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돌릴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느 때로 갈 것이냐, 하는 질문에 대한 내 답은 오직 하나다. 11년 전, 부산에서 갓 상경한 엄마 친구 아들 박우진이 손을 내민 그 순간으로. #남사친 박우진 그러니까, 처음 박우진을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꼬박 11년 전인 7살 코흘리개 시절이었다. 박우진네 엄마 (이모라고 부른 지 꽤 됐다) 는 우리 엄마와 부산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연락을 이어온 돈독한 친구 사이이고, 우리 가족은 내가 태어나기 전 아빠 직장 때문에 서울로 올라왔다. 7년 뒤, 박우진네 가족이 같은 이유로 서울, 우리 아파트, 그것도 바로 옆 동으로 이사 오게 되었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날은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기억난다. 짧은 머리칼과 조금 매서워 보이던 눈매와는 다르게 톡 튀어나온 부리 같은 입술. 공교롭게도 둘 다 멜빵바지를 입고서 각자의 엄마 다리에 바짝 달라붙어 나름대로 힐끔힐끔 눈치만 보던 때. ' 우진아, 엄마 친구 딸 여주. 오기 전에 얘기 해 줬지? ' ' ...응. ' ' 인사. 이제 둘이 친구 해야지. 내년이면 학교도 같이 들어갈 텐데. ' 박우진은 자기 어깨춤을 토닥이는 이모에 손길에 몇 번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내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몸을 더 숨기려다가 엄마의 손길에 밀려 박우진의 앞에 나서게 됐다. 눈이 마주치고, 공기의 흐름마저 어색했던 정적이 지나고, ' ...안녕. ' 단 두 글자뿐인데도 사투리 억양이 짙은 인사말과 함께 손을 내밀었다. 당차게 내민 손과는 다르게 터질 것 같이 빨개진 얼굴과 이리저리 흔들려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눈동자. ' ...풉. ' 그래서 무례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웃음을 터뜨렸다. 답지도 않게, 대차고 우렁차게. 허리까지 접어가며 웃자 박우진은 더욱 새빨게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 민망해진 손은 여지껏 나를 향한 채로. 상황 파악이 되자 급하게 덥석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사과했다. ' 미안... ' 박우진은 예상치 못하게 잡혀버린 손을 놀란 눈으로 빤히 쳐다보더니 눈을 굴리며 반대쪽 손으로 제 짧은 뒷머리를 두어 번 털었다. 그러다 눈을 마주치고 말했다. ' 괜찮다. ' 역시나 센 억양. 하기야 박우진은 서울에 올라온 지 11년이 지나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화가 나거나 당황하면 사투리가 튀어나왔다. 암튼, 박우진은 말을 마치 고서 부끄러운 듯 손을 쑥 빼서 제 등 뒤로 숨겼고 나는 어정쩡하게 손을 내민 채로 멋쩍게 웃었다. 박우진은 그런 나를 넋이 나간 얼굴로 쳐다보기만 했고. 별거 없이, 싱거운 첫 만남이었다. 그 뒤로도 줄곧 같이 다녔다. 몇 개월 남지 않았던 유치원도, 이모 말대로 같은 초등학교도. 그 옆에 중학교를 지나 조금 떨어진 지금의 고등학교까지. 물론 많은 에피소드들도 있었다.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고. 기가 차기도 했었는데 대체로 박우진과 같이 있는 시간은 편했다. 그래서 좋았다. 중학교 때부터는 마냥 박우진과 있을 수는 없으니 여자애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해도, 종국에는 박우진과 잘 되게 해달라고 찔러 오는 애들에 질려 평소처럼 박우진과 붙어 다녔다. 뭐랄까, 시간이 갈수록 박우진은 정변의 정석처럼 멋있게 잘 자랐지만, 워낙 어리고 찌질했던 시절까지 붙어 서로를 본 사이라 나한테 있어서 박우진은 늘 조금 애 같고 어리숙한 면이 강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많이 친한 친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앞으로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큰 착각이었다는 거지. 과거는 여기까지 두고. 눈만 돌리면 늘 보이던 박우진이, 요새는 볼 때마다 조금..., 이상하다. 토 할 것 같이 속이 울렁이기도 하고. 낮은 목소리로 엄마 마냥 잔소리를 퍼 부을 때도, 그게 좀... 듣기 싫지 않은 거다. ...근데 또 이상한 게, 이게 나만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기록 비스무리 한 거다. 서로 눈치만 보며 친구라는 벽을 치는 박우진과 나 사이에서, 그 벽이 허물어지는 영원 같은 찰나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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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이네요! 많이 부족하지만 재미있게 봐 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