 작게 욕지기를 중얼거린 택운이 침대에서 내려와 방 문을 열었다. "이홍빈!" 문 밖을 나서자마자 차박차박 밟히는 핏물에 택운이 경악을 했다. 이게 무슨.. 또 무슨 미친 짓이란 말인가. 2층 복도를 가득 채우고 계단을 타고 흘러 내리는 핏물과, 고개를 조금만 들면 보이는 사람의 너덜너덜해진 형체. 그리고 이마에 닿아오는 차가운 금속성. 빵, 하고 입으로 소리를 내며 총을 쏘는 시늉을 하는 홍빈의 얼굴이며 옷이 피범벅이다. 택운이 헛구역질이 나려는 것을 억누르며 홍빈의 뺨 위로 주먹을 내질렀다. 작은 얼굴이 힘없이 돌아갔다. "미쳤어, 진짜? 빠져나갈 수 있는게 한 두번인줄 알아?!" "어차피 이 바닥은 내가 있어야 돌아가. 감방에 들어가도 곧 나오겠지." "미친 새끼..!" "여기 다 정리하고 죽은 사람 수대로 다시 들여와, 너도 저 꼴나기 싫으면 나한테 이 새끼 저 새끼하지 말고." 한 쪽 입꼬리만을 올려 웃던 홍빈이 뒤를 돌아 방으로 향했다. 핏물이 튄 상아색의 방문이 닫히자마자 택운은 차박거리는 핏물을 밟으면서 화장실로 향했다. 구역질이 났다. 어제까지만 해도 저와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찢겨 있었다. 그것도 제 고용주의 사격 연습 대상이 되어서. 한참을 변기를 붙잡고 있던 택운이 스르르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물이 났지만 울어서는 안 되었다. 포식자에게 약점을 보이는 순간, 처참하게 잡아먹힌다. 물로 입 안을 헹궈낸 택운이 거울 속의 저를 바라보았다. 억지로 끌어올려낸 입꼬리를 다시 늘어트린 택운이 화장실 밖으로 나섰다. 차박차박 밟히던 핏물과 시체들은 이미,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집 안의 모든 사람들-하인부터 홍빈의 가족들까지 모두-은 홍빈을 미친 놈이라 칭했다. 택운은 생각했다. 왜 그는 미친 놈이 되었을까. 제 기억 속의 어린 홍빈은 착했다. 조용했고, 정이 많은 아이였다. 필름이 뚝 끊긴 것처럼 흐릿한 그 중간과정을 넘어가면 기억에 있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집어 던지는 사납고, 신경질적이고 제 멋대로인 어른. 택운이 손을 시야 앞에 가져와 이리저리 바라보았다.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 사이, 그 선을 잇듯 죽 따라서 그어진 흉터. 택운이 두 손 안으로 얼굴을 감추었다. 얼굴을 감싸고 있는 두 손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 "홍빈이는요?" "회사에 가셨습니다."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한 택운이 식빵 한 쪽을 물고 2층으로 올라갔다. 빵 끝부분이 조금 탔다. 오물오물 빵을 먹으며 제 방쪽으로 향하던 택운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늘 잠겨있던 작은 방의 열쇠가.. 홍빈의 방에 있지 않을까. 몰래 홍빈의 방에 들어와 서랍을 뒤적이던 택운이 열쇠를 발견하고 그를 들어올렸다. 찾았다, 작게 중얼거린 택운이 몰래 방에서 빠져나와 유모의 눈을 피해 늘 자물쇠가 걸려있던 작은 창고방의 자물쇠에, 열쇠를 밀어넣었다. 달칵, 열리는 문 안으로 걸음을 옮긴 택운이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고, 불을 켰다. 그리고 곧이어 택운은 비명이 나오려는 입을 세게 틀어막아야 했다. 그 작은 창고방의 벽지는 모두 고양이가 긁은 것 마냥 찢어져있었다. 택운은 깨물어서 그런거라는 홍빈의 짧고 늘 피가 나던 손톱을 떠올렸다. 곰인형 몇 개가 북북 찢어져 있었고 구석에 있는 자루에는 몇 백개가 되어보이는 빈 주사기가 가득 차 있었다. 벽면에는 알 수 없는 성분이 나열된, 그 옆에 O,X가 쳐진 빛 바랜 종이가 붙어있었다. 그리고 제가 없애려 들었던, 여기저기가 부서지고 깨진 피아노가 이 곳에 있었다. 택운은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던져져 있던 일기장을 집어들었다. 1998년 5월 25일, 택운이 형아가 우리 집에 왔다. 2003년 4월 8일, 아빠 친구가 내게 주사를 놓아주셨다. 몸이 아팠다. 아빠가 괜찮다고 토닥여주셨다. 2005년 7월 2일, 약이 성공했다고 그러셨다. 근데 몸이 또 타는듯이 아팠다. 그래서 아저씨가 내일도 오신다고 하셨다. 2010년 10월 24일, 나는 아버지와 아저씨를 죽였다. 내가 이겼다. 이젠 끔찍한 악몽에서 벗어났다. 2011년 2월 16일, 자꾸 아버지가 꿈에서 나온다. 약을 맞은듯 몸이 아팠다. 벗어나고 싶다. 자꾸 모두가 아버지와 아저씨로 보인다. 2012년 12월 29일, 정택운의 손을 찢어버렸다.. 점점 어른스러워지는 글씨는 글씨가 단정해지는 만큼 경악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택운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몇 번이고 제 얼굴을 쓸어내렸고, 택운의 허리에 팔이 감겨왔다. 헉 하고 숨을 들이쉬는 택운의 어깨에 턱을 괸 홍빈이 덤덤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사람데리고 약 실험 못 하니까, 아빠는 날 썼어. 나는 돈도 안 줘도 되고, 입 막음할 필요도 없잖아. 그리고 혹여나 내가 미쳐버리거나 자살이라도 할까봐 널 데리고 왔지. 피아노 잘 치는 예쁜 너를." "..."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주사기를 꽂으면 온 몸이 아팠어. 가끔 성공하면 모든 마약이 그렇듯이 기분이 좋다가 다시 무서워졌었어. 악마가 날 괴롭혔거든." "홍빈아." "아빠를 죽였는데 아빠가 자꾸 있는거야..! 그래서 다 죽였어, 너도 아빠로 보여서 꽃병을 던졌고, 그게.. 그게 네 피아노를 저렇게 만들었겠지. 응, 내가." 횡설수설 말을 잇는 홍빈의 목소리 사이로 신경이 파열되셨습니다, 하는 의사의 말이 섞여들었다. 택운의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고아원에서 처음 이 집에 와서 피아노를 만져본 9살, 그 순간부터 쭈욱. 홍빈이 던지는 화병을 막으려다가 그 파편이 박힌 덕에, 화병처럼 산산히 부서졌지만. "나도, 나도 약자였어. 택운이형. 벗어나려고 했는데 변함없는 약자였어. 내가.. 내가.." 말을 잇지 못 하고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는 홍빈의 앞에 마주 앉아 어깨를 안아 토닥여주던 택운이 새어나오는 울음을 참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저를 군림하던 포식자 위에 있는 더럽고 사악했던 포식자. 그리고 또 위에 있을 누군가. 이 지독한 먹이사슬의 끝은 어디일까. * 뭔가 약육강식도 아닌 것 같고.. 정해놓은 것도 없이 막 쓴거라 정신없는 글이네요 헝헝헝ㅠㅠㅠㅠㅠ 옛날에는 이렇게 분위기 있는 척하고 우울한 글만 썼었는데! 역시 이 편이 더 잘 써지긴 하지만 전 젤리유치원같이 귀여운 게 더 좋아여ㅇㅅ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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