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욱, '오메가' 라는 말 한마디로도 뱃속 깊은 곳에서 아플만큼 토기가 치밀어오르는 느낌에 급하게 입을 틀어막은 지호가 경련하듯 떨리는 눈빛으로 지훈을 보았다. 알파의 눈. 이브를 꾀어 선악과를 먹인 저 뱀같은 눈빛. 저 더러운, 자신들만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금방이라도 무언가 쏟아져 나올것같은 역겨운 기분에 지호가 본능적으로 화장실을 향해 뛰어갔다. 우지호! 뒤에서는 저를 불러오는 '표지훈' 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욱…!"
토사물이 쏟아졌다. 머리가 빙빙 어지러웠다. 역겨워. 변기 속으로 쏟아지는 토사물의 역겨운 냄새보다, 자신을 뒤따라온 알파의 냄새가 더 진하고 더럽게 풍겨져왔다. 지호가 다시 속을 게워냈다. 오메가, 오메가, 오메가. 이 지겨운 오메가. 이 빌어먹을 오메가! '오메가' 라는 신이 내린 저주를, 자신의 숙명을, 모든것을 토해내듯 미친듯이 게워내던 지호가 말없이 등을 토닥이는 지훈의 손길에 토사물과 함께 피눈물을 쏟아냈다. 핏줄이 터질듯 불거진 충혈된 눈을 치켜뜨며 그가 알파를 돌아보았다.
역겨워…! 지훈과 눈을 마주하자마자 지호의 몸이 힘없이 쓰러졌다.
스트레스성 위염, 상세 불명의 십이지장염, 만성 편두통, 영양실조. 이하 지호의 병명이었다. 병원 특유의 냄새가 기분 나쁠만큼 감도는 병실 안에서 침대에 링거를 꽂은 채 누워있는 지호는 위태로워 보일만큼 하얗게 질려있었다. 무엇이 너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도대체 뭐가 널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바꾸어 놓았을까? 지훈은 그저 걱정어린 눈으로 지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제멋대로 지호가 스트레스를 받은 요인에 대해 결정을 내렸다. 아, 우지호도 오메가에 대해서 혐오증이 있구나. 그래서 오메가냐고 물어봤을때 발작을 일으켰구나. 알파는 그랬다. 뭐든지 제멋대로 세상을 평가하고서 자신들이 옳다고 확정했다. 알파가 그렇지 뭐. '우월' 하니까.
금방이라도 바스라질듯 위태위태.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멀리 있는 느낌이었다. 우지호에겐 무언가 보이지 않는 투명한 장벽이 있었다. 내가 더이상 다가갈 수 없는 어떠한 벽. 물론 다른 이들에게 친 장벽보다 훨씬 가까웠지만, 그에게 완전히 다가갈 수는 없었다. 완벽한 우지호의 장벽안에 무슨 내면이 숨겨져 있을까. 지호의 곧게 감겨진 눈을 바라보던 지훈이 시체처럼 희여멀건한 지호의 얼굴을 느릿하게 쓰다듬었다. 사라질것 같아서, 품어주고 싶은데. 어떤 것이 너를 억누르고 있을까? 평소보다 더 짙어진 눈밑의 연한 살을 문지르며 지훈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 아파도 예쁘다.
차라리 평화롭다.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이 세상은 너무나도 예쁘고 아름다웠다. 너나 할것 없이 조화로웠고,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모든 것이 잘 짜여져있었다. 아파하는 사람은 없고 웃는 이들만 존재하는 세상. 꿈에는 내가 나왔다. 말간 얼굴이 웃고있었다. 독하게 치켜 올라간 눈매는 예쁘게 휘어졌고, 줄곧 걱정에 시달려 잘근잘근 물어대던 입술은 호선을 그리며 웃어보였다. 행복하구나. 차라리 행복하다.
그러던 순간, 똑, 딱. 똑, 딱. 카운트 다운처럼 저 멀리 시계침 소리가 가까워졌다. 어느새 시커멓게 변해버린 하늘은 시계침 소리에 맞춰 잘 짜여진 퍼즐을 쏟아내듯 무너져내렸고, 꿈 속의 자신은 현실의 자신처럼 위태로운 얼굴을 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하늘이 없다. 바닥이 꺼졌다. 더 밑으로 가라앉았다. 똑, 딱. 똑, 딱. 시계침 소리가 귀를 찌르듯 가까워졌다. '내' 가 괴로워했다. 안돼. 안돼!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보지만 하늘은 없다.
신이 저를 버렸다.
"아…!"
"…아, 지호야!"
눈이 아플만큼 쏟아져오는 인위적인 빛이 정신을 깨웠다. 이곳이 현실이야. 하늘이 없고, 바닥은 가라앉는. 이곳은 현실. 천장이 낯설었다. 쓰게 웃어보인 지호가 다시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제 옆의 지훈을 보았다. 내 꿈속에 너는 없었어. 평화로운 그곳에 너라는 존재는 없었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완벽했고, 이상적이었다. 하지만 너는 그곳에 없었다. 네가 없어도 모든것이 완벽했다. 호흡기를 타고 들어오는 공기마저도 달콤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문장에 마침표를 찍지 않은 것처럼 지훈이 없는 세상은 행복하지만 무언가 허전했다. 네가 있어서 불행했지만 네가 없으면 내 세상은 이빨빠진 톱니바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내가 너를 애증하는 이유였다. 좋아하지만, 좋아할 수 없어. 세상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내 꿈속에 너는 없었어. 지호가 말없이 지훈의 손을 쥐어잡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잡힌 손은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