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보았다.
당신은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용감하게 뛰어들었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살았지만 당신은 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데요.
당신은 간절히 빌었습니다. 제발, 악마라도 괜찮으니 … 저를 살려주세요.
그런 당신의 앞에 나타난 건, 누구일까요?
1. 김석진
"날 부른 게 그 쪽?"
아무렇지도 않게 당신 물에서 꺼내 바닥에 던진 석진이 당신에게 한 말. 당신은 물을 잔뜩 먹어 거의 실신 직전이었으니 석진의 말이 들릴리가 없음.
바닥에 얼굴을 박고 콜록대자 당신 옆에 앉아 등을 두들긴다. 일단 물 부터 뱉고 얘기하지 뭐. 이미 네 영혼은 내 소속이거든.
난생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 것도 놀라운데 당신의 영혼이 이미 자신의 것이라는 석진에 당신은 어이없어 함.
내 영혼? 갑자기 무슨 영혼?
순간 스쳐지나가는 단어, '악마'에 소름이 끼쳤으나 곧 다시 몰려오는 토기에 당신은 다시 바닥에 얼굴을 박았음. 당신의 등을 두들겨주던
석진이 종이를 펼쳐 무언가를 열심히 적음. 겨우 정신을 차린 당신이 고개를 들어 석진을 쳐다보자 석진은 자신을 쳐다보는 당신의 눈 앞에 종이를 들이밀었음.
이거, 우리 계약서야.
"네?"
"내가 널 구해줬으니까, 이제 두 번 남았다. 소원. 다 이루면 영혼 나한테 넘기는거야."
"아니, 전 그 쪽한테 소원 빈 적이 없는데요!"
"빌었잖아, 소원. 제발 악마라도 괜찮으니까 살려달라고."
악마에게 소원은 함부로 빌면 안된다더니, 그 말을 들을 걸 그랬다. 차라리 죽는 한이 있어도 소원을 빌면 안되었는데. 당신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오른 쪽 눈에 흘러내린
눈물을 훔쳐내며 다른 손으론 입을 막았다. 입을 막지 않으면 아까 겨우 잠재웠던 토기가 다시 올라올 것 같아서 였다.
"2개 남았다."
2. 김남준
"네, 구했습니다."
분명 물에 빠졌었는데 ….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겨우 눈을 뜬 당신은 문 밖으로 보이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음. 물에 빠졌었다기엔 몸이 건조했고,
죽다 살아났다기엔 몸이 가벼웠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당신과 눈이 마주친 남자는 손에 들려있던 담배를 벽에 지지곤 당신에게 다가왔음.
몸이 가볍긴 했지만 약에 취한듯 제정신이 아니었던 당신은 다가오는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만 봤음.
"○○○, 21살. 위로 오빠가 하나 있고, 어머니는 15살 때 뇌졸중으로 사망."
"…."
"오빠만 불쌍하게 됐네, 술주정뱅이 아버지만 남았으니."
"그게, 무슨 말 …."
난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데, 저 남자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마자 속이 뒤틀리는 고통을 느끼며 겨우 말을 내뱉은 당신에게 남준이 말했음.
"어차피 곧, 넌 죽거든. 정확히 말하면 영혼이 털리는 거겠지만."
악마가 살려준 게, 아무 댓가도 없을거라고 생각했어?
3. 민윤기
윤기는 거의 죽기 직전의 당신을 발견하고도 구해주기가 꺼려졌음. 고작 인간의 목숨하나 살려주면 신선한 영혼을 얻을 수 있음에도
저 여자는 뭔가 끌리지 않았음. 뒤를 돌아 다른 곳으로 향하려던 윤기를 붙잡은 건 당신의 말이었음.
제발 … 악마라도 괜찮으니, 저 좀 살려주세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윤기는 가던 길을 멈추곤 허우적대는 당신을 내려다보았음. 죽기 직전 껄덕대는 모습은 수없이 봐왔지만 당신은 뭔가 달라보였음.
윤기는 결국 당신을 끌어올렸으나 이미 당신은 숨이 넘어간 후였음. 당신의 영혼을 데려가려는 저승의 짐승들을 모조리 죽인 윤기가 아직 남아 있는 온기를
어루만졌음. 이 여자를 안 살리면, 왜 난 후회할 것 같지?
윤기의 손에서 흰 섬광이 피어올랐음. 악마들 사이에서 금기시 되는 주문이었음. 죽은 자를 살리는 것. 저승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악마들이라 저승의 왕인
염라의 말은 들어야하는 것이 원칙인데, 윤기는 그 틀을 깨었음. 씨발, 될대로 되라지.
"…○○○?"
당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윤기는 당신의 이름을 내뱉었음. 윤기의 전생의 기억 중 일부가 금기시 된 주문의 섬광처럼 피어올랐음.
4. 정호석
호석은 천사지만 천상계에서 알아주는 악동이었음. 천사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온갖 혼란을 불어일으킨다는 게 그 별명의 이유였음.
사람 목숨이나 생명의 목숨은 명부에 적힌대로만 처리해야하는 데 호석이 천사로 환생한 후 모든 것이 무너졌음.
오죽하면 악마들하고 친구먹고 천사들이 호석을 무서워할까.
그 날도 여김없이 제게 넘겨지 명부들을 보며 어떻게 해야 염라를 엿먹일 수 있을까 하던 호석은 원래 살려야하는 생명을 살리지 않기로 했음.
강가에 허우적대며 제게 살려달라 외치는 당신을 모른 척하고 지나간 호석은 몇 백년이 지난 후에,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기 직전 듣고 말았음.
당신이 바로, 전생에 제 아내였다는 사실을.
5. 박지민
"정신이 들어요?"
물을 먹은 솜처럼 늘어지는 몸을 억지로 일으킨 당신은 정신이 드냐는 남자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남자를 쳐다보았음. 천사라고 해도 될만한 미모를 지닌
남자에 심장이 떨리기도 잠시 일단 여기가 어디인지 알아내야했음. 당신이 지민에게 물었음, 여기가 대체 어디에요?
지민은 그 누구보다도 환하게 웃으며 말했음.
"당신이 곧 내 손에 죽을 곳."
악마는 아니지만 연쇄 살인마인 지민.
6. 김태형
인간이 태어나면, 온갖 악마들이 몰려와 그 인간의 영혼의 주인을 정한다고 함. 당신의 영혼은 태형의 것이었음.
당신이 숨이 넘어가기 직전, 태형은 시간을 멈추었음. 이대로 당신의 영혼을 데려가기에, 당신은 너무 아름다웠음.
그래서 태형은 당신을 제 집으로 데려갔음. 그리고 당신이 죽기 직전인 그 상태로 얼려놓곤 집에 고이 두었음.
사랑을 표현할 수 없는 악마의 한계였음.
7. 전정국
악마라도 괜찮으니? 악마가 구해주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아는 건가. 정국은 간절히 외치는 당신의 말을 듣고 조금 웃었음.
악마가 구해준다는 건, 영혼을 먹는다는 것임. 악마에게 영혼이 먹히면 환생을 할 수도 없고, 구원 받을 수도 없음.
영원한 고통을 겪어야 함에도 그게 두렵지도 않은지 당신은 열심히 외치고 있었음. 정국은 결국 당신을 끌어올렸음.
하지만 이미 늦은건지 당신은 숨이 끊어진 상태였음. 정국은 악마가 된 지 채 100년도 안 되었기 때문에 죽은 자를 살리는 일 따윈 못함.
하지만 정국은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음.
환생을 할 수 없는 영혼이 되기엔, 당신의 영혼이 너무 맑았기 때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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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악마를 고르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