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고현아 걸렸다!"
어느덧 무르익은 술자리지만 난 여전히 재미가 없었다. 그냥 그저 그랬다. 내 옆에 앉은 강의건만 신경이 쓰였다. 그 강의건은 내 얼굴을 한 번 쳐다보더니,
"흑기사."
이런 미친 소리를 내뱉었다.
"오!!"
"뭐야?! 뭔데?!"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 잔을 다 비웠다. 분명히 고현아니 뭐니 그 신입생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슬쩍 보니 고현아는 수줍은 표정으로 온 몸을 배배 꼬와댔다.
강의건 남자다! 소원 들어줘라! 우레와 같은 함성이 테이블을 감쌌고 강의건은 내 눈을 쳐다보며 볼뽀뽀? 를 읊조렸고 더 큰 함성소리가 나왔다. 순간 심장이 요동쳤지만 내가 관여할 부분은 아니었다.
그냥, 강의건한테 나는 전 여자친구일 뿐이라서.
*
우린 6년간 뜨겁게 사랑했다. 그동안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내 인생에서 이렇게 에너지를 소비한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열심히 서로에게 임했다. 하지만 시간도 시간이었는지 우리는 지쳤다. 아니 그냥 질렸다. 권태기가 지속되면서 우리는 그냥 서로가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그때, 일이 터졌다.
강의건이 미팅에 나갔다고 하더라. 우리가 사귀는 걸 우리 과 사람들은 몰랐다. 나와 사귀는 걸 처음부터 지켜본 내 친구가 말해줬다. 강의건 말로는 대타로, 선배부탁으로 나갔던 거라고 하지만 예전 같았으면 내 화를 풀어주려 노력했을 니가 미안하단 말 하나 없이 귀찮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게 그게 니가 미팅에 나갔단 사실보다 슬프고 화났다.
"의건아."
"싫어."
"뭔 줄 알고."
"니가 내 이름 부르는거 둘 중 하나잖아."
"......"
"사랑한다 하거나, 헤어지자 하거나."
"시간을 좀 갖고싶어."
"...그래 그럼."
짧은 한숨을 쉰 후 바로 수락한 강의건이 살짝 원망스럽긴 했지만 먼저 헤어지자고 한 내가 느낄 감정은 아니었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진 줄 알았지만 6년의 시간을 무시할 순 없었다. 며칠 정도 지나 강의건에게서 문자가 왔다.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답은 하지 않았지만 거기에 마음이 흔들렸던 건 사실이다. 나도 헤어지고 나서도 이따금씩 강의건 생각이 났으니까. 그런데 그 문자는 그때 미팅을 했던 여자와 잘 해보려 하다가 든 마음의 짐을 씻기 위한 것이었는지 그 다음날, 그때 그 미팅을 했던 여자와 잘 되간단 소식이 들렸다.
그냥 최악이었다.
*
술게임은 계속 되었고 고현아는 어느새 나와 강의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강의건 옆에서 하하호호 잘도 떠들어 댔다. 나도 모르게 그 둘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사이에 왕게임은 시작되었고 난 내가 뽑은 종이를 펼쳐 보지도 않았다.
"3번이 8번한테 볼뽀뽀!"
유치하긴 했지만 갑자기 세진 수위에 누군지 궁금하기도 했다. 모두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재수없게도 강의건이 8이 적힌 종이를 탁자에 놓았고, 3은 나오질 않았다. 강의건이 8번인 걸 확인하고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진 나는 불안한 눈빛으로 내 종이를 확인했다. 내 종이가 아직 펼쳐지지 않은 마지막 종이란 것을 알았던 다른 사람들 모두 내 종이에 집중했고 기분 더럽게도 내 종이엔 3이라는 숫자가 너무 정확히 적혀있었다.
"이름이네!"
모두가 소리를 지르며 분위기를 올렸지만 애석하게도 난 그 분위기에 맞게 반응을 해 줄 수가 없었다. 강의건은 알딸딸한 상태로 소파에 기대어 나를 쳐다만 봤다. 이 모든 걸 아는 내 친구는 반대편에서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봤고 그 친구랑 망했다 는 눈빛을 주고 받았다.
"흑기사 하겠습니다."
그때쯤 신입생인듯 얼굴이 낯선 한 남자애가 일어서더니 강의건 옆으로 가서는
"선배님 사랑합니다!"
쪽-
난데없이 자기가 대신 강의건 볼에 뽀뽀를 했다. 정확히 한 3초간의 정적 후 주책맞은 남자 선배들은 니가 왜 하냐며 발길질을 했다. 모두의 원성에도 그 애는 멋쩍은 듯 웃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하 박지훈 저거 골때리네."
"아니지, 성이름! 너 지훈이 소원 들어줘야지!"
"네?"
"맞네! 소원! 소원! 소원!"
저 개저씨들은 언제 졸업하나 몰라. 당황해서 눈동자만 돌리던 순간에 박지훈이란 그 흑기사남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날 쳐다봤다.
"누나."
"...?"
"누나 번호 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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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이네요 ! 모두모두 반갑습니다.
암호닉은 .. 해주실 분 있으시다면 감사히 받아요.
감사합니다.
_Jun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