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시야를 벗어나는 거대한 물체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낀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내 앞에 서 있는 거대한 건물의 위용에 기가 잔뜩 죽어버렸다.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소름끼치는 중종의 페로몬이 내 숨을 옥죄는 기분이었다. 몇몇 중종들은 벌써부터 혀를 날름대며 특별전형으로 뽑혀온 경종들을 사냥개의 눈으로 훑고 있었다. 밑바닥 인생 한번 청산해 보겠다고 겁 없이 입학서에 사인 한 과거의 방자한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무서웠다. 내가 뭍에 버려진 물고기처럼 헐떡이며 숨이 멎어가도 무심하게 지나칠 무관심이 무서웠고, 웃으며 칼로 도려낼 호기심을 빙자한 잔인함이 두려웠다.
서류를 조작한 것은 충동이 아닌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입학처를 관리하는 직원들의 루틴과 행동반경을 파악하고 짧은 공백 동안 미리 준비했던 서류를 내가 경종임을 밝히는 진짜 서류와 바꿔치기한 것이다. 주위의 멸시 어린 눈을 흘끔거렸다. 중종인 척을 한 것이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떨고 있어?"
아. 별안간 옆에 서있던 중종이 말을 거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추위를 많이 타서." 중종과 말을 섞은 적은 처음이다. 긴장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한껏 가다듬은 목소리는 내뱉는 나 자신이 놀랄 정도로 무신경하고 싸가지없다. 남자는 별로 기분이 상한 눈치는 아닌지 처음의 웃는 낯 그대로다. 속도 좋네. 내 어깨 위로 올려진 손에서 기분 나쁜 냄새가 난다. 아주, 더럽고, 상극인. 개과인 모양이었다. 느껴지는 페로몬의 크기를 보아하니 덩치 큰 늑대 정도 되려나. 내가 고양이라 그런지 개라고 하면 본능적인 거부감이 든다. 앙칼지게 손을 쳐 내자 늑대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웃는 것도, 무표정도 아닌 기묘한 표정.
"그렇구나."
"......"
"조심하는 게 좋겠다."
언제 그랬냐는 듯 언짢은 기색을 지우고 중종 특유의 여유로운 웃음을 날리는 녀석에 속이 얹힌 듯 더부룩했다. 조심? 뭘 조심하라는 건데. 뻔뻔하게 이해가 안 가는 듯한 표정을 짓자 녀석은 귓가에 기분 나쁘게 속삭인다.
"여긴 많이 춥거든."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다니엘. 햇빛을 받아 번뜩이는 4글자 이름이 새겨진 명찰이 마치 모든 것을 꿰뚫는 듯 나를 날카롭게 비웃고 있었다.
난생 첫 입학식이었다.
독사
w.Viper
고양이의 연약한 페로몬을 감추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페로몬 위로 더 독한 향을 씌우면 그만인 것이다. 사창가에서 일하던 언니와 친분이 있던 매매업자에게 어렵게 구한 표범의 페로몬은 내 작은 덩치를 가려줄 만큼 날카로웠다. 망할 고양이 냄새를 어서 빨리 지우고 싶은 마음에 이곳저곳 뿌려대다가 중종의 페로몬에 흥분해 된통 홍역을 치르고 나서야 나는 페로몬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멀리서나마 희미하게 맡아본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너무 얕잡아보고 있었나 보다. 내 몸에서 나는 냄새에 내가 현혹되지 않도록 삼킨 억제제의 잔향이 입을 맴돈다. 경종들이 제 페로몬을 풀도록 일부러 쓰고 역하게 만들었다는 소문이 들 정도로 맛이 없지만 정신이 온통 다른 곳에 팔려있는 바람에 잘 느끼진 못하겠다.
학교생활은 의외로 순탄하게 흘러갔다. 말만 기회균등이니만큼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경종들을 배려하지 않는 커리큘럼도, 중종만큼 따라주지 않는 체력도, 간혹가다 치미는 두려움과 외로움도, 모두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입학식 때의 재수 없는 늑대 놈도 학교가 워낙 넓다 보니 그 후론 향조차 맡을 수 없었다. 천일이 조금 넘는 남은 날들이 제발 오늘 하루만 같기를 매일 기도했다. 가끔은 이것이 폭풍전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온한 날들이었다.
다만 버티기 힘든 것은 같은 경종들이 괴롭힘 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저번 주에는 어떤 토끼의 머리 위로 먹다 남은 급식이 쏟아졌다. 수요일엔 길을 가다가 여러 무리에게 시비를 걸리는 작은 새를 보았다. 어제는 어느 이름 모를 사슴이 비틀거리며 교문밖을 빠져나갔다. 익숙한 걸음 걸이었다. 옛날 사창가 직원들의 그것과 비슷했으니까. 그리고 오늘은,
"으윽..도와줘..제발.."
외면했어야 했다고, 뒤늦게 후회해 보지만 이미 남자는 본능적으로 만만해 보이는 내 발목을 낚아챈 후였다. 순식간에 수십 개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가 내게 박혔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을까. 수만 가지의 생각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매정하게 쳐내려 해봐도 순하디 순한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차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밑바닥 인생 탈출하자고 네가 무슨 짓을 벌였는데. 고작 이 정도도 못해내는 거야? 그런 자문이 귓속을 왱왱 울렸으나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아.."
손을 내밀자 덥석, 잡은 아이는 제 뒤에 있는 중종을 잊기라도 한 것인지 해맑은 미소를 띠며 내게 한 발짝 다가온다. 고마움의 표시라도 하려는 모양이다. 나는 그것보다 아이 뒤에 서있는 중종들이 무서웠다. 단번이라도 내 정체를 꿰뚫고 내 목을 움켜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 이건 내 심정일뿐이고, 사실 이상한 시선은 없었다. 간혹가다 나처럼 아량 넓은 중종도 있는 모양이었다. 포커페이스가 흔들리지 않게 더욱 표정을 굳힌 나는 아직도 내 손을 잡고 있는 아이의 커다란 손을 차갑게 뿌리치고 자리를 벗어나려 뒤를 돌았고,
그 재수 없는 늑대 놈과 다시 마주치고 말았다.
녀석의 파란 눈은 명백한 의심을 담고 있다.
도망쳐, 도망쳐.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렸으나 아쉽게도 멍청한 몸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안녕? 또 만나네."
"......"
"말 수는 원래 없는 건지"
"......"
"아니면 말을 씹는 취미가 있는 건지."
늑대는 제가 말하고선 제가 피식 웃는다. 분명 화가 났음이 분명하고 말투 또한 날카로웠으나 첫 만남 때처럼 계속 웃기만 하니 더 소름이 돋았다.
"나 너 마음에 들어."
계속해서 무반응으로 일관하자 이번에는 이런 소리나 내뱉는다. 마음에 든다는 소리가 이성적 호감 표시가 아닌 위험한 호기심을 담고 있다는 것은 머저리가 아닌 이상 눈치챌 수 있었다. 계속해서 말을 씹는 것도 한계가 있고, 그냥 자리를 뜰까 생각하는 찰나 녀석이 내 손목을 잡아챘다.
"나 목말라. 카페 가자."
"뭐 하는..!"
뿌리치려 해도 손목을 쥔 손의 악력이 엄청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낑낑대며 녀석에게서 벗어나려고 애를 써도 질질 끌려가는 모양새 밖에 더 되지 않았다. 계속 욕을 지껄이며 놓으라고 협박을 해도 들은 척 않던 녀석은 별안간 우뚝 멈춰 서더니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너, 손 되게 작다."
"......"
"손톱이 연해."
"......"
"꼭 초식 동물 같아."
"헛 소리 하지마. 재미없어."
"재미 있으라고 한 소리 아닌데. 내가 경고했잖아."
학교 춥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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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뭐라고 암호닉 신청을,,,
워블
구치
기기님 감사하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