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타닥-
키보드 위를 바쁘게 움직이던 손이 서서히 멈췄다.
쓸쓸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모니터 화면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까만 눈동자.
모니터 화면의 눈부심 때문인지... 뜻하지 않은 눈물 때문인지...
급하게 두 눈을 두어번 깜박인 그가 유리창에 물든 밝은 햇살로 시선을 옮겼다.
"...1년..."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마른 입술을 비집고 실소가 터져나온다.
눈이 시린 햇살.
창틈을 비집고 스며들어오는 따스한 바람.
귓가에 맴도는 시계 초침 소리.
기다란 시곗바늘이 다섯번의 작은 움직임을 보이고서야 그의 까만 눈동자가 다시 모니터로 향했다.
키보드 옆에 놓인 머그잔을 천천히 들어올린 그는 이미 식어버린 커피 한모금을 삼켰다.
"오늘의 날씨."
마른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말을 따라 그의 하얀 손이 다시 자판 위를 바삐 움직인다.
"매우 흐림. 안개. 구름..."
마침표 한번이 아닌 세번을 연달아 누른 그의 손끝이 다시 서서히 멈춰섰다.
들릴듯말듯 작은 한숨을 내쉬는 그의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365일째 적고 있는 일기.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다시 봄.
계절이 바뀌고 날씨도 바뀌었지만 그의 마음속에선 늘 같았다.
그가 매일매일을 기록한 일기장의 날씨는 항상 흐렸다.
「태환. 고마웠어요.」
"그래."
「당신을 만나 행복했어요.」
"나도 그랬어."
「우리 다시 만날수 있을까요..?」
"................."
그를 떠나보내던 마지막날의 대화를 떠올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태환은 스며나오려는 눈물에 애꿎은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 다시 만날수 있을까요...?」
눈앞에 보이지 않는 그가 다시 물어온다.
귓가를 맴도는 그의 물음에 태환은 키보드에서 손을 떼어내고 눈물방울이 떨어져내리는 얼굴을 감쌌다.
"날 떠난건... 너였잖아..."
「..........」
"다시 돌아올거라고 말했던것도 너였잖아..."
「..........」
"네가 떠난 이후로 매일매일 내 마음속은..."
「..........」
"... 비가 내리는데..."
「..........」
".....넌...어때.........?"
파르르- 떨리는 손끝으로 깜박이는 커서 뒤에 뭔가를 입력한 태환은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거실로 향했다.
[365일째 장마. 흐리고 우울한 날들은... 오늘까지만.]
"흠..."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 것일까.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올려 어두워진 거실 천장을 바라보던 태환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오후 내내 창을 물들이던 햇살은 어디로 사라진건지... 짙은 어둠이 거실 바닥에 스며들어있다.
손바닥으로 부스스한 얼굴을 쓸어내린 태환은 밀려오는 갈증에 천천히 몸을 일으켜 냉장고로 향했다.
윙윙-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냉장고 문을 열어 시원한 캔맥주 하나를 꺼내들고 다시 거실로 돌아섰다.
"시원하다...-"
목을 자극하는 탄산에 미간을 잔뜩 찡그린 태환은 걸음을 옮겨 거실창으로 향했다.
창 아래에 짜놓은 키작은 책장 위에 걸터앉아 쇼파에 아무렇게나 기대어 놓인 기타를 집어들었다.
1년 전까지만해도 이런 취미는 없었는데.
공허한 마음을 어떻게 달래볼까 싶어 간간히 배웠던 취미가 이제는 제법 쓸만해졌다.
그래봤자 연주할 수 있는 건, 한 곡 뿐이지만.
손에 들린 맥주캔을 옆에 내려둔 그는 손끝에 닿아오는 기타줄을 몇번 튕기다 자세를 잡고 앉았다.
어두운 거실에 울리는 차분한 기타 연주소리.
음에 맞춰 작게 고개를 까닥거리던 그가 천천히 입술을 열어 가사를 읊조린다.
"넌 나의 태양. 네가 떠나고 내 눈엔 항상 비가 와. 끝이 없는 장마의 시작이었나봐. 이 비가 멈추지 않아..."
다른 가사는 읊지 않았다.
늘 가슴에 맺히는 가사는 이것뿐이었다.
그를 떠나보낸 그 날부터... 마음속은 늘 이 노래의 가삿말과 같았다.
두 눈을 지그시 내리깔고 몇번이고 같은 가사를 반복하던 태환은 갑작스럽게 들려온 초인종 소리에 손을 멈췄다.
띵동-
다시 울리는 초인종 소리.
왜인지 모르게 갑자기 뛰어오르는 심장때문에 태환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띵동-
기타줄에 매달린 손끝을 바라보던 태환의 두 눈이 천천히 비디오폰을 향한다.
띵동-
화면에 떠오른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의 까만 눈동자가... 흔들린다.
"태환-"
초인종 소리 대신 현관문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제서야 태환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리웠던 목소리.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는 그의 커다란 손.
비디오폰 화면에 가득 들어온... 그의 얼굴.
바닥에 떨어진 기타가 발끝에 채이는데도 그것을 느끼지 못했는지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문앞에 선 태환은 망설임없이 open 버튼을 눌렀다.
천천히 열리는 문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두 눈.
흡..하고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삼키며 그를 마주보던 태환의 까만 눈동자에 뜨거운 눈물이 차오른다.
"미안..해요. 많이 늦었..."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 그의 손을 끌어 현관안으로 당긴 태환은 그대로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태환의 눈물이...그의 붉은 가디건을 적신다.
타닥-타닥-
흘러내리는 안경을 손끝으로 슥- 올린 태환은 바삐 손을 움직여 뭔가를 적어나갔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밝은 햇살이 태환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붉게 물들인다.
입술 끝에 웃음을 매달고 한참동안 타자를 치던 태환은 거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태환~ 얼른 나와요. 달걀 프라이 다 식어요!"
"어~ 금방 갈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그를 향해 대답한 태환은 깜박이는 커서 뒤에 뭔가를 입력하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거실로 향했다.
[오늘의 날씨. 매우 맑음.]
"기타 배웠어요?"
"응... 취미 하나 만들어 볼까 하고."
"우와- 연주 하나 해줘요. 노래까지 같이 해주면~ 더 좋고!"
"아...잘하지 못하는데..."
"에이~ 조금만요~!"
"흠흠..그럼..."
수줍은 표정으로 기타를 집어든 태환은 손끝으로 기타줄을 튕겼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피식... 웃어보인 태환은 기타줄을 튕기던 손끝으로
그의 하얀 이마에 살짝 딱밤을 놨다.
두 눈을 동그랗게 떠올리고 왜 때리냐며 엄살을 부리는 그를 향해 태환이 나지막이 속삭인다.
"쑨양. 네가 그리울때마다 부르던 노래야. 이 부분을 부르게 될 날이.....올지 몰랐는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그에게 살며시 웃음을 지어보인 태환은 천천히 연주를 시작했다.
"넌 나의 태양. 네가 떠나고 내 눈엔 항상 비가 와. 끝이 없는 장마의 시작이었나봐. 이 비가 멈추지 않아.
언젠가 네가 돌아오면..."
조용히 가사를 읊조리며 연주를 하던 태환은 끝을 맺지 못하고 가사를 삼켰다.
애꿎은 입술만 깨물며 연주를 멈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쑨양을 바라본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깊은 눈동자.
커다란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다정한 손길에 태환은 두 눈을 감아내렸다가...천천히 떠올렸다.
"...언젠가 네가 돌아오면.. 그땐 널 보내지 않아..."
기타 연주없이... 가사 그대로를 전하는 태환의 목소리가 잠긴다.
툭-하고 뺨위로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입술에 닿아오는 따스한 온기.
부드럽게 닿아오는 쑨양의 입술에 놀란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떠올린 태환은 가까이 보이는 그의 속눈썹에 매달린
눈물방울에 두 눈을 질끈 감아내렸다.
..온기를 전하는 그의 입술이... 그의 눈물이... 가슴에 박힌다.
***
얼마전에 '정인 - 장마' 라는 노래를 들었는데 너무 좋은거예요.
며칠을 내내 푹- 빠져서 듣다가 갑자기 이런 짧은 이야기가 떠올라서
급히 적어보았어요ㅎ
슬쩍 끄적여 본 조각글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회가 되고...시간이 허락하고.. 좋은 이야기가 떠오르면 다시 올께요~
감사합니다! ♡ 뿅!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 ![[쑨환] 장마 - (짤막 단편입니다)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6/6/4/664e2d3c02579a715ff0fd46489fecf5.jpg)
🚨박나래 활동중단 입장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