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진않아요?"
"....응."
"다행이네요."
하이얀 손에는 별안간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있었다.그게 왠지 손목과 대조되어 보여 마음에 들지않았다.살짝 시선을 돌려 바라본 바닥엔 유리조각들이 널브러져있었다.또 그가 자다 일어나선 저렇게 맘대로 유리병을 깨트렸다.그 유리조각에 또 손을 베이고,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반복되며 이어지는 상황에 날이갈수록 애처로움이 더해갔다.
"또 그 꿈이에요?"
"...한동안 안나와서 기억속에서 사라진줄알았어."
"...."
"근데 그게 아니더라...안나온 시간만큼 더 끔찍하고 잔인했어."
"형을 또,괴롭혔어요?"
"항상 똑같아.그때 그일이 리플레이 되면서 끈질기게 괴롭혀."
"...이미 다 지난일인데 형은 아직도 거기서 못헤어나왔네요."
"...."
"항상 보면 구덩이 안에 형 혼자 갇혀있는것처럼 쓸쓸하고 울적해보여요."
"...."
"살짝 위만 올려다보면,형 구하려고 아등거리는 내가 있을텐데 왜 형은 항상 땅만 쳐다보는지모르겠어요."
"...지훈아."
"이제 제발,제 손 좀 잡아줘요."
하얀 붕대를 조여매주며 그의 손을 놓았다.그는 날 쳐다보고있었다.마치 무언가말하고싶은듯,그 눈엔 나를 가득 담고있었고.
"...되도록이면 손 쓰지마세요."
"지훈아."
"...네."
"나도,올려다보고싶어.근데 아직도 그 일때문에,그 기억때문에 두려워서 고개를 못들겠더라."
"...저도 용기가 안나서,형이 예전같지않아서 형을 구하지못하는거겠죠?"
"....."
옷소매를 잡은 하얀 손이 툭 떨어졌다.마치 잡고있던 희망이 한낱 연날리듯 날아간것처럼 그렇게 그는 아무말없이 날 쳐다보며 잡지못했다.그는 몰랐던걸까.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의 기억이 지워지지않고 아직 그곳에서 헤어나오지못하는게 그가 노력하지않아서란걸.약사올게요,작게 말하곤 집에서 나왔다.찬공기가 훅 끼치며 꾹 참던 눈물이 터질듯 고여왔다.이제 제발 그뿐만 아닌 나도,우리가 행복했으면좋겠다.
-
이미 크림만 조금 남겨진 접시를 포크를 맞부딪히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보았다.그래도 고요한 적막은 사라질 기미가 안보였고,앞에있는 그가 움직일 기미도 더욱 안보였다.항상 그렇듯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을 열지않는 그에 한숨이 나왔다.어떻게 대화를 나아가야할지,이젠 이것마저 난항이 되버렸다.한참동안 그를 쳐다보다 먼저 입을열었다.그때처럼,자연스럽게.
"어제 쇼핑한다더니 했어?"
"어...?어."
"나도 어제 옷샀는데.왠지 좀 얇은걸로 산것같아."
"...누구랑 쇼핑했는데?"
"박경,알잖아.내 친구."
"아는데 기분은 좀 별로야."
핸드폰에서 시선을 때고 마주친 그의 눈은 살짝 주춤할만큼 차갑고 두려웠다.오랜만에 마주친 그의 두눈에 긴장한것인지,또다시 불거질 오해에 긴장한건지.살짝 고개를 떨궜다.그러자 그의 음성이 아주 차갑게도,너무 시렵게도 귀에 박혀왔다.
"니가 그렇게 다른애랑 싸돌아다니는거 이젠 보기싫다고."
"...그럼 니가 같이 있어줄 생각은 안해봤어?"
"....미안."
"아니,미안해하지마.나도,너도 지금 많이 지쳤잖아.미안해할일이 아니야 재효야."
"....."
"제발,조금만 시간을 가져보자 우리."
그를 한참 뚫어져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발걸음을 떼려는순간 그의 음성이 또다시 들려 발걸음을 막았다.지독하게 익숙한 그 목소리가.
"그렇게 많이 힘들었던거야?"
"...응.진짜 많이."
"....."
"너도 알다시피 우리 예전같지않잖아.시간이 변하면서 우리도 변했어.내 옆엔 너보다 다른애들 있는 시간이 많았고 너도 날 보는 시간보다 핸드폰 보는 시간이 많아.근데 헤어지기엔 여태의 시간이 아깝잖아.그치?"
"태일아,"
"그렇다고 니가 싫은거 아니야.진짜 좋아해 너.넌 아직 날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난 아직 너만 보면 되게 기분좋고 너 못만나면 괜히 껄끄럽고 그래.근데 넌?"
"....."
"난 이런데,넌 어때 재효야?"
뒤돌아 바라본 그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있었다.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것같아서 어서 그 카페를 빠져나왔다.그에게 무작정 통보를 하고 오는 길은 온통 회색빛으로 가득했다.사람들 모두가 멈춘것같고 이 세상이 온통 흑백인,나 혼자만 다른세상에 온 느낌이었다.혹시나 해서 돌아돈 뒤엔 날 따라오는 그가 없었고 예상하던 장면이라 더욱 울컥 눈물이 찼다.
-
"으윽..."
간밤에 터질듯 아프던 머리가 더욱 띵하게 아려왔다.시야가 흐릿하게 초점이 잡히질않고,이마에 손을 대보니 열이 펄펄 끓었다.감기인가...침대에서 내려와 한 발짝 떼자마자 쓰러질뻔한걸 벽을 붙잡고 간신히 발걸음을 떼었다.주방으로 물을 마시러가던중,전화벨소리가 울렸다.그 소리에 더욱 아릿해져오는 머리를 붙잡고 겨우 전화기를 들어 받았다.그러자 익숙한 그 목소리가 들렸고.
'여보세요.'
"네,아저씨..."
'...목소리에 힘이 없네?'
"그냥 좀..아픈것같아요."
'얼마나아픈데?'
"별거아니에요."
'지금 인터뷰만 끝나고 바로 갈게.약사서.좀 누워있어.'
"네."
전화를 끊고나니 왠지 모르게 웃음이 슬핏 나왔다.기분이 좋았다.그가 나를 걱정해주는것하며,그가 일찍 들어오면 오늘 하루종일 그만 볼수있을테니까.다시 침대로 돌아가 몸을 뉘이며 한시라도 빨리 그가 오기를 바라며 눈을감았다.
살짝 눈을 뜨니 방은 어둠에 깊게 잠긴듯 깜깜했다.살짝 몸을 일으키고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자 어느덧 12시를 향해 가고있었다.또다시 아려오는 머리가 신경쓰기이보단 아무런 기척이 없는걸보니 아직 들어오지않은 그에 신경이 쓰였다.항상 그랬듯,이번에 또한 그에게 기대해버렸고 또다시 우습게도 약속이 어겨졌다.핸드폰으로 번호를 꾹꾹 누르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유독 길게 이어졌다.많이 바쁘고 힘든거알지만,그만 힘든게 아니니까.이렇게라도 투정부리고싶다.
'어,권아.'
"..아저씨,많이 바빠요?"
'...미안해 권아.인터뷰끝나고 대본리딩 있는걸 깜빡해서말야.'
"아,네.알았어요.끊을게요."
'권아.'
"...네."
'지금이라도 갈까?'
"아뇨,어차피 못오잖아요 아저씨."
'.....'
갑자기 울컥 차는 눈물에 또다시 신경질이 났다.항상 있는일인데도 이런건 익숙해지고싶지 않았나보다.아무런 소리도 들리지않는 전화너머로 어쩐지 그가 나에게 변명이라도 할것같았다.
"그런말이라도 쉽게 하지마요."
'...미안하다.'
"아저씨한텐 그 말 너무 많이 들었네요.난 그 말 들을때마다 더 비참해지는데..아저씨,"
'.....'
"제발 동정해주지말고 이해해줘요."
그의 대답을 듣기싫었다.가차없이 전화를 끊고 이불속에 푹 파뭍혔다.전화기는 고요하기만 할뿐 그의 전화따윈 오지않았다.또 나도 모르게 기대를 해버려서 비웃음이 나왔다.항상 이렇게 될걸 알면서,왜 습관적으로 기대를 하는지.
----------------------------------------
다음편은 피코 번외입니다!!!!피코 안좋아하더라도 헣...봐주세요ㅠㅜㅜㅜ내용전개에 필요한 부분입니다.지호와 지훈이가 말하는 그때 그일은 뭘까요ㅜㅠㅠㅜㅠ
이 시리즈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현재글 [블락비/다각] 그들만의 연애방식 02 10
11년 전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김의성이 예전에 배우들이랑 일하고 후기 쓴거 여기에 조진웅도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