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우현이가 뀨의 집념에 못이기는 척 팔과 다리를 풀어줬을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아니죠, 절대 아니죠- 뀨는 불편하다며 팔이고 다리고 치워달라며 입이 닳도록 하소연했지만 우현이는 그게 더 자극이 되어선 잠이들때까지 뀨를 안고 있었다고 해요.
안그래도 작은 눈을 벅벅 비벼가며 알람소리에 맞춰 눈을 떴다. 허벅지와 팔뚝 부근의 가해지는 압박에 짜증을 내며 몸을 비틀었지만 이 무게감은 어쩐지 가시질 않았다. 눈동자를 천천히 움직여 내 몸을 쭈욱 훑는다.
망할.
지난 밤, 잠들기 전에 있었던 남우현과의 실랑이가 떠올라 눈살을 찌푸리며 신경질적으로 남우현의 팔과 다리를 걷어내자 남우현이 앓는 소리를 내며 반대쪽으로 돌아눕는다. 그래, 평생 그렇게 등지고 얼굴보이지 마라 망할 자식아.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알람이 꼭 남우현목소리를 닮은것같아 질겁하듯 꺼버리곤 화장실로 향했다.
자…잠깐.
“야!!!! 내 수건 누가 썼어!!!!!” 화장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곤 숙소 한가운데를 향해 빽-하고 소리를 질렀봤지만 개미새끼 한 마리도 제 낯짝을 비추지 않는 것이, 여간 조용한게 아니었다. 축축한 상태 그대로 둘둘 말려진 내 수건을 원망스런 눈으로 펼쳐들어보였다.
아무리봐도 이건 내 수건이 맞아…!! 얌마 수건, 어제 분명 내가 널 쓰고나서 수건걸이에 가지런히 걸어놨잖아!? 근데 어째서 수건걸이는커녕 욕조에 걸쳐져있는건데! 어!? 이 섬유새끼야 말을 해!! 말을!!
“내 수건 누가 썼냐고오―!!!”
“…….”
“왜 내 수건이 걸레짝이 되어있는건데에―!!!”
벌컥, 물음에 응답이라도 하듯 내 방문이 스르륵 열리자 문틈 사이로 까치집하나가 불쑥 튀어나온….
이 아니라 나무새끼잖아, 미친. 거실로 어기적어기적 걸어나오는 녀석을 향해 젖어있는 내 수건을 들이밀며 물었다. “야, 설마 이 수건 니가 썼어?”
“뭔데― 무슨 수건….”
잠긴 목소리가 되게… 색다르구나……, 는 ㅁ,뭐?!!?!! 나 지금 무슨?!!
큼직한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리곤 옆구리를 벅벅 긁으며 다가오는 저 불결한놈이 눈도 안뜨고선 무슨 수건이냐며 묻는데, 하마터면 이 젖은 수건을 저놈 머리통을 향해 던져버릴 뻔했다.
가만히 감고 있었던 눈꺼풀이 올라가면서 녀석의 풀린 눈동자와 내 눈동자가 마주치는 순간, 괜히 나 혼자 알 수 없는 긴장감에 휩쓸려 마른침을 삼켰다.
나무가 정확히 이쪽을, 아니 더 정확히 하자면 나와 눈을 마주친상태 그대로 푸스스 웃으며 말했다.
“김성규 얼굴 부었네.”
“ㅁ, ㅁ, ㅁ, 무슨 소릴 하는거야! 이 thㅜ건 니가 썼냐고 지금 물었잖아 내가! 괜히 불리해져서는 딴소리 하ㄴ…!”
“아, 그 수건 니꺼였어?”
아, 그 수건 니꺼였어?? 니꺼였어???!!!
“그래! 내꺼였다 짜식아! 말도 없이 써놓고 마르지도 않게 처박아놓은 놈이 하는 소리치곤 상당히 태평하다? 어―?”
“아 왜에― 급해서 썼어 급해서―.”
“야, 넌 급하면 우리집에 와서 살겠다 아주?!”
“못할 거 없지, 집 어디냐?”
자고 일어난지 얼마나 지났다고 저놈의 얼굴 근육은 또 남우현을 웃는 표정으로 만들어버린다.
그 웃는 얼굴을 지우지도 않은 채 빨리 세수하고 싶다며 화장실 안으로 무작정 쳐들어오는 놈을 내가 무슨수로 막을 수 있었을까. 수건을 든 손으로 다급히 녀석의 등을 떠밀며 나가라고 고성을 질렀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자고 일어난 직후라 해도 녀석의 고집과 힘은 여전했다.
남우현이 쥐어준 새 수건으로 얼굴에 묻은 물기를 모두 닦아내고보니 녀석은 눈을 감은 채로 양치질을 하고있었다. 나랑 정반대네, 난 얼굴 씻고 나서 이닦는데….
혼자만의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자 내 눈은 어젯저녁에 쓰고나서 케이스안에 고이모셔둔 칫솔을 쫓았다. 그리고,
“뭐야! 칫솔 또 누가 썼어?!” 수건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소중한 내 칫솔이, 케이스위에 꺼내져있다. 그 말인 즉슨, 누군가가 내 칫솔을 꺼냈다는건데…!!
“미안.”
“뭐라고?”
“그것도 내가썼어. 칫솔.”
그렇게 말하면서 재수없는 얼굴로 팔자 주름이 깊게 패일만큼 웃는 녀석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콱 쳐올리자 녀석은 입에 물고 있던 거품을 세면대로 뱉어버린다. 옆에서 씩씩거리는 내가 눈에 보이기는 하는건지 제 옆구리를 손바닥으로 감싸쥔다.
“아야야 아파라… 이렇게 진지하게 때리기 있기 없기!”
“있기!! 새끼야!!! 니가 아픈건 알아?! 이, 이… 이 망할새끼야?!”
“왜앵~ 우리 뀨, 내가 뀨 칫솔써서 화난거야?”
“그럼 화가 안나게 생겼냐?! 내 수건도 모자라서 이번엔 칫솔이냐?!! 어!!”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선 녀석을 향해 따박따박 쏘아붙이자 그게 또 재밌다고 싱글벙글거리는 녀석의 배때기를 또 한번 가격했더니 이번엔 꿈쩍도 안 한다. 뭐, 뭐야… 더 세게 때렸는데, 아…파서 그러나? 왜 아무반응이 없지…?
이미 불결해진 칫솔을 두손으로 꽉 쥔채 녀석의 얼굴을 조심조심 살폈다. 세면대를 내려다보고 있는 녀석의 시선이 감흥없기 그지없다는 사실을 알아채자 내 심장이 불같이 요동친다. 내가 왜 나무새끼 눈치를 보는거야?!
“나…나무새끼, 분위기 잡지 마라…?”
“내가 지금 분위기 잡는걸로 보이냐?”
물고 있던 칫솔을 입에서 떨어트리곤 세면대에 다시금 치약거품을 내뱉더니 좀전의 생글거리는 얼굴은 어디 갔는지 뭐라도 씹은 표정을 하고선 내 쪽으로 불만 가득한 눈초리를 보낸다.
“야, 내 칫솔이랑 비슷하게 생겨서 착각하고 쓴 거야, 됐냐? 미안하다고 했잖아 내가.”
“이, 이게…미안하다고 될 일이냐…?”
점점 기어들어가는 내 목소리에 기가 찬다는듯 헛웃음을 터트린 남우현이 점점 거리를 좁혀오자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안되면 어쩌려고?”
“아… 안되면 안되는거지 뭐….”
한껏 잠긴 목소리가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오자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소름이 섬뜩하게 신경 쓰여졌다. 뭐, 뭐야… 이 새끼 갑자기 왜 이렇게 무서워졌어…? 미친듯이 뛰는 가슴을 어떻게 해볼 생각도 못한채 필사적으로 녀석의 눈길을 피했다.
이게 뭐야…, 설마, 나 모양빠지게 화장실에서 맞아죽는 거 아냐…?
이럴 줄 알았으면 잔소리도 적당히 할 걸 그랬….
“김성규.”
“… ….”
“나 봐.”
“… …?”
귓가를 감아오는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오자 소스라치게 놀란 내가 저를 흘끗- 올려다보자 남우현이 고개를 튼 채로 서서히 다가왔다. 이 새끼 지금 뭐하는!! …저 이상한 얼굴각도는 대부분 드라마나 영화같은데에서 남자주인공이 써먹는 걸텐데…!!? 왜…!!
이 상황에서 벗어날 생각으로 한 걸음 물러나자 세라믹타일의 매끈하고 차가운 감촉이 여실히 느껴졌다.
내내 알 수 없는 강박감에 쫓기는 기분이었던 나는 꾹 쥐고 있던 두 주먹을 들어 양쪽 관자놀이옆에 두었다. 고개를 푹 숙여버린 내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다소 신경질적인 어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 들어.”
“시… 싫은데…!”
쥐어진 두 주먹에 얼굴을 파묻으려하자 남우현이 대뜸 내 손목을 잡아끌어당겼다. 그 말도 안되는 힘에 이끌려진 나는 어떻게해서든 반항해볼 생각으로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아버렸고, 지금쯤 거의 울상일 얼굴로 녀석을 불쌍히 올려다보자.
“풉.”
내내 굳은 표정이었던 남우현의 입에서 대뜸 웃음이 터져나오자 내 머릿속은 온통 물음표로 가득찼다. 이, 이새끼 조울증 뭐 그런건가? 갑자기 표정이 풀렸다…! 뭐야, 그럼 남우현이 다시 싸이코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거?
경황이 없어 무식한 생각이 줄을 지었다. 아직도 잡혀있는 손목을 풀어내려 슬금슬금 힘을주자 그보다 더 지배적인 힘이 남우현의 손아귀에 실렸고, 그 힘으로인해 바닥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남우현은 제법 기분좋은 표정이었다. 깨끗한 물로 제 입안을 헹궈내는걸 멀뚱히 지켜보고 있다가 깨달았다.
헐, 이 새끼 지금 나한테 장난친거임?
‘이, 이게… 미안하다고 될 일이냐…?’
그것도 모르고 순진하게 말꼬리를 흐렸던 조금전의 내가 생각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뭐죠 이 무지막지하게 밀려오는 짜증과 쪽팔림은? 거울에 비치는 개운한 얼굴의 남우현을 보며 당장이라도 울듯이 물었다.
“너 화난거 아니었어?”
조금은 질책섞인 목소리로 묻자 남우현은 마지막까지 입을 헹구고나서야 이쪽을 돌아봤다.
“아이구, 아직도 울려고 그러네? 그렇게 충격이었어 우리 뀨?”
“못된 새끼….”
“나 너랑 다른반이었으면 어쩔 뻔했냐, 니가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는 명장면도 못 봤을텐데, 그치?”
“참나, 나야 좋지! 너랑 다른반이면!!”
특유의 장난끼 가득한 말투와 표정으로 내 볼을 주욱 늘어트리는 남우현의 정강이를 한 대 차주려다 조금 전 가격했던 녀석의 옆구리가 떠올라 관뒀다. 그것보다, 찝찝한 입안을 해결하기 위해선 세면대와 나 사이를 가로막은 채 서있는 남우현을 치우는게 급선무였다.
“비켜 나무새끼야, 너 때문에 이도 못 닦고 이게 뭐야…!”
“김성규, 좀 뜬금없는거 아는데 너 그거 기억나?”
“비키라니까, 입 좀 헹구게―”
“어제 버스에서 약속했잖아, 노래 불러준값 후불제로 쳐주겠다고.”
“근데 어쩌라고, 비켜, 비켜!!”
“그거 지금 써먹어도 돼?”
“그러던지 말던지 멍청아! 나 지금 네 번째 말하겠는데, 비켜라? 나 입 헹굴거야!!”
“너 방금 분명히, 그러던지 말던지―라고 했어, 지금부터 내가 하는 행동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이한 남우현이 뒤숭숭함을 못참고 호기심을 풀어보려하는 최선의 행동이니까 뒤늦게 질책하면 안 돼.”
“그래! 너 알아서 해! 일단 나 입 좀…!!”
말하고 있던 도중에, 뭔가가 입술에 촉-하고 달라붙었다가 떨어졌다는걸 알아챘을 땐 이미 남우현은 제 자리에서 눈꼬리가 휘어지도록 활짝 웃고 있었고. 나는 마하의 속도로 공황상태에 젖어들었다.
당연히 내 입에선 듣기싫은톤의 고함이 나올줄 알았지만 미친듯이 내달리는 심장박동을 애써 감당해내며 그 자리에 얼어붙어있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귀여워 죽겠다 김성규.”
남우현은 내 머리를 헝클어버리곤 뒤돌아서 화장실을 나가버렸다.
녀석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나는 점점 더 거세게 요동치는 심장소리를 맞이해야했다. 으, 짜증나… 왜 이래 오늘!!!!!! 이게 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