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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무덤 01

 

 



"i-06호 폐기."

 

 

벌거벗은 남자의 몸이 용암 속으로 추락했다. 살구색의 잉크가 넓게 퍼지고 검붉은 덩어리가 떠올랐다. 무장한 남자가 긴 그물망 안으로 덩어리를 넣어 올렸다. 썩은 내에 인상을 썼다가 땀 때문에 흘러내린 고글을 고쳐 썼다. 덩어리를 녹슨 철판 위로 떨어졌다. 곧 하얀 연기를 뿜으며 녹아내렸다. 덩어리가 녹아내린 자리엔 네모난 칩이 놓여 있었다. 그것을 들어 올린 남자가 허리춤에 찬 주머니에 칩을 넣었다.

 

 

"i-06호 생존, 칩을 회수합니다."

 

 

남자의 발이 길게 그어진 노란 선을 따라 움직였다. 두꺼운 철문을 잡아 밀었다. 틈으로 들어오는 찬 공기가 땀을 식혔다. 갇혀 있던 뜨거운 숨을 뱉었다. 고글을 벗어 바닥으로 던졌다. 우측 벽에 뚫린 작은 창을 두드렸다. 삐걱거리며 열린 창에서 하얀 바구니가 나왔다. 도톰한 주머니를 들어 올린 남자가 들어 있는 칩을 쏟아 부었다.

 

 

"대기 순번 07. 4시간 후 재생산이 시작됩니다."

 

 

 

 

 


고령의 노인이 트렁크에 실렸다. 그를 저지 하는 젊은 남자는 검은 양복의 남자들에게 둘러싸였다. 윽, 나무 재질의 방망이가 젊은 남자를 향했다. 팔을 잃은 노인은 남은 두 다리를 움직이며 발악했다. 힘없는 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트렁크 문이 닫혔다. 흙바닥에 얼굴을 묻은 젊은 남자의 눈이 반쯤 감겼다. 구두에 흙이 묻을까 노심초사하며 걸어온 재환이 피가 묻은 젊은 남자의 얼굴을 밟았다. 미약하게 숨을 쉬던 남자의 목을 거칠게 꺾었다. 뼈가 엇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k-56."

 

 

긴 목 아래에 적힌 글자를 읊은 재환이 발을 털었다.

 

 

"영감은 연구소로 보내, 이놈은 완전폐기 시키고."

 

 

말을 끝으로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노인을 실은 차량 조수석에 몸을 넣었다. 소매 끝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 재환이 들려오는 소음에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사, 살려 주시오! 이 늙은 몸 어디에 쓸모가 있겠어, 제발…제발 살려 주시오!"

 

 

운전석에서 눈치를 보던 조직원이 총을 쥔 재환의 손을 보고 귀를 막았다. 조그맣게 벌려진 재환의 입술에서 한숨이 나왔다. 왼손을 뒷좌석으로 뻗었다. 쉽게 당겨진 방아쇠가 더 큰 소음을 일으켰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더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자 시트에 몸을 뉘었다.

 

 

 

 

 

대한민국의 시간이 무척이나 빠르게 흘렀다. 긴 시간 속에서 나라를 지탱하는 힘은 두 개로 늘어났고, Korea 대신 TCTH (The country of two heads)로 불렸다. 정부와 함께 머리로 불리는 재상 그룹은 자신들을 찾아온 교수의 연구를 위해 많을 돈을 후원했다. 그 결과 복제인간이 탄생했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애초에 투자를 포기했던 정부와 다른 그룹은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만들어진 복제인간은 사회 약자들에게 우선 보급되었다. 주요 보급 층은 장애인으로 선정되었고 매해 몇십 번씩 터지던 장애인 문제가 줄어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덕에 재상 그룹의 이미지와 국민들의 신뢰도는 날로 높아졌고, 정부가 기업의 눈치를 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요즘 김 할아버지가 안 보이시는데 무슨 일 있으신 것 같지 않아요?"

 


"그 양반 복제인간 서비스 신청했잖아. 알아서 잘 살아 있겠지. 신경 쓰지 마."

 

 

여러 개의 검은 봉지를 들고 과일을 고르던 택운의 몸이 움찔했다. 관심도 없는 화제를 입에 담던 중년 여성이 택운을 발견하고 혀를 찼다.

 

 

"택운 총각, 뭐 우리가 도와줄까?"

 


"아,아니요. 괜찮아요. 이거…귤."

 

 

덩치가 있는 여성은 잘 오른 살을 보이며 귤을 담아 건넸다. 받아든 택운이 색 바랜 청바지 주머니로 손을 넣었다. 꼬깃꼬깃한 만 원 지폐가 나왔고 여성의 손 위로 올렸다. 초점을 잃은 택운의 회색 눈동자가 조명에 빛을 냈다. 잠시 바라보던 여성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저, 총각. 자기도 복제인간 신청해 봐. 언제까지 친구랑 살 순 없잖아, 안 그래? 그 총각도 장가 가야 하고…."

 


"안녕하세요. 아줌마! 날씨 참 좋죠?"

 

 

갑자기 나타난 원식이 택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놀라 소리를 지른 여성이 곧 밝게 웃었다. 큼지막한 사과 두 개를 잡아 봉지 안으로 넣곤 원식의 엉덩이를 두드렸다. 인상 좋게 웃어 보인 원식이 짧은 인사와 가게를 나왔다.

 

 

"날씨가 좋기는 무슨, 추워 죽겠는데 말이야."

 

 

원식이 코트를 벗어 택운의 어깨에 걸었다. 봉지를 뺏어 들자 무거웠는지 택운의 손바닥에 빨간 자국이 생겼다. 안쓰럽게 쳐다보던 원식이 택운의 얼굴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남들은 치를 떨었을 상황에 택운은 침착했다. 그저 내 눈앞에 뭐가 있나 보다 생각한 그가 고개를 돌렸다. 얇게 쌓인 눈 위로 네 개의 발이 맞추어 움직였다.

 

 

"이상한 짓 하지 마."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오늘은 일찍 끝났네?"

 

 

택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익숙한 상황에 원식은 콧노래를 부를 뿐이었다. 말없이 걷다가도 곁눈질로 택운이 잘 따라오는지 살폈다. 걸음은 느렸다. 앞이 보이지 않는 택운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원식이 답답해할까 나름 빠르게 걷다가 넘어지는 일도 많았다. 무릎에 심한 멍이 생긴 이후론 언제나 원식의 손을 잡고 걸어야 했다. 택운은 질색하다가도 정색하는 원식에 어쩔 수 없이 손을 내주었다. 택운의 손이 땀으로 젖었다. 그가 긴장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택운이 느끼지 못 하다록 천천히 속도를 늦췄다.

 

 

"저기 원식아."

 

 

할 말이 있어서 긴장한 건가. 속으로 깨달은 원식이 택운에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가만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나 그…복제인간 신청했어."

 


"뭐?"

 


"너도 네 생활해야 하고…결혼도 해야 하고…언제까지 나 도와줄 순 없잖아."

 

 

낮게 택운의 이름은 읊조리는 원식에 말이 끊겼다. 얼굴을 쓸어내린 택운이 원식과 눈을 맞추려 했다. 왼손을 뻗어 원식의 몸을 더듬었다. 점점 올라가 얼굴을 잡고 시선을 맞추듯 돌렸다. 길게 자란 택운의 앞머리가 오른 눈을 찔렀다. 원식이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 주었다.

 

 

"내가 책임진다고 했잖아, 너 그렇게 된 것도 나 때문이고."

 

 

택운이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지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원식의 말이 맞았다. 그가 하는 일로 인해 가족은 물론 눈을 잃었다. 원망은 눈에서 피가 흐르고 앞이 희미해져 갔을 때 빼곤 없었다. 부모의 영정을 보지도 못하고 향 냄새만 맡아야 했어도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충분히 사과하고 오열하고 무엇보다 원식도 택운의 가족이었다. 내칠 이유는 없었다. 모든 일이 정리됐을 때 떠나려던 원식을 붙잡았다.

 

 

'너마저 가면 난 아무도 없어…가지마.'

 

 

그 날 들었던 원식의 울음소리는 매일 밤 들려왔다.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기억에 깊이 남았구나 하며 넘겨 버릴 뿐이었다. 고개를 저었다. 택운이 걸음을 옮겼다. 빨라진 걸음에 원식이 당황하며 쫓았다. 그들이 집으로 가기 위해선 많은 계단을 올라야 했다. 기댈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택운의 팔을 잡아 조심히 계단을 올랐다. 원식은 끝없이 택운의 말을 되새겼다. 일에 바빠 집에 오지 못하는 날이면 택운 혼자 계단을 오르는 것이 불안했다. 자신 말고는 그를 보살필 사람이 없었다. 복제인간이 뉴스에 나오고 장애인에게 우선 보급됨을 들었을 때 신청함을 다짐했다. 원식이 반대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만 택운의 인생에서 김원식을 빼려는 발언과 원식을 조이는 죄책감에 화가 났을 뿐이었다. 서로 눈치를 보며 꺼내려 하지 않았던 얘기를 택운이 먼저 들췄다. 어색함이 둘의 주위를 맴돌았다.

 

 

 

 

 


수많은 기계가 열을 뿜으며 작동했다. 높진 않지만 터널처럼 길게 뻗은 은색의 기계가 소리를 내며 작동을 멈췄다. 위에 달린 빨간 조명이 반짝이다 빛을 잃었다. 어김없이 주머니를 찬 남자가 기계 앞에 섰다. 아무 때가 묻지 않아 새하얀 몸이 기계 밖으로 나왔다. 뒤로 줄줄이 따라 오는 모습에 만족한 듯 웃었다.

 

 

"i-06 외 13개 생산 완료, 보급 창고로 이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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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ㅜㅜㅜㅜㅜ스토리완전취향저격이에요ㅜㅜㅜㅜ신알신하고가요~~
10년 전
인세인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ㅠ 다음엔 독자님의 마음을 더 저격하도록 열심히 써오겠습니다! 헷...
10년 전
독자2
헐 대박ㅠㅠㅠ복제인간이라는 소재좋네요ㅠㅜㅠㅜㅠㅠㅠ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혹시 암호닉 받으세요?받으시면 정모카로 할께요!!
10년 전
인세인
당연하죠! 재밌게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ㅠㅠ 스릉스릉
10년 전
독자3
와 진짜 제취향저격하셨어요ㅠㅠㅠㅠㅠ완전 소재 짱짱인데요??ㅠㅠㅠㅠㅠ너무재밌어요 신알신하고가요ㅠㅠㅠ♥♥
10년 전
인세인
그런가요? 걱정 많이 했는데 다행이네요..ㅠ 다음 편에서도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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