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현탄소 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고개를 까딱 숙이자 며칠 전 깔끔하게 다듬은 단정한 머리칼이 흘러내렸다. 그리 낮지 않게 숙인 고개를 들었을 때 나를 맞이하는 반응은 무엇일까.
전학생에 대한 궁금증? 아니면,
하나 더 늘어버린 경쟁자에 대한 경계심?
![[방탄소년단] 현 01 (prologue)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5/01/23/dafd5be9637388b2fa071006fc7e5431.jpg)
01
"그래서,"
나보고 지금 전학을 가란 말이지? 파들거리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렸다.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는 듯, 마치 모든걸 예상한 것 처럼.
"역시 이해는 빠르네. 이미 예상했겠지만 너한테 선택권 따위는 없는 거, 알지?"
"안다는거 알면서도 왜 묻는지 모르겠네"
"그래도 내가 너랑 나이차가 얼만데, 싸가지 없긴"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에 왜인지 화가 치밀었다. 회사에 온 지 꽤 됬음에도 반듯하게 메여있는 넥타이든, 깔끔한 밤색 머리든, 눈이 피로한지 한쪽 눈을 찡그리는 잘생긴 얼굴이든 안짜증나는게 없었다. 가장 짜증나는것은 내 연기를 무효화시키는 그 시큰둥한 말투였다. 물론 그럴 의도는 없었겠지만(어쩌면 조금은 있었을지도) 컴퓨터 화면에 눈을 고정시키곤 감정없이 말하는 그 목소리가 마치 나에게 '너가 어색하게 숨기려 해도 난 네가 당황한 걸 알고있단다. 넌 내 손바닥 안이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김석진"
"오빠라고 하랬다. 회사에서 보는사람도 많은데 그게 무ㅅ.."
"하나만 묻자"
앞뒤 안가리고 말을 잘라버리는 내 행동에 머리가 아픈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고는 의자를 살짝 돌려 나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그였다. 뭔데, 또.
"왜 나한테는 선택권이 없는 건데?"
"사실적인 답을 원하는거야, 아니면 너를 만족시킬 답을 원하는 거야?"
"사실적인 답은 뭔데?"
"그야 당연히,"
너는 아직 할 수 있는게 없잖아? 그렇다. 아직 스물도 못 넘긴, 부모의 그늘이 없으면 아무 영향력도 끼칠 수 없는 소녀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현탄소, 빨리해라"
궂이 보지 않아도 김석진은 쇼파에 앉아 철학에 관한 책을 읽고 있을 것이다. 전혀 인간적이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 철학이라니, 역시 안어울린다. 김석진의 재촉은 시간이 어느정도 지났음을 알려 주는 말일 뿐, 시간이 촉박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서둘러 교복 넥타이를 메곤 마이를 걸쳤다. 거의 흰색에 가까운 백금발로 탈색하고 꾸준히 색을 바꿔가며 염색을 해서 그런지 다 상해 갈라지는 머리끝 때문에 석둑 잘려나간 빗자루같은 머리카락들이 생각났다. 머리를 깔끔하게 다듬은 탓에 어깨 끝부분 까지밖에 안오는 어색할 정도로 새까만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검은색 말고 밤색으로 해달라고 할껄. 항상 뿌리던 레몬향 향수를 뿌리려다가 튀지 않은 섬유유연제로 손길을 옮겼다. 이번 학교에서는 성격, 외관, 심지어 향기까지도 튀지 않아야 한다. 동그란 안경 너머의 화장끼 없는 얼굴이 낯설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자 고개를 드는 김석진이 보였다. 회사에 가기 전 나를 바래다 주고 가야 해 평소보다 두어 시간은 일찍 일어났을 테지만 여전히 완벽한 상태임에 속이 불편했다. 나는 하나도 완벽하지 않은데 나를 이런 상황에 놓이게 한 너는 왜이렇게 완벽하지? 김석진은 완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일까, 아니면 완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완벽함을 유지하는 것일까.
"이쁘네'
"응. 나도 놀랐어"
이런 찐따같은 모습이 잘 어울리다니. 무릎 위에서 별로 멀지 않은곳에 있는 치마를 보며 중얼거렸다. 보나마나 체육복도 마찬가지일 터. 김석진이라면 아마 학교 교칙을 찾아가며 허용범위에 딱 맞게 교복을 맞췄을 것이다. 쓸데없는 곳에서도 완벽함을 추구하는 완벽한 사람. 딱 김석진을 위한 말이었다.
가자. 반듯하게 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현관쪽으로 향하는 김석진의 뒤를 따라갔다. 새로 산 최신형 핸드폰과 이전에 쓰던 액정이 나간 핸드폰을 동시에 만지작대었다.
"안나와?"
언제 나간것인지 벌써 현관문을 열고 잡고있는 김석진이 있었다. 나는 이내 뒷걸음질쳐 한손에 쥐여있던 액정이 깨진 핸드폰을 식탁 위에 두었다. 처음엔 귀찮아 고치지 않았던 것이 어느새 정이들어버린 깨진 액정이 날 붙잡는 것 같아 핸드폰을 뒤집는 것도 잊지 않은 채.
"태형이랑 같은 집이면 혹시나 애들이 보고 이상한 소문 퍼트릴 것 같아서 일부러 옆동에 집 잡았어"
"응. 예상했어"
"남준이가 가끔 여기 올거고, 필요하면 그냥 불러. 걔 시간 많이 비잖아"
"남준오빠가 들으면 섭섭하겠네"
"혹시나 애들이 물어보면 오빠랑 산다고 해. 여자애 혼자 산다고 하는거 안좋아"
"응"
"김태형은 워낙 튀는 애니까 궂이 아는척 안해도 되고, 너가 1년 꿇은거 가지고 괜한 3학년들한테 화풀이 하지 말고"
"아니 내가 무슨 깡패야? 나도 양심이 있지 그러ㅈ.."
"됐고,"
이번에는 조용하게, 얌전한 애들이랑 친구 먹어봐. 매너있게 조수석 문을 열어주는 김석진에 자연스레 조수석에 탔다. 언제부터 김석진 차가 이렇게 익숙했을까. 내가 탄 것을 확인한 뒤 가볍게 문을 닫곤 운전석으로 걸음을 옮기는 김석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저렇게 완벽하게 살면 무슨 맛으로 사나,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감탄했다.
"그리고"
운전석 문을 열고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승차한 김석진이 꺼낸 것은 다름아닌 금연 껌 이었다.
"학교 담벼락에서 몰래 담배피고 냄새 다 뭍혀가지 말고 이거 씹어라"
"..응"
쓸데없이 나를 잘 파악한 사람. 그것 역시 김석진을 위한 말이었다.
"얘들아, 전학생이야. 탄소야, 자기소개 해볼까?"
"안녕하세요, 현탄소 입니다"
"..."
"잘 부탁드려요'
이름만 말하려다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선생님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한마디 더 하고 예의상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까딱 숙이자 며칠 전 깔끔하게 다듬은 단정한 머리칼이 흘러내렸다. 그리 낮지 않게 숙인 고개를 들었을 때 나를 맞이하는 반응은 무엇일까.
전학생에 대한 궁금증?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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