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가 사라졌다. 이현수가 없다. 이현수가 보고싶다.
공황, 이현수가 내 눈 앞에서 사라진 이후로 공황상태. 나는 혼자가 될 자신이 없다. 빌어먹을 엄마가 날 버리고 간 이후로 혼자 남겨지는 것이 무섭다. 주병희가 떠난 이후로
더이상 내 주위의 사람을 잃기 싫었다. 무서웠다. 하나 둘씩 떠나가는 것이, 꼭 너 다시 데리러 올게. 빌어먹을 엄마의 약속은 아직까지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다.
무지한 어린 아이에게 사탕 하나를 주고 떠난 그녀는, 그렇게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에게 이 사탕 다 먹으면 돌아올게. 아이는 엄마를 기다리며
사탕을 하나하나 다 까먹었고, 더 이상 아이에게 먹을 사탕이 남지 않았을 때 아이는 알았다. 아, 엄마가 날 버렸구나.
투토피아(twotopia)01
"권지혁."
"뭐."
"지혁아."
"넌 니네 엄마 보고싶지않냐?"
현수의 물음에 지혁의 말이 뚝, 끊겼다. 그리고 현수를 바라보는 지혁의 눈. 알면서 왜 물어보냐..지혁의 허탈한 웃음이 들렸다. 현수는 정말 궁금했다. 저 녀석은 제 엄마를
보고싶어 하지않을까? 짐승도 제 어미를 잃으면 그리워 한다는데 하물며 인간인 권지혁은 제 엄마를 왜 그리워 하지않을까, 그것이 절대 저녀석의 뜻이 맞을까?
현수는 지혁을 어렸을 때 만났다. 과거로 돌아가 본다면..지혁은 제 아버지를 많이 따랐다. 지혁에게 아버지는 삶이었다. 삶의 이유, 커서 성공하면 아버지에게 정말
잘해드려야지 하는 결심을 하게 되는, 그리고 지혁의 결심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개 소리 하지말고 연습이나 해."
지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 아이들이 지혁을 쳐다 본다. 몸만 움직여도 힐끔힐끔,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하루종일 관심을 받는다. 이 학교로 오기전에
다니던 전학교에서는 그리 큰 관심을 받지 않았다. 다 같은 놈들이었으니까. 매일같이 싸움이 일어나고, 수업도 제대로 안하고 교사들도 학생들을 포기한 양아치들의 천국.
죽은 친구 병희는 전 학교를 싫어했다. 제가 양아치도 아닌데 주위 놈들때문에 양아치 취급을 받는다고. 사실 그게 실바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어쨌든 병희는 이 학교로
온 것을 행운으로 여겼다. 제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발점.
"너 나랑 친구지?"
"당연하지, 이 새끼야."
"처음으로 너한테 부탁한다."
"뭔데.."
니네 엄마 보러가자. 현수의 말이 끝나자 지혁이 제 기타가방을 메고 지하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현수가 한숨을 폭 쉬었다. 짐승도 지 어미를 찾아간다는데 저 새끼는..
물론 현수도 지혁이 왜 저렇게 민감하게 반응 하는지 다 안다. 지혁을 늙은 노모에게 맡기고 떠난 엄마. 늙은 노모를 제 친엄마로 각인시켰다. 그도 그럴것이 권지혁은
제 엄마의 불륜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아비는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돈을 못 내서 곧 쫒겨날지도 모르는데 그 아내란 년은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는 모습을
어린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는걸 안다. 그 후 권지혁은 아마 현수의 엄마를 찾아왔었다. 지혁이 제 엄마에게 안겨서 서럽게 우는게 지혁과 현수의 첫 만남이었다.
"서경종, 나 오늘 학교 못 나간다."
"너 또 와 그라노~ 이 학교는 하루 안 나와도 벌점이 얼만데~"
"딱 하루만 못 나가는거야, 아프다고 말해."
"넌 그럼 학교 땡땡이 치고 어디 갈낀데?"
"그건 갔다와서 말해줄게."
버스에서 내린 현수는 경종을 두고 어디론가 뛰어갔다. 경종은 현수가 납골당을 간다고 생각했다. 절대 현수가 지혁의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고 생각하지 못 했다. 도일도,
하진도 그런줄로만 알았다. 마라도, 대한민국 남쪽 끝. 지혁의 어미가 지혁을 버리고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숨어있나. 현수는 어이가 없었다. 제 자식을 버리고 제 자식이
혹시나 저를 찾을까봐 절대 못 찾을 곳으로 숨어버린 이 머저리같은 어미가 대한민국에 어디 있을까. 하루종일 버스를 탔다. 돈이 없어 비행기는 못 타고 배를 탔다.
이렇게 고생하면서 지혁의 엄마를 만나러 가야 하나, 하고 버스에서 생각했다. 버스에서 내린 후 답은 정해졌다. 이유를 묻고싶었고 물어보고싶었다. 제 자식이 지금 음악을
하는데, 소속사에 연결이 되서 곧 데뷔를 할지도 모르는데 정말 보고싶지 않냐고..그리고 왜 어린 자식을 버렸는지..
"야, 너 어디야?!"
"나 오늘 하루 잠수, 찾지마라."
"어딘데 이 새끼야! 너 씨발, 어디 갔는데!"
지혁이 건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꺼놓고 섬사람들에게 물어물어 한 중화요리 집을 찾았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줌마가 보였다. 뽀글뽀글 아줌마 파마에 앞치마를 메고
꽃무늬 몸빼바지를 입은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아줌마. 저게 권지혁의 엄마라고? 내가 본 권지혁의 엄마는 긴 생머리의 하얀색 투피스에 검은색 구두를 신은 사람이었는데
저게 권지혁의 엄마가 맞다고? 문을 채 닫지 못하고 멍하게 서 있으니 권지혁의 엄마로 추정되는 아줌마가 말을 건다. 짜장면 먹으러 왔어? 라고 묻는 권지혁의 엄마의 물음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저기, 학생..짜장면 먹으러 왔어?"
"네..한 그릇 주세요.."
"혼자 온거야? 일행은 없어?"
"네..저 혼자에요."
의자에 앉아 짜장면을 만들러 들어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정말 권지혁의 엄마가 맞을까? 지혁이의 엄마가 맞기나 한걸까? 내가 잘못 찾아온건가? 머리가 복잡했다.
10년만에 이렇게 사람이 변할 수 있는건가..싶었다. 식당에 사진이라도 걸려있나 싶어서 액자를 찾아보니 흔적도 없다. 싸그리 다 버린걸까..저 아줌마에게 권지혁을 아냐고
물어봐야 하나..나름대로 궁리를 생각했다. 저 아줌마에게 어떻게 물어봐야 할까...
"학생! 짜장면 다 됐어!"
아줌마가 식탁에 짜장면과 단무지를 놓아주시는 동안 현수는 고민 했다. 이 아줌마에게 지혁을 물어봐도 되려나, 아줌마가 짜장면을 놓고 자리를 뜨려고 하자 현수가 그녀를
붙잡았다. 아줌마 저 물어볼거 있어요. 간신히 입을 뗀 현수가 그녀를 자리에 앉혔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괜한 긴장이 정적을 만들었고 그 정적이 그녀를 더 불안하게 했다.
뭐..물어보려고? 그녀가 현수에게 물었다.
"지혁이..아시죠?"
"지혁이가..누구야?"
"아시잖아요."
현수의 말에 그녀가 당황하는 것이 보였다. 몰라. 그게 다 티가 나는데도 그녀의 입은 거짓을 말한다. 눈썹이 파르르 흔들리는게 다 보이는데,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자꾸 앞에 있는 화분을 쳐다보는게 다 보이는데, 변화가 느껴지는데 그녀의 입은 거짓을 고한다. 알았어요, 저 갈게요. 현수가 짜장면은 입에도 대지않고 일어났다. 그녀가
흠칫 놀라는게 눈에 띄었다. 그녀가 현수의 옷을 붙잡았지만 그대로 중화요리 집을 나왔다. 스산하게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친다. 결국 아무 수확도 얻지 못하고 돌아가는건가.
권지혁의 엄마와 말이나 해보자고 학교도 땡땡이 치고 온건데 수확이 없다.
"아, 씨발..여긴 또 어디야.."
몇시간 째 길을 헤멨다. 갔던 길을 또 가고 길을 돌아가고 길을 잘못 들고..무슨 미로에 온 것 같았다. 초행길이라 헤메는게 더 심했다. 올라오는 숨을 급하게 내쉬었다.
여기 오면서 먹은게 아무것도 없어서 배도 고팠고 춥기까지 했다. 딱 거지꼴이었다. 여기서 버스도 끊기면 노숙이었다. 지혁의 엄마를 만난게 오후였으니까 지금은 시간상으로
저녁일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고 눈 앞의 시야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집 한채도 보이지않고 사람도 다니지 않는다. 하긴..지금 저녁이고 날도 추운데 나올 사람이 있으랴..
현수는 한낱 희망을 포기하고 제 발을 빨리 했다.
"권지혁 엄마 만나려다 내가 뒤지겠네."
현수가 제 자켓을 여미고 앞으로 걸어갔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길을 어떻게 들어 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찬 바람이 옷 속으로 들어오고 매서운 추위에
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러다 진짜 죽는건가..졸음이 몰려왔다. 이 상태로 신문을 덮고 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안구정화 멤버들과 동생, 그리고
딴따라 부모님이 생각났다. 여기서 죽으면 안구정화의 기타는 누가 하며 동생은 누가 봐주며 집안은 누가 책임질까.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아..버스 정류장인가?"
눈 앞에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작은 버스정류장에는 노인들이 몇명 있었고 젊은 사람은 보이지도 않았다. 아무렴 어떠리, 사람을 봤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뭐 주위에
집 한채 보이지않고 차도 다니지 않지만 그래도 여기를 벗어 나고싶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다가가니 눈에 초점이 없는 노인들이 현수를 쳐다보았다. 기기긱, 한 노인이 목을
돌려 현수를 쳐다보는데 목에서 소리가 났다. 초점 없는 눈으로 한동안 현수를 응시하다 다시 정면을 보았다.
"젊은 사람이 여기를 왜 왔어.."
다른 노인처럼 정면만 응시하던 노인이 입을 뗐다. 다른 노인들도 그 노인의 말에 동조해주는 분위기였다. 한 할아버지가 현수의 무릎을 붙잡았다. 헛된 생각 하지말고 빨리
여기를 떠! 다른 노인이 현수의 팔을 붙잡고 현수를 정류장 밖으로 끌어냈다. 넌 아직 안되! 현수는 어리둥절 했지만 일단 그 노인의 팔을 뗐다. 왜 그러시는데요..현수가
그 노인에게 물으려는데 멀리서 버스가 왔다. 노인들이 차례대로 버스에 올라타고 현수도 그 버스에 탔다. 신기하게도 버스의 구조는 1인석이었다. 현수가 자리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다가 다시 노인들을 보니 멍하게 앉아있었다. 꼭 죽으러 가는 사람들같았다. 현수가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가 다시 떴다. 한 남자가 노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었다. 왠지 느낌이 불안했다. 그의 눈에 띄지않게 몰래 뒷자리로 가 숨었다.
"아, 썅..내가 진짜 버스를 잘못 탔나.."
버스좌석과 좌석 사이에 숨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으니 그도 사라져있었다. 그렇다고 잠을 잘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잠을 자면 안되는 분위기, 그건 현수도 알고 있었다.
조용히 버스가 가는대로 앉아있으니 버스가 정차해있었다. 그에게 걸리지않게 노인들 사이에 껴 버스에서 내리니 한 마을이었다. 여기가 어디지? 현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앞으로 걸어가다 어떤 사람과 부딪혔다. 현수가 그에게 사과하니 그가 인자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현수를 지나쳤다. 오히려 뻘쭘해진 현수가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비슷했다. 무엇인가 느낌이 비슷했다.
"저기요!"
"네?"
"여기가 어디에요?"
"아, 처음 오셨구나~"
그가 현수의 손을 붙잡고 어디론가 향했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셔야되요! 한참을 갔을까, 그가 현수의 손을 놓고 다시 길을 돌아갔다. 이상한 마을이었다. 현수가 그가
안내해준 곳으로 들어가니 세상이 흑과 백으로 나뉘어져있었다. 이건 마치 과거와 현재의 모습같았다. 근데 왜 자신을 여기에 데려다 놓았는지 궁금했다. 그 곳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니 아까와 같이 사람들이 보였다.
"청년!"
"저..저요?"
"그래, 청년..여기 처음 왔구나?"
"그걸..어떻게 아세요?"
척 보면 척이지..한 노인이 현수를 데리고 과거와 현재가 반으로 갈린 그 앞에 섰다. 뭔가 이상하지? 노인이 현수에게 물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느냐고. 노인이 현수에게
다시 되물었다. 노인의 물음에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쉽게 올 수 없는 곳이야..노인의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노인의 웃음에 기분이 나빠진 현수가 노인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지니 노인이 다시 현수의 옆으로 왔다. 나 무서운 사람 아니야, 너 잡아 먹는 사람도 아니고..노인이 그렇게 말하며 혼자 웃었다. 혼자.
"저기에 사람들 보이지?"
"네.."
"다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야.."
"그럼 저기는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데요?"
사람을 만나야되. 노인의 말에 현수는 더이상 묻지않았다. 저 세상에서 한 사람을 보았다. 우리 모두가 찾던 그 사람. 노인이 뒤돌아 나가자 현수도 노인을 따라나갔다.
그래서 넌 어디서 지낼건데? 노인이 현수에게 물었다. 노인의 물음에 현수가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하고 뜸을 들이니 노인의 현수의 손을 잡았다. 그럼 우리 집에서 지내자.
노인이 선뜻 현수를 제 집으로 데려갔다. 평온하고 평화로웠다. 이 곳은..구제도 받지않고 간섭도 받지 않으며 제 하고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 한국처럼 시위도 없으며
피켓을 들고, 제 머리를 깎지도 않고 디스도 없고, 퍼포먼스도 없는 곳. 사람들의 얼굴에 힘든 기색이 보이지않았다.
"자, 여기가 우리 집이야."
노인이 현수를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노인의 집에 들어가니 노인이 현수를 의자에 앉히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나와 현수에게 먹을 것을 내주었다. 독이라도
탔나, 약이라도 탔나 싶어서 냄새를 맡아보고 혀를 내밀어 핥아보니 노인이 현수를 귀엽다는 듯 쳐다보았다. 너 안 죽이니까 많이 먹어도 되. 현수의 의심이 사그라들지 않자
노인이 현수에게 내준 음식을 한입 먹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음식을 먹는 노인을 보고 의심을 푼 현수가 그 음식을 먹으니 노인이 현수를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혹시 너 병희냐?"
"병희가 누구야?"
"아니야?"
현수가 노인을 뚫어지게 쳐다보니 노인도 현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병희와 닮은 구석은 없었다. 도대체 이 노인은 누군데 선뜻 잘 곳을 내주고 먹을 것을 내주고 친절하게
대하는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쨌든 노인이 준 음식을 다 먹은 현수가 가만히 앉아있으려니 노인이 다시 현수에게 말을 걸었다.
"넌 누구를 찾으려고 여기 왔는데?"
"찾으러 온 사람 없어요..아, 한명 보고싶은 사람은 있다."
"그게 아까 그사람?"
"네.."
노인이 먹던 차를 내려놓았다. 난 다시 일하러 가야겠다. 넌 여기서 좀 쉬고 있어. 노인이 생긋 웃으며 집 밖으로 나갔다. 노인이 나간 뒤 집안을 뒤져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주인이 있는 집안을 허락없이 뒤지는 것도 껄끄러웠고 어느새 저 노인을 믿고 있는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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