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호형,오늘 크리스마스인데 안좋아요?"
"...."
"난 형이랑 있어서 엄청 좋은데."
꼭 붙잡은 손이 힘이 없었다.힘없이 늘어져있는 손을 꼬옥 억지로 잡아 흔드는거.대답이 돌아오지않을걸 알면서도 혼자 싱글벙글 웃으며 말거는거.모두 익숙해졌지만 어쩐지 갑갑한 마음은 사라지지않는다.시끄럽게 웃으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웠고.분명 옆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왜 행복하지못하고 우울해지는것일까.
"형.우리 저기서 따뜻한거 마실래요?"
"...응."
"빨리 가요.춥다."
짤막하게 돌아오는 답이 반가웠다.그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쓸어주며 커피숍안으로 들어갔다.몇몇의 커플들이 있었지만 그리 시끄럽지는 않았다.그가 좋아할만한 조용한곳.그에게 잠시 저 자리에 가서 앉아있으라고 한 후,주문을 하기위해 카운테 앞에 줄을 섰다.어떤 음료를 마실지 고민하는데 뒤에서 걸걸한 목소리의 고함이 들렸다.
"아나-눈은 뜨고 다니는거야?!"
"...."
"이새끼야 말을해!!병신이야?!"
불길한 마음에 돌아보자 역시나 험상궂은 남자 한명과 그 앞에 서서 멀뚱히 쳐다만보는 그가 있었다.조용한 가게 안에 갑자기 울려퍼진 고함때문인지 사람들은 모두 그와 그 남자를 쳐다보고있었다.난 너무도 싫었다.그를 모르는 사람들이 그를 보며 수군대고 그가 끔찍히도 싫어하는 시선을 모두 쏟아붓고있었으니까.
"진짜 말 안하네?너 정말 병신이야?하-뭐 이런 좋은날에 이딴 벙어리 새끼랑 부딪히고말야.존나 더럽게-"
"존나 기분 더러운건 이쪽이겠죠."
"뭐?"
그의 옆으로 가서 그 험상궂은 남자를 보며 말했다.살짝 웃으며 말하는 내가 어이가 없었는지 그남자는 되물었다.기분이 더 더러운건 그쪽이랑 부딪힌 이 사람이라구요.다시 한번 말하자 그 남자가 욕짓거리를 내 뱉으며 나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다.순식간에 옆에 있던 의자가 넘어지고 사람들이 경악하는듯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새끼야.나이도 어린게 어디서 깝쳐?"
"그쪽은 나이가 많아서 이렇게 깝치시나 보죠?"
"뭐 이 씨발...!!!"
정말 열이 뻗힌것인지 그남자가 주먹질을 해댔다.둘다 바닥에 쓰러져 엎치락 뒤치락하며 주먹질을 해댔다.주위사람들이 몰려와 소리를 지르고 알바생들이 달려와 그남자와 나를 떼어놓은덕에 싸움은 끝이났다.씩씩거리다 문득 돌아본 옆엔 살짝 인상을 구긴 그가 날 쳐다보고있었다.
파출소에서 몇가지 질문과 상황 정리를 한 후 나올수있었다.몇시간 후 나온 밖은 이미 약간 어두워져있었다.겨울이라 낮이 짧아서 그런가.잠시 하늘을 쳐다보다 옆의 그를 한번 쳐다보고 다시 힘이 없는 손을 꼭 붙잡고 이끌었다.
"가요,형."
"...."
"미안해요.크리스마스인데 신나게 데이트도 못하고."
살랑살랑 팔을 흔들며 그에게 말을 계속 걸었다.그는 어쩐지 고개만 푹 숙이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대답이 있던적이 몇 없지만 왠지 푹 숙인 고개가 더 안타까워보였다.형,고개 들어봐요.그의 손을 놓고 앞으로 가 그의 얼굴을 잡고 올리자 감정없이 메마른듯 표정이 보였고 촉촉히 젖어있는 눈이 보였다.그 안에는 나의 모습이 보였고.마치 그때 그 날처럼,그는 그때와 똑같은 눈빛과 표정이었다.그 날이 생각나자 소름이 끼치듯 억누른 감정이 밀려왔다.
"형."
"....싸우지마."
"...알았어요."
가만히 품에 그를 안았다.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건말건 지금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그에게 너무 미안한것.진짜,미안해요.귀에 속삭이듯 그에게 말하자 그는 내 품에 더욱 고개를 묻었다.파르르 떨리는 등이 안쓰러웠다.손으로 쓸어내리자 더욱 더 떨렸다.아직도 그는,그 기억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나는 그를 아직 구하지못했다.
-
"사람이 많네."
"응."
북적거리는 사람들에 조금 인상이 찌푸려졌다.그가 사람이 많다며 살짝 내 손을 놓았다.그다지 신경쓰이진 않았다.항상 있던일이니까.가만히 거리를 걸으며 주위를 살펴보았다.꼭 껴안고있는 커플.사소롭게 대화하며 웃는 커플.서로 선물을 골라주는 커플.그리고 그를 한번 쳐다보았다.핸드폰만 쳐다보며 걷는 그가 이젠 화도 나지않고 그저 그랬다.우리도 한때는 저 사람들처럼 닭살돋았는데.우연히 빠진 예전 생각에 슬핏 웃음이 나왔다.지금과는 너무도 다른 상황에 씁쓸해졌고.
"어?"
"...아,"
갑자기 거리의 가로등 불이 모두 꺼졌고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도 꺼졌다.그 덕에 거리는 순식간에 약간 어두워졌고 사람들은 당황한듯 발걸음을 멈추고 수군거렸다.그 중 눈치가 빠른 몇몇은 이미 서로 얼굴을 붙인채 떼질않았고,그 사람들 덕에 다른 사람들도 아-하는 감탄과 함께 서서히 얼굴이 가까워졌다.키스타임인가 보네,조용히 중얼거린 그가 날 한번 슬쩍 보곤 핸드폰을 다시 쳐다봤다.갑자기 생긴 키스타임으로 인해 어색해진 사이에 짜증이 올라왔다.왜 이런걸 만든거야.아무래도 안돼겠다 싶어 그에게 대화라도 걸으려 그를 불렀다.
"재효야."
"미안 태일아.나 일이 생겨서,먼저 가볼게."
"어...?"
"...메리크리스마스.나 갈게."
"....응."
사람들 사이를 피해가는 그를 잡고싶었다.금방이라도 달려가서 가지말라고 소매를 붙잡고 매달리고싶었지만,어쩐지 발이 떨어지지않았다.사람들은 여전히 달콤히 사랑을 나누고 있었고 너와 난 그들과 다른 세계에 사는듯 차갑고,시려웠다.점점 가까워지는 사람들과는 달리 멀어져가는 우리를 지켜보는 내가 한심하고,한심했다.
문득 내려다본 바닥엔 하얀 눈이 녹아내리고있었다.어?눈이다.사람들의 반가운듯한 소리가 들리고 하늘에선 눈이 기분좋은듯 내리고있었다.저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그를 보며 작년 우릴 생각했다.작년도 지금과 같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였고,우린 행복했다.그리고 지금,그때로 돌아가고싶다.문득 울컥 차오르는 감정에 무작정 그를 향해 뛰어갔다.그의 뒷모습만을 쫓아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 그에게 닿아 옷소매를 꼭 잡았다.목 끝까지 올라오는 호흡에 아무말도 하지못했다.날 돌아본 그는 약간 놀란듯 눈이 커져있었다.목구멍까지 차오른게 호흡인지,널 향한 애처로움인지 모르겠다.잠시 숨을 고르다 너의 옷소매를 살짝 놓았다.
"재효야."
"...."
"...메리크리스마스."
우습게도 입에서 나온 소리는 같지도않은 인사였다.올려다본 그는 아무런 표정이 있지않았다.하고싶은 말이 분명 많았지만,이상하게도 그의 앞에 막상 서니 나오지않았다.푹 숙인 고개,그 시야로 보이는 그의 발은 돌아서 걸어갔다.이윽고 고개를 들어 바라본 앞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밖에 보이지않았다.또 멍청하게도 그와 아무것도 회복하지못했다.항상 같이 보냈던 크리스마스,이젠 의무적인 만남이 되어버린 약속.더이상 나빠질것도 좋아질것도 없는것같다.
-
꺼내어둔 차가운 샴페인은 상온에 둔지 오래되어 이미 병 표면에 물방울이 맺혀 흘러 테이블 위로 흘렀다.쇼파에 누워 보는 티비는 시시껄렁한 재미없는 예능프로만 나오고있었다.테이블 위를 쳐다보자 차갑게 식어가는 음식들이 눈에 띄었다.테이블로 다가가 접시에 담겨있는 스파게티를 포크로 저어보았다.전부 불어터져 엉켜버린 면발에 없던 식욕마저 떨어졌다.분명 일찍 온다고했으면서...소파위에 핸드폰을 집어들어 단축번호 1번을 꾹 누르자 그의 이름이 떴다.신호음이 오랫동안 가고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아저씨 많이 바빠요?"
'응 미안.좀 늦을것같다.'
"아...크리스마스인데..."
'알잖아.오늘이 제일 바쁜거.'
"...알겠어요."
'응.'
뚝 끊긴 전화기만 쳐다보았다.분명 오늘 나갈땐 같이 저녁먹자고 해놓고...다시금 그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딱히 티낼수는 없었다.그도 스케줄때문에 힘들텐데,내가 철없이 굴면 더 힘들테니까.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사진첩에 들어가 우리가 찍은 사진들을 하나하나 보았다.사실 얼마 없는 사진이었다.워낙 함께있는 시간이 짧다보니,사진찍을새가 어디있겠는가.힘없이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이번 크리스마스도,이렇게 똑같이 지나간다.
도어락 소리에 잠이 깼다.소파에 누워있다 잠이 들었는지 이미 밖은 암흑에 잠겨있었다.가만히 눈을 깜빡이며 움직이지않았다.발소리가 들리고 점점 이쪽에 가까워졌다.권아,익숙한 음성이 들리고 살짝씩 흔들리는 몸에 눈을 떴다.앞엔 날 쳐다보는 그가 있었고 시계를 문득 쳐다보니 12시가 다 되어가고있었다.
"잠들었나보네.침대가서 자자."
"아저씨."
"응."
"...조금만 가까워지면 안돼요?"
"....."
소파에서 일어나 방으로 걸어갔다.왠지 울컥 차오를것같은 눈물에 꾹꾹 감정을 억눌렀다.떼쓰고 어리광피우는거,철없는 짓인거알지만 이렇게 말이라도 안하면 정말 언젠가 심장이 터져 죽을것처럼 답답하고 죄여왔다.방문고리를 잡자 뒤에서 그의 음성이 들려왔다.그 음성이 억지로 참던 눈물을 터뜨렸고.
"권아."
"...."
"..11시 59분.아직 크리스마스야.메리크리스마스."
"...네."
짤막하게 대답을 하고 방에 들어왔다.캄캄한 방안이라서 아무것도 보이지않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않았다.이번 크리스마스도 작년과 똑같았다.다만 다른게 있다면 그와 마주한 1분이 있었다는것.오히려 그게 더욱 비참하고 서글펐다.우린 아직 풋풋해야하는데,왜 시작도 전에 시들어버린 느낌일까.
----------------------------
어제 올리려고 했는데 사정상 오늘올리네요....☆★어젠 구독료 공!짜!인데 오늘은 안공짜니까ㅠㅜㅠㅜ어제 왔으면 공짜로 벌들이 볼수있었을텐데...미안한마음에 구독료 오늘은 안겁니다!!!!!구독료 없다고 해서 댓글안달면 헣 연재중지(쿠크바스락)
이 시리즈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현재글 [블락비/다각] 그들만의 연애방식 01 8
11년 전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