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친 강동호 썰 3.
나는 강동호에 대한 마음으로 몇 달 간은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스스로도 어이없는 상황이기도 했고,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 또 금방 잊혔음. 그 다른 이유는 2학년이 되고 나서 학기 초에 내가 반의 다른 남자애에게 고백을 받았기 때문이었음. 물론 나는 배우자는 얼굴을 뜯어 먹고살아야 된다는 강한 집념의 얼빠였기 때문에 친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던 애와 사귀게 됨. 그렇게 강동호가 모쏠로 열여덟 해를 보내는 동안 난 이놈의 연애세포가 죽지도 않는지 끊임없이 연애를 이어 오곤 했음.
사귀면서 좋아지는 케이스가 많았던 나는 한 번 빠지면 또 정신없이 한 우물만 파는 스타일이다 보니 내 신경에서 강동호는 알빠 쓰레빠가 되어 버림. 특히나 전에 만났던 남자친구들은 동호랑 셋이서도 잘 어울렸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가 않았음. 강동호랑 어린 시절부터 친했던 것도 못마땅한 것 같았고, 집방향이 같은 동호랑 같이 집 가는 것도 으르렁거리며 싫어하기에 자연히 동호와의 연락을 줄일 수 밖에 없었음. 그래도 강동호랑은 좀 유별난 어떤 것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연락의 횟수는 딱히 큰 걱정이 되지는 않았음.
그렇게 복도에서 마주치는 정도로 생사 확인만 하며 지내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남자친구와 동네 카페서 시험공부를 한단 핑계로 꽁냥질을 하던 중에 테이블에 올려뒀던 핸드폰에 '곰똥' 이라는 글자가 뜸. 거의 한 달 만에 동호에게 온 연락이었음. 문자로 연락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스타일인 동호는 오히려 전화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나 때문에 무슨 용건이든 거의 문자로 연락이 왔었는데 한 달 만에 온 연락이 전화니 뭔가 의아해서 잠시 동안 울리는 핸드폰을 그저 바라봤음.
퍼뜩 정신이 들어 급하게 남자친구의 얼굴을 살피니 화면 속 이름을 확인했는지 미세하게 찌푸려지는 미간이 보임. 쫄은 나는 계속해서 울리는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음. 얼랄레 얘랑 요즘 연락 진짜 안 했었는데 웬일이래? 허참. 하며 나는 괜히 더 오버를 했음. 다행히 오버가 먹힌 건지, 마침 끊긴 진동에 내버려 두기로 한 건지 별말 없이 그 상황은 지나갔음.
공부 겸 데이트(사실 1페이지도 안 넘어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후딱 씻고선 침대 위에 와르르 쏟아지고 나니 퍼뜩 강동호 생각이 남. 전화를 안 받은 뒤에 다시 울리지도, 카톡을 보내지도 않아서 잊고 있었음. 문자를 할까, 전화를 할까 하다가 오랜만에 목소리나 듣자 싶어서 전화를 거니 오래 기다리지 않고 낮은 동호의 목소리가 들려옴. 어. 라는 짧은 대답이었음. 야, 아까 성우랑 있었어. 왜 전화했어? 라고 묻자 욕이든 장난끼 넘치는 짜증이든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대답이 없었음.
순간적으로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 재촉도 못하고 있는데 왜 불길한 예감은 비껴가지를 않는지, 정말로 심장이 떨어져 버리는 것 같은 답변이 와버렸음. 나, 다쳤어.
어린 시절부터 육상 단거리 국가대표 유망주로 학교 대회, 시 대회, 전국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동호였음. 초등학생 때부터 육상부 치고는 덩치가 커서 불리하다는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워낙에 타고난 운동신경이 너무 뛰어나서 중, 고등학교 코치들도 다 동호가 육상의 마지막 희망이라며 매달려 있는 상황이었음.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강동호의 꿈은 바로 내 꿈이었음. 동호가 운동을 할 때 누구보다 행복해한다는 걸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고, 그래서 동호만큼은 운동으로 성공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겨왔음. 전방십자인대 파열, 자잘한 부상이야 당연하게 달고 살아왔지만 당장 있을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하던 동호에게는 너무나도 치명적인 부상이었음.
입고 있던 잠옷 바람 그대로 놀이터로 달려 나가는 동안 나는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치며 말 그대로 엉엉 울었음. 살면서 그렇게 울었던 적이 있긴 한가 싶을 정도로 주체 못할 눈물이 흘렀음. 슬리퍼를 신고 나와 어기적한 추한 자세로 뛰던 그대로 놀이터까지 들어가니 놀이터 정자 기둥에 조금은 불편한 자세로 기대 있는 강동호가 보였음.
소매로 연신 눈물을 훔쳐내는 데도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말도 못 이을 정도로 울며 가만히 서 있으니 실실 웃으며 다가오는 강동호가 보임. 절뚝거리는 주제에 팔에 파묻은 내 얼굴을 확인하려는 듯 몇 번이고 몸을 낮추더니 하 씨, 너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내가 좀 울라고 했더니, 이 상황에 내가 울어야지 왜 니가 우냐 김 세게. 라고 함. 그 말에는 분명 장난기가 다분했는데, 말이 끝나고 나서야 고개를 든 내 눈에 보인 건 입꼬리만 겨우 올려낸 강동호의 얼굴이었음. 십 년 넘게 봐오면서도 정말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처절한 웃음이라 나는 더 무너져 내렸음.
으유, 야 그리고 이 잠옷 버리라 했지. 목 다 늘어났다고! 제일 아프면서 누구보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는 동호를 나는 그날, 볼 수가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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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편에 의견 달아주셔서 고마워요! 머리털나고 처음 써보는 썰이라 읽기 편하신지 읽히기는 하는 지 걱정스럽습니다..;(
분량 조절도 어렵꼬요..(동호 직캠 165984번 보다가 늦었음)
1편 이후 부터는 사건 중심으로 하나씩 천천히 굴러갈 예정이라서 진전이 조곰 느려도 동호와의 성장을 같이 천천히 따라와주시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느끼셨겠지만 제가 마아악 밝은 스타일은 아니라서 지루하실 수도 있어요..! 특히나 오늘 같이 비오는 날엔 날씨조울증 환자에게 너무 가혹해요.. 그래도 밝고 유쾌한 내용도 있을 거니까 기다려주세요 헝헝
누추한 글 읽어주시구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