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
"뭐."
"너무한거 아냐?"
"거기서 손이나 떼지 그러냐, 이젠 아프지도 않잖아."
정좌로 앉은 채 국부를 가린 윤호를 한심하게 바라본 재중이 등을 켰다.
그 때, 저 멀리서부터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울리는 듯 싶더니 벌컥- 하고 장지문이 열리며 날아들듯 무언가가 재중을 와락 그러안았다.
"재중아..재중아..."
난데없이 나타나 재중을 끌어안고 펑펑 눈물을 흘리는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던 윤호와 재중의 눈이 마주쳤다.
어설프게 웃어 보인 재중이 '잠깐만' 하고 입을 벙긋거리고는 저를 와락 그러안은 창민을 쉬- 쉬 하며 얼러 떼 내었다.
"조금 있다가 얘기하자."
그제야 빨개진 눈으로 윤호를 본 창민이 당황한듯 작은 탄식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주섬주섬 옷매무새를 정리한 창민이 이내 슬쩍 고개를 숙이고 장지문 밖으로 나갔다.
그런 창민을 바라보던 윤호의 미간이 잔뜩 찌부러져 있었다.
"누구야."
"좀 모지란 애. 자다가 깨면 원래 저래."
담담하게 창민을 머저리로 만든 재중이 청산호 비녀, 장신구와 함께 한껏 땋아올린 머리를 하나 하나 풀어내렸다.
그런 재중을 말없이 바라보던 윤호가 무릎 걸음으로 다가가 재중의 머리 장식을 같이 내려주었다.
"기생이라고."
그 말에 재중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래."
다시 흐르는 정적 속에서 재중의 눈동자가 고요히 흔들렸다.
-그리고 너는.
"언제, 돌아온거야."
-어제였지.
"어제."
다 됐다- 하고 물러서서는 이제야 양장을 벗으며 잘 준비를 하는 윤호를 보던 재중의 입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타이를 풀며 그런 재중을 바라본 윤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는 이번에 조선총독부 경무국에 발령이 났어. 올 겨울에 이곳에 와야 했지만, 아버님께서 총독이 되셨다기에 겸사 겸사 온거지."
돌아서서 분을 지우던 재중의 손이 순간 멈칫 허공에 멈추었다.
천천히 돌아앉아 설핏 웃음을 지은 재중이 윤호를 올려다보았다.
"출세했구나."
유카타로 갈아 입은 채 띠를 맨 윤호가 저를 올려다보던 재중의 어깨를 붙들었다.
"이 곳에서 나가자."
"뭐?"
"아버님께 말하면 총독부 기구의 한 자리쯤은 얻을 수 있어."
당혹감이 재중의 눈 위를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결연하게 저를 바라보는 윤호의 눈을 차마 마주보지 못한 재중이 돌아앉아 겹겹이 겹쳐입었던 옷을 풀었다.
"원하지 않아."
다시 한번 재중을 돌아앉힌 윤호가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계속 이곳에서 다른 사내들에게 미소나 팔겠다는거냐?"
"내가 할 줄 아는게 그거밖에 없으니까."
"뭐?"
-사실은.
"노래, 춤, 웃음을 팔던 사내 기생놈이 갑자기 총독부에 덜컥 앉아있으면 퍽이나 좋겠구나."
"자이쥬."
"내일 다시 얘기하자."
탁-
망연히 저를 바라보는 윤호의 눈을 애써 무시 한 채 장지문을 닫은 재중이 도망치듯 마당을 넘어 달렸다.
달빛이 남긴 그의 그림자가 재중과 함께 발을 박찼다.
소리없이 달리는 재중의 모습이 마치 달빛과 함께 사라질 듯 아른거렸다.
한참을 달리던 재중이 작은 별채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나와."
재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호롱불도 켜지 않은 장지문 안 어둠 속에서 몸을 드러낸 창민이 재중을 와락 끌어안으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허공에서 멈칫 한 손은 재중의 어깨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서서히 내려졌다.
그저 천천히 재중의 옷소매를 잡아오는 창민을 보던 재중이 설핏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살아돌아왔으면 좀 더 대담해져도 될 것을."
제 손이 닿자 흠칫 떨리는 창민의 손을 곱게 맞잡은 재중의 얼굴 위를 달빛이 쓸었다.
"네 방으로 가자."
----
안녕하세요 :)
이쯤에서 호칭을 한번 정리해볼까 해요
일단, 윤호와 재중이. 이름 많이 헷갈리실수도 있으실텐데...
윤호는 일본인이예요, 아버지가 8대 총독이고 이제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으로 발령이 났죠.
윤호의 일본식 이름은 테이 미츠호. 정윤호를 일본식으로 읽은 이름이예요.
그리고 윤호가 부르는 재중의 이름 또한 일본식으로 읽은 재중, 자이쥬죠.
...
생각해보니 정리할것도 없구나 하핳(바보다, 바보가 나타났다)
처녀작이라 많이 모자란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실꺼죠?
근데 왜 대답이 없을까(시무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