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었다.
마지막 수업을 듣고 강의실을 기분 좋게 빠져나가던 학우들은 방학 계획 얘기로-그래봤자 술, 술, 그리고 또 술이겠지만- 들떠보였다. 잘 다듬어진 정원에 학교의 권위를 제대로 인식이라도 시켜주듯 굳게 서 있는 마크모형으로 만들어진 돌만이 제자리에 멈춰 있었다. 아니, 그 옆에 한 남자가 멈춰 서 있었다.
“…아, 몰라 끊어!”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은 도경수는 한참을 액정을 바라보며 투덜거리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경수는 학교 근처 -나름 지은지 1년밖에 안 된-원룸에 살았다. 원래는 방학의 시작과 함께 미리 아르바이트를 구했던 저의 집으로 갈려던 터였다. 하지만 경수네 부모님은 서울에 있는 원룸에 혼자 골골대던 경수에게 연민 따위 가지지 않는 쿨하신 분들이었다.
‘괜히 와서 동생이랑 집안 난장판 만들지 말고 거기서 알바해. 엄마 없어도 밥 잘 만들어 먹는다며~ 알겠지 경수야?’ 지금 밥이 문제가 아니라구요. 어렵사리 아는 인맥을 끌어들여 편의점 알바를 구했는데……. 그걸 어떻게 얻은건데!!
옷을 갈아입고 비록 작지만 제 사이즈에는 딱 맞은 쇼파에 몸을 맡긴채로 텔레비전을 켰다. 한 손으로는 핸드폰으로 알바천국을 뒤적거리면서. 삼일 내내 찾은 결과, 어렵사리 구하게 된 알바가 파리바게트 알바였다.
“편의점에서 노가리나 까는 거 보다 낫네, 뭐…”
* * *
파리바게트에 출근한지 일주일하고도 삼일이 지났다. 경수는 이 알바가 참 좋은 알바라고 생각했다. 퇴근 할 때 마다 제게 남은 빵을 모조리 긁어주던 홍누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나눠 갖는건데, 그 누나는 유독시리 경수를 잘 챙겨줬다. 경수가 데우고 썰어준 소시지 빵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느니 그런 소리를 하는 손님에게도 ‘저기 저 분 머리카락이 들어갔다구요? 저렇게 짧은데 모자까지 써서 군 입대 하는 사람 같은데 무슨!’ 이런 식으로 날카롭게 대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 점장님한테 혼나기 까지 했다. 그럴 때 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누나.’ 하고 씩 웃어 보일 때 마다 홍누나는 헤벌쭉 웃으면서 ‘아이 참~’ 이러곤 했다.
그러던 와중 뜻 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이거 계산이요.”
“네~ 생일이신…. 어. 변백현?”
변백현이었다. 축 처진 눈만 봐도 대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자기 이름 석자가 불리우자 꽤나 놀랬는지 돈 꺼내는 것을 멈추고 위로 올려다 본 백현은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도경수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그렇게나 놀려 먹던 도경수. 저 유니폼 되게 웃기네.
“도경수, 여기서 알바하냐?”
“어? 응. 하하… 쑥스럽다. 야, 좀 기다려 줄수 있냐?”
“왜. 나 바쁜데.”
백현은 사실 약속도 잡혀 있지 않았고 지금 사던 케익도 오로지 자기가 먹기 위해 사는 것이었다. 단지 갈색 유니폼을 입고 자기 앞에서 포장을 하는 경수가 왠지 새로워 보였다. 킥킥대면서 바쁘다고 하니, 금방 울상이 되어서는 야 나 너랑 할 얘기 많단 말이야. 하던 모습은 뭐랄까…, 정말이지 귀여웠다.-백현은 이 느낌을 전혀 다르게 해석해버렸다. 이를테면, 괴롭히고 싶다.-
“많이 기다렸지?”
“어.”
“야아~ 진짜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더 미안해지게.”
장난으로 한 말에 또 저렇게 미안해하는 도경수는 더 웃겼다. 제 손에 빵이 한아름 들려 있었는데 이게 다 뭐냐고 하자, 자기를 사모하는 알바누나가 다 준다면서 킥킥대던 면상엔 죽빵을 날리고 싶을 정도였다. 이게, 고등학교때는 내 빼빼로 반의 반도 못 따라 왔던게!
“왜. 너도 하나 먹고싶냐?”
“엉.”
“…헉. 진짜? 말을 하지. 뭐 먹고 싶은데? 골라!”
“요거.”
그냥 대충 맨 위에 있는 빵을 골라 잡은 백현은 빵 봉지를 뜯으면서 입에 물고는 할말이 뭔데.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머릿속에서 할 말을 정리하고 있던 도경수가 한껏 들떠보이는 표정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니, 말들어봐! 내가 분명히 이번 방학때 집으로 내려 가기로 했거든? 근데 있잖아, 엄마가…”
백현은 듣는 내내 웃음이 났다. 내용이 웃겨서가 아니고, 그냥 도경수가 저렇게 말 할때마다 뭔가 자신의 몸 안에서 공기방울이 톡톡 터지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그냥 웃음이 나는 기이현상이었다. 이런걸 엄마미소라고 하나…? 말도 안 돼.
“근데 그 케익은 누구거냐?”
“이거? 내건데.”
“븅신… 너 생일 아니잖아.”
“어.”
백현은 새삼 자기 생일을 기억하고 있는 경수가 고마웠다. 그냥 내가 먹고 싶어서, 라고 말하니 금방 수긍하듯 아~ 너 케익 덕후였지. 이러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너 왜 서울에 있어??”
“나 대학교 편입. 너네 학교 들어가. 새학기부터.”
“…대박.”
“그래서 말인데, 나 원룸 좀 구해줘.”
“응?”
“원룸. 씨바, 하숙하기는 싫고 나 혼자 궁상떨면서 있고 싶다.”
“여기 요새 집값 올랐는데.”
“상관없고 그건, 넌 어디살어.”
“저~기. 수만빌.”
경수의 손 끝을 따라 가니 수만빌이 으리으리하게-경수 눈에만-버티고 있었다.
바람이 쌀랑 불었다. 팔에 오도도 소름이 나자 경수는 서둘러 백현과 인사를 정리하려 했다. 그런데 경수눈엔 마치 백현이 길 잃은 강아지와 다를 바 없이 비춰졌다. 꼭 변백현 닮은 강아지가 경수야 나 추워. 집에 들어 보내줘. 하고 개같은 소리를 짓껄이고 있는게 들렸다.
첫 편이라서 양이 적은게 맞는...
배또백또 과연 배틀호모가 될지 안될지 저도 몰라욤8ㅅ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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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유지태 못알아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