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금은 자동재생 입니다.
씨… 이게 얼마만에 느껴보는 설움인지 모르겠다 정말. 분명 저들은 연회 중 뛰쳐나간 나를 보며 입을 놀리겠지만, 차라리 나올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일찍 나올걸 하며 후회한다. 그리고 마음을 고쳐 먹기로 했다. 어차피 저들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날 미워할 사람들이다. 본인의 가문 사람이 왕의 비가 되지 않는다면, 저들이 할 일은 하나밖에 더 있나
바로 현재 비인 나를 미워하고 까내리는 것.
변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버텨내야 한다.
결국 이 넓은 교태전에 또다시 혼자가 됐다. 나 혼자 세상 힘든 일 다 겪는 것도 아닌데 잠시 혼자인 것이 뭐가 두렵냐던 내 전의 마인드는 어디가고 없는지. 그저 한숨만 푹푹 쉴 뿐이다. 다 생각해보면, 내가 살던 곳이 아닌 이곳도 내겐 다 꿈인데. 뭐가 그렇게 무서운지.
흔히 걸리는 중이병. 그 때보다 더 생각이 많아진 것 같다. 어찌보면 환국 때에 당연한 저들의 태도에, 나만 적응을 하지 못 하고 있는 것 같아 멍하니 바닥만 보고 있을 때였다.
"…들어갈게."
"들어오지 마."
문 밖에서 평소 들여보내도 되냐는 어영이의 목소리가 아닌, 낯선 목소리가 들렸고 머지않아 그 목소리는 이민형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괜히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들어오지 말라고 하자, 그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을 벌컥 열고는 교태전에 들어왔다.
"이러고 있는데 어떻게 안 들어와."
한숨을 한 번 푹 쉬던 그는, 추위에 빨개진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한 번 한 뒤 내 앞에 와 앉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그를 보자 참고있던 눈물이 터져나왔고, 이민형은 이내 당황하지 않고 내 옆으로 와 등을 두드려 주었다.
"청나라에 있을 동안 뭐가 어떻게 된 거야."
"…"
"괜찮냐."
그의 괜찮냐는 말에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얼떨결에 그의 품에 안기다시피 해 울었다. 국왕은 오지 않았다. 연회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릴 때까지 오지 않을 것이다. 이것도 분명 당연한 것인데, 대체 무슨 기대를 하고 있는 거야. 국왕이 환국이 되어 후궁이 생겨서 내가 견제받음에도 불구하고 뛰쳐나간 자신의 첫 비를 따라 뛰어나오기를 바라는 건가.
이민형은 그 뒤로 내 울음이 그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등만 토닥거려줬다. 그의 어설픈 위로 덕에 울음이 더 빨리 그쳤을지도 모르겠다. 울음이 다 그쳤음에도 이리도 서글픈 건,
당연한걸 알지만 오지 않는 그에게 서운해서가 아닐까
그를 사랑해서가 아닐까.
"다 울었냐?"
"……어."
"눈 부은 것 봐."
"나가."
"진짜 간다?"
"……씨."
이민형은 이길 수가 없다. 눈 부은 것 보라며 또 놀리는데, 나가라고 했다가 일어나기에 정말 나갈 것만 같아서 그의 소매 끝자락을 잡았더니 웃으며 내 앞에 앉는다.
"안 출출하냐?"
"……배고파."
안 고플 리가 없지. 국왕이 내게 뭘 주려고만 하면 대신들이 지랄지랄 상지랄을 해대니, 고픈 게 당연하지. 그러자 그는 "곧 이태용 와. 맛있는거 들고." 하며 조금만 참으라 말했다. 점심도 못 먹고, 이따 이태용이 올 때쯤 되면 저녁 먹을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아까 그냥 연회에서 아무거나 막 손으로 집어먹을 걸 그랬나.
"청나라에서 언제 왔어?"
"이틀쯤 전?"
그 말을 끝내자, 문이 조심스레 열렸고, 그 조심스레 열린 문 사이로 이태용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눈치를 살피더니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이름아"
오랜만에 보는 태용이의 얼굴, 그리고 그 가족같은 따뜻함에,
"밥 먹자!"
마음이 푹 놓인다.
*
밥을 다 먹고 눕다시피 해서 앉아 이태용과 이민형의 청나라 이야기를 들었다. 언제 들어도 재미있었다.
"아니 그랬는데, 청나라 황제가……"
"이야 이태용…"
그들은 정말 나와는 다른 사람 같았다. 전에 어영이가 이태용과 이민형의 가게를 찾냐고 하며 얘기해 줬던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일반 상인들과는 다른 큰 규모의 사람들이라던. 그리고 그 말을 현재 실감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반 사람들보다는 주로 여러 나라의 왕실과 황족들에게 비단이나 옷가지를 판매했는데, 이미 꽤 유명한 것 같았다. 이번에는 청나라 황제를 직접 만나고 왔다나 뭐라나.
그러다 문득, 급 궁금해 진 것이 있어 그들에게 물었다.
"야 너네는…"
"응?"
"혼인 안 하냐?"
"쿨럭."
내 말에 물을 먹던 이민형이 사례가 들렸고, 이태용은 머리를 긁적이며 하하 웃기 바빴다. 아니, 그렇잖아. 솔직히 여기서 다 친구 먹었고, 나는 혼인을 했고, 이동혁도 아버지께 혼인 요구를 받았는데. 이민형과 이태용이 나와 나이 차이가 나봐야 한두살일 것 같은데. 쟤네는 결혼을 안 하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침을 하던 이민형의 등을 두드려주던 이태용이,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일 하느라 바빠서…"
"아? 이민형 너는?"
이제서야 기침을 끝마친 이민형에게 묻자, 이민형은 한 번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꼭 해야 하나."
"아니 보통 지금쯤 다 하지 않아?"
"안 하면 잡혀가?"
"그런 건 아닌데……"
그럼 됐지. 하며 간단히 대화를 끝내버리는 이민형은 대충 창밖을 보더니, 어두워진 것을 본 후 이제 일어나 봐야 한다며 이태용을 일으켰다. 그들은 가져온 짐을 쌌고, 내게 인사를 건넸다.
"잘 가."
"감기 조심해!!"
"으으 코찔찔이."
저 썩을 놈이. 아직 코찔찔이 아닌데. 이민형은 이태용의 말에 코찔찔이. 하고는 문을 열었다. 그대로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
그들은 우뚝 멈춰섰다. 왜 그러냐며 물었지만, 그들은 아무말이 없었다, 얼음이 됐던 그들은 앞쪽에 인사를 한 번 하더니 나가버렸고, 나는 의아함에 배웅을 핑계로 밖에 나갔다. 밖은 여전히 추웠고, 입김은 하얬다. 그들은 어느새 교태전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고, 곧이어
"……부인."
내 시선에 국왕이 들어왔다.
*
그래, 어쩐지 조용하다 싶었다. 연회가 밤까지 이어졌다면 지금 분명 시끌벅적해야 정상인데, 언제부턴가 밖은 자연스레 조용해져 있었다. 그 요란하던 풍물소리도, 끊이지 않았던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뚝 끊겨 버렸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렇게 다시 문을 닫고 들어와 버렸다. 어느새 따라와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어영이가 놀란 눈을 한 채로, 뒤돌아 들어가는 나를 따라왔다. 정말, 무례했다. 내가 자꾸만 이곳의 국왕을 쉽게 보고 무례하게 대하는게 아닌지 생각이 됐다. 그런데, 마음대로 안 된다. 자꾸만 서운함이 표출됐고, 그걸 숨길 수 없었다.
그렇게 보란듯이 불을 끄고,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
비어있는 맨 오른쪽 중전의 자리가 지속된 채 연회는 계속되었다. 숙의는 세상 행복한 듯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고, 그 옆에 있는 국왕은 자신의 왼쪽 옆자리가 비었을 때부터 초지일관 굳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연회가 끝나갈 때쯤, 국왕은 마지막 공연이 끝난 후 총 인사를 받지도 않은 채 자리를 떠났고, 숙의는 그런 그를 뒤따라갔다. 사상 초유로, 연회의 총인사에 가운데 있던 세 자리가 모두 빈 날이었다.
재현은 곧바로 교태전으로 향했고, 숙의는 그런 그를 바쁘게 쫓아갔다. 그는 뒤에 숙의가 따라오는지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뛰었다. 이미 많이 늦었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숙의는 결국 국왕의 목적지를 알고는, 작게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웃긴다는 듯이. 그리고, 기둥 뒤에 숨어야만 했다.
교태전 앞에 멈춰선 국왕에게, 교태전에서 나온 사내 둘이 인사를 하고는 발걸음을 옮겨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곧이어 중전이 나왔고, 그녀는 국왕에게 잘 자라는 말을 한 후 교태전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한참동안이나 그 자리에 서있던 재현은 불이 꺼지고 나서야 강녕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숙의는 분명 그 남자 둘의 얼굴을 보았다. 이민형과 이태용이었다. 그리고, 전에 보았던 사내가 기억이 났다.
이동혁, 이민형, 이태용. 꽤 나라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저들과 중전이 대체 무슨 사이길래, 저렇게 친분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분명, 이동혁. 그 사내는
그저 친구에게 해코지를 해서 화가 난 눈빛이 아니었다.
자신의 처소로 돌아간 숙의는, 밖에 있던 몸종에게 부탁을 했다.
중전에 대해, 조사를 좀 해 줘야겠다고.
*
"후."
겨울에 더워서 잠이 깼다. 난방을 어떻게, 얼마나 해 놓은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이거 곧있으면 이불도 타겠는데 미친.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일찍 어영이와 잠시 산책을 나가려 밖으로 향했다.
털신을 신고, 어영이와 함께 궐의 둘레를 따라 걷는데,
"……어머, 진짠가봐."
"그러니까…. 보통 지금쯤 전하랑 함께 걸으시지 않아…?"
딱 들어도 내 얘기인 것을 알았다. 아니, 내가 어영이랑 산책 좀 하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그런 궁녀 둘을 빤히 쳐다보는데, 평소와 다르게 인사를 하지 않길래 무엇인가 생각을 해 봤더니, 한 명은 숙의쪽 궁녀, 한 명은 침방나인이었다. 그리고 나는, 일부러 앞에 가서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입니다."
"ㄴ,네 중전마마…!"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할 것들이 뒤에서 하는 개소리에 빡침도 잠시, 궁에서 나를 보는 궁녀들의 눈빛은 전과 조금 달랐다. 답답함에 어영이를 끌고 빨리 교태전으로 들어와 그녀에게 무슨 상황이냐 물으니, 정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아니 사실…이걸 제 입으로 어찌……"
"…괜찮으니까 말해줘."
"전하께서 어제 연회에도 숙의마마와 함께 참석하시고…… 오늘 아침에도 안 오셔서……"
"……그래서?"
"중전마마께서 버림…받으셨다고… 죽여 주시옵소서!!"
그 말을 마친 후 내 앞에서 본인을 죽여 달라며 엎드리는 어영이를 일으켜 세웠다. 네 잘못 아니잖아 어영아.
어영이를 밖으로 보낸 후, 혼자 많은 생각을 했다. 그래,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으려나.
누가 그랬던가, 궁에서 타는 입소문이 제일 무섭다고 했다. 궐 일에 제일 관심 낳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궁궐이니까. 그들에게서 제일 쉽게 될 수 있는 것은, 이야기의 와전과 과장이었다.
이제 나는 어떡하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지금은, 그저 어서 이 소문이 끝나가고 새로운 화제가 들어오기를 바라야 하는건가. 안그래도 서러운데. 씨…….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눈물을 집어 넣었다. 그 때였다.
"…들어갈게."
이동혁. 이동혁이었다. 그는 들어오라는 내 말에 들어와 내 앞에 앉더니 내 손을 잡고서는 "나 추워."하며 웃는다. 그의 웃음에 괜히 같이 웃자, 그는 나를 보며 입술을 뗸다.
"……괜찮아."
괜찮아? 가 아닌 괜찮아. 물음이 아닌 위로였다. 이미 다 알고 온 것처럼, 그는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래, 이동혁도 알겠지. 어쩌면, 어제 그 수많은 인파 속에 갇혀 있었을지도. 왕실에 꽤 큰 비중인 그가 모를거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그래도 막상 그에게 이 말을 들으니, 괜히 서운해 하, 하고 짧게 탄식이 나왔다.
"진심으로,"
"……"
"네가 안 힘들었으면 좋겠어."
늘 들어도 적응되지 않고 울컥하는 이동혁의 말이었다. 내가 안 힘들었으면 좋겠다는 말. 국왕과 행복해지라는 그런 말이잖아. 그런 이동혁이 너무나도 안쓰러웠고, 미안했다 그에게. 그리고 그걸 티내지 않았다. 나마저 그렇게 안쓰러운 티를 내면, 그는 정말 무너질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 그는, 한 번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고,
"정 힘들면,"
그 말은
"……집으로 데려다줄까."
꽤 큰 충격이었다. 그냥 뭔가 잊고 있었던 사실이 쿵. 하고 가슴에 떨어진 느낌.
그가 말하는 집은, 이곳에서의 집이 아니다. 원래의 우리 집. 내가 살던 세계의, 그 우리 집을 말하는 것이었다. 잊고 있었다. 그는 날 돌려보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잠시 멍해있던 나는, 앞의 이동혁에게 다시 초점을 맞추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손 안에서 놀고있는 내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힘들면"
동혁아,
"바로 말 해"
난 모든 사람을 잃는 것이 두려워.
"……언제든 보내줄 수 있어."
꿈에서 깨어났을 때,
현실에도 네가 있다면.
! 작가의 말 ! |
안녕하세요 애몽 작가 니퍼입니다 ! 애몽 완결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스포) ㅋㅋㅋㅋ정말 진짜로 얼마 안 남았어요! 그래서 36화 올리고 바로 연달아서 Q&A를 올려볼까 하는데, 궁금한 거 다 물어봐 주세요!!!! (간절) ㅋㅋㅋㅋㅋㅋㅋㅋ. 늘 애몽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ㅠㅠ.. 댓글 하나하나 다 읽어보고 있습니다. 어제 못 온다고 했더니 기다려 주신다던 분들께 정말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어요 T^T 싸라해여.. 더위랑 감기 조심하세요! ♥ 늘 부족한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