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
너 어제 밤에 연락도 없이 어디서 뭐했어? 평소와는 다른, 화가 잔뜩 난 모습으로 문을 박차고 집으로 들어온 이재환이 분을 참지 못해 식식거리며 내게 말한다.
글쎄. 지난밤 만났던 남자와 아직까지 연락을 주고받느라고 이재환을 쳐다보지 못한체로 말하면 이재환은 내 손에 들린 휴대폰을 빼앗아가 대화내용을 훑어본다.
휴대폰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려오고, 막막함에 터져나오는 한숨은 이재환의 목소리가 아닌 것처럼 낯설어 재밌기도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고개를 돌려 이재환을 쳐다보자 이재환이 나를 내려다본다.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은데 차마 나한테 화를 낼수없어 답답해하는 그 얼굴이, 나를 내려다본다.
뭐하는거야. 자리에서 일어나 이재환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빼앗아 손에 쥐고 이재환을 노려보았다. 이딴식으로 할거면 나가. 이재환의 어깨를 떠밀었다.
내 손을 붙잡은 이재환이 아랫입술을 깨물다가 결국 원하는게뭐야. 하고 속에 있는 울분들을 나에게 모두 터트려내며 화를 냈다.
"원하는거라니. 나는 그런거 없어."
"그런데 나한테 왜 이러는거야? 내가 어디가 부족하면 부족하다,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 말해줄수 있는거잖아. 이딴식으로하는게 시위밖에 더 돼?"
이재환의 말이 마냥 웃기기만 하다. 시위? 내가 하는 이 수고스러운 모든 일들이 시위라니, 이재환 너는 시위에서 그치기에는 아쉬운 내 마음을 알기나할까.
더이상 이재환과 말을 섞고싶지가 않아서 흘러가고 있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둔체로 이재환의 곁을 지나쳐 방 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닫으려는 순간 나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온 이재환이 닫기려는 문을 붙잡고 내 어깨를 붙잡아 나를 돌려세워 자신과 마주보게 했다.
바깥에서 만날 때와는 다르게 이재환을 올려다보는 고개가 버겁다싶을정도로 아파왔지만 꾹 참고 나를 내려다보는 이재환을 노려보았다.
"이런식으로 나 힘들게 할거면 헤어져."
내 말에 이재환이 동요한다. 일렁이는 눈동자 안에 가득 들어찬 내가 아무런 표정이 없음에도 그렇게 사악해보일수가 없다.
나쁜년. 속으로 나를 씹으며 점점 흔들리는 이재환의 앞에서 감정없는척, 감흥없는척, 마치 이 시간이 지겨운척 하며 서있었다.
○○아. 아니나다를까 입가에는 힘겨워보일정도로 억지로 미소를 띈 이재환이 내 손을 붙잡는다. 어떻게 헤어지자는 말이 그렇게 쉽게 나와.
"자기는 나를 안 사랑해? 나는 자기 너무 사랑하는데."
애교와 알수없는 서러움이 뒤엉킨 목소리가 괜찮은척 떠든다. 이재환의 두 눈에 가득 들어찬 생각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입을 닫았다.
고개를 돌리려고 하자 내 손을 붙잡은 이재환의 손에 힘이 더더욱 들어간다. 자기야. 애타는 목소리가 안절부절하며 미쳐가려고 한다.
"사랑해 자기야. 응?"
아랫입술을 꾹 깨물다 내리깔았던 시선을 들어 이재환을 쳐다보았다. 마치 울것같은 그 모습에 이상하게도 점점 기분이 좋아져가고 있다.
붙잡힌 손을 들어 이재환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깍지를 끼자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보던 이재환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간다.
"다음부터는 그러지마."
"응."
누가 먼저 잘못을 한건지는 안중에도 없는 이재환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약속할게. 어느새 제자리를 되찾은 목소리가 나쁜 마음을 먹게한다.
이렇게 또 이재환은 내가 놓으려는 끈을 더더욱 세게 붙잡으며 내 손까지 붙잡아 끈을 놓지않게, 또 끊어지지 않게 애를 쓴다.
이제는 이재환을 울려버리고 실망하게 만들고 너덜거리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에서부터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
전화 안 받아도 돼? 끊임없이 테이블 위에서 진동하는 휴대폰을 안타깝게 쳐다보던 남자가 내 등뒤에서 나를 껴안아오며 물었다.
이재환과는 다르게 불쾌한 향수냄새를 풍기는 남자가 마냥 싫기만해도 또 내 앞에서 안절부절하는 이재환의 모습을 보기위해 가만히 있었다.
괜찮아요. 내 말에 남자는 다시금 내 목덜미로 얼굴을 묻어왔다. 아무것도 입지 않아 남자의 피부가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 오늘따라 더 역겹게 느껴졌다.
몸을 틀어 웃으며 남자를 밀어내자 남자가 왜 그러냐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피곤해요. 하고 변명하자 남자가 한숨을 푹 쉰다.
"내가 다 하는건데 뭘."
생색내는 남자의 모습이 역겨웠다.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주먹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이를 악 물며 겨우 화를 삭히려는데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싶어 문을 바라보자 열린 문 사이로 이재환이 보였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내 모습을 본 이재환의 두 눈이 커다래지더니 이내 내 뒤에 누워있는 남자의 모습에 두 눈을 찌푸리며 이를 악 물었다.
"너 이게 지금 뭐하는거야."
"넌 뭐하는건데? 누가 마음대로 남의 집에 들어오라고했어?"
차마 일어설수는 없어서 침대에 앉아 이재환을 노려보았다. 멍청한 남자는 이재환을 보며 저 새끼는 뭐냐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옷 입어. 바닥에 널부러진 옷들을 주워 내게 건넨 이재환이 내게 등을 보인다. 머뭇거리는 나를 예상한듯 얼른. 하고 말하는 목소리가 굳어있다.
이재환의 눈치를 보며 침대에서 일어서 옷을 입었다. 술냄새가 베어있어 아무래도 이재환이 더 화를 낼 것 같아 머리가 복잡했다.
이재환의 손을 붙잡고 방 밖으로 끌어내려고 하자 이재환이 내 손을 뿌리치더니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 여전히 침대에 앉아있는 남자에게로 던진다.
"나가."
"아니 근데 이 새끼가,"
"나가라고 씨발아."
굳어있는 이재환의 목소리에 놀란건 나뿐만이 아닌지 이재환의 눈치를 보며 옷을 입은 남자가 이재환의 옆을 지나쳐 집을 나간다.
그 아둔한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내 어깨를 붙잡아 벽에 몰아세운 이재환이 나를 내려다보며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내 몸 곳곳을 훑어본다.
"재미 좀 봤어?"
"......"
"씨발 아주 걸레도 아니고. 여기저기 끼떨고 다니니까 좋지? 내가 미쳐가는거 보니까 행복하지? 아주 날 죽이려고 작정했지 너?"
점점 악을 지르는 이재환의 앞에서 내 감정을 터트릴수가 없었다. 이재환이 화를 못 참고 심한 말까지 내뱉었지만 말이 심하다며 화를 낼수도 없었다.
머리를 헝클인 이재환이 화를 억누르려는 것처럼 머리를 헝클이고는 심호흡을 하더니 이내 내 뒷통수를 붙잡고 입을 맞췄다.
평소같았다면 내가 싫다고 할까봐 조심스러웠을 키스가 마치 나를 잡아먹기라도 할것처럼 거세고 매서웠다.
입을 뗀 이재환이 허탈하게 웃었다. 나를 붙잡은 손이 떨어지고 마치 더러운 것이라도 만진것처럼 옷깃을 꽉 쥐었다.
"이제는 키스를 해도 달콤하지가 않네. 왜 기분만 더러워지는것같지?"
이재환의 입은 분명 웃고있는데 나와 마주한 시선은 매섭게 나를 쏘아보고있었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이재환이 너 술냄새나. 하고 말했다.
"지금 니 모습이, 내가 싫어하는 것들 투성이다."
"......"
"끝내자. 놓아줄테니까, 내가 겨우 붙잡은 그 끈. 너가 끊어."
너 좋은 일들만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 나를 비꼰 이재환이 등을 보이며 내게서 멀어져간다.
이재환을 붙잡고 싶었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붙잡을수가 없었다. 내 욕심이 넘치는 바람에, 가늘어져버린 끈이 결국 끊어져버렸다.
***
얼마나 마셨는지 변기통에 게워내는 양이 적지만은 않았다. 모두 개인플레이일뿐인 클럽 안에서는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조차 없다.
그만 마셔. 나를 걱정하며 내 등을 다독여주던 이재환의 목소리와, 손길이 너무나도 그리워서 화장실을 나서자마자 다시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옆에는 남자를 끼고앉은 친구들이 나를 쳐다보며 걱정하는 사람에게서는 전혀 볼수없는 태도로 괜찮아? 하고 영혼없는 걱정의 말을 건네온다.
입꼬리를 당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아 비어있는 잔에 술을 가득 따라 들이켰다.
겨우 깰 것 같았던 정신이 다시 몽롱해지는 느낌이 들어 그만 마시려다가 다시 술병을 손에 쥐고 잔에 술을 따랐다.
어머 얘 미쳤나봐. 술이 넘쳤는지 친구들이 호들갑을 떠는게 들려오고 황급히 티슈를 뽑아 넘친 술을 닦아내기 시작한다.
머리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손들이 파란색과 녹색 등의 말도 안 되는 색깔로 보이기 시작해 눈을 감았다 떠봤지만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시금 밀려오는 구토감에 자리에서 일어서 다시 화장실로 뛰었다. 목끝까지 넘어오는 시큼한 무언가에 황급히 문을 열고 변기 앞에 주저앉았다.
모두 게워냈다고 생각했는데 술 한잔에 다시금 속안에 있는 위액까지 모두 게워내게 되고나니까 그 기분이 참 역겨웠다.
물을 내리고 변기에서 일어서 세면대로 가 입안을 헹궜다. 오늘은 그냥 집에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잘 하는 짓이다."
입가를 닦아내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보았다. 문 옆에 비켜서있던 이재환이 두서없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와 내가 있던 칸을 쳐다보았다.
내 곁으로 다가온 이재환이 코를 틀어막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얼마나 마신거야. 짜증섞인 목소리가 그리웠는데도 갑작스러운 참견이 싫어 이재환을 지나쳤다.
"○○○."
"이제 남남인데 아는척 좀 그만해."
멀쩡한척 해보려했지만 다리가 꼬였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것같아 벽을 붙잡아 그 자리에 멈춰섰다. 친구를 불러야겠는데, 전화를 테이블에 두고온듯했다.
너 이 상태로 혼자 못가. 내 옆으로 온 이재환이 나를 부축했다. 테이블에 있던 나를 발견하고 따라왔는지 이재환이 자연스럽게 내 가방이 있는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이 들여보낼게요. 이재환이 내 가방을 가져가자 이재환의 얼굴을 알고있는 친구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길래 모르는척 고개를 푹 숙였다.
짧게 목례를 한 이재환이 굳이 스테이지로 가려는 사람들에게 어깨를 부딪히면서까지 나를 입구로 부축했다.
"왜 온거야."
이재환의 품에 기대다싶이하며 걷다가 문득 이재환에게 묻자 이재환이 짧게 미소를 지었다. 이럴땐 고맙다고 하는거야. 코웃음을 치자 이재환이 나를 쳐다본다.
이재환의 볼을 밀어낸후에 애써 내 힘으로 걸어보려고 하다가 이재환의 손에 붙잡혀 다시금 이재환의 품안으로 박혀들었다.
하아. 한숨을 푹 내쉬고 다시 일어서려는 나를 일어서지 못하게 아예 건물의 벽에 밀어붙인 이재환이 헝클어진 내 머리칼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어째 나랑 헤어지고 더 망가진거같아."
"걸레라며."
"......"
"너가 나 걸레라고 했잖아. 네 말대로 열심히 몸 팔고 다니는데, 왜 또 참견이야?"
이재환의 어깨를 밀어내자 버틸 줄 알았던 이재환이 의외로 너무나도 쉽게 뒤로 밀려나 내가 빠져나갈 길을 쉽게 내어준다.
이재환의 손에 들린 가방을 빼앗아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시간이 조금 지나고나니 걸음을 옮기는데에는 무리가 없어 손쉽게 이재환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
잠에서 깨어났을땐 머리도 깨질것같았고 속도 뒤집혔는지 마냥 쓰리기만 했다. 타들어가는것같은 가슴을 꼭 쥐었다가 팔을 대자로 뻗고 다시 눈을 감았다.
일어났으면 씻어. 미세한 기척을 들었는지 밖에서 이재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꿈인가싶어 눈을 떴다가 다시 감고 떠봤지만 꿈이 아니였다.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보자 어울리지도 않게 요리를 하던 이재환이 뒤를 돌아 나를 쳐다보더니 말 없이 식탁 위를 가르켰다.
미리 타놓은 꿀물이 투명한 유리잔에 담겨있었다. 식탁으로 걸어가 꿀물을 집어들어 입에 가져다대 한모금씩 들이켰다.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 목을 타고 넘어가는 달콤한 무언가 때문인건지, 내 주방에서 생전 않던 요리를 하는 이재환 때문인건지 알수가 없다.
이재환의 뒷모습을 흘긋 쳐다보다 이재환의 곁으로 다가가자 숟가락을 쥐지 않은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은 이재환이 씻어. 하고 말한다.
"맞다, 너 누가 비밀번호 그대로 두래? 내가 막 들어왔으면 어쩌려고."
갑작스럽게 고개를 돌린 이재환이 나를 혼내려는 것처럼 말했다. 비밀번호 바꿔. 아까 전 밝던 목소리와는 다른 어두운 목소리가 슬프게 들려왔다.
국의 간을 보던 이재환이 가스불을 끄더니 나를 지나쳐 찬장으로 가더니 찬장을 뒤적여 꺼낸 그릇에 국을 퍼담았다.
"내가 실수로 한 말에 너가 그렇게 될 줄 몰랐어. 미리 사과했어야하는데 그때는 화가 나서 입만 열면 욕이 나오더라. 미안해."
내 얼굴을 보는게 그렇게 머쓱한건지 국을 다 퍼담았음에도 허공을 보며 말을 하던 이재환이 몸을 틀어 식탁 위에 국을 올렸다.
이재환의 팔을 붙잡고 이재환의 얼굴을 붙잡아 마주볼수있도록 얼굴을 돌리자 이재환이 내리깔았던 시선을 들어 나와 눈을 마주쳐온다.
"앞으로 내가 더 잘할게. 너도 노력해줘. ...끈이 다시 붙었으면 해."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내 눈치를 보며 나를 따라 미소를 지은 이재환이 내 손을 붙잡았다.
+)
이거 불마크 달아야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