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 가지마세요.
부탁합니다.
prohibit
시작.
처음 몇시간동안은 무서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손전등을 들고 여러군데를 수색하는것이 마치 꼭 게임의 주인공이 된것 같아서 흥미롭다. 지금까지 내가 파악한 결과는 이것들이다.
1. 이곳엔 나 외의 사람이 없는것 같다
( 있을수도 있겠지만 전혀 기척이 들리거나 보이지 않는다. )
2. 방 곳곳에서 아이템 같은것 등을 찾을 수가 있다. 그 아이템은 대부분 쓸모있는 유용한 것들인것 같다.
3. 그 아이템의 또다른 용도가 있는것 같지만 아직 난 도무지 발견하질 못하겠다.
4. 아직 경계해야할 대상은 없다.
직감적으로 느낀거지만 전혀 불빛과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만이 박물관 내를 가득히 매꾸고 있었다. 밖에서는 간간히 천둥소리와 빗소리가 들려지고 가끔 쥐가 지나가는지, 우당탕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이 구조는 내가 게임했던 곳과 소름끼치도록 완벽하게 닮아있으면서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정도로 다르다.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은 지금 들지 않는다. 어쩌피 빠져나온다고 해도 갖힐텐데 뭐. 이왕이면 이런 더 멋진곳에 갇혀 사는게 더 낫지않겠어? 라는 마인드로 계속 버티고 있는 나지만 역시 식료품 등 사는데 필요한것들을 찾지 않으면 위험할것 같다고 판단. 나는 물과 먹을 것등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내가 이곳에 와서부터 조용하기만 했던 실내안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한번 크게 들리더니 나중엔 발걸음 소리로 바뀌었다. 두렵지만 혹시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걸어가는 데, 걸어가는 방향 반대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르릉' 거리는 마치 동물의 소리 같은, 전혀 의사소통이라고는 되지 않을것 같은 소리였다. 나도 모르게 두려움에 사로잡혀 내 앞쪽으로 있는 길의 끝에 사람일지도 모르는. 완벽하게 확신은 되지 않지만 그 쪽으로 가는게 안전하다고 판단한 나는 앞으로 무작정 뛰어가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아마 그 생물체가 나를 뒤쫓고 있는듯했다. 평소에 운동이라면 전혀 하지 않는터라 체력이 약한 나는 뛰어간지 금방 되지 않아 헉헉 대고야 말았다. 이대로 잡힌다면 게임 오버일까. 나에게 다시 기회같은건 없다. 나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게임 캐릭터가 아닐뿐더러 내 목숨은 단 하나니까.
이제 끝인가 ? 내가 겪을 앞으로의 상황이 필름처럼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체념하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있었는데 어디선가 큰 물체가 급하게 나에게 뛰어와서는 나를 들쳐매고 그 자리를 황급히 벗어났다. 나는 그사람의 어깨에 걸쳐져 그 사람에게 들려가고 있었고, 어느쪽으로 향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잠깐잠깐씩 한숨을 내뱉거나 뛰느라 힘들었는지 격한 숨소리를 내는것 외에는 말이다.
그는 사람이 분명했다. 그가 나를 들쳐매고 도착한곳은 어느 외진 구석의 방. 급히 도망치는 바람에 손전등도 떨어뜨려 나는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이곳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 자체에 든든함을 느끼는 참이었다.
" 어쩌다가 여기에 왔어요? "
멍하니 자리에 웅크려있던 나에게 먼저 말을 건것은 그 남자. 목소리와 체격으로 보아 남자인것을 확신했다. 그는 키가 매우 큰편이었고 목소리는 매력적인 저음을 가지고 있었다. 생김새는 음,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애초에 얼굴을 크게 따지지 않는 사람이고 하물며 이 상황이 소개팅같은 것이 아니라 우린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그저 괴물에게 쫓기는 한 게임캐릭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 그냥, 게임을 하다가. 잠에 들었어요. 일어나보니 여기 거실에 누워있지 뭐에요. "
" 그렇구나. "
내 대답을 듣더니 짧게 대답하고나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원래 내가 대답을 해주면 그 쪽 상황도 말해줘야 하는거 아닌가. 귀찮게시리.
" 그 쪽은요? "
남자는 머뭇거리는 듯 했다. 그러다가 곧 입을 떼었다.
" 사실은,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나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아요. 매일매일 혼자 쳐다만 보죠. 오늘도 그 사람을 보러 갔었는데, 그녀는 그 자리에 없었어요. 나는 곧 큰 빛에 둘러쌓였고 이 곳으로 떨어졌어요. 그러다가 당신을 발견했구요. 뒤에선 괴물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물체도 쫓아오는데, 일단 사람은 구하고 봐야죠. "
이 사람도 나와 같은 처지인건가 ? 여튼 그건 모르겠고, 이 사람도 여기에 대해 아는것이 거의 없는듯하다. 나는 왠지 모르게 이 사람에게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으므로 신뢰를 갖고 내가 이 사람보다 먼저 온 몇시간 동안 조사하고 알아낸 사실들을 전부 말했다. 그는 새로운 정보를 알고 흥미롭다는 듯했다. 그는 괴물에게 당장 맞서려는 듯이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는데, 나의 극구한 만류때문에 실행하지 못했다. 지금 우리가 저 괴물과 싸우게 된다면 몇분도 안돼 갈기갈기 찢어죽을것이다. 적어도 내가 플레이한바 로는 그렇다.
그의 이름은 찬열이라고 했다. 여기에 오기 전에는 평범한 대학생이었으며, 학교를 나가기보다는 주로 알바를 하는. 그런 류였던것 같다. 내가 그에 대해 아는건 이게 전부이다. 그가 나에 대해 아는건 내가 여자라는 것과, 게임을 매우 즐겼다는 것. 또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등등이다. 지금은 서로에 대해 신뢰고 뭐고 따질 상황이 아니다. 일단은 무엇인가를 해야 결론이 나올것이다. 나와 달리 이사람은 매우 적극적이며 활발한것 같았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조용했던것 같은데 긴장이 풀린건지 뭐가 좋다고 자꾸 나를 향해 질문공세를 펼친다. 물론, 나는 지금까지 36개의 질문중에 딱 5개에 답을 해주었다. 찬열이 내게 한 질문은 주로 나에 대해 묻는 사적인 질문이었으므로 별로 답하고 싶지 않았다.
" 주위가 조용해진 것 같은데, 나갈까? "
그가 조심스럽게 나를 향해 묻는다. 내가 느끼기에도 아무 기척이 느껴지지 않고 여기에 계속 있는다고 해도 진전이 없을것 같아서. 어떤 결과이던지, 그게 결과가 아닌 힌트라던지. 시작이라던지. 일단은 여기서 뭔가 달라졌으면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이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다.
" 그래, 그러자. "
찬열을 선두로 내가 바로 뒤에 붙어 따라간다. 어느 면에서 보아도 내가 찬열보다 체력이나 운동이나 공격 방어 등등 면에서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찬열은 내가 걱정스럽다고 했다. 만약에 내가 짐이 된다면, 찬열이 살 수 있는 상황이지만 나와 함께 간다면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 다고 하면. 나는 기꺼이 놓아줄 수 있다. 찬열도 아마 그렇겠지 ? 삶에 미련이 없는게 이럴 때는 좋구나. 싶다.
" 일단은, 이곳의 구조를 알아 놓는게 좋을것 같아. "
" 내가 몇시간동안 인지는 몰라도 한참을 돌아다녀본 결과, 여기 출입구와 창문같은 밖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는 전혀 없는것 같아. "
" 하, 그렇구나. "
찬열은 어쩌면 절망적인 것 같았다. 이곳에 나가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겠지, 나와는 다른 사람이니까. 나와는 다르게 건강하고 어딘지 모르게 밝은 사람이니까.
" 이 쪽. 오른 쪽으로 가면 막혔어. "
내가 평소에 기억력이 안좋다고 해도 게임상에서 내 기억력은 최고. 아마 못한다고 해도 금방 잊어버린다고 자기를 소개했던 찬열보다는 월등히 기억을 잘하겠지. 아까 돌아다니며 수색을 할때 찾았던 물건들이 다 어느 방에서 나온건지 등의 기억들은 있다. 적어도 내가 몇번 지나다닌 길은 잊지 않았다. 덕분에 찬열과 나는 길을 잃지 않았고 막다른 길을 마주치는 일도 별로 없었다.
" 언제까지 걸어가야하지. "
" 모르겠어. 그냥, 단서같은 걸 발견할때까지 찾아다녀야 할것같은데. "
찬열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에게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한것 같은데, 다 들리거든. 어, 하는 찬열의 목소리가 들렸다. 찬열이 갑자기 걸음을 멈춘터라 코를 등에 박고 말았지만 지금 아프고 그럴 틈이 없다. 찬열이 멈춘 방의 문에는 ' open book ' 이라는 팻말이 작게 걸려있었다. 찬열은 주저않고 그 방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방은 아까 내가 오지 못한 방인것 같다. 커다란 서재인것 같고, 박물관 답게 몇백년전의 문서와 책들도 보관하고 있었다. 찬열과 나는 커다란 서재 ( 다른 방에 4배에 달했다. ) 곳곳을 돌아다니며 힌트를 찾아내기 바빴다. 내가 높이 꽃혀있던 책을 겨우 뺐을때, 그 책이 있던 책장이 나에게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차마 피하지 못했고, 대신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눈을 떠보니 전혀 아프지 않았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책꽃이 만이 내 앞에 쓰러져 있었고 나는 찬열이 한 무릎을 꿇고 있는 자세 위에 앉듯이 누워있었다.
찬열은 작게 ' 조심. ' 이라고 말하고서는 다시 자신이 조사하던 책장쪽으로 몸을 돌렸다. 차마 고맙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입이 간질거려서. 아, 그런데 어쩌지. 엎어진 책장은 무게가 너무나 나가서 그 책장에 꽃혀있던 책들은 조사할 수 가 없다. 겨우 넘어질때 날아온 몇권만이 옆에 덩그러니 엎어진채 놓여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책을 열었는데, 그 안에서 파란 나비와 보라색 나비 각각 2마리가 날아갔다. 너무 놀라서 그 책을 던져버렸는데, 다시 그 책을 주워오고 보니 안에는 작은 쪽지가 있었다.
" 잠깐만, 여기 쪽지. "
찬열은 내말에 황급히 내게로 와 쪽지를 함께 읽기 시작했다. 쪽지의 내용은 이랬다.
' 죽고자 하면, 죽는다. 살려고 하면, 죽는다. '
쪽지는 거의 빛바랜 종이에 써져있었고 종이는 너덜너덜해 곧 해질것만 같았다. 빨간 글씨로 써져있는게 영 꺼름칙해서 버리고 싶었지만, 찬열이 이것도 좋은 힌트일 수 있다고 해서 찬열의 가방에 넣기로 했다.
나비들은 쪽지를 읽는 내내 우리의 위에서 빙빙 돌아냈고, 그 나비들이 날갯짓을 할때마다 파란, 보라색 가루가 흩날렸다.
실내가 완전히 깜깜한건 아니라 약간은 아름다운 그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상하다. 분명 나는 지금 말했다.
' 실내가 완전히 깜깜한건 아니라 '
아까 내가 몇시간전에 처음 왔을때에도 이곳은 암흑에 쌓여 깜깜하기만 했다. 한치 앞도 안보이는 이곳이었는데 찬열을 만나고 어느 순간부터 실내가 약간씩 밝아졌고, 적어도 실루엣 정도는 볼 수 있는 밝기가 되었다. 나는 이 정보를 바로 찬열에게 전했다.
" 혹시, 이 실내에도 밤과 낮이 있는건 아닐까 ? "
찬열의 말은 무언가 설득력 있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내가 이곳에 왔을때는 밤이었고, 지금은 낮이다 이말인가. 애초에 실내에 낮과 밤이 있다는게 말이 안되는것 같지만. 이 곳은 완전히 막혀있고 시간의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것 같았다. 그러니까, 우린 잘못하면 평생 이 정지된 시간속에 살 수도 있다고.
" 도와줄게. "
찬열은 멍하게 책들을 바라보던 나에게 말했다.
" 내가, 꼭 너랑 같이 빠져나갈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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