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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의 전개 특성 상 회차마다 문체의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NCT] 고인 물 03 : 자존심 싸움 | 인스티즈 

 


 


 


 


 

자존심 싸움
- 김도영의 순간들 -
 


 


 


 


 


 
잠에서 깨었을 때는 집이 복작거렸다. 매일같은 출퇴근으로 집에 붙어있는 나야 사람이 밀물처럼 들어올 때도,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도 항상 집을 지켰다. 물론 그 시간은 새벽 시간 뿐이었지만 누가 왔다 갔는지 정도는 대강 알 수 있다는 말이었다.
 


 

 오늘 거한 거래가 있었다.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 되는 대형 거래. 애들 사이를 징검다리처럼 건너 이불에 코를 박고 자는 이동혁을 발끝으로 툭툭 쳤다. , 일어나 봐. 배를 훤히 드러낸 이동혁은 한 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 위로 꼬고 불편한 자세로 자고 있었다. 어딘가 요염해 보이는 자세였다.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이동혁을 관찰하던 나는 문득, 소파 위의 다른 사람을 생각해 냈다. 새로 온 여자애가 있었지. 김여주랬나. 아마도 이동혁은 그 애 때문에 소파에 다리를 올리지 못한 것일 터였다. 귀엽기는. 실실 웃으며 이동혁의 볼을 꼬집었다.
 


 


 


 
“일어나라, 아가.
 


 
“……아 형… 나 졸린데….
 


 


 


 
잠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성장기의 소년을 두고 일어서며 아쉽지 않다는 듯 돌아서는 척 했다.
 


 


 


 
“돈 벌기가 싫은가 보네……. 오늘 물건 받으면 두둑하게 떼어 주려고 했는데…뭐.
 


 


 


 
이동혁이 낑낑대며 상체를 일으켰다. 이상한 자세로 눌려 있던 왼쪽 다리에 쥐가 났는지 팔을 허공에 허우적대며 징징거렸다.
 


 


 


 
“도영이 형…… 아, 쥐 났어. 잠깐만.

 


 


 


소파에 살짝 걸터앉아 이동혁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어딘가 얼굴이 빨개진 것 같았다. 가뜩이나 까만 얼굴이 흑토마토처럼 되어 있었다. 좀 아픈 것 같은데.
겨우 다리가 풀렸는지 나를 보고 헤헤 웃는 얼굴에다가 손등을 붙였다.
 


 


 


 
“너 열 나네. 감기냐?
 


 
“엥? 나 감기에요?
 


 
“병신 새끼…….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에 걸려서 골골대는 이동혁을 도로 자리에 눕혔다. 이동혁이 은근히 말발이 좋아서 거래할 때 자연스럽게 오케이 되곤 했는데, 오늘은 거래량이 많아서 조금 걱정이었다. 나 혼자 입 털려면 오늘 집에 와서는 혀 뿌리가 다 마르겠구만. 그렇다고 소중한 동생을 혹사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툭툭 털고 일어나려던 때였다.
 


 


 


 
“제가 갈게요.
 


 


 


 
여자애였다. 김여주. 내가 데려간다는 데가 어딘지도 모르고 무작정 따라 나서겠다니, 어지간히도 무대포구나 싶었다.
 


 


 


 
“네가 간다고?
 


 
“네. 도와줄 사람 필요한 거 아니에요?
 


 
“맞는데, 너는…….
 


 


 


 
위험할 것 같은데. 하고 말하려다 말았다. 그래, 한두어 달 보고 말 여자애를 내가 이렇게까지 신경써 줄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라, 그럼. 가서 무섭다고 울면 버리고 올 거야.
 


 


 


어쩌면 이동혁보다 김여주가 나을 수도 있었다. 지지부진한 그 판에서 김여주가 생각보다 먹힐 수도 있었다. 전부 여자에 굶주린 하이에나 새끼들 뿐이니까.
 나는 멀겋게 나를 쳐다보고 있는 그 애에게 문태일이 벽장 깊이 숨겨 놓았던 그 옷을 꺼내어 입혔다. 기모노와 치파오가 짬뽕된 것 같은, 가슴 부근과 다리가 전부 비쳐 보이는 옷. 지켜보던 이동혁의 얼굴이 더 흙빛이 되어 갔지만, 말없이 옷을 걸치는 김여주의 얼굴은 점점 더 태평해져 갔다. 아니, 마음을 대담하게 먹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확실히 다짐이 필요한 곳이기는 했다. 마음의 준비 없이 섣불리 발을 들인 애기들은 울면서 달아나기 십상이었으니까. 


 

 나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으려나… 입술을 앙다문 여자애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 애는 우리가 갈 곳이 두려운 걸까, 아니면 그냥 내가 두려운 걸까. 


 


 

 어쩌면 그 곳에서 마주쳤던 애기들을 겁먹게 한 건, 나였던 게 아닐까.
 


 


 


 


 


 시장 골목 뒤편에 숨어 있는 허름한 사무실까지 걸어서 이동하는 동안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고 굳이 서로를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의 한 마디가 집에서 나온 이후의 첫 대화였다.
 


 


 


 
“넌 밖에 있다가, 만약에 말이 계속 물리는 것 같으면 들어와서 나한테 치대. 그 놈들한테 말고 나한테. 아마…… 아니다.
 


 


 


 
아마 위험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요. 산 여자처럼 굴라는 얘기죠?
 


 
“그래.
 


 
“……네. 먼저 가세요.
 


 


 



 
위험하지는 않아. 나는 너를 진짜로 팔지는 않을 거니까.
 


 


 


 


 



 
이렇게나 빨리 대화가 꼬일 줄은 몰랐다. 오늘따라 도통 말이 통하지를 않는 험악한 상판의 돼지 새끼를 노려보면서 그의 뒤에 놓인 자루를 살폈다. 내가 내민 돈다발을 하나 집어 들어 거의 눈이 몰릴 정도로 꼼꼼히 뜯어 보는 모양새에 기가 질렸다. 준치에. 그나마 몇 가지 할 줄 아는 중국어는 이런 게 전부였다. 틀림 없다,  뭐 그런 말이었다. 산더미같이 쌓인 위조 지폐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용도.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 뻔뻔한 얼굴을 했다. 이제는 액수를 세고 있는 저팔계를 지켜보다가 번쩍 고개를 드는 바람에 눈이 마주쳤다. 노려보던 눈을 가늘게 뜨며 순식간에 웃는 척을 했다. 메이추어. 맞다니까.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서는 위험했다. 땀이 난 두툼한 팔뚝을 잡아채 종이 돈 더미에서 떼어냈다.
 


 


 


 
“확인했으니 됐지, 형씨? 천오백 위안만 깎아 줘요.
 


 
“천오백? 농담이 늘었네. 그러려면 우리랑 거래 못해. 우리는 통 재미가 없는 사람들이라.
 


 


 


 
매일같이 던져 보는 말이었지만 역시나 반응은 가차없었다. 약간 흥분한 듯 빠른 템포의 말이 쏟아졌다. 이마에 돼지의 침이 튀었다. 씨발.
 


 


 


 
“그럼 천 위안만.
 


 
“장난해? 천 위안을 더 받아도 시원찮을 판에.
 


 
“에이, 보관도 눅눅한 데서 한 것 같더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할 거면 나가고, 거래 할 거면 빨리 가져가고.
 


 


 


 김여주,
지금이야. 말이 더럽게 꼬이고 있었다. 하지만 김여주는 아직 때를 못 잡은 모양이었다. 상황을 조금 더 악화시켜야 했다.
 


 


 


 
“나 말고 형씨네를 찾는 고객이 더 있나? 똥배짱도 때를 봐 가며 부려야지.
 


 
“하! 어이, . 당신네한테 넘길 물건 없으니까 나가. 사람 기분이 나빠서 안 되겠네.
 


 


 


 
지금이야, 빨리.
 


 


 


 
“이렇게나 말을 물려서야. 그런 뜻이 아니잖아, 형님.
 


 


 


김여주가
중국어를 알 거라는 가정 하에 던진 마지막 호출이었다. 거래가 파탄나기 일보직전이었다. 얇은 치맛자락을 끌어올리며 고양이처럼 조용히 들어온 김여주가 내 뒤로 다가와 어깨에 얇은 팔을 둘렀다.
 


 


 


 
“션머 스?”  무슨 일이야?
 


 


 


 
돼지의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눈동자가 커졌다. 역시 먹히는군. 다행이었다. 어느 새 발갛게 칠한 김여주의 입술이 내 귓가로 다가왔다. 생각보다 싸우는 게 귀엽네요. 한국어를 속삭인 그 애는 뒤에서 끌어안듯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상체를 내게 약간 기대왔다.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턱을 내 어깨에 괸 그 애가 속눈썹 너머로 상대방을 올려다봤다. 얼굴이 너무 가까웠다. 빨개진 입술이 시야에서 혼자 튀었다. 맞은편의 돼지가 눈빛으로 강렬히 김여주에 대해 캐묻고 있었다. 아아, 김여주가 중국어를 못 하는 게 나았을지도 몰랐다.
 


 


 


 
“후리와의 여자야. 마음에 들어?
 
 


 


 


 
태연한 척 대답했지만 속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끈덕지게 훑는 눈길을 견디고 있는 김여주가 용했다. 돼지는 옷 아래로 비치는 그녀의 가슴 부근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좋네. 아직 어려 보이는데…….
 


 
“그렇지. 거래 값을 잘 쳐준다면, .
 


 


 


 
더러운 새끼. 어려 보이는데, 뒤에 하려던 말이 뭔지는 지나가던 개도 알 것 같았다. 어떻게든 확답은 피하려고 말을 꼬았다. 이러려고 데려온 거였는데 벌써부터 아침의 멍청했던 선택이 후회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따라온다고 해도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늘어진 껌딱지처럼 붙어오는 시선을 곧바로 마주치던 김여주가 내 목을 끌어안았던 팔을 풀더니 내 옆자리에 몸을 붙이고 앉았다. 소파 등받이에 가려졌던 몸이 드러났다. 씨발, 이게 아닌데. 바쁘게 전신을 훑어대는 두 눈이 보였다. 김여주가 다리를 꼬았다. 길게 뜯어진 치마 새로 하얀 다리가 전부 드러났다. 순간적으로 빨리 나가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여자는 많아. 형씨도 알겠지만, 우리가 좀 인기가 좋거든. 오늘 천오백 깎아주는 걸로 알게. 좋은 거래였어.
 


 


 


 
무슨 요구를 할지 모르는 중국인의 말을 끊어내고 속사포처럼 뱉었다. 자루를 챙겨 나오면서도 김여주를 앞세워 걸었다.
 


 

얘는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 가지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답을 듣기도 전에 물건을 낚아채 나가는데도 돼지에게서는 아무런 제지가 없었다. 왠지 그게 더 기분 더러웠다. 


 

 다 낡아서 간판의 네온사인이 떨어질랑 말랑 대롱거리는 건물을 나오자마자 내가 걸치고 있던 얇은 자켓을 입혔다. 아까는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던, 거리의 시선들이 불쾌했다. 씨……뭘 저렇게 쳐다보고 지랄이야. 다 빵에 때려 넣어야 돼. 그러면서도 내심 의아한 게 있었다. 어제 처음 본 이 여자애를 내가 신경 쓰고 있는 이유. 정확히 알아야 했다. 동정인지, 호기심인지, 뭣도 아닌 다른 건지. 나는 이 애를 이용할 생각이었고 이용에는 같잖은 사심이 끼어들어서는 안 되니까. 언제나 내가 우위를 선점해야 했다.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땅거미가 진 옌지의 뒷골목은 낮보다 더 밝았다. 어둠 속에서는 살 수 없다는 듯이 건물마다 번쩍이는 빛으로 에워싸져 있었다. 이곳의 하루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화려한 불빛들을 피해 좁은 골목길로 숨어들었다. 근처의 어딘가에서 도둑고양이가 울었다. 하룻동안 김여주를 데리고 다니면서 올린 수익은 거의 육만 위안에 가까웠다. 한화로 천만 원이 넘는 엄청난 돈이었다. 미친… 돈을 세면서도 회한이 들었다. 이 돈이면 한달 치 밥 값에 집세에 천국 값까지 내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도 기쁘지는 않았다. 그냥 오늘 하루 종일 기분이 별로였다. 꽤 오랫동안 천국 없이 버틴 바람에 귓가에 이명이 들려왔다. 골목창의 계단에 주저앉아 가방을 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앞에 가만히 서서 골목 바깥을 보고 있는 김여주가 거슬렸다.
 


 


 


 
“야, 뭐 해. 앉아.
 


 
“……괜찮아요.
 


 
“…….
 


 
“…….
 


 
“너도 할래?
 


 


 


 
가방 깊숙이 넣어뒀던 큼지막한 통을 꺼냈다. 주사의 비닐을 벗겨내어 통의 입구에 푹 꽂았다. 이민형이 팔뚝에 푹푹 꽂아대던 바늘이 떠올랐다. 미친놈. 걔는 진짜…… 또라이야. 주삿바늘을 타고 투명한 액체가 딸려 올라왔다.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흥분되는 기분이 좆같았다. 이런 거에 매달려 죽지 못해 사는 일이 지겨웠다. 지루한 삶의 회의감이 전부 저 작은 주사기속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저걸 팔뚝에 꽂아 넣으면 이 삶이 지루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마 아닐 터였다. 맑은 액체가 전부 혈관을 타고 흐르게 되면, 삶이 재미있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지루함을 못 느끼게 되는 거다. 머릿속이 진공 상태가 되듯이.
 


 


 


가벼운 액체가 담겨 찰랑거리는 주사기를 실눈을 뜬 눈가까지 올렸다. 정량보다… 1mg 오버했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지.
 시력이 점점 나빠져서인지 눈금을 확인하기가 힘들었다. 주사기를 내밀며 한 번 권해 보았는데, 김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 그럼.
 


 


 


 
고민 없이 팔꿈치를 폈다. 은빛으로 빛나는 바늘을 초록색으로 비치는 혈관에 밀어넣었다. 그 모습을 흔들림 없이 지켜보던 김여주가, 갑자기 골목을 빠져나갔다. 발에 걸려 넘어질 것처럼 비틀대는 걸음걸이였다. 뭘까……. 도망치려는 걸까. 이제 와서?
 


 

 머리가 깡통이 된 것 마냥 방금 본 광경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무감각해졌다. 멍멍해진 귓가에 멀리서 누군가가 헛구역질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닌가. 꽤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흔들리는 시야에 웃음이 났다. 나도 토할 것 같아. 너무 어지러워. 그치.

 
세상이 너무 어지러워…….

 
방금 전의 김여주만큼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옮겨 골목창을 나섰다. 옆에 있던 낡은 벽을 거의 쓸다시피 짚은 손이 찢어져 피가 났다. , 빨갛다….
 


 


 


 


 

 골목의 끝에서 물 속처럼 뿌연 눈 앞을 가득 채운 건 하수구에 대고 계속해서 헛구역질을 하는 마른 몸이었다. 그 애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속을 부여잡고 컥컥거리며 끊임없이 손목 안쪽을 긁고 헤집었다. 얇은 피부가 찢어져서 피가 났다. 나도, 너도, 피가 나…. 우리는 왜 피를 흘릴까. 


 

 더러운 담벼락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제야 휘청이던 시야가 바로 섰다. 


 

 내 신발코를 본 김여주가 새빨개진 눈을 들어 나를 봤다. 그 눈을 가만히 마주치다가 나도 모르게,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바닥을 그 애의 정맥 위에다 붙였다. 분명 머리는 제자리에 있는데, 시야가 흐려져서 앞에 있는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미지근한 핏물이 살갗과 살갗 사이로 번졌다. 닿은 손목에서 둥, , 하고 맥박이 울렸다. 멍하니 손바닥을 대고 있다가, 손가락을 하나씩 굽혀서 길고 붉은 상처가 잔뜩 난 팔목을 감싸 쥐었다. 맞닿은 상처가 피에 젖어 미끌미끌해지는 동안 그냥 계속 그러고 있었다.
 


 



 

 아파?” 


 

 아니요.” 


 

 아플 텐데? 핏줄이 다 터졌는데……. 난 이렇게 짓뭉개져도 하나도 안 아픈데.” 


 

 그거 하지 마요.” 


 

 ? 이거? 이제 와서 끊으려면 죽어야 될 걸……?” 


 

 안 아픈 게 아니라 찢겨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 쪽도 알잖아요.” 


 

 그런가…….” 

  


 


 

뿌연 시야만큼 말도 뿌옇게 나갔다. 내 입 속에서 웅얼거리고 있는 건지 입 밖으로 뱉어진 건지가 헷갈렸다. 그냥 웃음이 났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웃었다. 

  


 


 

 그럼 너도 하지 마.” 


 

 “……뭐를요?” 


 

 “좆같이, 개처럼 살다 온 ?”  

  
 


 

 눈가랑 입술이 다 빨개진 채로 나를 쳐다보던 김여주가 또 헛구역질을 했다. 무심코 나를 따라 내 팔뚝을 봐서였다. 주삿바늘 주위로 물든 동그란 멍이 주르륵 늘어서 있는, 무슨 거미가 줄지어 가는 것 같은 모양이었다. 이것 때문이었나. 담벼락에 몸을 기대는 척하며 팔을 숨겼다. 사레가 들렸는지 쪼그려 앉아 몸을 떠는 모양을 못 본 척했다. 


 

 여름의 축축한 밤공기가 내려앉았다. 이렇게 제 정신이 아닐 때만조금씩 속내를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천국에 죽도록 의존하는 또다른 이유였다. 

  


 


 

 “좆같이, 개처럼…….” 

  


 


 

 주사 한 대 맞은 것도 아닌데, 나만큼이나 눈이 충혈된 김여주가 웃었다. 속은 좀 나아진 모양이었지만 상태는 아까보다 더 별로였다. 그 애는 새빨개진 눈으로 계속해서 밤공기 속에 웃음을 터뜨렸다. 좆같은 게 뭔데요? 그게 뭘까. 새빨간 입술이 혼잣말처럼 중얼댔다.  

며칠 내내 말 한 마디 없이 날을 세울 땐 언제고, 지랄 맞은 소리를 듣고 나서야 오히려 잔뜩 풀어진 표정으로 웃던 그 애는 좆같이, 한 단어를 입 속으로 되뇌며 목까지 꽉 채워진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 딱 싸구려 플라스틱 단추가 풀려 나갈 때마다 그 하얀 손목 안쪽의 터진 핏줄들이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안 풀어도 다 보이는데 뭐 하러 푸는 건데, 도발 해?” 


 

 이런 거 말하나 해서.” 

  


 


 

 빨갛게 칠했던 그 애의 입술이 침에 젖어 번들거렸다. 검은색 시스루 상의 안쪽으로 보였던 검은 속옷보다는, 낮보다 더 환한 밤의 골목에서 선명히 드러난 하얀 살색 위의 검은 속옷이 훨씬, 자극적이었다. 그 묘한 대조를 보자마자 이유 모를 신경질이 났다. 하얀 손이 망설임 없이 제 앞섶을 젖혔다. 옷 같지도 않은 천 쪼가리에 숨겨져 있던 마른 어깨가 드러났다. 지금 나랑 뭐 하자는 거야. 딴에 자기의 눈물 나는 일생을 몰라줬다고 애새끼처럼 유세라고 떨겠다는 건가, 싶었다. 

  


 


 

 씨발…….” 


 

 맞나 보네……?” 


 

 너도 돌았구나.” 

  


 


 

 분명히 막 가지고 놀다 버려도 된다고 그랬는데. 막상 눈 앞에서 저 지랄을 떠는 바람에 영원히 그럴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붕 떠 있던 머리가 차게 식었다. 그냥, 화가 나. 

  


 


 

 돈 건 너네지. 난 아무렇지도 않아. 더러운 약도 안 했고,” 


 

 그래서 어쩌자고. 나랑 한 판 하자고? 여기서, 개처럼, 한바탕 뒹굴까?” 


 

 “……그러든지.” 


 

 미친 년.” 

  


 


 

 고작 몇 분 전에 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람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지. 좆같이 살았던 애가 좆같이 산 척 하지 말라는 말에 화를 낸다. 이동혁한테도, 나한테도,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았을 우리가 하는 말에 눈이 새빨개져서, 노려보면서. 
 


 


 

 내 너머로 누군가를 투영하는 듯한, 증오가 가득 담긴 새까만 눈동자를 쳐다보다가 빨간 입술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우리는 둘 다 눈을 감지 않았다. 서로를 경멸하면서입술을 핥고, 혀를 섞고, 고개를 비틀었다. 딱 그렇게 피처럼 빨간 입술을 마주 대고 대화했다. 속에 있는 불길을 끄집어내듯이 입술을 물어 뜯고 혀를 부비는, 뇌가 전부 타 버릴 것 같은 키스였다. 머리에 떨어진 빗방울이 열을 식히다 말고 증발해 버리는 것 같았다. 

  


 


 

 너만 살기 좆같았는 줄 알아?” 

  


 


 

 빗줄기가 짙어졌다. 열이 펄펄 끓던 아침의 이동혁처럼 감기에 걸릴 만큼 오랫동안 장대비를 맞았다. 침으로 젖은 입술을 떼지 않은 채로 중얼거렸다. 김여주는 아무런 대답 없이 나를 노려보던 눈을 한 번 내리 감았다 떴다. 

  


 


 

 “봤으면 알 거 아냐, 취해서 방구석에 정신 못 차리고 자빠져 있는 거.” 


 

 “……언제는 천국이라며? 


 

 “천국은, 씨발… 어쨌든 여기서 손이고 정신머리고 순수해빠진 놈 없다고.” 


 

 고맙긴 한데 난 안 더럽다니까. 네가 더럽지.” 


 

 “……그래, 니 말이 다 맞으니까 괜히 지랄하지 말고 옷이나 똑바로 입어.” 

  


 


 

 넌 하나도 안 더러우니까. 달싹이는 도톰한 입술을 세게 물었다 놨다. 개 같은 건 김여주가 아니라 나다. 넌 지금 물린 거야. 알아? 마주 본 아랫입술에 내가 문 자국을 따라 붉은 핏방울이 맺혔다. 그 자리를 훑고 지나간 혀가 더 빨개졌다. 이미 반쯤 어깨 아래로 내려가 있는 속옷 끈을 올려주며 맞은편에서 핑크색으로 빛나고 있는 네온사인에 시선을 돌렸다. 뿌얘서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시야에 개고기라는 세 글자가 보였다. 개는 계속 패 줘야 연해진댔는데, 그래서 나도 이렇게 처 맞고 있는 건가. 느지럭거리며 단추를 하나씩 채우던 김여주가. 중얼거렸다 

  


 


 

 개고기는 불쌍해서 못 먹겠더라.” 


 

 “…….” 


 

 나 같아서.” 

  


 


 

 그래, 우린 다 개야. 개 패듯이 맞고 있는 개. 안 그래도 축축했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연길의 우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 김도영.” 


 

 .” 


 

 뭐야, 화 안내네?” 


 

 내 줘?” 


 

 아니, 됐거든. 그냥…….” 


 

 그냥 뭐.” 


 

 안 건드린 거 고맙다고.” 


 

 “…….” 


 

 “…….” 


 

 “……그럼 단추 하나 풀면서 손을 달달 떠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냐.” 

  


 


 

 아니, 애초에 어떻게 해볼 생각도 없었어.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는 바람에 더 대화할 수도 없었다. 우산 하나 없이 집까지 뛰어들어가다가, 비에 젖어 전부 비치는 옷이 눈에 밟혀서 아닌 척 앞을 가리고 섰다. 그래도 여자 앤데, 남자 애들 여럿이 있는 집에 몸을 다 드러내고 들어가게 하기는 좀 그랬다. 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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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오우...............분위기..........워우.......
6년 전
독자2
진쩌 너무 조아요ㅠ 저 그 전 화에서 이게머지막이면안댄다고햇던그사람인데요,,너무감사합니다,,진짜작ㄱ가님글어캐설정을이렇게하실수가잇으새요ㅠ흐어ㅜㅠ저 [미생]으로 신청할게요ㅠㅠㅠㅠㅠㅠ맨알ㅇ맨날댓글달겅예요ㅠㅠㅠㅠㅠ너무조아서주체가안대는이기분.....
6년 전
보풀
감사합니다 미생님! 이렇게 좋아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오늘도 열심히 글 쓸 수 있겠어요ㅠㅠ 저도 야깐 사랑함니다...❤️
6년 전
비회원84.157
작가님ㅠㅠㅠㅠㅠ첫화부터 계속봤는데 너무 재밌어요ㅠㅠㅠㅠㅠㅜ진짜 어제 거의 뜨자마자 봤는데 너무 치여가지고 100번 정도쯤 본거 같아요ㅠㅠㅜ진짜 너무 재밌습니다ㅠㅠㅠㅠ아 글구 대사 수정하셨나봐용 어제랑 오늘이랑 약간 차이가 나네요 수정하기 전이나 후나 너무 좋습니더 너무 발려버려염,,, 작가님 체고 아 글구 재밌게 봤으니꺼
저 암호닉 신청할래욥 [또잉또잉]으로 조심스럽게 신청하고갈게욥ㅎㅎㅎㅎㅎ 글너무 잘봤오료~~

6년 전
보풀
헉 네 또잉또잉님! 일단 정말 감사해요ㅠㅠ 정말로 여러 번 읽어 주셨나 보네요...ㅎ 수정을 들키다니ㅋㅋㅋㅋ 글 분위기랑 더 잘 어울리는 대사를 찾으려고 저도 계속 읽어보고 고민하느라 그렇습니다...허허... 감사해요 좋은 밤 되세요!
6년 전
독자3
헉 ㅠㅠ작가님 글 너무 제 스타일인거 아니예요..?? ㅠ 지금 정주행 중인데 집중해서 본다고 1화2화는 댓글도 못달앗어요 ㅠㅠ진짜 최고되십니다...
6년 전
보풀
정말요?ㅠㅠㅠㅠ 감사합니다.... 글이 독자님 취향이라니 넘 다행이네요! 흑흑ㅠㅠ 제 취향이 소나무라 이런 것 좋아하는 분들이 적을까 봐 걱정했거든요ㅋㅋ♥ 담편 금방 가지고 올게요!!
6년 전
독자4
세상에나 작가님 앞글들에서 답글도 다 달아주시고ㅠㅠㅠ안 주무시나요ㅠㅠ저 정말 이런 분위기의 글 너무 좋아요 여주가 글 속 인물들과 관계가 유해져(?)가는 분위기도 참 좋구요ㅠㅠㅠㅠ그냥 모르겠어여 다 좋아요❤️❤️❤️
6년 전
보풀
좋아해주셔서 너무 기뻐요 정말로ㅜㅜ 잠은... 허허허허 제가 생활습관이 올빼미가 되어가서 그렇슴니다... 지금 약간 대화하는 느낌이네요 그쳐...ㅋㅋㅋ 저때문에 괜히 글에 집중 못 하시는 것 같아요ㅜㅜ 저도 내용 정리도 할 겸해서 글 다시 읽어보러 가야겠네요ㅎㅎㅎ 천천히 편히 읽어주세요! 암호닉 신청도 해 주시구요! 전 내일 찾아오겠습니다❤️
6년 전
독자5
아 도영이랑 여주 너무 섹시하고 아 분위기 진짜 대박적이에요 ㅠㅠㅠ 어쩌지요 ㅜㅜ
6년 전
보풀
둘이 눈만 마주쳐도 야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헤헤(음흉한 미소)... 이 분위기 그대로~! 완결까지 열작해 보겠습니당! 감사해요 독자님ㅎㅎ 좋은 밤 되세요!
6년 전
독자6
[묘묘네오] 우와...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뀌었네요??!! 대박대박
6년 전
보풀
묘묘네오님 안녕하셨어요ㅎㅎ 제가 너무 늦게 왔네요ㅜㅜ 재밌게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대박대박ㅎㅎ 엔나잇하세요!
6년 전
독자7
보풀님ㅜㅜㅜㅜㅜ아 진짜 쩔어요 어떡하죠 글이 진짜 퇴폐적이면서 섹시하고 진짜 캐릭터들 하나하나 대박이에요 사랑합니다 암호닉 신척할게요![체르노잼]
6년 전
보풀
계속 답글 달아 드리다 보니까 정말 감사한데요 체르노잼님ㅜㅜ 암호닉 여기서 신청해 주셨었네요... 저와 체르노잼님의 빛나는 인연 스타트! 헤헤(치대기) 정말루 레알루 사랑해요❤️
6년 전
독자8
허,, 진짜 말도안돼 이런 하이퀄리티 글잡 진짜 첨봐요.. 이건 진짜ㅋㅋㅋ 대박 그 자체ㅜㅠㅠㅠㅠ 아 분위기 진짜 다리ㅠㅠㅠ 아 진짜 너무 좋아요 작가님..
6년 전
보풀
감쟈합니다ㅠㅠㅠㅠ 하이퀄리티 글잡이라니 굉장히 네오한 칭찬이네요ㅜㅜ 제가 열작하게씁니다! 엔나잇하세요❤️
6년 전
독자9
진짜 감사합니다....작가님의 재능기부.......
6년 전
보풀
헉 제가 더 감사하죠...?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ㅎㅎㅎ 재밌게 읽어주세요!
6년 전
독자10
작가님 와... 진짜 제본 내면 저 무조건 살게요 엉엉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웬만한 소설 뺨치는 울 작가님 이대로 등단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쾌락을 맛보려고 고통을 기꺼이 내 주는 도영이의 모습이 뭔가 저릿할 정도로 막 뭔가 그랬어요... 기분을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어요 어흑 다음 화 얼른 보고 싶으니 할 말은 많지만 이만 줄일게요....
6년 전
보풀
헉 감사합니다 독자님ㅠㅠㅠㅠ 제본을 원하는 분이 많으실지..허허ㅋㅋㅋ 답댓 달아드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봐요 넘 늦었죠ㅠㅠㅠㅠ 죄송합니다ㅠㅠㅠㅠ흑흑흑 도영이자식 자꾸 약 하고 그래서 쓰면서도 맘아프구,,, 현실 도영이는 건실한 청년이니까요!ㅎㅎㅎ 재밌게 봐주셔서 넘 기쁩니다...ㅠ 새해에도 잘 부탁드려요 해피뉴이어!!!
6년 전
독자11
작가님은 정말 이걸 책으로 내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ㅠㅠ그러면 제가 살거니까요ㅠㅠㅠㅠㅠㅠ어쩜 캐릭터 하나하나가 찰떡 같은지ㅠㅠ계속 말해서 질릴 수도 있는데 너무 분위기가 좋아요ㅠㅠㅠㅠ
6년 전
보풀
헉 진짜 감사해요ㅠㅠㅠㅠ 제본 원하는 분들 많으시면 진지하게 고려해볼게요...ㅎ 근데 얼마나 계실지 모르겠네요 허허 재밌게 봐주셔서 넘 기뻐요ㅠㅠㅠㅠ 새해에도 같이 달려요! 사랑합니다 해피뉴이어!!
6년 전
독자12
워후..워... 분위기에 굉장히 치이면서 보고잇습니다ㅠㅠㅠㅠㅠㅠ 여주의 과거도 상당히 궁금해요!!!!
6년 전
보풀
여주 과거 어느정도 드러났는데 보셨을는지요?!ㅎㅎㅎ 답댓이 너무 늦어져서 모르겠네요ㅠㅠㅠㅠ흑흑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네요! 새해에도 같이 달려요! 사랑해요 해피뉴이어ㅎㅎ
6년 전
독자13
저 진짜 분위기때문에 죽어요 자까님.... 오늘도 쵝오ㅠㅠ
6년 전
보풀
감사합니다 독자님ㅠㅠㅠㅠ 이 분위기 유지해서 끝까지 쭉쭉 써볼게요 사랑합니다!!!
6년 전
독자14
진짜 작가님 필력 말도 안 돼요.. 와 이건 진짜 대박..
6년 전
보풀
감사해요ㅠㅠㅠㅠ 아니에요... 웅앵웅 역시 칭찬은 쑥쓰럽네여..ㅋㅋㅋ헤헷 제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해요 사랑해요!ㅎㅎ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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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보풀
분위기 뭘까요...? 뭐죠?! 좋은 말이니까 감사합니다ㅠㅠㅠㅠ 답댓이 넘 늦었지만 새해에도 잘 부탁드려요 사랑합니다!!
6년 전
독자16
어떡해ㅠㅠ 도영이 캐릭터 진짜 너무 좋네요ㅠㅠ 왜 이제야 보는거야 나ㅠㅠ
6년 전
보풀
도영이 조아해주셔서 넘 감사해요ㅠㅠㅠㅠ 재밌게 읽어주셨길 바라면서 새해에도 잘 부탁드려요!ㅎㅎㅎㅎ 같이 달려요 사랑합니다!!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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