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밤을 걷다
w. 공 백
밤이 오기 전에는,
저녁이 있기 마련이다.
[ 02 ]
우울한 저녁
/
5년 전
" 엄마가, 너무 미안해, 아가 … "
창 밖에는, 흐릿한 달빛만이 어두컴컴한 병실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갓난아이가 우는 소리 빼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지칠 줄도 모르고 세차게 우는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 나 또한 미안함에 울음을 터뜨렸다. 태어난 순간부터 아빠 없는 아이라는 보이지 않는 낙인이 찍혀버렸기 때문일까. 우는 아이를 홀로 달래며, 나는 그 순간에도 날 떠나버린 너만을 허공에 그릴 뿐이었다. 네가, 내 옆에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을 텐데. 네가 곁에 있었더라면 반으로 나누어졌을 책임감과 부담이 무겁게 양 어깨를 짓눌렀다. 거기에다가 더불어, 홀로 남겨졌다는 두려움과, 불확실하고, 어두컴컴한 미래.
너만은, 내 손을 놓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안간힘을 쓰며 널 붙잡았던 나를,
넌 기어이 떨쳐내어 버리고 만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네가 했던 모든 말들은 거짓이었고 한낱 사탕발린 말들에 지나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했던 말도, 영원히 내 손을 놓지 않겠다는 굳은 약속도 … 모두 거짓이었다. 날 사랑한다고 했던 너는 날 버리고 떠났고, 영원히 놓지 않겠다던 내 손은 네가 먼저 놓아버렸다. 비가 세차게 오던, 어느 날 새벽. 너는 흔적도 없이 나를 떠났다. 마치, 너라는 존재는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우린,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여버린 것일까.
같이 지새운 그 밤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내가 몰래 숨겨둔, 임신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려주던 테스트기와 초음파 사진이 들었던 자그마한 상자가 문제였을까. 네가 떠난 후, 영문도 모른 채 네가 떠난 게 아닌 줄로만 알았던 나는 하염없이 널 기다렸더랬다. 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모여 한 달이 지났지만 넌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가 되어서도, 나는 네가 떠난 것을 부정했다. 없어진 네 옷가지와 없는 번호가 되어버린 네 전화번호가 명백한 사실임을 알려주는데도. 내일은 네가 오겠지. 일주일 뒤면, 네가 오겠지. 이런 말들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네가 떠났다는 걸 깨닫게 해 준 사람은, 네가 떠난 지 일주일 지난 뒤에 우연히 집에 와 본 오빠였다.
" … 야, 너 왜 혼자 있어. 김태형은? "
" … 모르겠어. "
내 대답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미간을 약간 찌푸리고는 집 안으로 들어서 구석구석을 살펴본다. 오빠가 들어오자 새벽을 머금은 차가운 공기가 집 안에 들어온다. 시린 겨울의 새벽. 거실은 불을 켜지 않아 어둑어둑했다. 나는 홀로 소파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멍하니 탁자 위에 올려놓은 물건들만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언젠가 너를 놀라게 해주려고 숨겨놓았던 초음파 사진 여러 장과, 선명한 두 줄의 임신 테스트기가 아무렇게나 탁자 위에 어지럽게 늘어져 있다. 어느새 집을 다 둘러봤는지 오빠가 굳은 표정으로 탁자에 있던 것을 들어 살펴보고 있었다. 한참을 말없이 서서 그것들을 보고 있던 오빠가 나지막이 입을 떼었다.
" 너, 이게 뭐야. "
" … 뭐긴 뭐야. "
" … 김태형이, 너 임신시키고 튀었냐? "
힘겹게 부정해왔던 진실이 오빠의 입에서 나와 비수가 되어 내 심장에 꽂힌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자 오빠가 무릎을 굽혀 눈을 마주쳐 온다. 맞아, 아니야. 화가 많이 난 듯한 눈동자에 나는 말없이 고개만을 푹 수그리고 말았다. 미약한 햇살이 들어온 거실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뿐이었다. 그리고, 오빠가 옆에 앉더니 조용히 팔을 뻗어 가만히 있는 나를 안는다. 등을 토닥이는 따뜻한 손길에 그제야 나는 자각한다. 네가, 날 떠난 게 사실이라고. 사실이란 것을 인지하자마자 코가 시큰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다음엔 정해진 수순처럼,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어느새, 언제 떠올랐는지 모를 태양이 어둑했던 거실을 비추었다.
그 날 이후, 오빠는 매달 생활비를 꼬박꼬박 내게로 보내주었다. 서울 변두리에 조그마한 브런치 카페를 운영 중인 오빠가 보내주는 돈은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했기에, 나는 아이를 낳고 1년 후에 바로 아르바이트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지방에 홀로 계신 엄마를 걱정시키기는 싫어서 일부러 아이를 낳은 것을 말하지 않았다. 오빠가 보내준 생활비와, 아르바이트로 들어온 수입으로 빠듯하게 생활을 하다 보니 아이에게 좋은 것, 예쁜 것 보다는 가격이 저렴한 것을 입히게 되었는데, 이 점은 시간이 지나도 마음 한편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다. 좋은 것을 입혀주지 못하는, 미안함이었다.
/
" … 엄마, 엄마! "
" … 하연이 일어났어요? "
조그마한 손길이 입고 있던 티셔츠 소맷자락을 잡고 흔들기에 힘겹게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시야에 들어오는, 너와 너무나도 닮은 두 눈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쌍꺼풀이 없는 큰 눈. 자신이 제 아빠와 완전히 닮았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가 말간 웃음을 지으며 볼에 입을 가져다댄다. 쪽, 하며 아이가 입을 맞춰옴에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아침이 되었는지, 밝은 햇살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옆을 돌아보니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이불 위에 앉아 있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환하게 웃는 아이에 무거운 마음을 버리고 마주 웃어버리고 말았다.
" 하연아, 오늘은 엄마가 데리러 갈게. 어린이집 버스 타지 말고 기다려, 알겠지? "
" 웅, 알게써. 빨리 와야대 ! "
" 선생님 말씀 잘 듣고. "
" 아게써요! "
우리 하연이 착하다. 하연이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고는 옆에 서 계시던 선생님께 고개를 살짝 숙여 목례를 하고는 어린이집을 벗어났다. 어린이집을 벗어날 즈음, 뒤에서 선생님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저 분이 하연이 어머니셔? 하연이 아버지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네. 한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자 옆에 계시던 선생님이 대답을 한다. 하연이 입학원서에 아버님은 안 올라와있던데. 임신시키고 떠났나 봐.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들이 내게는 상처가 되어 마음속에 콕콕 박혔다. 들리지 않는 척, 애써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어린이집에서 멀어져서,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주저앉듯 의자에 앉았다.
하연아, 내가 널 낳은 게 옳은 행동일까.
평소와 같이, 오전 아르바이트를 하는 카페에 가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출근 시간대가 아니었던 탓에 자리는 많이 비어 있었다. 창가쪽 자리에 앉아 창밖을 무료하게 쳐다보다, 가방 깊숙이 넣어놓았던 휴대폰을 꺼내어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 오늘은 무슨 일 없나, 하며 누른 실시간 검색어 1위에는, 네 이름 석 자가 올라 있었다. 네 이름 밑에는 예전에 같이 드라마를 찍었던 여배우가 올라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머릿속이, 하얗게 바래진다. 네 이름을 누르기 전이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애써 네 이름을 눌러내었다.
[ 배우 김태형, 연애 중 … 상대는 배우 이나라로 밝혀져 ]
네 이름을 누르자마자, 사진 몇 장이 정신없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예상했었던 바였지만 머리가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멍해진다. 현실감각이 아득해졌다가 휴대폰이 툭,하고 버스 바닥으로 떨어짐에 정신을 차리고 떨어진 휴대폰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떨어진 휴대폰 화면 가득히 채워진 것은 너와 이나라,라는 사람이 같이 있는 사진이었다. 애써 그것을 무시하며 여전히 떨리는 손을 뻗어 휴대폰을 주워, 화면을 아예 꺼 버렸다. 갑자기 파도가 치듯 밀려오는 두통에 두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눈을 감고는 창문에 기대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눈을 감았음에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 정말로, 난 안중에도 없구나. "
난, 네가 혹시라도, 혹시라도 찾아올까봐 이사도 안 가고, 전화가 올까봐 전화번호도 안 바꿨는데. 모두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너는 나와의 관계에 제멋대로 마침점을 찍었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미련을 못 버려서 마침점을 차마 찍지 못하고 있었다. 5년 전에 없앴어야 하는 너에 대한 미련은 아직까지도 남아 나를 매일 괴롭히고 있었다. 네 인생에서 나는 사라진 지 오래였는데. 네 열애설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고 채 마르지 않은 눈물샘을 또다시 건드렸다. 나는 이렇게 네 생각을 하면서 괴로워하는데 정작 너는 내 생각에 괴로워하지도, 애초에 생각을 하지도 않을 것이 분명했다.
나를 네 인생에서 지웠다는 생각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마음 한중간에 박힌다.
/
안녕하세요, 공 백입니다(*’∀’人)♥
제가 너무 늦게 온 듯 하네욤 TT
오늘은 과거가 앞에 살짝 들어가 있어욤 !
감안해서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당
항상 기다려 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미다
독방에서 추천한 거 보고 넘나리 감동 ㅠㅠㅠㅠ 감사해욥 )(
이제 개학이라서 토요일, 일요일에 오겠숨미다 알라뷰 쏘마취 (●♡∀♡)
♥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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