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나를 버렸다. 나에게 등 돌렸다. 신따위 믿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잔인하게도 나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도 평화롭게
돌아가는 이 세상을 증오 할 뿐 이다.
부주의로 인한 사고였다.
그렇게 기사가 난 기억이 있다. 국립 생명과학 연구소는 누구나
쉽게 일할 수 없는 곳 이었다. 그만큼 대단하고 또 비밀스러운 실험들이 넘쳐나는 곳 이다. 그 곳에서 나는 2년전,
사랑하는 나의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제정신이야? 안돼. 절대 하지마 너."
"야 찬열아 잘 들어봐,이미 안전장비 다 검사했고 이상없고. 또 신체능력이나 정신력이 딱 맞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잖아.
여기는 다 늙은이들 투성이라고, 이 젊은 변백현씨가 연구소를위해 조금 나서줘야지."
"안돼.절대로 안돼. 그게 말이 좀 자다 일어나는거지. 냉동인간실험이야,너는 그 순간만큼은 죽은거라고.
언제 깨어날지도 몰라."
찬열이 백현의 어깨위로 손을 얹었다. 백현을 내려다보는 눈은 걱정으로 가득 차있었다.
"저기요. 우리 천재 해커 박찬열씨. 제가 언제 실험에 실패한거 봤어요? 오늘따라 왜그래? 네 애인 다칠까봐그래?
금방 끝내고 온다니까."
백현이 찬열의 손을 떼어내려다 찬열의 품에 안겼다.
"...백현아 진짜 정말 걱정되서그래. 네가 사라지면 나는.."
찬열이 더 꽉 안았다.
"금방,잠깐만 헤어지는건데 뭐. 한번만 하고올게. 걱정마."
그리고 그 잠시뿐이라던 헤어짐은 끝이 나지 않았다.
"백현이, 백현이는요?"
거의 실험실의 문을 부실것같이 문을 열고 찬열이 들어왔다. 상황은 저가 생각 했던 것 보다 훨씬 심각 한 듯 보였다.
입김이 나오는 추위의 온도와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있는 실험장치들 그리고 주름진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가득한
연구원들,마지막으로 쓰러져있는 백현까지.
"....뭐에요?"
찬열은 쓰러진 백현을 보고 넋놓고있다가 쓰러진 백현을 안아들었다. 품에 안긴 백현의 얼굴은 원래 피부색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창백해져 있었다. 매일 입맞추던 사랑스러운 빨간색의 예쁜 입술은 어느새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점점 차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입을 열었다.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뭐냐구요.백현이....왜그러는데요,잠깐 쓰러진거죠? 이제 일어날거잖아요,그쵸?"
"....미안하네."
해동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실험 하루 전까지도 이상없이 잘만 돌아가던 기계가 고작 배터리 방전으로 작동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실험사고는 세상에 '부주의로 인한 작은 사고'로 전파되었고,곧 이 사건은 점차 아무일 없었던 일 처
럼 묻어졌다. 고작 사람 목숨 하나 잃었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그 안타까운 순간에만 서로 더 위로해주는 척 하지만 시
간이 지나면 잔인하게도 모든 것 이 제자리였다. 백현이는 내 모든 것 이었다. 부모에게도 버려진 나를 백현이는 감싸주었다.
그 더러운 세상에서도 백현이는 깨끗했다. 추악한 세상에서 갈 곳 없이 두려움에 떨고있던 나를 위해 변백현이라는 세상을
만들어 나를 감싸주었던,그런 너를 나는 지켜주려했다.
하지만 그 세상이 무너졌다.
"찬열군 정말 괜찮겠나?"
그리고 그 2년후 지금, 나는 너를 따라가려한다.
"괜찮습니다. 시작하세요."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수도 있는 실험이었다. 이미 백현이를 잃고나서 한 동안 잠잠해졌다가 다시 개발한
냉동인간 실험이었고 모두 두려워했다. 그렇기에 누가 나서서 제가 죽도록하겠습니다. 라고 자진해서 참가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수명도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들을 시키기엔 불쌍해서 영원히 깨어날수없는 이 실험에 나는 직접 참여했다.
나는 차라리 그냥 영원히 깨어나고 싶지 않았던 것 이다.
나의 세상이 무너졌으므로, 나는 살아야 할 이유를 잃었다.
"그럼 시작하겠네."
마지막 너의 모습을 기억하며
나는 눈을 감는다.
* * *
몸이 덜덜 떨린다. 의식이 점점 돌아오는 것을 느낀다. 너에게 가는 것은 실패했다. 의식이 들지않게 눈을 감았다.
하지만 곧 이상함을 느낀 나는 눈을 뜨고있었다.
"....."
이상하다. 뭔가 잘못되었다. 눈을 뜨면 실험실의 천장이 보여야 할 것을, 지금 눈앞에는 아무도,아무것도 없는
거의 죽어가는 세상이었다. 손목에 채워져 있는 손목시계는 멈춘지 오래였다.
"...뭐야,이게.."
정말 아무도,아무것도 없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없다.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잠들어있는 동안 무슨일이 있었는지 파악하기위해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잠시, 곧 어떻게 해야하는지 막막함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일단 더 살펴보기위해 가까운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어."
![[EXO/찬백] 날개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9/6/9/969e4d1b0591263fa747701ec807c026.jpg)
커다랗고 하얀 날개를 접으며 흩날리는 깃털 사이로 사람이 보였다.
아니,천사를 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날개가 달린 백현이를 보았다.
"...백현아!"
죽어야만 볼 수 있을 것 같은 천사를 본 것은 둘째치고,백현을 봤다는 사실에 찬열은 백현에게 달려들어 안았다.
"백현아..백현아..백현아.."
"..잠깐!"
찬열은 곧 밀려났다.
"너,너 누구야? 누군데 내 이름을 알고,놀라지도 않고.."
눈 앞에 있는 것은 백현이가 맞다. 하지만 백현이는 나를 기억하지 못 한다.
당황함도 잠시 찬열은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침착하게 행동했다. 백현이 놀라지않게,또 내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미안. 잠깐 오해했나봐.내가 옛날에 사랑하던 사람이랑 정말 똑같아서. 그 사람이랑 이름도 똑같은 줄 몰랐어."
"너는 왜 혼자야?"
"..뭐?"
다짜고짜 왜 혼자냐고 묻는 백현의 표정이 너무 순수해서 아무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왜 혼자냐구."
"..그럼 너는 왜 혼자야?"
어느새 옆에 앉은 백현의 옆으로 나란히 앉아 물었다.
"나는 늘 혼자야. 버려졌어."
"어디에서?"
묻는말에 백현은 하늘을 가르켰다.
"...그래."
"이제 너야. 너는 왜 혼자야?"
"나도 버려졌어."
"누구한테?"
"사랑하는 사람한테. 나도 이제 혼자야."
백현이 찬열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랑하는 사람이뭔데? 사랑? 그건 뭐야?"
호기심에 가득 차있는 눈이었다. 찬열은 그런 백현의 눈을 바라보기도 잠시 다시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그냥 계속 보고싶은거야. 옆에 있어도,없어도 보고싶은 거."
"음...그래?"
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지금도 보고싶겠네?"
"뭐가?"
"네가 사랑한다는 사람."
"..응 보고싶어."
그래, 이렇게 바로 옆에 있어도 계속 보고싶어.
어느새 찬열과 백현은 더욱 가까워졌다. 어디서 났는지 비상식량으로 군것질을 챙겨두었던 백현이 찬열에게도
나누어 줄 만큼 친해졌다. 인간과 천사라는 관계는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서로의 얘기를 들어주고 서로를 도우며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죽어가는 이 세상에서 둘은 그렇게 서로에게 서로를 의지했다.
하지만 서로를 의지하는 상황 속 에서 백현은 깨달았다. 나는 찬열을 사랑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아버렸다.
옆에 있어도,없어도 찬열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죄로 죽음을 얻었다.
"나 너 좋아해."
여느때처럼 옥상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보고있던 때에 찬열이 대뜸 백현에게 말했다. 백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뭐라고?"
"너 좋아한다고,처음 봤을 때 부터 반했어. 옆에 있어도,없어도 보고싶다고."
담담한 찬열에 비해 백현은 그런 찬열이 미웠다. 나는 이제 곧 너를 떠나는데, 조용히 나 혼자 좋아하다가 떠나려고 했는데.
"...미안."
"어?"
"미안,미안해 좋아해줘서 고마운데. 나는..너를 좋아하지않아...그니까 내 말은 네가 싫다는게 아니.."
"알았어. 그럼 나 혼자 좋아하면되지 왜 그렇게 미안해."
아니야,나도 너를 좋아해. 찬열아.
"...응. 고마워."
* * *
시간이 지날수록 백현의 날개는 힘이 없어졌다. 점점 깃털이 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몸에도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찬열이와
이별이 점점 다가오는 것 이다. 흐려지는 정신을 다시잡고 찬열에게 말했다.
"찬열아."
"응."
"소원 하나만 들어줘."
"뭔데?"
"오늘 밤에도 해지는거 보러가자. 별도 보고 오자."
"뭐야,맨날 하던거,너 뭐 따로 원하는거 있지."
"응,이번엔 손잡고 보자."
* * *
서로 맞잡은 손은 풀어질줄 몰랐다. 정말 백현의 소원대로 그저 아무 말 없이 손만 잡고 해가 지는 하늘만 바라보았다.
뭔가 다른 분위기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백현이었다.
"찬열아."
"응."
백현은 찬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찬열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나는 이제 곧 너를 떠날거야."
"...응."
찬열은 담담했다. 이미 찬열도 다 알고있었다. 점점 힘이 없어지고 말수가 적어진 백현과, 깃털이 빠져 풍성했던 날개가 작아
져 있는 백현을 보고. 끝내야 하는 것 을 알았다. 하늘은 어느새 어두워져 별이 보이기 시작 했다.
"..나 사실 무서워. 너무너무 무서워 찬열아."
"..괜찮아,괜찮아.."
찬열은 그저 백현을 꼭 안아주었다. 처음 만난 그 날 처럼.
"나 사실 너 좋아해.사랑해. 계속 보고싶고 옆에 있어도 막 보고 싶..."
언제부터 울고있었는지 얼굴에 눈물 범벅인 백현에게 찬열이 키스했다.
"괜찮아,괜찮아 백현아. 나는 계속 너 사랑할꺼야. 울지마."
"..미안해,미안해 찬열아 사랑해."
언제가부터 우리는 아침이 싫어질 만큼 별을 사랑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별을 원망했다.
"사랑해."
점점 흐려지는 백현의 얼굴을 잡고 다시 입을 맞추는 순간 백현은 사라졌다.
비상하지 못한 정신으로
너와 지냈던 추억을 기록해야 했으며
흩어지는 날개 속 너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려 했다.
이로써 나는 또 하나의 내 세상을 무너뜨렸다.
옥상의 낡아빠진 난간은 있어봤자 소용없었다. 너의 깃털이 흩어지는 자리로 난간에서 발을 앞으로 옮긴다.
아무도,아무것도 살아있지 않은 이 도시에서의 죽음도 나쁘지 않았다.
머리카락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의 느낌은 나쁘지 않다.
결국 내가 원한 건 이런 세상이었나. 나는 깨달았다.
세상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세상을 밀어냈다고.
이렇게 나의 비극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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