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도와드립니다
W.체리빛
Chapter 1.
짝- 경쾌한 마찰음이 들렸다.
“나쁜 새끼...”
“...”
“헤어져”
남자의 고개를 힘껏 내려친 여자는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로 헤어져-라고 외치고는 몸을 돌렸다. 남자는 당황한 건지 그저 멍하니 제자리에 서있을 뿐이었다. 몸을 돌린 곧 울 것 같은 표정의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 여자는 눈에 처량하게 매달린 눈물과는 다르게 눈이 마주치자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내게 눈짓을 보냈다. 아마,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잘 끝났네요. 와 같은 말이겠지. 그저 멍하니 서 있던 남자도 어느새 몸을 돌려 거리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몸을 돌려 창문을 올리고 시동을 걸며 전화를 걸었다.
“의뢰B 성공. 잘 마무리 된 것 같아.”
“분위기는 어땠어? 너는 안 들켰고? 의뢰인은 괜찮고?”
“하나씩 물어봐. 그리고 방금 잘 마무리 됐다고 말했잖아. 당연히 의뢰인 괜찮고, 나는 안 들켰고. 분위기야...”
말해서 뭐해. 당연히. 이별하는데 좋은 분위기면 그건 그거대로 이상하다. 이 멍청아-
“그 남자 불쌍하다... 뭔가”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끊어.”
그 남자가 불쌍한 게 대수냐. 이 일을 하고 있는 우리가 더 불쌍한 거지. 바보들.
***
“새로운 일 들어왔는데”
“뭔데. A? B?”
“B”
“요새 일이 금방 들어오는 거 같아. 그치? 여주야. 소문이 제법 퍼졌나봐.”
“그런가봐. 고딩이 의뢰인이거든.”
“고딩? 고딩이 무슨 의뢰야. 됐어. 안 받아.”
고딩이 무슨... 목소리가 제법 단호하게 튀어나갔다. 평소 같으면 알았다며 실실 웃을 녀석이 안...받아? 아... 라며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그게... 자꾸만 말을 뜸들이는 녀석이 답답해서 짜증스레. 뭔데 왜 말을 머뭇거려. 계속 내 눈치를 보던 박지민이 이윽고 입을 떼었다.
“이미 의뢰 접수해서 지금 온다ㄱ...”
“미친 거 아니야? 박지민. 왜 니 멋대로. 와-하. 그것도 고딩을?”
“...”
“야 그런 어린애들 일까지 우리가 해? 고딩이 뭘 알아. 애초에 너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몰라?”
제멋대로 의뢰를 접수해? 그것도 고딩을. 미쳤다. 미쳤지 박지민. 소리를 빼액 지르며 박지민에게 거칠게 말을 쏟아내는데 옆에서 자꾸만 정호석이 눈짓을 보내며 나를 툭툭 쳤다. 뭐- 왜. 너도 같이 욕먹고 싶어서? 내 말에도 정호석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왜요. 고딩은 의뢰 못하나? 여기?”
뒤에서 들리는 낮은 목소리에 저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제법 잘생긴, 교복을 입은 남자가 우리 대화를 들었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서 있었다. 호- 좀 잘생기긴 했네. 그래봤자 교복 입은 아가지만. 아직 주민등록증이 채 마르지도 않은. 어쨌든 내 말이 제법 격하게 나간 감이 없지 않아서 눈을 마주치기 민망했기 때문에 고개를 스윽 돌리며 툭 하고 내뱉었다.
“저희는 고등학생은 의뢰 안 받아요. 실수가 있었던 것 같네요.”
그러자 그 말을 들은 고딩이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으며, 왜요? 고딩은 뭘 몰라서?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해서 말하는 녀석에 얼굴을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듣는 고딩 서럽게. 고딩이 또 뭘 모르지는 않거든요. 생각보다.”
“...”
“뭐- 어떤 면에서는 그 쪽보다 많이 알 수도 있지 않을까요?”
도전적인 어투로 말하는 녀석에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오는 것 같았다. 이래서 어린애들은 의뢰 안 받는 거라고. 저-저- 박지민 저 자식. 박지민은 둘째 치고 저 패기넘치는 고딩을 어떻게든 일단 내보내는 게 우선이었다.
미성년자는 부모님 허락 받아야 되고 여러모로 복잡해서 안 받아요. 그러니까 좀 가시죠? 이제 막 뚜껑을 딴 탄산음료마냥 톡- 쏘는 어조로 말이 나갔다. 그럼, 미성년자 아니면 되는 거잖아요. 맞죠? 고딩이 승리의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건 또 무슨 참신한 헛소리일까. 어디 한 번 말해보라는 듯 고딩을 쳐다보자.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전정국.
19XX년.
19XX년? ...그럼 20살?
아니 20살이 교복은 왜 입어? 뭐야 얘. 놀라서 주민등록증과 그 고딩... 아니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자. 남자가 이제 받아주나? 의뢰. 라며 웃어보였다.
“오- 진짜 20살이네”
“어, 그럼 성인 맞으니까 괜찮지 여주야?”
어느새 주민등록증을 낚아채 호들갑을 떨며 20살이 교복을 입은 걸 신기하게 바라보는 정호석과 이제야 한숨 놨다는 듯 성인이니까 괜찮지 않냐고 물어오는 박지민도 한껏 짜증을 고조시켰지만. 무엇보다. 내 앞에 이 남자가 제일 짜증났다.
“일단 앉으세요. 여기”
“...의뢰 받아주시는 거예요?”
의뢰에 목숨이라도 걸었어요? 네? 자리에 앉으면서도 계속해서 의뢰에 대해 물어오는 남자에 차마 밖으로는 내뱉지 못할 욕을 속으로 삼켰다.
“박지민 차...아 주스? 드려야되나...요?”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주스랑 차 한 잔씩 가지고 와.”
남자는 이제 제 의뢰를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는지 입가엔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초롱초롱하게 쳐다보는데. 음... 좀 부담스러웠다. 박지민이 내 앞에 차를. 그 남자 앞에 당근 주스를 내려놓았다. 차를 한 입 마시자. 긴장이 좀 풀려서 나도 모르게 다리와 팔을 꼬고. 몸을 뒤로 기울여 앉았다.
“우선 질문에 제대로 대답부터 하시죠”
“...네.”
“그래서. 20살이 왜 교복을 입고 있는 건데요?”
“...”
“혹시... 뭐 취향이 그런 쪽인가?”
정호석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야- 한여주. 라고 소리치며 내 어깨를 때려왔다. 아, 왜 때려. 너 같으면 멀쩡히 20살 남자애가 교복 입고 있는데 안 이상해? 정호석은 어색하게 웃었고, 박지민은 저가 더 안절부절하며 남자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왜 교복 입었ㄴ...”
“1년 휴학했었어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주스를 한 모금 마신 남자가 약간은 날이 선 말투로 내 말을 자르며 대답했다. 개인적인 사정... 그래 누구한테나 개인적인 사정은 있는 거랬다. 나도 있으니까. 그 개인사정.
분위기가 급격히 다운되고 방 안에는 고요한 침묵만이 맴돌았다. 갑자기 하하하하... 하고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오우- 개인사정인데 당연히 되지? 그-치이. 한여주?”
“그래... 여주야. 너 안 그러면 진-짜 실례야. 개인사정까지 말하게 할거야?”
무거운 분위기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남을 곤란하게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정호석이 이를 꽉- 물고 말하는 게 느껴졌다. 게다가 옆에서 박지민도 같이 보챘다. 아... 알겠어. 한다고 해. 자세를 바르게 하고 남자를 쳐다봤다.
“뭐- 개인사정이니까. 그건 그렇게 두고. 의뢰얘기나 해보죠.”
“그래. 여주야 잘 생각했어” / “그래 그래. 한여주.”
제발. 같이 좀 말하지마. 슬쩍 노려보자. 고개를 피하더니 아- 지민아 우리 그거 사러가기로 했잖아. 아! 맞아 그랬지? 우리 그거 사러 가기로 했지. 그러더니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뭔 되도 않는 연기를 한다고... 갑자기 풋-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웃고 있었다. 눈꼬리까지 접어가면서.
“이게 웃겨요? 지금?”
“여기 되게 재밌네요. 들은 거랑은 좀 다르게.”
뭐 들은 거라면 좋은 얘기를 들었을 거 같지는 않은데. 우리가 하는 일이 정당하고 아름다운 뭐- 그런 일은 아닌 거 나도 인정하니까.
“저희가 어떤 일 하시는 지는 정확히 아시는 거죠?”
“네. 잘 알아요. 표면적인 일도 아는걸요.”
표면적인 일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제법 잘 아는 모양이었다. 아. 우리가 하는 일은 표면적으로는 파티 플래너.
실질적으로는...
“되게 자세히 아시는 거 같으니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의뢰가 뭔데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엄청 철벽이라서 그 사람하고 잘 되고 싶은데”
“잠...잠깐만요. 저희가 하는 일 잘 아는 거 맞아요?”
“아직. 얘기 안 끝났으니까. 끝까지 좀 들어보시죠.”
“...”
“근데, 자꾸 따라다니는 애가 하나 있거든요. 귀찮게. 걔가 저한테 좀 정 떨어지거나 멀어지게 해주세요. 이게 제 의뢰입니다.”
실질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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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헤어짐을 도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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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풀어가고 싶은 게 참 많은데 필력이 부족해서 걱정입니다.
사실 독방에서 응원 안 받았으면 자신감이 없어서 오지도 못했을 건데.
일단 고맙습니다.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우리 함께 맞춰보아요! (전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