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계속 운다. 종인이 태우던 담배연기와 엇비슷한 구름을 한가득 펼쳐놓고 목 놓아 울고만 있다. 빗줄기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빠르게 온 몸을 적셔왔다. 눈앞의 건물을 올려다보는 동안에는, 눈동자 위로 떨어져 시야를 말갛게 만들어버리기도. 그저 그대로 건물 안에만 갇혀 있다가는 끝도 없는 우울의 바다로 빠져들어 질식할 것만 같아서, 무작정 지하주차장으로 달려 내려가 무슨 정신인지도 모른 채 이곳까지 와버렸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빗줄기는 더욱 세차게 경수를 때린다. 종인을 찾으려는 발걸음이 더 빨라지려는 찰나에, 이기적인 웃음소리가 들렸다. 소위 종인이 말하는 윗대가리들의 비웃음 소리였다. 시선의 끝에는 제 또래의 소년이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서있었다. 그 이유는 얼마가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자들이 그 소년의 앞에 서서 머리칼을 한 움큼 휘어잡고 따귀를 날려댔다. 머리칼을 잡은 손을 풀어내고 바닥에 넘어진 소년에게 발길질을 헤대는 남자들. 그 발길질에 입술이 터졌고 몸 곳곳에 멍자국을 남기려 하고 있다. 소년은 힘겹게 남자의 다리를 붙잡고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애절한 목소리를 해댄다.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도망 안 갈께요."
"그러게 누가 너보고 도망가래? 니년이 죽지 않고서야 여기를 빠져 나갈 생각을 했겠어? 도대체 김종인은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잘못했어요. 제가 다 잘 못했어요. 네? 그러니깐 제발..."
남자의 손이 다시 소년의 머리칼을 쥐어잡고 당긴다. 머리칼을 잡힌체 질질끌려가는 소년의 눈에는 눈물이 멈출세가 없었다. 이들의 관계는 호스티스와 그 호스티스를 관리하는 아니 관리라기보다 감시하는 포주들이다. 이들을 묶어놓은건 돈이다. 소년은 경수와 비슷한 처지로 아버지의 빚을 몸으로 값고 있었다. 처음 빌려간 돈은 5천만원 그 돈이 이자를 먹고 자라 억소리나는 액수로 바뀌어버린것이였다. 1년만에 불어난 돈을 값지 못해 제 아들을 팔아넘긴 아버지. 아버지란 명칭도 아까운 인간이다. 5천만원을 도박으로 순식간에 날려버린 아버지란 작자. 이제 막 꿈에 그리던 음대에 합격해 음악이란걸 본격적으로 배워보려 했던 소년의 꿈을 한숨의 재로 날려버린 인간.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제 꿈도 펴보지 못하고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린것이다. 그것도 모잘라 소년이 일하는 룸살롱으로 찾아와 온갖 불쌍한척은 다하면서 돈을 갈취해가는 인간이다.
하루에도 수십번 자신의 하얀 손목위에 시퍼런 칼날을 세우는 소년. 하지만 매번 실패로 돌아간다. 맞는걸 죽는것보다 싫어하던 소년이라서 제 손목에 칼을 스친다는 생각만 해도 몸서리를 치면서 날을 던져버리는 인간이다. 죽지도 못하고 도망가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눈물로 버텨내고 있었다. 룸살롱이 한참 영업을 시작한 시간이라 고급 양복을 쫙빼입은 남자들이 제각기 창녀들의 팔에 이끌려 룸을 잡고 있다. 그 사이로 질질 끌려가는 소년. 이 룸살롱의 마담급인 여자가 허리에 손을 집고 있다 남자의 싸대기를 날려댔다.
"개새끼야, 누가 내 물건에 흠집내래. 이 년이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 오늘도 이 년 예약한 사람이 한둘인줄 알아? 너 미쳤어! 이 개새끼가 장사 말아먹을려고 작정을 했네."
"하지만 도망갈려고 하는걸 어째요. 이렇게라도 안하면 이 년이 또 도망갈꺼아니에요."
"누가 잡아오랬지 애를 때려잡아오랬냐? 넌 가서 빨리 준비해. 지금 오고계신다니까. 씨발, 입술 화장으로 잘좀 가려봐. 짜증나네."
경수는 눈을 감고 심장께로 두손을 가져가본다. 일정한 세기로 뛰어오르는 심장 박동이 내게 묻는다. 힘드냐고. 같은 좆달린 새끼에게 엉덩이를 내주고 신음소리를 흘려주는게 힘드냐고. 물론 그러하다고, 망설임없이 대답 할 수 있지만 그뿐인 현실이 아니라 경수는 아플 수 밖에 없다. 4년전, 부모님이 쓴 사채가 감당이 되지 않아 하루 아침에 가세가 기울고 경수는 사채업자들이 사창가로 밀어 넣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수가 사채업자들의 말에 순순히 따른 것이다. 만약 따르지 않았다면 불법 장기 밀매로 경수의 장기만 살고 경수의 몸은 죽어 어디에 떠다닐지 모르는 일이었으니 제 딴에는 참으로 다행인 것이다. 엉덩이가 화끈거리고 끙끙거리는 일만 아니면 경수는 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죽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 여긴 지는 모르나 정말로 잘 적응했다. 오죽하면 사채업자들도 어린 것이 참 독하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일까.
경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벽을 붙잡고 공포에 질린듯 거칠게 숨을 내쉬는 소년을 응시했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흘러 내렸고 그 땀에 속눈썹을 높게 치켜 세워주던 마스카라가 번져 눈가에 검은 물을 들여놨다. 옷도 말이 아니다. 가슴골이 다 보일정도로 푹 파인 티셔츠와 살짝만 엎드려도 치마가 속옷이 다 보일듯한 치마를 입고 있다. 소년의 모습은 창녀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소년은 분장실로 달려갔다. 말이 분장실이지 천장에는 거미줄이 쳐있고 먼지가 공기중에 그득한 창고였다. 분장실안에 들어서자 그를 흘겨대는 창녀들이 여럿이다. 그도 그럴것이 자기들보다 늦게 들어온게 찾는 손님은 더많으니 질투를 안할 수가 없을것이다. 그것도 남자에게 밀리다니. 소년의 심성이 조금만 더 못됐더라면. 이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고 이 뒷세계에서 물들 수 있다면 차라리 나을텐데.
"힘들지?"
조심스레 경수가 다가가 물었다. 소년은 아니요-라고 대답하며 침을 삼켜 목울대를 적셨다. 경수도 소년의 이야기를 종인으로부터 들은 적 만 있지 이렇게 말을 걸어보기는 처음이라 소년을 바라보는 눈빛에 서늘한 두려움이 섞인 호기심이 섞여있다.
"이름이 뭐야?"
말을 주고받는 내내 소년의 숨소리마저 줄어들었다. 소년의 마음 한 켠 공포심이 겨우 사그러든 자리에, 이제 불신이라는 뜨거운 감정이 자리했다. 창밖에서 가을비의 노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느리게, 점점 빠르게, 그러다 온전히 빠르게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분장실 안을 메운다. 소년의 눈물소리 같다.
"첸이요. 첸이래요."
"첸?"
여기서 본명을 아는 것은 무의미(無意味)하다. 어차피 예명으로 불릴 소년의 이름을 알아봤자 무익(無益)하다. 이기적이나 그게 옳다. 듣는다고 해서 달라질 상황이라는 것은 없으니까. 괜히 소년의 본명에 따로 있음에도 첸이라는 이름에는 서글픔이 들어서 경수는 땅바닥을 맨발로 쿡쿡 쳤다. 발바닥에 뿌연 흙먼지가 보기 흉하게 묻었다.
경수는 먹먹함을 달래보려 첸의 앞머리를 쓸어내렸다. 첸은 눈짓으로 말하고 있다. 나는 무섭다고.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도와 달라고. 그 마음이 눈에 훤히 보여, 경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첸의 앞머리만 쉬지 않고 쓸어내린다.
"내가 대신 해 줄까?"
"...."
"첸, 나 되게 잘 해. 귀한 손님 오면 맨날 나만 내놔."
경수가 장난스럽게 까르르 웃었다. 결국 말했더니 첸은 말 대신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수긍의 의미였다. 끄덕이는 모습에 얼마나 많은 망설임들과 미안함이 담겨져 있는지, 첸의 턱 끝이 자꾸만 떨렸다. 부르르 떨리는 턱을 보면서 경수는 손바닥을 폈다 쥐었다만 반복 했다.
경수가 분장실을 나오자 종인이 분장실 앞에 쭈구려 앉아 있었다. 젖어있던 머리칼도 점점 말라간다. 경수는 종인의 발끝에 수북이 쌓여있는 담배꽁초들을 보며 가만 미소를 지었다.
"나 기다렸어?"
"어."
"나 오늘도 손님 받아."
"도경수,"
얘는 참 말이 짧다. 경수가 서투르게 웃었다. 유일한 열기가 양 볼에 남는다. 종인은 돌처럼 그대로 굳어 서있다. 비를 맞아서 인지 경수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촉촉하다. 이내 한걸음을 앞으로 내딛으며 조심스레 나를 안아준다. 차갑게 젖은 종인의 머리칼 사이로 빗물에 감춰진 경수의 눈물이 흘러들어간다. 힘없이 떨어뜨려놓은 두 손을 그대로 두고, 종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보았다. 뛰어오르는 종인의 심장소리가, 기댄 경수의 얼굴까지 아득히 전해져오는 것 같다. 눈을 감아보았다. 어지럽다. 한 순간에 이 세상이, 위험한 모험의 장으로 돌변해 영혼까지 뒤흔드는 것만 같다. 오지에서 벗어나자, 더욱 깊은 오지의 팻말이 눈앞에서 아른대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상황만 보고 떠나버린다면, 이대로 우리 어디로든 멀리 나아가기만 한다면, 그럼 우리는 행복할까. 행복할 겨를도 없이 크게 다치고야 마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종인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 칠흑같이 캄캄한 현실을 믿지 못하겠다.
"노래 불러줘."
"나중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금 전보다 오래, 경수 입술 위에 머무는 종인의 입술을 느껴보았다.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사랑으로 느껴지는 것은, 종인의 입술이 담고 있는 온기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가 사랑을 해도 될 까. 이 추악한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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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유지태 못알아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