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오메가의 삶을 어떤 사물에 비유한다고 해도 그것보다 비참하게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지금 내 앞에 지나가는 주인과 다리를 잃은 강아지보다도. 이 지옥같은 현실에서 오메가로 살아가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정글에서 살아가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길을 가다가 아무이유없이 오메가라는 이유로 알파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살인을 당해도 손가락질은 엄연한 피해자인 오메가가 받게 되었다. 왜, 밤중에 함부로 돌아다니냐는 이 어이없고 좆같은 이유로 언론에서조차 오메가와 관련된 사건들은 일체 다루지도 않는다. 텔레비전을 틀면 오메가 외의 성향을 가진 연예인들과 앵커들이 이질적인 목소리로 우리를 배척시키기에 바빴고 우리가 낄 틈은 단 한 군데도 없음을 언급하곤 했다.
초등학교를 다녔을 때 성장이 더뎌 성향을 아직 몰랐던 나와 다르게 오메가 판정이 났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직 어려 오메가 베타 알파라는 이름 외 아무것도 몰랐던 그 여자아이는 히트사이클이라는 개념 자체를 몰랐기에 어린 나이에 맞이한 그 생소하면서 고통스러운 감각에 울부짖으며 짝꿍에게 매달렸었다.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겁먹은 듯 얼어있는 베타 짝꿍의 몸을 만지며 울부짖는 그 꼴이 너무나도 애처롭고 불쌍해보여 그녀에게 달려오는 선생님이 그녀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을 때 놀라 숨을 멈추게 된 것 같았다.
'더러운 오메가. 당장 짐싸서 집으로 돌아가'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뺨이 빨갛게 퉁퉁 부은 여자아이를 막 대하며 가방을 싸 던지다시피 내보내는 선생님의 등판이 이유모를 분노에 들썩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소름이 돋았었다. 딸꾹, 조용한 침묵 속 눈물을 글썽이며 숨을 헐떡이는 몇 아이들에 난 그들이 오메가임을 쉽게 알아차렸다. 짐승처럼 콧김을 내뿜으며 뒤돌아보는 선생님의 눈빛은 정상적이지 않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자랑스럽게 축사를 건네는 그 선생님이 학교의 유일한 알파였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의무적으로 하는 성향평가 때 오메가 판정이 나왔을 때 속이 메스꺼워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가 하얀 위액을 토해냈던 것 같다. 변기물 위에 둥둥 떠있는 역겨운 토사물들이 곧 나의 처지와 다름없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머릿속이 저절로 새하얗게 물들여졌었다.
나는 베타인 아버지와 오메가인 어머니를 두고 있지만 사실 지금의 베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지는 않았다. 내가 이 알파들이 득실거리는 학교를 다니기 싫다며 울부짖을 때 그런 나의 뺨을 내리치며 오메가가 학교를 다니면 자신처럼 애아빠 모르는 아이를 낳게 된다고 소리질렀던 엄마를 통해 나는 왜 그때 아버지로부터 애정담긴 눈빛을 받을 수 없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오메가였던 엄마는 전혀 그녀에게 관심이 없던 할아버지 때문에 질 낮은 학교에서 끔찍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했었다. 그 결과물이 수많은 낙태와 고통 그리고 마음에서 평생 잊혀지지 않을 상처였다. 문득 졸업하고 나서 뱃속에서 오랜시간동안 잠들어있던 나를 발견했던 엄마는 분명 평소처럼 나를 지우려고 했지만 그 순간 어떻게 알아차린건지 급하게 내가 발을 차자 알 수 없는 모성애가 생겨나 지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입학식 날 나에게 안개꽃을 건네준 엄마의 표정은 내가 봤었던 평소보다 더 밝았었다. 딸만큼은 자신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고싶다던 소망이 어느 정도 실현이 될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일까 그때 엄마는 처음으로 나를 안아주며 잘했다고 몇 번이나 되새겨주었다. 물론 지금 내 방에 있는 그 안개꽃은 이미 생명을 잃어버려 그 형태 또한 망가져있지만 말라비틀어진 가지를 볼 때마다 항상 다짐했다. 3년동안 조용히 오메가임을 들키지 않고 학교를 다니자고. 그런데, 그 다짐이 무너지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자 다시 몇 년 전 겪었던 그 메스꺼움이 다시 위장을 꼬이게 하는 것 같았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저 우성알파, 박지훈의 나른한 시선에 발끝이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겨우 마음을 다잡아 온 이 학교에서 어쩌면 절망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준 박지훈이 원망스러워 그를 눈에 힘을 주어 노려보자 그런 나의 시선이 같잖다는 듯 어깨를 가볍게 들썩이는 그였다.
"지금 나 노려보는거야?"
"..."
"너 상황파악이 안되는 것 같은데,"
여유롭게 손까지 털어 물기를 없앤 박지훈이 싱긋 눈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환한 미소와 다르게 발걸음의 무게나 입꼬리만 올라가있는 표정은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가 포식하기 전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 겁을 주는 것 같았다. 나에게 점점 다가올 때마다 향기를 더욱 진하게 풍시는 박지훈에 뒷걸음질을 하려고 했지만 몸은 이미 제어 불가능 상태였다. 마치 사막에서 물없이 3일을 버틴 것처럼 무언가에 갈구하고 힘이 없는 상태라 그저 죽어라 내 앞에 있는 놈을 노려보는 것밖에 난 할 수 없었다.
"...윽!"
"너 지금 나한테 잘 보여야 하는 상태야"
그대로 강하게 내 턱을 휘어잡은 박지훈에 숙였던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철저하게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이하는 박지훈은 내가 원래 알고있던 우성알파의 본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오만함이 담긴 말투, 오메가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욕망, 낮은 목소리와 비웃음이 담긴 표정. 항상 눈에 별을 품고 다니며 오메가들에게 한없이 따뜻하게 대하던 그 박지훈이 아닌 오메가를 깔봐야 직성이 풀리는 우성알파 박지훈이 내 앞에 나타나자 더욱 속이 아파오는 것 같았다.
"다른...오메가 알아봐"
"뭐?"
"왜 , 난데, 다른 년들도 많..하으, 잖아"
다른 오메가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하게 대하면서 왜 나에게만 이러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른 알파들과 다르게 학교에서 유일하게 오메가를 건드리지 않았던 박지훈인데, 왜 나에게 갑자기 이런 본모습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오메가가 견디기 힘든 우성알파 페로몬이 강하게 나를 휘어감자 말을 쉽게 하기도 힘들었다. 지금 이성을 잃지 않고 내 눈 앞에 있는 박지훈을 덮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중에 나를 칭찬해야 하는 점이었다. 조금 꼴사나운 목소리로 겨우 이은 내 말을 들은 박지훈이 생각하는 척 동그란 눈동자를 한 번 굴리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만들어냈다. 한없이 아름답지만 어딘가 나사가 빠진듯한 미소.
"재밌잖아"
"...뭐?"
"사람 미치게 하는 페로몬 풍기고 다니는 주제에, 베타라고 우겨대는 게 너무.."
그대로 강한 악력으로 나의 고개를 앞으로 당기게 한 박지훈에 신음을 내뱉기도 찰나 귓가에 느껴지는 낯선 감촉에 몸이 굳어졌다. 재밌다니. 알파가 오메가를 가지고 놀 때 그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점점 헛구역질이 날 것 같아 박지훈을 밀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인간이라는 것이 유혹이라는 욕망에 헤어나올 수 없듯 달콤하면서도 청량한 하지만 어딘가 날카로운 박지훈의 페로몬이 코끝에 강하게 스치자 뒷목이 저절로 아파오기 시작했다.
"같잖거든"
한없이 나를 무시하는 말투에 울컥 감정이 치밀어올라 있는 힘을 다해 귓볼에 얹은 입술을 떼어내고 싶은 욕망에 어깨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오메가 따위가 우성알파를 이길 수는 없었다. 억울함에 눈가가 붉게 물들여지는 것 같았다.
"그,만해"
"달아"
알파 페로몬을 이렇게 가까이서 맡는건 처음이라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오메가가 페로몬을어떻게 숨기는지는 아는데 어떻게 알파 페로몬을 맡지 않을 수 있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었다. 게다가 박지훈의 목소리가 살짝 쉬었음을 알아차리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여졌다. 달다는 짧은 평과 함께 마치 달콤한 설탕을 음미하는 어린아이처럼 귓볼에서 입술을 내려 목선에 가져다댄 박지훈에 발끝이 오므라졌다. 목선에 느껴지는 달콤하면서도 따뜻한 숨결에 미칠 것 같았다. 이성을 잃으면 안되는데, 입술에 피가 맺힐 때까지 깨물며 몸을 굳힌 채 버티자 그런 나의 상태가 웃긴지 박지훈의 조소에서 나온 따뜻한 숨결이 목덜미에서 느껴졌다.
"...아!"
목덜미에서 따뜻한 숨결 대신 따끔한 통증이 느껴지자 고통과 함께 제정신이 돌아와 그대로 어깨를 밀쳐냈다. 그리고 얄밉게도 순순히 뒤로 밀려나 혀로 입술을 적시는 박지훈에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조금씩 돌아오는 이성에 그대로 박지훈의 저 뻔뻔한 면상에 주먹을 날려버리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헤프게 굴지 마"
"..뭐?"
"오메가인거 너무 티내지 말라고"
"..박지훈,"
"어설프게 숨기는거, 나같은 알파들한테 자극밖에 주지 않아"
"..."
"병신같은 알파들과 다르게 난 이미 알아버린거고"
헤프게 굴지 말라고? 어이가 없기 보다는 억울함이 먼저 나를 덮쳐와 눈시울이 붉게 물들여졌다. 내가 오메가임을 숨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었는데, 그걸 모두 무시하며 나에게 충고를 하는 박지훈의 모습은 최악 그 자체였다. 무슨 의도인지 다시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박지훈에 고개를 돌려 거부의사를 표현했지만 심기가 뒤틀린건지 전과 다르게 강한 악력으로 나의 턱을 휘어잡는 그의 행동에 신음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내 앞에서 다른 곳 보면 좀 좆같거든"
"..."
"헤프게 굴지 말라고 했지만"
"..."
"나한테는 예쁘게 굴어야지"
...잘못 걸렸다. 한 번만 시선을 더 피하면 눈알을 파버릴 것 같은 그의 무서운 말투에 겨우 박지훈과 시선을 마주했다.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그의 눈동자에는 배고팠던 검은 파도가 세기를 부풀리며 희생양이 될 나를 반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상황을 박지훈은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하는건지 그의 눈빛은 내가 본적 없던 즐거움으로 물들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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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은 다음화에 정리해서 올려드릴게욤 신청해주신 분들 감사드려요8ㅁ8 암호닉 다 받고 잇슴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