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기댈 수 있는 건 김유권 하나 뿐이었다.
집이 학교에서 가까워 매일같이 그가 들려준 것은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집 밖으론 감히 한발짝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그저 멍하니 있는것이 일상이 되었다.
어느 순간 정신이 들면 그가 사다둔 간단한 것들을 먹었는데, 이마저도 먹지 않으면 잔소리가 들려올게 뻔했기 때문이다.
뭐든, 먹는 동안에도 나는 내가 마치 시체같았다. 이런거 다 필요 없는데. 모든것이 완벽히 기계적이었다. 그나마, 그 긴 하루 중 의미라는 것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면 그건 여섯시 경이었다.
김유권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 "나 왔어." "어...!"
"새끼, 좋아한다."
하루하루 흘러갈수록 그를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는것 같다. 지치고, 참기 싫은 그 고요의 시간. 문이 열리고 들리는 목소리에 온몸이 반응한다. "오늘은 왜 이렇게 늦게 와.." "야, 시계 봐. 똑같이 왔거든 병신아."
"....어? 그러네."
"형님이 그렇게 그리웠냐."
안다, 알아.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클어뜨리는 손을 장난스럽게 쳐낸다.
그리고, 다른 한쪽 손에 들려 있는 것에 눈이 향한다. "...미친, 안이래도 된다니까." "거울이나 봐. 삐쩍 말라갖고 그런 말이 나오냐?"
"씨발 돈도 없는게."
"없는 돈 털어 사니까 남기지 말고 먹어 새끼야."
다 먹지도 못할 걸 뻔히 알면서도, 또 이것저것 한가득 사온 모양새에 한숨이 나온다. 아주 사람하나 먹여살릴 작정이다.
신세 지는것만도 고개를 못들 지경인데 도대체가 끝이없다. 말은 안하지만 녀석 나름의 걱정이고 배려다. 신경을 쓴다는,
그 자체가 너무도 무겁다. "빨리 이리앉아서 먹어. 무거워 죽겠다."
"야, 어제 사온거 방금 먹었어...!"
"됐거든, 나 보는 앞에서 이거 빵 다 먹어."
"씨발, 배불러 너나 먹어."
이게, 은혜도 모르고. 죽을래? 되도 않는 협박에 못이겨 결국 어거지로 빵 하나를 입에 문다. 저가 보채지 않으면 왠만해선 잘 먹지 않을 나 때문에, 꼭 먹는 모습을 봐야 성에 찬다.
괜시리 민망해져 눈을 깔고 먹는데 열중하는 척을 하면 흐뭇한 얼굴로 옆에 앉아 웃는다. 이 시간.
사소하지만 겨우 숨 쉴 여유가 생긴다. "새끼, 얼굴 허연거 봐. 말라갖고."
"별로 안하얘."
"....계속 밖에 안나갈거야?"
김유권은 나를 너무 배려한다. 내 생각에는.. 그게 문제인것 같다. "언제까지 그럴건데. 이러다 너," "묵을 데 알아볼게."
"그런 뜻 아닌거 알잖아...!"
당연히 알고 있다. 그저 내가 무서워서 피하는것 뿐이니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이기적이지만. 그저 계속 우지호 뜻대로인 김유권이면 충분하다. "너 죽을때까지 여기 있어도 상관없어! 상관없는데!! 너 계속 이러다..."
"......."
"......그.."
"이러다 뭐."
"......미안."
계속 이러다, 진짜 미쳐버릴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어? 누가 봐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나는 차라리 그 위태로운 선이 끊어져버렸으면 싶다. 미친 사람이 공포심을 느낄 수 없다면, 그래. 더 바랄것도 없겠지.
그래도 네 앞에서는 숨기고 싶다. "네가 뭐가 미안하냐."
"........"
"노력할게. 가까운데 정도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에서 일어나 웃음 비슷한것을 지었다.
잘 먹었다. 내일은 사오지 마.
어깨를 툭 치고, 처음으로 그가 돌아가기도 전에 방문 손잡이를 잡았다.
그 뒤로 김유권의 목소리가 들린다.
"학교는....."
몸이 바짝 굳었다. "학교는.. 못나오겠지."
"........"
"그.. 수업일수 아슬아슬하다고, 담임이.."
"김유권."
처음부터 형편없는 인간이었는데, 더이상 내려갈 곳도 없는데. 난 자꾸 스스로를 더욱 더 혐오하게 된다.
"거기까지 참견할 거 없어."
"아...."
"참다참다 말하는건데, 필요 이상으로 신경 쏟지 마라.. 여기도 이제 좀 작작 오고."
".........."
"애 아니니까."
쾅,
방 문을 거칠게 닫고서, 한참을 문에 기대 섰다.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있을 김유권이 눈에 선하다. -후우.... 깊은 한숨소리가 문을 사이에 두고 들린다. 그 소리에 또 금새 후회감이 쏟아져 두 손바닥으로 눈가를 꾹 눌렀다.
....죽고싶다, 어떻게 말을...
겁이 나서라는 핑계도 이제 스스로가 역겹다.
네가 어떻게 변해...
드륵, 의자 밀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일어난 것이다. 방문을 사이에 두고 들리는 작은 소음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선다.
-....미안해. 사과를 한다.
-밖에 있는거 내일 꼭 먹고.
내 걱정을 한다. -........갈게.
달칵.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에 다리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는다. 내가 무슨 소리를 했었는지 다시한번 떠올린다. ...나는 벌써, 미쳐버린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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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권은 그대로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다음날 같은 시간 찾아왔다. 그와 마주친 나는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조금 울었다. 내가 바뀌어야 한다고 몇번이나 생각했다. 무서워하기만 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알았다.
그렇지만, 머리 뿐 아니라 온 몸이 기억하는 공포는 너무도 이겨내기 힘든 것이었다.
스스로 미쳐간다고 느끼는 것 역시 시간이 갈수록 더해졌다. 그래도... 노력했다.
김유권에게 그러겠다고 말했고, 나는 그걸 지키고 싶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몇번이고 돌아와 줄 그에게 뭐든지 주고 싶었다. 내게 가진건 아무것도 없었고, 그가 바라는 것 중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했다.
몇일에 한번이었다. 그것도 주위가 어두워질때까지 기다렸다가, 후드를 깊게 뒤집어 쓴 채. 숨이 막히는 감각에는 진저리가 나 마스크조차 쓰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이지만 몇분, 몇시간 할 것 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조금씩 나아진다는게 느껴진다.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했다. 나아지고 있다.
몇주 후에는, 김유권이 붙어있다면 간단한 외출까지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사소하지만 내게는 큰 변화였다.
그에게서 정신적으로 벗어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니까. ----------------------------------------------------------------
"야, 우지호." "어.."
"너 모레 뭐하냐?"
"그냥 집에 있겠지 뭐.."
김유권이 이런 질문을 해 올 때면 늘 조금 불안하다.
살그머니 꼬드겨 어디론가 데리고 나갈 작정인게 뻔하기 때문이다. 같이 어디 좀 가자, 나랑 누구 좀 만나러 가자. 어디에 뭐가 생겼다더라, 뭐가 유명하더라. 속이 빤히 보이는 말들로 이리저리 내 정신을 쏙 빼놓기 일쑤인데..
그 때문에 말꼬리를 어물어물 흐리자 아예 못을 박는다. "나 모레 갈 데가 있거든. 같이 가자."
"아...또 어딜 가..."
"클럽."
"지랄한다."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직 사람많은 곳은 학을 떼는데.
전처럼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는 아니지만, 불안함이 줄어들질 않는다.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야, 그러니까 내가 부탁하는 거 아냐 새끼야."
"씨발, 고작 클럽가려고 부탁까지 해서 날 끌고가냐? 여자에 환장을 해선...!"
"누가 여자 만난대? 아는 선배 생일이라 가는거야, 오래서."
선배, 란 말에 멈칫 한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에 또 표정이 굳는게 느껴진다. "선배...누구." "...걱정 안해도 돼, 나 중학교때 알던 형이야. 너 절대 몰라."
"......."
"같이 가자. 갔다가 금방 오자, 응?"
"날 왜 데려가, 너 혼자 가."
모르는 사람 생일인데 왜, 내가 왜 가.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는데 그마저도 못본척한다.
"너 요새 노력하는거 뻔히 다 보이는데 그러냐." "........"
"사람많고 시끄러운거, 온갖 장소 다 따져가며 숨어 살수는 없는거 아냐. 응?"
"씨발, 핑계 만들어 내지 말고."
인상을 써가며 내뱉은 말에도 웃으며 넘긴다.
"핑계라니. 이렇게 너 위해주는 놈이 어딨냐."
"가만히 있는게 위해주는건데."
"에이, 잘 하면서. 응? 잘 하고 있으면서 뭘 그래."
한숨을 푹 내쉬면, 그게 어쩔 수 없는 항복의 의미다. 그에 또 좋다고 웃는 녀석이 밉지 않아 툭 밀어낸다. ----------------------------------------------------------
시끄러운 음악소리.
쿵쿵 울려대는 사방, 끈적하게 달아오른 공기.
"토할것 같아...." "어? 뭐? 안들려!"
"씨발 짜증난다고..!!"
"알았어 알았어! 금방 올게!"
어린티 팍팍 내 봤자지, 우지호가. 응? 놀리듯 웃으며 등을 한번 토닥이고는 아는 사이인 듯한 사람에게 손을 흔든다.
"같이 갈래? 괜찮은데."
"싫어, 미쳤냐. 너나 가."
"대충 있다가 금방 올게. 한시간 안넘길테니까 여기서 뭐라도 마시고 계세요, 우지호 어린이."
"지랄, 빨리 꺼져. 아... 토나와."
괜히 미안한 듯 몇번을 돌아보다 간 녀석에게 티를 내지 않으려고 묵묵히 앞만 보다가, 이내 푹 고개를 숙였다.
바에 앉아 띵한 머리를 콩콩 내리박아도 통 정신이 들질 않는다. 너무 시끄럽고, 너무 사람이 많다. 너무 현란하고, 너무... "저기," "....!!"
예고없이 어깨 위로 올라온 손에 심장이 떨어질 듯 놀라 일어섰다.
"누구야...!" "아이구, 깜짝아. 미안 미안.. 놀랐어?"
"........"
"안녕."
...누구지...?
낯선 얼굴이 자연스럽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지독히 낮은 목소리. 들어본 적 없다. 당황해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그가 먼저 입을 연다. "지호 맞지? 얘기 많이 들었어."
".....네?"
멍해진데다, 경계심으로 바짝 곤두선 신경이 살짝 흐트러진다.
여기선 나를 알만한 사람이 없는데... "...김유권하고.. 아는 사이세요?"
"응? 아, 응. 유권이가 네 얘기 많이 했어."
자연스럽게 웃으며 들고 있던 칵테일을 건네준다. 실실 웃는게.... 기분 나쁘다.
"너 좀 까칠하다며?"
"........."
"표정이 왜그래, 민망하게. 지금 기분 별로구만?"
"....아니에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빨리 와라, 김유권. 지금 생판 모르는 사람하고 태평하게 얘기나 나누고 싶지 않은데. 또다시 쿵쿵대며 이어지는 클럽음악에 인상을 한가득 찌푸렸다.
"아, 알겠다."
"...예?"
"시끄러운거 싫어하는구나."
"........"
"빨리 가고싶지?"
의외로 눈치는 빠르다.
김유권과 아는 사이라면 유치하게 신경 건드려 놔서 좋을게 없어 난처하다.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유권이 불러줄게."
"......."
"뭘 그렇게 봐?"
"아니..."
"거 너무하네. 인심써서 술한잔 사준건 쳐다도 안봐, 친구 돌려준대도 멍해. 너 되게 재미없다."
김유권이랑은 약간 과가 다르다. 뭔가, 뭔가 더... 경계를 누그러뜨리려는 순간 그가 돌아섰다.
"있어봐, 금방 데려올게."
뭐지?
뭐가.. 뭐가 이상했던거지? 조금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열기가 가득한데도. 역시 그저 불안감 때문이겠지.
손에 들려있던 칵테일을 벌컥벌컥 마셨다. 목줄기를 타고 조금 센 도수의 알콜이 넘어간다. 조금 있으면 이 이유없는 한기도 가실 것이다. 술이 그렇지... "마셨어?" .....어?
놀라 크게 뜬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조금 전의 그 사람. 분명.. 김유권을 부르러 간다고 했는데....
왜 돌아온거지? "마셨지 지금? 그거."
반쯤 빈 술잔을 내려보며 기분좋게 웃는다.
"....당신.." "응."
이상하다.
아까보다 더한 한기가 몸을 덮친다.
덜컹, 하고 심장이 아래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숨이 조금씩 가빠진다. 아니, 숨을 쉬는지.. 그게 느껴지질 않는다. 머리가 어지러워 고개를 든 순간, 시야가 뒤집힌다.
"참 쉽네. 응? 아가." 낮은 웃음소리가 처연히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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