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책 한권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남자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뜻을 알 수 없는 글자를 눈앞에 두고 한참을 씨름하다 결국에는 포기한 듯 서안 위에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푹- 내쉬는 태환의 모습에 그의 입술에 시선을 고정한채 한참이나 말이 없던 장린이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잘하고 계십니다."
나직한 위로의 말에도 힘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보인 태환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낮게 신음했다.
펼쳐진 서책을 바라보는 그의 고운 얼굴이 울상이다.
"하아... 난 천치인가보오. 어찌 이리도 어렵단 말이오..."
"도련님께서는 충분히 잘하고 계십니다.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장린께서는 조선의 말을 금방 배우지 않으셨소. 난 안되는 모양이오."
풀이 잔뜩 죽은 얼굴로 장린을 바라보던 태환은 기운 없는 손을 들어 책장을 몇장 넘기다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장린의 얼굴에 안쓰러움이 깃든다.
"갑자기 청나라의 언어를 왜 배우려 하십니까."
조심스러운 그의 물음에 태환은 넘기던 책장을 덮어버리고는 장린을 마주 바라보았다.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이 번지는것을 보니 방금전까지 속을 썩이던 청나라 언어도 금새 잊은 모양이다.
"...나리께서 나고 자란 곳의 언어를 배우고 싶었소. 언제 한번 기회가 된다면 같이 가보고 싶은 생각도 들고..."
머리를 싸매고 힘겨워하는 이 모든 시간이 나리를 위함이라니.
쑥쓰러운듯 얼굴을 붉히는 그의 모습에 알면서도 물은 자신의 어리석은 질문이 우스워 장린은 살며시 웃어버렸다.
"꼭 가겠다는건 아니오!! 그럴수는 없겠지... 거기가 어디라고...!"
별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혼자 놀라 손사래를 치는 모양에 장린이 다시 되물었다.
"가실 수 없다니...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건........"
"도련님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든 모시고 가겠습니다."
다정한 얼굴로 그리 하겠다 약조를 하는 장린의 모습에 태환은 어느새 얼굴 가득 싱글벙글 웃음꽃을 피웠다.
"청에 가신다면 도련님께서 마음에 들어하실 비단과 장신구들이 가득할겁니다."
"저..정말이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보이는 장린의 모습에 태환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떠올렸다가 급히 서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고운 손끝으로 책장을 넘기는 그의 행동이 부산스럽다.
"어디까지 봤더라... 여기인가..?"
이미 마음은 청에 가있는것인지 한껏 들뜬 표정으로 구불구불 낯선 글씨를 읽어내려가는 그의 입술이 바삐 움직인다.
활짝 열린 창으로 스며들어오는 서늘해진 밤공기에 장린이 퍼뜩 고개를 들어올렸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것인지... 학업에 정진해있는 그를 바라보다 벽에 기대어 깜박 잠이 든 모양이었다.
친왕을 모실때 한번도 긴장을 늦춘적 없었건만, 그간 조선에서의 삶이 편안해진건가 싶어 그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번졌다.
손에 들린 서책을 바닥에 내려두고 태환이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 또한 어느새 서안 위에 기대어 잠이 들어 있다.
"나리께서 오실때가 되었는데..."
그를 깨울까 잠시 망설이던 장린은 곤히 잠들어있는 모습에 깨우기를 포기하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서늘한 밤공기가 밀려드는 창을 닫고 벽 한켠에 곱게 개어져있는 이불을 끌어다 덮으니 무슨 꿈을 꾸는지
한참을 웅얼거리다 뒤척인다.
나리께 청나라 언어를 배우는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했던 그의 말이 떠올라 서안 위에 펼쳐져 있는 서책을 집어
책장에 올려두고 방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찌 예서 나오느냐."
"오셨습니까."
마당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쑨양의 모습에 장린이 깊이 고개를 숙여 그를 맞이했다.
오늘도 그곳에 있느냐, 묻는 쑨양의 물음에 장린이 그렇다 답하고는 누마루에 올라서는 그의 앞에 길을 내었다.
"요즘 도통 무얼하시는지... 책방에만 계시다던데.. 그 연유를 알고 있느냐."
뒷 짐을 진채로 살짝 고개만 돌려 묻는 쑨양의 물음에 장린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없이 고개만 가로저었다.
"오늘도 낮밥을 거르신건 아닌지... 흠..."
심란한 표정으로 책방을 바라보는 쑨양의 어두운 눈빛을 장린은 애써 외면했다.
꼭 비밀로 해달라며 애원하던 고운 얼굴이 떠올라 장린은 약조를 어길 수 없었다.
친왕께 거짓을 고한다는건 상상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와의 약조이기에 장린은 답할 수 없다.
가만히 서서 더이상 미동 없는 그의 모습에 쑨양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나온다.
"들어가 보십시오. 잠시 잠이 드신듯 합니다."
"침소도 놔두시고... 어찌..."
여전히 곁에 서있는 장린에게 먼저 들어가 쉬라고 말을 건넨 쑨양은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책방으로 향했다.
"금옥! 나왔소!"
급한 걸음으로 주막에 들어선 칠복은 부엌 안에서 반갑게 웃어보이는 여인에게 손짓을 해보였다.
"오셨소~? 잠시만 기다리시오~"
"아무렴요~ 여기에 딱! 서 있겠소~"
칠복의 장난스러운 행동에 금옥이 웃음을 터트리고는 급히 부엌에 들어가 큼지막한 싸리채반 하나를 들고 나왔다.
"또 무얼 이리 많이 담았소?"
"남정네들끼리 사는 집에 먹을게 뭐 있겠소. 밑반찬이랑 이것 저것 좀 담아봤소~"
"어허이~ 이렇게 자꾸 얻어먹으면 송구스러운데..."
"그런 말 마시오~ 쑨양 나리께는 이것보다 더한것도 해드릴 수 있소~"
두 손 가득 채반을 들고 서서 멋쩍게 웃는 칠복을 향해 손사래를 쳐보인 금옥은 또다시 뭔가가 생각났는지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 깨끗이 손질된 닭 한마리를 들고 나왔다.
제법 큰 녀석을 골라왔는지 채반 위에 얹어 올리자 그 묵직함에 칠복의 몸이 비틀거린다.
"오메~ 오늘 저녁은 진수성찬이네 그려~"
"푹~ 삶아서 사이좋게들 나눠 드시오~"
먹음직스러운 크기에 환한 얼굴로 입맛을 다시던 칠복은 금새 표정이 시무룩해져 버렸다.
그 표정 변화에 금옥이 궁금한 기색을 내비친다.
"모자랄 것 같소? 한 마리 더 챙길까?"
"됐소~ 나같은 놈이 먹어 뭐하오? 힘 쓰실 일이 많으신 나리가 많이 드셔야지."
"에~?"
칠복의 뜻모를 말에 두 눈만 꿈벅이던 금옥은 베시시- 웃어보이는 칠복의 표정에 그제서야 얼굴을 붉혔다.
"아이고... 자네도 참~!"
"히히~ 농이오~ 감사히 잘 먹겠소~"
칠복의 농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금옥이 그의 옆구리를 살짜기 꼬집자 급히 걸음을 서둘러 주막을 나선다.
"잘 먹겠소~ 고맙소."
"어여 들어가시오~"
장터길로 들어서며 몇번이고 인사를 건네는 그에게 금옥이 손을 흔들어보였다.
그 인사에 고개를 숙여 마지막 인사를 건넨 칠복은 묵직한 채반을 다시 챙겨 들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손님이 밀려드는 중에도 그가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금옥은 그 모습이 희미하게 사라지고서야
주막안으로 몸을 들였다.
"실~한 닭 한마리를 왜 빼놨나 했더니, 그거였소?"
옷 앞섶에 물기 가득한 손을 닦으며 눈을 흘기는 아낙의 눈빛에 금옥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손을 내저어보였다.
"무..무슨 소리요?"
"주모, 칠복이 보는 눈빛이 여간 해야지~"
샐쭉 웃으며 물이 담긴 바가지를 옮기던 아낙이 엉덩을 씰룩이며 금옥의 몸에 치댄다.
그 모양에 금옥이 화들짝 놀라 아낙을 지나쳐 부엌으로 향했다.
"놀라긴~ 젊은 나이에 여인 혼자 사는것도 말이 안되지~ 성격 좋아~ 덩치 좋아~ 저만한 남정네 없다니까~"
"아니래도 그러네! 참..."
"그러면서 얼굴은 왜 붉어지슈~?"
"내쫒기기 싫으면 그 입 다물고 일손이나 거들어..!"
도끼눈을 부릅 뜨고 입술을 앙- 다무는 금옥의 표정에 아낙이 급히 시선을 거두고 밖으로 향했다.
상을 들고 나가는 아낙의 뒷 모습을 매섭게 쏘아보던 금옥은 밖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그제서야 한숨을 푹-내쉬었다.
"...미쳤지..미쳤지..."
도적질이라도 하다 걸린 사람마냥 쿵쿵..뛰는 가슴을 어쩔줄 몰라 금옥은 한참을 그렇게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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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흰둥이입니다^^
아...이거 이거...
또 한쌍의 커플 예감인가요~?
마린페어리님께서 두 사람 잘됐음 좋겠다...얘기하신적이 있으셨는데ㅎ
어찌할까...고민하다 엮어보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우울해질텐데...
이 두 사람이라도 꽁냥거려야지요ㅠ
얼마나 깊은 사이가 될지는 모르나!
두근두근 눈치눈치 보는 사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헷
요즘...쑨환글이 정말 없네요...
기운이 쭉- 빠지는 느낌이예요...
어느 작가님이든 이 글을 보신다면!! 힘내주세요ㅠ
혼자 너무 외로워요ㅠㅠ 엉엉
아직은 소소한 일상들이라...재미거리는 없는것 같네요.
다음이야기로 다시 올께요~
늘 읽어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한 마음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