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내용상 여주인공의 이름은 '김서연'으로 설정되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
1. 그들의 썸
작곡과 임영민은 차갑다.
"저기요. 오빠. 오늘 점심 저랑 먹을래요?"
"아니."
"야! 임영민! 연습실 가자!"
"그래."
연극영화과 김서연에게 한정해 차갑다. 아니, 어떻게 한 번을 안 웃어줄 수가 있지? 강의실 안의 모든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있었다. 어렸을 적 부터 예쁘장한 외모에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으며 자란 터라 이런 관심은 익숙했다. 하지만 그런 흔한 관심은 임영민만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임영민과 연극영화과만 바라보고 입학한 대학에서 1학년 1학기 동안은 임영민을 좀처럼 쉽게 만날 수가 없었다. 얕았지만 넓었던 서연의 인맥을 통해 2학기는 결국 작곡과 임영민과 비슷한 시간표를 만들어 내었다. 일부러 같은 교양을 신청했다. 서연은 패기롭게 첫째날 영민의 앞에 가서 오빠 저 알죠? 를 시전했다.
"..모르는데."
"진짜 몰라요?"
"우리 과야?"
"..하."
"..."
"연극영화과 김서연이구요. 오빠랑 같은 고등학교요."
진짜 모른다는 표정의 임영민이었고 답답해 죽겠다는 김서연의 표정이었다. 보다 못한 서연의 친구가 서연을 끌고 자리로 돌아왔다. 예쁜 애들 중에 이상한 애가 한 명씩 있던데 그게 서연이구나.. 친구는 작게 중얼거렸다.
서연은 2학기 내내 영민을 따라다녔지만 결과는 무. 아무 것도 없었다. 밥도 먹어 본 적이 없어, 전화번호도 몰라, 아는 게 없었다. 그냥 같이 강의를 듣는 사람들에게 오늘 김서연은 임영민에게 뭐라고 말을 걸 것인가? 가 제일 재밌던 요소였다. 긴 겨울 방학이 찾아오고 다시 개강할 땐 이번에도 얕고 넓은 인맥으로 임영민과 같은 교양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개강을 맞이한 서연의 미모는 업그레이드가 되어 있었다.
"오빠. 번호 좀 주세요."
"어?"
"헐. 잠금 풀려있어."
작곡과 임영민이 김서연에게 넘어갔다. 작곡과와 연극영화과에는 이렇게 소문이 퍼졌다. 둘이 같이 듣게 된 교양의 첫 수업 날 서연은 영민에게 다가가 당당하게 번호를 달라고 했다. 마침 영민은 폰을 만지고 있다가 서연을 보고 멍한 상태였고 잠금이 풀려있는 상태였다. 서연은 잽싸게 휴대폰을 가져가 자신의 번호를 찍고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서연은 홀연이 사라졌다.
'뭐야. 개강하고 나서 왜 이렇게 예뻐진거야.'
영민은 입덕 부정기를 겪고 있었다.
2. 얘네 그거 타요, 썸.
서연은 영민의 번호를 가져가 놓고도 연락을 한 번 못했다. 늘 당당하고 저돌적인 것 같으면서도 서연은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는 부끄럼쟁이였다. 번호가 있으면 뭐하냐구, 연락을 못하는데. 서연은 술만 마시면 영민의 생각에 엉엉 울었다.
서연은 오랜만에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사실 오랜만이라고 해도 이틀만에 마신 거다. 본격적인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오기 직전 마지막 밤이라며 울부짖으며 친구들과 서연은 달리고 또 달렸다. 서연은 중간에 너무 어지러운 탓에 잠시 밖에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며 친구들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술집 앞 벤치에 잠시 앉아 있었다.
"야. 영민아. 얘 너 따라다니는 연영과 김서연 아냐?"
"..."
영민은 술집앞에 웬 여자애 하나가 잔득 취해있기에 피해서 술집에 들어가려는데, 같이 들어가려던 친구가 김서연이 아니냐며 말을 걸어온다. 영민은 그냥 지나치려다가 이렇게 무방비하게 흐트러져있는게 진짜 김서연인가 싶어서 돌아봤더니 진짜 김서연이었다. 지금까지 강의실에서 봐왔던 모습은 늘 당당했고 깔끔한 모습이었는데 얘도 술을 마시면 이렇게 되는 구나.
"너네 먼저 들어가 있어."
"어? 너는?"
"..일단 들어가 있어."
나는 얘 좀 신경 써야 할 것 같은데. 영민을 제외한 모든 친구들이 술집으로 들어가고 영민은 벤치에 앉아있는 김서연의 앞에 쪼그려 앉아 서연을 올려다 봤다. 눈을 반쯤 감고있던 서연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눈을 부릅떴더니 영민이 앞에 있길래 깜짝놀라 영민의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덕에 영민과 서연의 얼굴은 코앞의 거리에 있었다.
"헐."
"..뭐가 헐이야."
"임영민 오빠예요?"
"맞는데. 나."
서연은 다시 놀라 얼굴을 뒤로 쭉 뺐다. 사실 서연의 얼굴이 영민의 코 앞까지 다가왔을 때 영민도 깜짝 놀라 숨을 멈췄다. 서연은 그새 술이 깨고 있는지 부끄럼쟁이가 되고 있었다.
"아, 아니. 여길 어떻게.."
"나도 술 마시러 왔는데."
"그러니까 아니, 왜 제 앞에 있냐구요.."
"너 잔득 취했길래 신기해서."
서연은 영민과 처음으로 길게 해 본 대화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하던 사이 영민은 서연이 앉아있던 벤치 맨 끝에 앉았다. 그 둘의 사이에는 사람이 한 명 더 올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있었다.
"..왜 안했어."
"네? 뭘요?"
"..연락."
"아?"
"네가 가져갔잖아. 내 번호."
"..."
서연은 눈알을 굴리며 생각했다. 내가 번호를 가져간 건 맞는데, 그러니까 나 왜 연락 못했지? 할 수 있었잖아. 아니야 나는 부끄러워서 연락을 못 했어. 괜히 연락했다가 차단 당하고 씹히면 어떡하냐고. 그래서 연락을 못했던 거다.
"부끄러워서요.."
"강의실에서 말 걸 땐 언제고."
"연락했다가 오빠가 씹으면 어떡해요."
"..안 그랬을 걸."
"그럼 오빠가 먼저 연락 하지!"
"..그러게. 그 생각을 못했네. 내가 할 걸 그랬다."
헐. 오늘 이 오빠가 왜 그러지? 이건 내가 분명 술에 취해서 헛 것과 대화를 하는 게 분명해. 나한테 차갑기만 했던 임영민이 그럴리가 없어. 영민은 자신의 볼을 마구마구 때리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서연을 쳐다봤다. 얘 뭐 하는 거지. 이상한 행동을 하다가 멈춘 서연은 울상인 표정으로 영민을 쳐다봤다. 이 표정은 왜 또 귀여워.
"나한테 갑자기 왜 그래요?"
"..니가 내 철벽 넘었잖아."
"어?"
"먼저 넘어놓고서는 연락도 없고, 요즘엔 말도 안걸어서.."
이 오빠. 잘생기기만 한 줄 알았는데 귀엽기까지 해. 위험하다.
3. 그들의 시작
술집에서 마주친 이후로 영민과 서연은 썸을 탔다. 작곡과와 연영과에서는 난리가 났다. 임영민의 철벽은 온데 간데 없고 김서연과 깨만 볶는다는 소문이 났다. 근데 그 둘이 사귄다고? 아니, 썸만 두 달 째래.
"오빠. 오늘은 치맥이 좀 땡기는 거 같아."
"먹으러 갈까?"
"응 가자!"
서연은 영민과 연락하기 시작하고 난 후로 천천히 말을 놨다. 사실 영민만 몰랐지 서연은 예전부터 다른 사람에게 임영민! 영민이! 하며 아예 호칭까지 말을 편하게 했다. 둘 다 서로 고백을 하면 바로 사귈텐데 왜 고백을 하지 않는 것일까? 작곡과 사람들과 연영과 사람들의 화두는 그들의 이야기였다.
고백을 하지 않았다고? 무슨 소리. 썸 탄지 2주가 흘렀을 때 영민이 서연에게 고백을 했다.
"서연아."
"응?"
"김서연 애하자."
"뭐라는 거야."
"연애하자고. 이제."
"뭐? 진짜?"
"응. 이리와 안아줄게."
서연은 영민에게 폭삭 안겼다. 그런데 작곡과와 연영과는 썸으로 알고있다. 다시 말해 영민과 서연은 짜릿한 비밀연애 중이었다. 늘 다른 동네에서 데이트를 했고 몰래 만났다. 언젠가 배우가 될 서연을 위한 영민의 배려였다. 학교에서 같이 다녀도 스킨십은 자제했고 늘 둘다 애타다가 다른 장소에서 데이트를 할 때 서로를 놓지 못했다.
더워서 밖에 도저히 나갈 수가 없던 여름, 서연과 영민은 영민의 자취방에서 에어컨을 켜놓고 놀고 있었다. 에어컨 덕에 둘 다 보송보송한 상태로 재방송하는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물론 서연의 연기 연습 때문에 제일 좋아하는 감독의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고 서연 외에는 관심없는 영민은 서연을 백허그 한 상태로 서연의 어깨에 턱을 올려놓고 있었다.
"영민아. 나 나중에 저렇게 연기할 수 있을까?"
"응. 당연하지."
"꼭 저 감독님 작품에 나와보고 싶어. 그럼 내 필모가 굉장해질텐데."
"서연아."
"응?"
"그냥 너 자체가 작품이야."
말 예쁘게 하는 것 좀 봐. 드라마를 보고 있던 몸을 돌려 영민이를 쳐다봤다. 그리고 영민이의 볼을 잡고 이곳 저곳에 뽀뽀를 쯉쯉해주었다. 임영민 계속 입꼬리 올라가.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서연아, 나 이제 작사도 해."
"진짜? 나 보여줘!"
"나중에. 지금은 뽀뽀 더 해 줘."
"그럴까?"
서연이 다시 영민의 볼을 잡고 뽀뽀를 퍼붓다 영민의 입술에 뽀뽀를 했을 때 영민이 서연의 볼을 잡고 깊게 입을 맞췄다. 영민아 너 너무 달아 진짜. 평생 내 남자해줘. 서연아 그거 다 너 거야, 평생 닳을 때 까지 네 남자 할게.
'아이스크림이 녹는 건
내 마음이 너에게 녹아서 그런 거야.' - 작곡·작사 임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