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EZE-Be There
![[프로듀스101/안형섭] 야구부 안형섭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5/28/11/0f521285d81eabd8db2cf5f8489e18c1.gif)
야구부안형섭
(1)
땅- 하고 공이 배트에 맞고 저- 멀리로 날라갔다. 멋지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공이 절로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아오. 햇빛. 내가 이래서 여름을 싫어해. 가만히 있어도 더운 마당에 남자애들은 헥헥하며 멍멍이처럼 뛰어다닌다. 진짜 공만 보고 뛰어다니는 꼴을 보니 멍멍이같네. 야구부 아이스박스에서 몰래 꺼내 온 얼음물을 볼에 가만히 대고 있으니 슬슬 볼때기가 아려와서 볼에 찰싹 붙어있던 얼음물을 떼었다. 더워서 그런지 붉게 상기되어있던 볼이 조금은 가라앉은 기분이다. 멍하니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형섭이내 쪽으로 다가온다. 저 햇볕을 직빵으로 맞고 있는데도 피부가 나보다 더 새하얀 것 같다. 왠지 백구같기도.
"아, 더워."
"그러니까 이런 날에 무슨 야구야. 야구는."
"곧 있음 시합이잖아."
형섭은 헤헤 하고 웃으며 내 손에 있던 얼음물을 자연스레 가져간다. 그러고는 내가 입댔던 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꿀꺽꿀꺽 잘도 마신다. 형섭은 이마 위로 줄줄 흐르는 땀을 대충 손으로 닦으며 나 다시 갔다올게. 라고 말한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형섭은 다시 모자를 고쳐쓰더니 흙으로 가득 묻어있던 바지를 툭툭 털어내고는 다시 운동장으로 뛰어간다. 작디작은 모래알들이 바람에 스쳐 형섭의 옆을 지나간다. 햇빛의 영향을 받은 모래알때문인지, 아니면 형섭의 반짝거리는 머리칼때문인지. 형섭은 어쩐지 멋있게 보였다. 그리고 반짝여보였다. 항상 야구할때만 짓는 표정이 그렇게나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저 표정을 나한테도 지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오래 기다렸어?"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쯤이 되서야 야구부 코치 선생님께서 마친다는 말씀이 떨어지고 형섭이나 다른 아이들이나 다들 분주하게 자기 짐을 챙겨 가기에 바빴다. 다들 얼마나 뛰어다녔던 건지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이제 진짜 여름인 듯 매미는 저녁까지 울어대기 시작하고 도통 땀이 잘 나지 않는 형섭도 흠뻑 젖어있었다. 온천에 푹 몸을 담근 듯. 형섭은 오래 기다렸냐며 가방을 메고는 내게 와 물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며 짜증도 내고 싶었지만은.. 도통 그럴 수 없었다. 동정심인지, 연민인지 모를 그럴 감정을 불어일으킬 눈을 형섭은 갖고 있었다. 저 멀리 달나라에서 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을 법한게 형섭의 눈동자안에 그려졌다. 그래서인지 나는 형섭에게 화를 잘 낼수가 없었다.
"아니. 별로 안 기다렸어."
"다행이다. 나 연습하는 거 댕이도 보러 오면 좋았을텐데."
형섭 특유의 천진난만한 말투로 말했다. 형섭이 이런 말을 할때면 나 다섯살때 엄마가 내 이빨을 뽑아줄때가 생각난다. 엄마가 그렇게 뽑자, 뽑자. 라고 해도 절대 뽑기 싫다고 요리조리 도망다녔던 기억. 지금 내 상황이 딱 그 상황이었다. 형섭이 말하는 댕이는 내 친구를 말하는 것이었다. 댕이는 단발머리에다가 하얀피부. 거기다가 발랄함을 더 해줄 주근깨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게 예쁘지 않은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남자애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특유의 활발한 성격과 여성스러움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특히나 어렸을 때부터 같이 놀았던 우리 셋은 모르는 것이 하나 없었다. 벌써 형섭이 댕이를 좋아하게 된지 2년이 지났으니까. 형섭은 나에게 티를 별로 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티 무지하게 난다. 듣는 내가 머쓱할 정도로. 그래서 가끔 어떻게 반응해줘야 할지 애매할때도 있다. 그래서 이제 형섭에게 미련을 버려야겠다고 매일 밤마다 생각하는데 형섭이에게 연락이 오면 재깍재깍 반응해버리에게 는 나도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나중에 댕이도 데리고 올게."
내가 형섭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둘리가 일억년 후에 빙하에서 깨어나도 모를 사실이었다.
*
"주말에 연습 잘 하고 왔어?"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댕이가 나에게 물었다. 내가 저번 주말 아침에 댕이에게 형섭이 야구부 연습하는 거 같이 보러 가자고 물었었는데, 댕이는 자기 엄마 가게 심부름을 도와줘야 한다면서 거절했다. 이런 걸 들을 때마다 댕이는 날개없는 천사같았다. 나는 엄마가 뭐만 시키면 싫다고 도리도리질 하는데. 형섭이가 좋아하게 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형섭이가 댕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댕이 당사자 조차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댕이도 형섭이만큼이나 눈치가 더럽게나 없는 사람이었으니깐.
"응. 여전히 야구 못 하더라."
"뭐라냐. 김지현."
아침부터 뭘 그렇게 먹고 있는지 오물오물거리며 다가오는 형섭이었다. 귀는 어찌나 저리 밝은지. 뒷담 까는 걸 용케 알아듣고 나에게로 다가온다. 아님 나를 핑계삼아 댕이를 보려고 온걸 수도 있다. 벌써 귀끝이 벌개져있는 걸 보니 아직도 쑥스럼을 타는 게 분명하다. 형섭은 반배정에서는 유독 운이 없어서 댕이와 같은 반이 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새학기때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은 속은 씁쓸하다는 거 다 안다. 그런데 내가 운이 좋은건지, 아니면 형섭이를 더 골려주려는 신의 계략인지. 나와 안형섭은 같은 반이 자주 됐었다. 거기다가 짝꿍도 여러번 됐었다. 하도 뭐 맨날 같이 앉아서 안형섭이 이젠 짝꿍같지도 않다. 하지만 항상 책상 위에서 손가락 장난을 치다가 실수로 손이 실수로 닿으면 전기라도 통하는 듯이 찌리릿 통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얼굴에 열이 달아오르는 느낌. 힘 없는 선풍기의 바람에도 내 열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럴 때마다 형섭은 어디 아파? 라며 손을 내 이마위에 대준다. 그러면 난 더 당황해서 얼굴이 더 빨개지고.
"아니야. 이 똘추야."
라며 욕으로 마무리해버리겠지.
그렇게 댕이가 반으로 돌아간지 몇시간이 지난 채 안 되자 한 소문이 뻥 터져 학교를 나돌아다니고 있었다. 댕이가 3학년 김용국 선배랑 사귄다는 소문이었다. 그것도 댕이가 먼저 고백해서. 설마 그 소문이 맞는지 댕이를 급하게 찾아갔다. 댕이는 쑥쓰럽게 웃으며 친구들과 대화하고 있었다. 댕이는 나를 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 소문 사실이야?"
"아니, 사귄다는 건 아니지만."
"..."
"선배가 조금만 더 생각해본다고 했어. 아무래도 갑작스러울테니까."
"..."
"하지만 차이게 되어도 포기 안 할거야."
댕이에게는 내게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 자신감 덕분인지 댕이는 언제나 반짝였다. 어디에 있어도 눈에 띄는 반짝임. 그에 비해 나는 너무나도 초라했고 아무 것도 가진게 없었다. 댕이가 그 김용국에 대한 선배의 칭찬을 계속 늘어놓는데 어쩐지 듣기가 미안했다. 내가 아까 말했듯이 형섭은 귀가 매우 좋다. 혹시라도 형섭이 이걸 듣게 될까봐 걱정스러웠다.
"김지현. 잠깐 이야기 좀 해도 돼?"
뒤에서 안형섭이 내 손목을 잡았다. 정전기가 찌리릿 통했다. 너무 놀라서 눈이 확 커졌다. 댕이는 역시나 밝게 웃으며 어~ 혹시? 러브러브? 라는 이상한 말이나 하고 있다. 형섭은 머쓱한 듯 뒷목을 긁적이며 내 손목을 잡았던 손을 풀었다. 거기에 나도 머쓱하게 뒷목을 긁적였다. 안형섭은 학교 뒤뜰에까지 갔다. 왠지 모를 분위기에 그냥 눈치만 보고 있자 형섭이 먼저 입을 뗐다.
"지현아, 넌 친구지?"
"...그렇지."
"나. 사실 댕이 좋아해."
제발 그 말만은 하지마. 라고 생각하던 것이 결국 터져나왔다. 엄마가 나의 이빨을 쭈욱하고 빼버렸다. 으아앙. 하고 울음이 터져나왔다. 잇몸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형섭은 사실 내가 고백하게 된다면 우리 사이가 흐트러질 것 같았어. 그래서 함부로 말 못 했던 건데. 그런데. 이번에 조금 욕심이 생겼어. 라고 말했다. 형섭은 애써 웃으며 나 응원해줄거지? 라고 말했다. 형섭의 마지막 욕심같아보였던 건 내 착각이었던걸까. 왜인지 형섭의 눈을 잘 못 마주치겠어서 형섭의 신발만 가만히 쳐다보았다. 형섭의 신발코는 어느새 닳아있었다. 흙도 잔뜩 묻어있었고. 하지만 형섭은 지금 상황이 얼마나 떨리는지 다리가 달달 떨리는게 내 눈에도 보였다.
"왜 그렇게 떨어."
"..."
"알았어. 도와줄게."
다리가 달달 떨리는게 멈추었다. 형섭이 꽤나 놀란 듯 눈이 커졌다. 마음 뒤쪽이 왠지 쓰라렸다. 아직도 내 잇몸에선 피가 멈추지 않는데, 통증은 계속 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통증이 계속 될 걸 알면서도 괜히 거울로 보고 손으로 건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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