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팸, 밑바닥에서 만난 사람들
W. JPD
나는 열아홉이 된 해부터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시작했었다. 그전까지 하던 알바를 그만두고 패밀리 레스토랑을 선택한 건 시급이 세다는 이유가 가장 컸지만 사실 알바를 시작하기까지 쉽지 않았다. 돈은 급한데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나이, 시급이 세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곳이 전부 스무 살을 넘겨야 했다. 처음엔 속여볼까 생각했지만 사실 이 세상이 그렇듯, 가끔은 장사에 미친 사람들이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자신의 장사를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게 누구든 채용하는, 그런 사람이 존재하긴 했다. 기본적인 예의, 개념만 갖추고 있으면 그다음으로 우선되는 조건은 외모였다. 스스로 예쁘다는 생각을 한 기억은 별로 없지만, 처음 나이를 속이고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질문도 없이 바로 합격이라 말하는 남자를 멍 때리고 바라보았다. 너무 쉽게 합격이 된 것 같아 위험한 곳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내 실제 나이를 말했고, 그 남자는 단번에 내 생각이 뭔지 알아차렸다. 생겨먹은 게 장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채용하는 거라고, 한 살 어린 애도 있다고, 별 대수롭지 않아 하는 태도에 그냥 바로 일을 시작했던 것 같다. 남자가 내 외모를 이용해먹는다면 나는 남자의 돈을 최대한 많이 받아먹기만 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참 편한 생각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부터 같이 일하게 됐습니다."
대충 소개를 마쳤다, 그리고 그전까지 교육받은 대로 충실히 일을 했다. 사실 처음 자기소개를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이 대한민국에 예쁘고 잘생긴 사람은 다 모아놓은 곳인가, 싶었다. 어딜 둘러봐도 입을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몰렸구나.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건 나보다 한 살 어린 열여덟은 한 명뿐이었고, 이름은 배진영이라고 했다. 워낙 무표정에 말도 없어서 친해지기 힘들 거라는 궁금하지 않은 설명을 추가로 해주며, 그래도 박지훈과는 친하게 지내는 것 같다고 말하는 여자를 감흥 없이 쳐다보았다. 예의상 박지훈은 누구냐 물었더니 그 잘생긴 애를 모르냐며 가리키는 여자에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정말 잘생긴 남자애가 손님을 향해 웃어주고 있었다. 잘생긴 애들끼리 다니니 보기에는 좋다며 내 어깨를 두드리고 가는 여자에 대충 고개를 숙여주곤 다시 일을 시작했다. 나는 철저히 혼자이길 원했고, 그래서 다가오는 사람을 막은 건 아니지만 절대 먼저 다가가진 않았다. 그냥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나는 내 일을 했다.
"보니까 우리 가는 길이 너랑 같은 방향이던데."
뭐 어쩌라는 거지, 처음 든 생각은 이거였다. 입 밖으로 튀어나갈 뻔한 걸 겨우 막곤 내 앞에 서 있는 두 명을 향해 고개를 들면 보기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내려다본다. 보통 이런 말을 하는 의미는 방향이 같으니 같이 가자, 뭐 이런 것 같은데, 왜 굳이 나랑. 나는 누군가와 엮이는 게 싫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고, 내 가정환경이나 현재 상황이나 모든 게. 사람들이 선입견 같기에 딱 좋았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과 엮이는 게 싫었다. 나의 정보가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게,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 드러나는 게, 그게 싫었다.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스스로가 한없이 낮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그랬다. 나는 집 안에서만 웃을 수 있었다.
"어, 지훈이랑 진영이네. 안녕."
"안녕하세요."
"오늘도 데려다주는 거야? 고맙다, 야. 안 그래도 밤이라 걱정되는데."
"에이, 아니에요. 방향이 같아서 같이 오는 건데요, 뭘."
연초부터 시작한 알바는 여름이 거의 끝나가는, 곧 가을이 시작될 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분명 그날, 같이 다니자는 그 둘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애초에 나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던 건지 끈질기게 붙어오던 녀석들을 말릴 수가 없었다. 도대체 꿍꿍이가 뭔가 싶어 몇 개월을 경계했는데 여태 눈에 거슬리는 행동이 없어 이젠 나도 그냥 별생각 없이 같이 지내곤 한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대휘나 오빠들이랑 마주치기도 하고, 몇 번 인사를 나누다 보니 이젠 제법 친해진 것 같아 보였다. 나도 친구라는 게 생기는 건가, 그런 기대도 속으로 했었다.
그리고 그건 좆같은 생각이었다, 좆같은 착각.
"오늘은 혼자?"
"어, 박지훈 못 올 것 같다더라, 아파서."
"어디가 아픈데, 약은."
"잘 모르겠어, 어쨌든 오늘은 아파서 못 와."
"그래, 뭐. 금방 낫겠지. 걱정 말고, 오늘따라 너도 표정이 안 좋아 보인다."
"그런가. 아, 나 핸드폰 좀 빌려주라, 급하게 나오느라 깜빡했네."
"통화?"
"어, 상대방한테 전화 걸라고 할 거니까 걱정 말고."
"긴 통화야?"
"어, 좀."
"그러면 나 먼저 들어갈게."
"그래, 금방 들어갈게."
박지훈이 아파서 못 온다고 했다, 뭐 사람이 아플 수도 있고 그런 거니까, 딱히 별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일을 시작했다, 조금 통화가 길어진다 싶던 배진영도 곧이어 들어왔고 나에게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서로 연락하는 용으로만 쓰는 핸드폰이라 요금제가 비쌀 수도 없었기 때문에, 전화나 문자를 미친 듯이 아껴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마음 놓고 몇 시간 통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항상 용건은 간단하게, 그래서 아까 배진영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이었다. 내가 배진영에게 요금제 얘기를 했었나 보다.
"기록은 지웠어, 그냥 내 사생활, 이해하지?"
"어, 상관없어."
핸드폰을 건네주고 돌아선 배진영이 다시 나를 향해 말을 하길래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으로 손을 흔들어주곤 손님을 맞았다. 그날도 역시 평소처럼 굉장히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였다. 오후 2시 정도엔, 아파서 못 온다던 박지훈이 왔고, 아픈 사람치곤 꽤나 멀쩡한 모습에 걱정을 덜었던 것 같다.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했다. 학교도 가지 않는 나는, 할 일이 없는 나는, 돈을 버는 것밖에 할 수 없었기에 그렇게 일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오늘은 문을 일찍 닫아야겠다며 오후 3시에 모든 알바생들을 집에 보내는 미친 듯한 공지에, 그래도 좋은 일이니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대휘의 알바가 없는 목요일이었기에 집에 혼자 있을 대휘를 위해 뭐라도 사가지고 들어갈까 싶어 전화를 걸었다. 아니, 그전에 문자를 확인했다. 그냥 광고 문자 하나가 왔기에 삭제를 누르고 창을 닫으려는데 뭔가 이상했다,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대휘와의 주고받았던 문자가 사라져있었다, 아예 삭제가 되어있었다. 내가 삭제한 적이 없는데, 그렇다면 누가. 아, 설마 배진영.
"... 씨발, 이게 뭐지."
실수라고 생각했다, 그래, 전화 걸어달라고 문자든 전화든 핸드폰을 사용하다가, 실수로 대화 내용을 삭제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순히 문자를 삭제한 게 아니었다. 대휘의 번호는 차단 목록에 올라가있었다. 대휘의 번호가 차단되어 있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급했다, 뛰었다, 죽기 직전까지 뛰었다. 대휘에게 전화를 걸며 집을 향해 달렸다. 한참을 불안에 떨며 계속해서 전화를 거는데, 드디어 귀에 대휘의 목소리가 들렸다. 상당히, 들떠있는 듯했다.
"누나, 누나 어디야? 나는 이제 지하철 타고 KTX 타러, 그 티켓에 적혀있는 역으로 가려고."
"... 무슨 소리야, 그게. 너, 지금 어딘데."
"누나가 전해달라고 했다며, 이 티켓, 우리 여행 간다며! 아까 문자도 보내놓고선."
"... 문자? 무슨 문자, 뭐라고 보냈어?"
"오늘 좀 늦으니까 먼저 가 있으라고, 시간 되면 먼저 타서 기다리라고."
"너, 너 지금, KTX를 탄 건 아니지...?"
"응, 당연하지, 한 다섯 정거장만 더 가면 도착이야."
"당장 내려, 거기서 당장 내리고, 다시 돌아와, 제발, 멈춰, 돌아와, 지금 당장, 누나가 거기로 갈게."
"... 우리 여행 안 가...? 근데 누나 어디 아픈 거야? 왜 이렇게 숨을."
"다음에 가자, 누나가 오늘 몸이 안 좋아, 어, 좀 아픈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와, 누나도 지금 너 데리러 갈게."
"... 알겠어..."
이해가 안 됐다, 상황 파악이, 그러니까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었다. 우선 대휘를 데리러 역으로 가야 했다, 방향을 바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목이 타들어갈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게 그나마 이렇게 달릴 수 있는 다리를 허락했나 싶어, 숨만 몰아쉬며 역으로 향했다. 대휘는 돌아오는 방향의 지하철에 올라탔다고 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한 20분 정도 걸릴 것 같다며 말해오는 대휘에게 알겠다며 기다린다고 했다. 의자에 앉아 숨을 돌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건, 분명히 무슨 일이 난 것이었다.
"아프다고 안 나왔던 박지훈, 핸드폰 빌린 배진영. ... 대휘를 차단하고 나인 척 문자를 보낸 배진영."
배진영은 대휘에게 나인 척 문자를 보냈고, 나와의 연락을 방해하기 위해 차단했다. 만약 오늘, 알바가 일찍 끝나지 않았다면, 대휘는 정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열차에 몸을 실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실을 한참 뒤에야, 모든 게 잘못된 뒤에야, 깨달았겠지. 그리고 후회했겠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눈물이 났다, 대휘는 소중했다, 나에게 오빠들만큼이나 소중했다, 지켜줘야겠다고 항상 생각해오던 아이였다. 이렇게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은 그 아이의 마음이 안타까워서, 그게 신경 쓰여서, 언제 한번 꼭 같이 여행을 가겠다고, 그렇게 다짐하게 만드는 아이였다. 근데 그런 아이를 건드렸다, 그 새끼들이. 아마 박지훈도 분명 연관이 있을 터였다.
"누나!"
"... 대휘야, 대휘야, 정말, 진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왜 그래, 누나, 울어? 응?"
대휘가 눈에 보이자마자 끌어안았다, 어느새 나보다 키가 커진 아이를 품에 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남들의 시선은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이 아이를 잃지 않은 게 중요했다. 울면서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면 처음엔 당황해서 내 얼굴을 확인하려던 대휘도 어느 순간부턴 그저 가만히 서서 내 등을 계속해 쓸어내려 주었다. 한참을 울고 나니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아 몸을 떼어내곤 대휘를 올려다보았다. 다행히, 멀쩡했다.
"왜, 그 형 있잖아, 누나랑 같이 다니는 형 중에 내가 진짜 잘생겼다고 한 형, 내가 엄청 좋아한."
"... 박지훈."
"어, 맞아, 그 이름이었나...? 하여튼, 그 형이 오늘 아침에 집으로 찾아왔었어, 깜짝 선물이라고 대신 배달 왔다면서."
"... 내가 이걸 전해주라고 했다고."
"응응, 그래서 완전 기뻤지, 아침부터 준비하고 나온 거라니까? 갑자기 취소돼서 엄청 아쉬워..."
"누나가 나중엔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갈게, 응? 그러니까 속상해하지 말고."
"알았어... 어쩔 수 없지, 누나 몸 안 좋다는데."
"그리고 앞으로는 내가 직접 주는 거 아니면 절대 믿으면 안 돼."
"왜...? 그 형들 좋은 사람인 것 같다고, 누나가 며칠 전에 그랬잖아."
"그냥, 사람은 믿는 거 아니야. 누나 말 알겠어? 앞으론 직접 말하거나 주는 거 아니면 절대 믿지 않겠다고 약속."
"약속!"
어쩌면 그 새끼들은 더 큰일을 꾸미고 있을지 몰랐다, 그러니까 이 계획을 세우기까지, 몇만 원을 들여가며 대휘를 부산까지 보내려 했던 이 계획을 세우기까지,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이젠 무섭기까지 했다. 도대체 그동안 어떤 마음으로 나를 대해온 건지, 처음부터 이런 목적으로 접근했던 건지, 내 상황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이며, 그런 정보는 또 어디서 얻는 건지. 내 짐을 몰래 뒤지는 건지, 뒷조사를 하는 건지, 나를 미행하는 건지. 지금도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일단 씻고 나와, 그리고 저녁 먹자."
대휘를 화장실로 들여보내곤 티켓을 내 가방에 넣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오빠들에게 알려야 할지 고민했다, 결론은 말하지 않는 걸로 정해졌다. 굳이 걱정을 끼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선 오늘은 무사히 지나갔고, 대휘는 계속해서 교육을 시키면 되었다. 게다가 이젠 모르고 당하는 싸움도 아니었고 나도 어느 정도 경계를 할 것이었기에, 오빠들에게 신경 쓸 거리를 만들어주고 싶진 않았다. 나는 그냥, 그런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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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애새끼 둘이 같이 있겠네."
"대휘만 알바 없는 거 아니었어?"
"아까 연락 왔어요. 오늘 뭐, 알바가 일찍 끝났다던데."
"웬일."
"그러니까요, 저도 좀 의외."
"그럼 빨리 들어가자, 기다리겠다."
"그래야죠, 생떼 부릴 거 눈에 선. 어, 안녕."
"안녕하세요, 형들."
"오늘 알바 일찍 끝났다던데, 여기서 뭐 해."
"아, 오늘은 형들한테 전해드릴 말이 있어서요."
"우리?"
"네, 좀 중요한 건데."
"어디 자리라도 옮겨야 하나..."
"아뇨, 중요한데 여기서 할 수 있는 얘기요."
"그래, 그럼 해."
"사실, 저희가 오늘 어쩌다가 본 건데."
"응."
"그 KTX 승차권, 그거 가지고 있더라고요. 날짜는 못 봤는데, 요새 계속 저희한테 마지막인 것처럼 말을 해서 걱정했었거든요. 근데 그거 보니까, 그냥."
"... 그러니까, 너희들 생각은, 이사 같은 걸 가냐, 뭐 이런 거네."
"네, 혹시 멀리 가는 건가 해서요, 대충 보니까 부산이던데... 돌아오는 거 맞죠?"
"부산, 부산... 존나 멀리도 끊었네."
"애들 앞에서 욕 좀. 일단 알겠어, 말해줘서 고마워,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아. 우리 이사 갈 생각 없어, 여기서 계속 살 거야."
"아, 그러면 다행이고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 형, 이게 지금 뭔 상황일까."
"일단 집으로 가서 물어보자고."
"아니, 나는 걔가 우리와의 생활을 존나 만족 못 해서 가출하려는 것 같은데 형 생각은 어떠냐고."
"... 아직 확실한 거 아니야."
"이래서 길거리 새끼들 주워오는 거 아니라나 봐."
"야."
"은혜를 모르잖아, 가서 뒤졌는데 표 나오면, 그때는 어쩔 건데."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확실하지도 않은 걸로 의심해서 나중에 아니면, 그때는 어쩔 건데?"
"... 형은, 특정인한테 마음이 너무 약해."
"어쩔 수 없어, 근데 넌 이해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 집 가서 확인이나 하자고, 누구 말이 맞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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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문이 거칠게 열리는 듯했다. 평소보다 조금 소란스럽게 문이 열리고, 고개를 돌려 왔냐고 말을 하기도 전에 내 가방을 거꾸로 들어오려 안의 내용물들을 쏟아내는 오빠에 절로 몸이 굳었다. 저절로 인상이 쓰였다. 딱딱한 바닥에 둔탁한 소리들을 내며 모든 내용물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중 유독 천천히 바닥에 도착한 종이 하나가 오빠의 손에 들렸다. 나도 왜 그랬는진 모르겠지만 순간적으로 그것을 뺏어 들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내 가방 쏟는데."
"... 어라, 씨발."
강다니엘 오빠는, 다 좋은데 화가 나면 정말 무서웠다. 물론 그 화를 대휘나 나에게 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오늘 그 암묵적인 규칙이 깨지는 날인가 싶었다. 무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욕을 내뱉는 오빠에, 기가 죽어 말없이 올려다보기만 하니 곧이어 내 손에 들린 티켓을 거칠게 가져간다.
"오늘 건데 못 써서 어쩌냐, 그렇게 집을 나가고 싶었으면 말을 하지."
"..."
"너야말로 지금 뭐 해, 왜 내 집에서 지랄이야?"
"..."
"그렇게 여기가 싫으면."
"..."
"꺼져,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