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오늘은 조끼 입구 왔오요.”
“그래? 잘했네.”
“….”
“왜. 뭐. 뭘 그렇게 봐…. 칭찬 더 원해?”
“(끄덕끄덕)”
“아이 예쁜 것. 조끼도 입고 오고 잘했네 아주.”
매일 아침마다 선도부 명찰을 달고 교문 앞에 서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침 일찍 와야 하는 피곤함과 30분 내내 정문 앞에 서있는 다리 아픔은 자잘한 일이지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멀리서 보이는 길쭉한 기럭지에 순간적인 느낌이 왔다. 오늘은 조끼 입고 왔네…. 라는 생각을 하곤 아무렇지 않게 있다가 내 앞에 멈춘 그위 발길에 놀라 위를 쳐다 보았다. 키는 또 얼마나 큰지…. 한참을 올려다 봐야 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눈을 마주치고 있었을까 아무리 쳐다 봐도 발을 뗄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였기에, 내가 어째서 그랬는지 쓸데없는 오기가 발동해 그랬던 건지… 나도 그 상태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가만히 쳐다 보고 있었다. 3분쯤 그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을까 갑자기 씩 웃더니 기껏하는 말이 자기 조끼 입었단다. 당황스러움을 그나마 감추고 잘했다고 했더니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나름 예쁜 말을 많이 뱉고 나니 그제서야 또 씩 웃는다. 17살 답지 않은 귀여움이랄까…. 나도 19살밖에 안 됐는데 왜 어째서 나랑 많이 다른 건지….
“근데 나 생각해 봤는데. 바람 되게 많이 부는데…. 안 추워?”
“하나도… 안 추오요.”
“야 그래도 바람 불면 진짜 완전 많이 춥던ㄷ…. 으어….”
아무렇지 않게 몇 마디를 주고 받았을까 셔츠에 조끼만 입은 그를 보고는 문득 든 생각이 춥지는 않을까였다. 말만 4월이지 바람은 너무 추웠으니까 말이다. 이래서 내가 봄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날씨는 여자의 마음과 같다는 말이 있듯이 변덕스러운 날씨는 누구도 예상못하게 할 때도 있으니까. 이런 면에서 봄이 참 좋았다. 봄만 되면 자주 바뀌는 날씨에 내 마음도 자주 바뀌곤 했고, 이런 나를 이해해 주는 건 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그런 봄이 내게 선물이라도 준 것인지 갑자기 내 뒤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을 때쯤, 한 손으로는 내 등을 나머지 한 손으로는 내 옆구리를 조심스레 감싸 반바퀴만 돌아 바람을 등지면서 날 쳐다 보는 이 남자에게 반한 걸까…. 내가 바람에 맞은 지 2초나 됐을까 추워하는 날 보고 순간적으로 그랬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조그마한 설렘으로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감정에 내가 나 스스로 부정했던 것 같다.
“이로면…. 안 춥지 아나요…?”
“응. 그러네. 별로 안 추워.”
“누나? 손…배? 누나…?”
“둘 중에서 더 편한걸로 불러. 난 상관 없으니까.”
“유정 누나.”
“응?”
“오느른 점심 머글 거예요…?”
“응? 뭐….”
“그롬…. 저랑 같이 머거요.”
*
“야 저기 관린이 있다.”
“헐 대박. 오늘도 역시 존잘이네.”
“근데 앞에 여자는 누구야?”
“학생회장 선배 아니야? 그 되게 예쁜 선배.”
“헐 맞는 듯. 둘이 왜 같이 밥먹지?”
그러니까 말이다…. 어째서 내가 전교생이 다 아는 이 유명한 아이와 밥을 같이 먹게 됐는지는 나도 의문이다. 그것도 마주보면서. 그냥 좀 유명한 아이겠거니 했는데 이렇게 모든 여학생들이 뒤에서 수군댈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냥 단순히 부럽다는 소리도 들렸지만 사람이 여럿이니 당연히 부정적인 이야기가 들릴 수밖에 없는 것. 내 맘에 들지 않는 이야기도 주변에서 많이 들렸다.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이해도 안 갈 때쯤 왜 굳이 나랑 밥을 먹어야 했는지, 아무 잘못없는 그에게 화가 날 때쯤 그를 쳐다보니 밥에는 숟가락도 안 대고 턱만 괴고 있는 채 나를 빤히 바라보는 눈빛에 화는 누그라 들었고,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이거…. 좀 위험한데?
*
“누나누나. 저 야구 하는 거 봤오요?”
“응 봤어. 잘하던데?”
“누나가 보고 있우니까….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오요….”
“오구 그랬어.”
“나 야구하는 도안 누나 생각밖에 안 했오.”
*
“누나…. 왜 이렇게 늦게까지 돌아 다뇨요?”
“응? 아직 9시밖에 안 됐ㄴ….”
“전화두 안 받구…. 문자두 안 보구…. 걱정했자나요….”
“누나 걱정했어?”
“할 말 있어서 누나 집 앞으루 왔는데 누나는 연락두 안 되구….”
“내가 미안해. 다음부터는 무음으로 안 해놓을게. 그래서 할 말이 뭔데요. 관린이?”
“구냥… 어… 보구 싶오서 온 건데….”
“나 보고 싶었어?”
“네…. 누나 조금 많이 보구 싶었오요….”
*
“누나…. 보고 싶오서 전화 걸었는데….”
“낯간지럽게 무슨 영상 통화야. 어차피 1시간 후면 볼 텐데 뭐.”
“낯… 간지롭다? 구거 무슨 말이에요?”
“음 어 그니까… 부끄럽다고.”
“군데 누나 화장 아직 안 해쏘요…?”
“아 맞다 나 화장해야 하는데…. 헐 잠깐만 나 화장 안 했는데. 헐 전화 끊자.”
“나랑 통화하눈 고… 싫오요?”
“아니 그게 아니라. 화장 안 하면 못생겼는데….”
“아닌데 누나 진짜 예뽄데…. 핸드폰으루 봐두 예뽄데 실제로 보면 더 예뽀요.”
*
어느덧 시간은 흘러 쌀쌀한 바람이 불었던 봄에서 6월 초인데도 불구하고 더워 죽겠는 초여름이 되어버렸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는지 눈 깜짝할 새 중간 고사를 끝내고 기말고사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그와 나의 사이에 관계 발전은 하나도 없었다. 먼저 좋아하는 쪽이 지는 거라고 그랬듯이 그는 나에게 관심이 없는 듯 했다. 하긴 주변에 예쁜 여학생들이 좋다고 따라다니는데 나 같은 건 눈에 들어올 리도 없다. 그래도 꼬맹이 주제에 여자 마음은 잘 알아서 가끔씩 설레는 행동을 할 때, 나는 그날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곤 한다.
“와 아무리 학기 시작한 지 조금 됐고 기말 시즌이라고 단속도 살짝 느슨해졌다고 학교에서 대놓고 담배를 피워? 이런 쓰레기들을 그냥….”
“야 너네들. 아무리 담배가 좋은 건 알겠는데 학교에서… 피는 건… 좀…. 뭐하냐 너네?”
“아 누나 그게 있잖아요. 진짜 피려고 핀 게 아니라….”
“미쳤냐? 와 이런 개좆같은 새끼를 봤냐? 와 너 이 새끼 일로와. 고작 두 살 차이지만 내가 니 새끼 어려서부터 업어 주고 놀아 주고 다 했건만 이렇게 통수 치냐 씨발놈아? 와 내가 너한테 술 마시고 주먹질은 해도 담배는 피지 말랬지. 내가. 너 뒈질래 진짜로? 와 뻔히 내가 이 학교 학생 회장으로 있는데 학교 안에서 뻔뻔하게 담배를 펴 박지훈 이 개같은 놈아?”
“누나. 진정해요. 릴렉스 몰라? 릴렉스.”
“릴렉스 같은 소리한다 좆같은 새끼야. 와 담배…. 니 새끼 강동호 걔네랑 같이 다닐 때부터 내가 알아 봤다 진짜. 관린이 손에 담배도 네가 쥐어 준 거냐?”
“어? 응….”
“교내 음주 혹은 흡연 시 학생부에서 자체 회의를 통해 징계를 결정. 최소 경고부터 최대 사회 봉사까지. 우리 애기들 봉사나 하러 갈 준비 합시다?”
“최소 경고라면서. 왜 우리는 봉사예요?”
“니 새끼가 좆같아서.”
“누나 이거 너무 권력 남용인데….”
점심 시간 치고는 조용했던 학교 때문에 오늘은 웬일인지 싶어 학교에 잘 관리되어있는 화단을 보며 걷다 오게 된 곳은 학교 제일 구석지에 있는 뒤뜰이었다. 여기서 흡연은 물론 싸움도 일어났던 곳이고, 저녁엔 음주하는 일도 번번히 발생해 몇몇의 양아치가 아닌 이상 잘 안 오는 구역이다. 괜히 마주치면 곤란할까 싶어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지만 어디선가 풍겨오는 담배 냄새와 뿌연 연기에 선도부 본능을 감출 수 없었고, 보자마자 욕이 나올 뻔한 것을 참고 이야기를 했더니 박지훈과 관린이가 떡하니 담배를 들고 있었다. 이건 무슨 경우지?
“… 해명해.”
“아 그니까 이제 지금이 점심 시간이잖아요? 이제 밥도 먹었겠다 식후 땡으ㄹ…. 아 이게 더 이상한데.”
“잘 아네.”
“죄송해요. 누나….”
“관린이는 어떻게 된 거야.”
“관린이도 담배 핀다길래 제 거 하나 준 건데….”
“너네 담배 언제부터 폈는데?”
“저는… 고등학교 입학하고 나서! 뒤늦게 담배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고! 호기심이 생겨 한 번 펴 본 ㄱ….”
“닥쳐 진짜. 아무튼 이 일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네….”
“너 먼저 가 봐 나 관린이랑 얘기 좀 할게.”
두 달 내내 나한테 순진한 미소만 보여 주며 허허 웃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도 불구하고 내 눈 앞에서 담배를 피다 들켜버린 관린이의 모습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담배를 쥐고 있는 손이 섹시하긴 했어도… 아직 미성년자인데 그것도 학교에서 담배를 핀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것.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빛으로 설레게 말들고 해맑은 미소를 지어 주는 건 줄 알았건만, 그게 아니었다. 다 알고서 한 거겠지.
“담배 폈었어?”
“죄송… 해요. 다음부톤 안 구롤게요….”
“나 그거 말고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 있는데. 해도 돼?”
“….”
“나 너한테 어떤 존재야? 이런 말 지금 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나 그냥 너한테 누나일 뿐이야? 아무 감정 없어? 맨날 설레게 해 놓고 정작 나한테 아무 관심도 없고. 그냥 재밌어서 하는 거야?”
“그 저…. 무슨 말인지 잘 모로겠어요….”
“아 그니까…. 너 나 좋아해?”
“저….”
“난 너 좋아해. 이거 나만 그런 거야?”
“저눈… 아직….”
“됐어. 그냥 말하지 마. 그리고 어 쪽팔리니까… 우리 딱 인사만 하고 지내자.”
*
항상 나에게 다가온 남자는 다 그랬다. 분명히 먼저 설레게 하고 썸 타는 분위기도 냈으면서 정작 내가 먼저 다가가려 하면 금새 다른 여자가 생기기 일쑤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래서 내가 그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쉽게 주지도 않고 표현하지도 않는다. 나도 잘 알면서 이번에는 혹시 하며 생각했던 내가 잘못이었다.
어느덧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내 나름 티 안 내고 열심히 지내고 있지만 등교 시간마다 마주치는 얼굴, 쉬는 시간에 들리는 이야기, 어쩌다 복도에서 마주치기도 하고, 지훈이 옆에자주 붙어있는 것도 보게 된다. 나는 이렇게 신경쓰이는데 정작 아무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은 느낌에 괜히 조금 더 서운했다. 아니 서운할게 뭐 있어. 나에게 마음이 없었던 건 사실이고 먼저 인사만 하는 사이로 지내자고 한 건 난데.
“유정아.”
“응?”
“1학년이 너 불러.”
“응…?”
“걔 있잖아 비주얼 원 탑.”
“나를? 관린이가?”
*
“누나…. 저 할 말이 이쏘요….”
“뭔데.”
“저 일주일 동안 마니 생각해 봤오요…. 근데 나 누나가 좋은 것 같아.”
“이제 와서?”
“그때 내가 미안했오요. 나 누나 아니면 안 돼….”
“응?”
“나랑… 사랑… 할래요? Will you my lover?”
흐윽 안녕하세요. ㅠㅠㅠㅠ 오랜만이에요. 한… 일주일 살짝 넘었나요…?
매일매일 찾에 오겠다는 말만 해 놓고서 이제야 와서 정말 죄송해요. ㅠㅠㅠ
사실 핑계라면 핑계지만 사정이 계속 생기는 바람에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써서 올리네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는데 ㅠㅠ
최대한 매일매일 오도록 하겠고 늦게 걸리더라도 3일에 한 번씩은 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관린이 특유의 한국어 발음을 표현? 그 느낌을 주기 위해서 살짝씩 표준어에서 어긋난 게 많아요!
그냥 관린이 말투네 하면서 봐 주셨음 좋겠어요. ㅠㅠ
암호닉 신청도 받습니다. 많이많이 해 주세요. ♡
다음 글은 내일이나 모레에 올라올 것 같아요! 그때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