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 (密會)
作 . Moralless
- 제 1장 -
“선생님.”
고등학교 1학년 겨울 즈음에 사춘기를 맞고 있는 나는 원치않게 엄마의 손아귀에 끌려 유명한 무당 집에 발을 들인 적이 있었다. 미신(迷信) 따위 믿지 않았던 나는 진절머리를 치며 싫어했다만, 이미 가기로 마음을 먹었던 엄마를 이길 재간은 없었기에 최대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서 엄마의 옆자리에 서 걸음을 했었다. 그 집은 대문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그닥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어두침침한 것이 금방이라도 집어 삼켜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고 있는 내 등짝을 쳐대는 엄마 탓에 어쩔 수 없이 그 대문을 들어섰다. 아마 그때의 기분을 설명하라고 한다면, 저승으로 가 염라대왕에게 가기 직전 관문을 통과하는 기분이라고 하면 상상이 될까.
그 집 안에서는 어느 나라 언어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이름 모를 노래들이 흘러나왔고, 절에서 나는 향 냄새도 났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무당이 있는 방 안으로 들어왔을 때는 아,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그냥 기분이 더러웠다. 설명하기 힘든 것들이 가득한 그 공간이 미치도록 싫었다. 무당이 앉아있는 자리 위에는 작은 부처상과 그 옆에는 수 많은 향들이 타내려가고 있었다. 엄마는 서둘러 그 앞에 앉았고, 나는 한참 그곳을 둘러보다 엄마의 시선에 못 이겨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새빨간 루즈를 바른 그 무당이 내 얼굴을 보고선 그 어떠한 질문도 던지지 않았음에도 혀를 끌끌차며 그리 말했었다. ‘꼬였네, 꼬였어.’ 그 말을 들은 엄마와 나는 정 반대의 표정을 지었다. 엄마는 걱정이 산더미인 얼굴을 하고서 무엇이 꼬인 거냐며 물었었고, 나는 세상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었다. 이 기분 더러운 공간 안에서 저 따위의 말을 들으니 참, 뭣 같았다. 앞 뒤 주어 다 잘라먹은 말임에도 좋지 않은 뜻이라는 걸 알 나이는 훨씬 지난 때였으니 말이다.
“왜 자꾸 제 다리 쳐다보세요?”
사실 그때는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을 사춘기 때의 나이였다. 하지만 사춘기가 아니었다고 한다해도 딱히 저 소용가치 없는 그 유명하다는 무당의 말을 더 들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 자리를 벅차고 나왔었다. 뒤에서 내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엄마의 부름을 무시하고서 난 집으로 돌아왔고, 정확히 두 시간이 지나가는 시점에 엄마는 노란 직사각형 종이에 빨간 붓으로 그림 그리듯 그려놓은 소위들 말하는 부적(符籍)을 가져왔었다. 물론, 받을 생각은 없었다만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서랍 안에 신경질적이게 넣어두고선 자취할 적에 쥐도 새도 모르게 버렸었다. 그 사실을 안 엄마는 그게 얼마 짜리인지는 아냐며 원망어린 잔소리를 약 세 시간가량은 들어야 했다. 그 후로 ‘꼬였네, 꼬였어.’ 따위의 말을 신경 쓸 일들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신경 쓸 생각도 없었다만 잘 풀려도 너무 잘 풀려서 문제일 정도로 내 인생의 휴지 풀리듯 잘 풀렸다. 지금 현재 29살이 된 시점에 방탕한 중고교 시절을 보낸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성적으로 대학교를 들어 가 교사 자격증을 따고서 학교에 학생이 아닌 선생의 신분으로 있는 걸로만 보아도 충분히 증명되었다. 그 교사 자격증을 들고서 당당히 첫 학교에 첫 담임이 된 이후, 나는 뒤늦게 그 무당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못한 과거의 나 자신을 원망했다.
“꼴려요?”
실타래들이 차마 내가 풀 수 없을 정도로 엉키기 일보 직전의 시발점 앞에서 서서히 굴러가며 정처없이 꼬일 것을 예고 아닌 경고를 하고 있었다.
*
이름 김탄소. 나이 열아홉. 탄소는 소위 말하는 학교 내에 하나 쯤은 존재한다는 왕따였다. 또래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도 있고, 워낙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키는 160 중반 대로 보였고, 몸은 마른 편이었다. 뽀얀 피부는 검은 머리 덕에 더 뽀얗게 보였다. 긴 생머리는 늘 위로 질끈 올려 묵어 목선이 잘 보였다. 말수도 적고, 행동도 적어 그 존재를 모르는 아이들도 두루 있었다. 그렇다보니 탄소를 둘러싼 소문들은 무수히 많았다. 사실 무관한 소문들은 당사자도 모르게 입을 타고 타 소문이 아닌 사실이라 믿을 정도로 모르는 이 하나 없었다. 귀신을 본다, 혹은 그 보다 더한 소문들이 이름에 꼬리표를 달고 따라다녔다. 그러나 당사자는 딱히 그 소문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늘 표정이 없어 그 이의 기분이 어떠한지는 어림조차 하지 못 했다. 스치듯 시선이 마주치면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하게 만들 정도로 탄소는 표정이 없었고, 눈은 무언가 공허했고 또 빛을 잃은 것처럼 탁했다. 좋은 쪽으로 말한다면 낯을 많이 가리는 차가운 아이였고, 나쁜 쪽으로 말한다면 한마디로 싸가지 없고 음침하다는 거였다.
이름 전정국. 나이 스물 아홉. 국어 교사. 정국은 흔히들 말하는 엄친아였다. 잘생겼고, 몸도 좋았으며, 성격도 착했고, 하다 못 해 공부까지 잘 하는 이였다. 잘생긴 인물 덕에 여자 아이들은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떠 눈에 불을 켜고 정국에게 시선을 집중했으며, 토끼에 빙의한 듯 귀를 쫑긋 세우고 정국의 말에 귀 기울였다. 정국이 무슨 말만 하면 꺄르르 웃어 재끼며 사랑에 빠진 소녀들처럼 굴곤 했다. 고교 시절, 선생님이 첫사랑이 된 아이들처럼. 그래서 늘 정국의 주변에는 여자 아이들이 넘쳐났다. 교무실 책상 위에는 늘 먹을 것들과 편지들이 가득했고. 덕에 교무실 안 모든 선생님들에게 부러움에 가득 찬 목소리들을 들어야 했다. 정국은 늘 첫걸음이 중요하다고 여겼기에 첫 학교이자 첫 담임인 이 곳에서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 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 하고 항상 겉도는 탄소에게 시선이 갔고, 손이 갔다. 한 날은 정국의 반에서 사고란 사고는 달고 다니며 정국이 좋다고 쫓아다니는 아이들 중 하나인 한 여학생을 앉혀놓고 은근슬쩍 물었다. 탄소는 왜 늘 혼자인 것이냐고. 그때 그 아이는 시큰둥하게 머리를 베베 꼬으며 대답했었다.
“걔요? 별로 안 친하긴 한데, 그냥 겁나 음침하게 생겼잖아요. 소문으로는 귀신도 본다던데. 원조 한다는 소리도 있고, 뭐.”
“……원조?”
“네. 쨌든 보고만 있어도 3년이 재수없어 진다는 애니까 쌤도 가까이 하지 마요.”
그 뒤로 정국은 더 예의 주시하게 탄소를 지켜보았다. 반에서 조례를 할 때에도 급식실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종례를 할 때에도 야간 자율 학습을 하는 시간마저도 정국의 시선은 늘 탄소에게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아무런 표정도 없는, 탁한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면 죄를 지은 사람마냥 얼른 시선을 돌리곤 했다. 그러니까, 정국은 그저 첫 학교이자 첫 담임이 학교에서 열정이 넘치는 선생으로서 학교에 적응하지 못 하고 혼자 겉도는 학생이 걱정되어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 더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 뿐이었다는 소리였다.
“왜 자꾸 제 다리 쳐다보세요?”
그럼에도 내게 물어오는 질문은 가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다리? 다리를 쳐다본 적이 있었던가. 건장한 남자로 태어나 반반한 얼굴과 강아지를 닮은 얼굴과 다르게 단단하게 근육진 몸매에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여자들이 스스로 굴러 들어왔었다. 숱한 연애 전적을 둘 정도로. 적어도 하루에 한 번씩은 길거리에 나가면 휴대폰을 들이밀어 전화번호를 달라는 여자들 또한 널렸다. 스물 아홉인 정국은 지금에도 여전히 건장했고, 여자에게 관심이 많은 나이였다만, 파렴치하게 학생에게. 그것도 자신의 제자에게 욕정을 할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라고 믿었다. 적어도 정국 스스로는.
“꼴려요?”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탁한 눈동자로 정국의 눈동자를 올곧게 바라보며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당돌하게 묻고 있었다. 정국은 떡 벌이진 입새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분명 그런 게 아니라며, 다리를 본 게 아니었다며 해명을 해야 하는 것인데. 이상하게도 해명에 ‘ㅎ’ 자도 꺼내지 못할 정도로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한참 정국과 탄소는 시선을 마주한 채 정적을 일으켰다. 그 시선을 먼저 피한 건 탄소였다. 고개를 숙이곤 피식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을 정국은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아, 저 아이도 웃을 줄 아는 아이였구나. 멍하니 서있는 정국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온 탄소는 까치발을 들어 정국의 귀에 속삭였다.
“그런 거면 얼마든지 벗어주고.”
“…….”
“그런 거 아니면 그만 쳐다 봐요. 내가 꼴리잖아.”
그 유명하다는 무당의 말이 맞았다. 그래. 꼬였네, 꼬였어. 참 더럽게도 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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