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공지가 닫혀있습니다 l 열기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몬스타엑스 이준혁 강동원 김남길 샤이니 온앤오프 엑소
시민단체 전체글ll조회 559l
등장인물 이름 변경 적용

 

 


 


 


 

 

[NCT/TEAMT] 욕慾 : 말로 | 인스티즈 


 


 


 


 


 

 엷은 눈동자에 지는 그림자는 아름답다. 


 

민형은 줄지어 진열된 19세기 말의 명화를 감상하듯 팔짱을 끼고, 입매를 쓰다듬다, 날카로운 송곳니에 아랫입술을 베여 버리고 만다. 

제 앞에 선 두 사람의 모습은 제 몸이 가루가 되어 날아간대도 보고 싶지 않았다. 이런 종말이라면. 

입술 새로 혀를 내어 붉은 핏방울을 쓸어 맛본 하얀 얼굴이 헛웃음을 웃었다. 운명이란 게 참 신기하지. 


 


 


 


 

시시각각 변하는 다이아몬드와 다를 게 없었다.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탓하고 벌할 세공자가 없다는 것이겠지. 


 


 


 


 

그 악독한 재능이 결국 몸뚱이를 지키지 못하고 찢어 발기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게 불과 5분 전이었다. 

이태용은 맹독을 버텨낼 만한 그릇이 못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물에 젖은 창호지마냥 흐늘흐늘한 성품을 숨기려 발악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렇게 발버둥치다, 마땅히 내려진 운명처럼 지리멸렬히 무너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의 파멸을 확신했었다. 


 

그 짧은 시일 내에 김여주의 애정이 새끼 손톱만큼이라도 그에게로 향할 것을 의심했더라면, 이렇게 되도록 두지 않았다. 


 


 


 


 

불길에 휩싸였던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형체를 드러냈다. 

파랗게 질린 입술 새로 연신 검붉은 핏덩어리를 토해 내는 이태용과, 개의치 않고 그에게 입을 맞추는 내 연인의 모습을 지켜본다. 

차라리 저 불에 타 죽는 게 낫겠다 싶지만 그 불길마저도 연소되고 말았다. 


 


 


 


 

김여주, 너의 선택을 존중하리라 말했다. 나를 기억하며 운명을 거스르겠다던 네 말을 기억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아. 


 

 왜냐, 하늘을 먼저 저버린 것은 내 쪽이니까. 


 


 


 


 


 


 


 

말로 

그리고 드러나는 진실, by B 


 


 


 


 


 


 

 가슴 한복판에 붉게 패인 세 글자를 쓰다듬는 손길이 차다. 


 


 


 

 “민형아, 갑자기 이런 말하면 이상하겠지만… 사랑해.” 


 “사랑하는 사람한테 사랑한다고 하는 게 뭐가 이상해. 내 한 몸보다도 소중한 사람인데.”
 


 “그런가? 우리가 운명이기는 한가 봐. 한 번 싸우지도 않고, 이렇게 좋은 짝이 또 어디 있겠어.”
 


 “그러니까, 행복하다. 진짜. 나한테는 너밖에 없어.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어디 가지 마라.”
 


 “너나 어디 가지 마, 이민형.”
 


 


 


 

 알았어.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던 표정은 기억만으로도 입가에 꼭 같은 호선으로 그려진다. 

나는 예감이 빠르니까, 네게 늘 말했지. 


 

어디 가지 말라고, 말버릇처럼 그렇게 말했지만 네가 누군가에게 떠나리라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단지 내 욕심 때문에 네가 떠날까 봐 그걸 걱정했을 뿐이었다. 


 

별 걱정을 다 한다는 표정으로 뜨겁게 뛰던 심장 위에 키스하던 네가 생각났다. 

네 입술이 닿을 때마다 내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지. 이러다 죽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따위나 했었다. 평생토록 너를 속여도 내 감정만 진심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리라 여겼다.  


 

네게 운명적인 사랑을 운운하며, 입속으로는 운명지어지는 사랑이란 없다고 계속해서 되뇌었다. 


 


 


 


 


 


 

하지만 김여주, 네가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던 운명의 글자는 거짓이야. 


 


 


 

거짓. 


 


 


 

너에 대한 내 타들어가는 애정까지도 형편없는 욕망의 일부분으로 폄하할 수 있는 단어이겠지만 그것만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매달리고 갈증내 마지않았던 너의 애정이 그렇다면 나는 또 한 번 피를 토하게 되겠지만 나의 슬픔 그 뿐, 그렇다 하여도 내 사랑이 거짓으로 변모하지는 않는다. 


 

이 지독한 인연을 꼬아놓기 시작한 것은 나였으니 마땅히 내가 받아야 할 대가임에 틀림없지. 

지금이라도 사실을 밝히니, 너는 이 벌에서 벗어나 행복하길. 

가엾은 마리오네뜨의 사지를 매달았던 보이지 않는 실을 잘라내며 네게 고한다. 


 


 


 

운명을 벗어난 사랑이라도, 분명히 아름다웠노라고.
 


 


 


 


 


 


 

*** 


 


 


 


 


 


 


 

처음으로 늪에 발을 담근 날은, 


 

 병동의 하얀 벽마저도 얼어붙은 것 같던 추운 겨울이었다. 

내가 인턴을 그만두고 정식 의사로 근무하게 된 첫날이기도 했고,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너와 사귀게 된 첫 하루이기도 했다. 

모든 좋은 일은 밀물처럼 한번에 몰려온다고 생각했었지. 기쁜 날이었다. 


 


 


 

 - 최근 2주 간의 발현 속도 급상승 


 


 


 

 “뭘 그렇게 봐? 적당히 하고 평소처럼 약이나 달라고.” 


 

 “…….” 


 

 “야, 의사. 안 들려?” 


 


 


 

 좋은 일은 밀물처럼. 그 말은 내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해와 달이 하루를 돌아 내게 행운을 안겨주는 것이 오늘 나의 운명이라면, 그 운명에는 예측하지 못한 불청객도 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린 나이에 학부를 조기졸업하고 이 병동의 의사 가운을 입게 된 것은 순전히 돌돌 잘도 굴러가는 머리와 누구든 내 앞에 무릎 꿇도록 만드는 아주 작은 능력 덕이었다. 

그 덕에 피투성이가 되어 하얀 베드를 물들이고 자빠져 있는 이 놈을 전담하게 되었지만. 


 


 


 

 ‘이태용. 너와는 동갑이지. 자주 들었으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애가 성년이 된 지도 이 년이 지났어. 이제 그 애를 맡을 수 있는 의사가 얼마 없다. 

그나마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던 놈들은 전부 그 손에 죽었어. 남은 건 너뿐이다. 아직 경험이 많지 않으니 맡기지 않을 예정이었는데, 일이 틀어졌다. 

괜찮겠니, 민형아? 아니, 괜찮지 않더라도 네가 맡아야 한다. 몇 번 부딪히면 패턴을 알 수 있을 거야. 

중독이 된다 싶으면, 곧 숨이 넘어갈 것 같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맞서서 밀어내라. 그 독을 이겨내는 건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모두가 두려워하던 괴물, 그를 피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던 노인네들을 기억한다.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제 등어리의 짐을 내게로 쌓아 올렸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뿐한 얼굴로 등을 돌리곤 했었다. 

스물 두 살짜리 애송이에게 벌벌 떨면서, 똑같이 스물 두 살밖에 안 된 까마득한 신입에게 해결책을 바란다고 지껄였다. 

모순적이게도 혀끝까지 가득 집어먹은 겁을 이태용과 나의 탓으로 돌려 대면서. 


 

물론 그건 단순히 우리와 그들의 간극이 너무 커서였다. 


 


 


 

 그리 유쾌하지 않은 대화가 끝나자마자 귀신같이 새 진료실 문을 더럽히며 들이닥친 이태용은 바뀐 진료실 위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듯 싶었다. 

어떻게 알고 왔느냐 물어볼까 했으나, 직감 좋은 괴물 새끼가 어떤 방식으로 제 약을 찾아 들어왔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처음으로 들여다 본 이태용의 진료 기록 화면에는 가파르게 오르는 주황색 선 그래프가 새겨지고 있었다. 

최근 2주간 갑작스럽게 증가한 능력치를 똑똑히 그려내는 새파란 선과, 그에 상응하여, 혹은 더 빠르게 증가하는 발현 속도 그래프. 


 

성질 급하게 약을 요구하다 말고 결국 선반을 열어 약통을 찾아내는 뒷모습이 보였다. 끔찍이도 직감적인 재능이었다. 

다쳐 올 때마다 너무도 손쉽게 회복제를 찾아내곤 했다. 

아직까지 마땅한 가이드도 없었거니와 약을 챙겨 줄 법한 가족이나 연인도 없었지만 죽을 정도로 기력이 부족해도 기가 막힌 타이밍에 살아나는 일의 연속이었다. 


 

우연이 계속되면 인연이라고 했던가, 믿기 싫어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천재였다. 


 


 


 

 

 화면 밖으로 뚫고 나갈 듯이 치솟은 주황색 실선을 마주한 순간 악몽처럼 머릿속을 파고드는 얼굴은 아직 앳된 김여주의 얼굴이었다. 아주, 아주 불길한 예감. 

그 애에게서 미묘한 감각을 느끼고 일부러 숨겨 두고 있었지만, 그 애도 곧 열 아홉 살이 되니 어쩔 수 없이 가이드 검사를 받게 될 것이었다. 


 

그 전까지 무조건 이태용에게서 떨어뜨려 놔야 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이태용의 네임 발현을 막는 것. 만약 그 상대가 여리디 여린 나의 연인 김여주가 된다면. 


 


 


 


 


 


 

*** 


 


 


 


 


 

늪에서 건져지기를 포기한 날은, 


 

아직 봄이 오기 전의 쌀쌀한 밤이었다. 

우연히 보게 된 여주의 살갖 위에서 빛나는 이름을 발견했다. 이민형, 나의 이름자였다. 

마냥 기뻐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내게 네 이름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니라고 말하면서 은근히 운명을 믿을 너를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바늘과 색소를 샀다. 

누구도 믿을 수 없어서, 어깨 너머로 익힌 기술로 비밀스럽게 내 심장 위에 너를 새겨 넣었다. 


 

아주 작은 금빛 별들을 수놓았다. 그 위에 점점이 피어나는 붉은 꽃잎들은 딱지가 앉고 곧 떨어질 테니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었다. 


 

아니, 사실 너에게만 들키지 않으면 되었다. 

나는 항상 네 곁에 있을 것이고, 이상하게도 한 순간도 빛을 잃지 않고 평생토록 황금빛으로 빛나는 글자에 대해 네가 묻는다면 언제나 네 곁이어서 그렇다고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이미 나는 그 달밤에 너를 새겼다는 말이었다. 


 


 


 

운명의 연인이 멀리 떨어졌다고 해서 빛을 잃는 평범한 이름자가 아닌, 


 

네가 떠나도 죽지 않는 영원의 금빛을. 


 


 


 


 


 


 

거울 속에 비친 네 이름이 충분히 자연스러워졌을 때에도 네 앞에 드러내 보이지 못했다. 혹시나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었다. 

다른 누구는 절대 알 수 없는 미약한 차이라도 본인의 눈에는 집채만큼 큰 결점으로 보이기 마련이니까. 


 

다행인 것은 내 이름이 새겨진 곳이 등 뒤편이라는 사실이었다. 굳이 거울을 통해 뒷모습을 살펴보지 않는 이상은 쉽게 볼 수 없는 위치였다. 


 

그래서 나는, 네 집의 거울을 깼다. 


 


 


 

 “화장실에 거울이 깨졌어.” 


 

 “거울이 깨졌다고? 다치진 않았어?” 


 

 “응. 학교 갔다가 들어가 보니까 깨져 있더라. 가족들도 몰랐다고 하고, 이상하지.” 


 

 “그러네. 무슨 일이지? 도둑 들었던 거 아니야? 조심해.” 


 


 


 

 시치미를 떼면서도 연신 네 눈치를 봤다. 눈치가 없는 너는 몰랐겠지만, 한 마디 한 마디를 뱉으면서도 계속해서 혹시 실수하지 않았나 내 말을 곱씹었다. 


 

새로 거울을 달았던 날에도 또 새 거울을 깼다. 

네가 학교에 가 있을 낮 시간 동안 집이 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런 개인적인 사정까지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지만, 너는 끝까지 내가 이 집에 도둑 새끼처럼 몰래 들어가서 거울을 깨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네가 추악한 내 애정의 뒷면을 몰라 주어서 주제 넘게도 하늘에 감사했다. 


 


 


 

 거울이 깨지는 이상 현상이 세 번쯤 반복되자 그녀의 집에는 새 거울이 달리지 않았다. 대신 세면대 위에 얼굴과 상체만 비춰질 만한 크기의 작은 거울이 생겼다. 

마지막까지 들키지 않고 마무리되어서 다행이었지만 내 몸도 아닌 여주의 몸 위에 있는 이름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다. 


 


 


 

 기껏 새겨 놓은 이름을 숨기고 숨기다 결국 장난을 치던 여주의 손에 들키고 말았을 때, 여주는 말갛게 웃으며 제 허리께에 새겨진 나의 이름을 가리켰다. 

햇살처럼 웃는 얼굴이 기쁨에 젖어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몇 개월 간의 내 행동이 시간 낭비였음을 알아채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김여주, 그 애는 그토록 아름답고 사랑스런 아이였는데. 


 


 


 


 


 


 

*** 


 


 


 


 


 


 

 이태용. 입에 담기도 저주스런 그 이름. 욕망과 독기에 잠식된, 그리하여 자멸의 카르마에 빠져 살아가는 여린 인간. 

 단 한 순간도 내 손아귀에 얌전히 머무르기를 허용하지 않았던 이름이었다. 


 

나는 그 즈음부터 이미 인정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결국 이태용은 나의 제어와 방해에서 벗어나 제 독을 하늘로, 땅으로 흩뿌리리라는 것을. 


 

그 파렴치한 독니에 사랑해 마지않는 여린 살결이 상처입는다면 나는 타락한 라파엘라가 되더라도 독니를 뽑아내어 그와 함께 종말을 맞겠다. 


 

 그리 결심했었다. 


 


 


 


 


 깊은 늪 속에 가라앉아 질식해 죽을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게 된 날은, 


 

 이태용이 내미는 창백한 손바닥 위에 가짜로 바꿔치기한 약을 올렸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혀 위에 올린 약을 목 안으로 넘기는 아름다운 얼굴을 마주하고 선 나는, 섭리를 거슬러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른 의사가 되었다. 

하늘에 맹세코 모두를 살리겠다고 결심했었다. 이제는 산산조각난 맹세의 한 구절을 이태용과 같이 가슴 속으로 삼켜내린다. 


 

새하얀 화면 위에 가파르게 나아가던 붉은 선은, 오르던 곳에서 멈추어 직선을 그린다. 


 

죽어 버린 사망자의 박동처럼,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이로써 나는 손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피를 묻혔다. 


 


 


 


 

 속이 시커먼 이태용이 아름다운 그녀에게 입을 맞춘다. 

거무죽죽한 독기가 입술과 혀를 타고 온통 잠식해 올라가면 김여주는 나를 까맣게 잊는다. 


 

이태용의 입술이 뱀처럼, 나직이 속삭이며 명령한 바와 같이. 

 독의 암울한 빛과 같이 까맣게. 


 


 


 

 독사가 건네는 뜨거운 입맞춤이 계속될수록 평범하고 생기 넘쳤던 나와의 시간들은 응축되어 허공에 사라진다. 

나는 기다리고, 또 괴로워하다 아주 잠시간 뱀의 또아리에서 운 좋게 풀려난 그녀를 얻는다. 


 

그리고 이태용의 허튼 독기가 젖어들어와, 결국 폐허가 된 어린 연인의 머릿속에 한번 더 파고들어… 내가 아닌 다른 남자가 퍼부었던 애무의 기억들을 되새기며, 나로서 그녀를 정화해 낸다. 


 

 자신도 모르는 동안 나와 그의 사이에서 마구 점철되고 빼앗기기를 반복했던 김여주를 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체 미소지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뇌리에 점점 더 뿌리 깊게 파고드는 이태용의 모든 순간들을 내가 직접 지켜보며. 


 

그의 뜨거운 독은 마치 먹물처럼, 김여주의 뇌를 녹인다. 그렇게 나를 지운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들을 전부 다시 나로 덮는다. 이태용과 나의 지겨운 사슬, 독과 안티도트. 수없이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 위를 걷는다. 


 


 


 

이태용은 내게 속삭이고, 


 


 


 

 “해독제는 영원히 독을 이길 수 없어.” 


 

 왜지? 독을 아무리 흩뿌려도 해독만 한다면 살릴 수 있는데. 


 

 “해독제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 


 

 해독제만 가지고는, 


 
 “너의 존재의 이유는 내가 없이는 사라진다는 거야.”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보드라운 꽃잎이 독에 녹아내리기 전에, 네가 손쓸 수 있는 방법은 없지 않니, 그렇지?” 


 

 그리고 꽃잎이 독약에 젖어든 이후에는? 


 

 “이미 녹아버린 꽃을 되살릴 방법이 있어?” 


 

 뱀의 혀가 입가를 적시고, 나는 절망한다. 


 


 


 

꽃이 녹아버리기 전에 내 영혼을 태워 해독제를 만들리라. 


 

그녀의 향기가 전부 사라지더라도 내게 잠식되어 내 품 안에서 영원하길. 갇히더라도 그 안에 머무르길. 


 


 


 

 나는 그녀를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바보로 만들었다. 


 


 


 


 


 

 예쁘게 반짝이는 금가루가 조금이라도 빛을 잃을 때면 나는 또다시 붉은 핏방울을 그려내고 참아내기를 반복했다. 


 

정확히 심장이 위치한 곳에 새겼던 탓에 잉크가 든 바늘에서 전류가 흘러들 때면 심장마비라도 올 것처럼 가슴이 죄어들었다. 점점 깊어지는 상처를 잉크로 메우고 또 메웠다. 

고통에 흐르는 눈물은 오로지 너를 사랑하기 위한 나의 애 타는 노력이었다. 빛나는 이름자를 네가 보고 기뻐한다면, 그것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충분했다. 


 


 


 


 

진정으로 심금을 울리는 사랑 이야기는 항상 운명을 거스르는 법이었으니까. 


 


 


 


 

나도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전부 빛에 가려진 비극이 존재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이었다. 


 


 


 


 


 


 

*** 


 


 


 


 


 


 

마침내 숨을 멈추고 달빛 아래의 검은 물결에 몸을 맡긴 날에, 


사그라드는 불길 너머로 비춰지는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악의에 가득 찬 맹독은 빛으로 승화한다. 


 


 


 

너의 머리칼이 바람에 흐트러지고, 보랏빛으로 턱 끝까지 물들었던 이태용의 창백한 목이 차차 제 빛을 되찾아 가는 것이 보였다. 

시커먼 불길이 잦아들수록 강렬하게 빛나는 황금색의 빛은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순간의 빛, 아마도 김여주, 너 또한 알지 못했을 아름다운 순간의 빛. 


 


 


 

 맞닿았던 두 입술이 떨어지고 네 머리칼에 가려졌던 목덜미가 완전히 드러난다. 

그리고 나는 이번 차례에도 어김없이 누구보다도 먼저, 그 새하얀 목뼈 위를 가로놓여진 이름자를 발견하고 가슴 깊이 울부짖는다. 

어스름이 내린 후 어둑어둑해진 밤의 허공에 띄워진 아름다운 보름달은 그 이름자를 비추고, 그는 언어를 처음 배우는 아이와 같이 말간 낯으로 네게 말한다. 


 


 


 

 “내가, 너를, 좋아해.” 


 “응.” 


 “미안해. 사랑해.” 


 


 


 

 어린아이가 작은 가슴 속에 차오르는 말을 하나씩 내뱉는 모양새와 꼭 같이, 입가를 떨며 단어들을 그려내는 혀를 보았다. 


 


 


 

 “너한테서 이름을 지웠더니….” 


 “…….” 


 “나한테 이름이 생겼네.” 


 


 


 

 단 한 번의 깜박임도 없이 네 눈을 마주하던 눈동자가 웃음기를 띤다. 

이상하리만치 빛나던 글자는 너의 검은 눈동자를 거울 삼아 그의 망막에까지 가 닿은 것이었다. 나의 형편없고 값쌌던 반짝임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순간, 네가 나를 보았다. 


 


 


 

 미안해, 고마워.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방금 전의 이태용이 속삭였던 그 말과 아주 비슷하고 또 아주 다른 단어들을 달싹이는 입술을 보았다. 이제는 다시 만질 수도, 입맞출 수도 없는 얼굴이 맑은 웃음을 짓는다. 


 


 


 

 이제 되었다. 

늪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나는 끈적끈적한 진흙탕의 바닥에서 하늘을 바라다본다. 

새하얀 빛을 내는 달무리가 내 머리 위를 지나쳐 어스름히 져 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미안하다는 말도, 고마웠다는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사랑해, 행복해. 내가 김여주에게 하고 싶은 단 두 개의 단어. 하지만 이제는 할 수 없게 된 말들. 


 

나는 소리를 잃은 벙어리가 되어 달빛에 젖어든 얼굴을 따라 꼭 닮은 선을 그린다. 


 


 


 


비극의 주인공 치고는 나쁘지 않은 기분이라고 생각하며.

 










Tb입니다♥
 

한 바퀴를 돌아서 드디어 제 차례가 돌아왔네요 :D
현생이 엄청나게 몰아쳐서 빨리 못 온 것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독자님들...ㅠㅠ
 

 

완결이 코앞이네요! 끝이 안 날 것 같던 릴레이였는데 감회가 새로워요... 

 

네 분의 뛰어난 작가님들을 만나서 제 글도 많이 돌아보게 됐고 마지막까지 즐겁게 함께하면서 너무 좋은 추억을 만든 것 같아서 기쁩니다❤️ 

 

지금까지 달려 주신 독자님들 모두 감사드리고 완결까지 함께해요!
사랑합니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비회원52.174
허거거걱.... 저번도 첫댓이었는데 오늘도!!..기분 좋아라 이름이 새겨진게 가짜였다니...끄응 넘 ㄹ퍼요 그만큼 사랑했던게 애절하구...완결이 얼마 안남았다니ㅠㅠㅠㅠㅠ 다음편도 기다릴게요 작가님들 힘내영!
6년 전
독자1
와 진짜 필력... 필력... 그냥 감탄만 하고 가요......
6년 전
독자2
잘보고가요!!!분위기....ㅠㅠㅠ흡...ㅠㅠ
6년 전
독자3
헐진짜대박,,,
6년 전
독자4
곧있으면완결이라니ㅠㅠㅠ넘슬프지만ㅠㅠㅠㅠ
이런레잔드작품써주신작가님들께 넘나 감사드려요ㅠㅠ???????????

6년 전
비회원14.250
반전 속 반전을 거듭하는 작품이네요... 이런 띵작은 유명해져야 하는데 말이죠ㅜㅅㅜ 진짜 잘 읽었어요 작가님들도 수고 많으셨구요ㅜㅠ
6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분류
  1 / 3   키보드
필명날짜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715 1억05.01 21:30
온앤오프 [온앤오프/김효진] 푸르지 않은 청춘 012 퓨후05.05 00:01
김남길[김남길] 아저씨 나야나05.20 15:49
몬스타엑스[댕햄] 우리의 겨울인지 03 세라05.15 08:52
      
온앤오프 [온앤오프/김효진] 푸르지 않은 청춘 012 퓨후 05.05 00:01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715 1억 05.01 21:30
나…18 1억 05.01 02:08
강동원 보보경심 려 02 1 02.27 01:26
강동원 보보경심 려 01 1 02.24 00:43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634 1억 02.12 03:01
[이진욱] 호랑이 부장남은 나의 타격_0917 1억 02.08 23:19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817 1억 01.28 23:06
[배우/이진욱] 연애 바이블 [02 예고]8 워커홀릭 01.23 23:54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713 1억 01.23 00:43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615 1억 01.20 23:23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513 1억 01.19 23:26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516 1억 01.14 23:37
이재욱 [이재욱] 1년 전 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_0010 1억 01.14 02:52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414 1억 01.12 02:00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419 1억 01.10 22:24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314 1억 01.07 23:00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217 1억 01.04 01:01
윤도운 [데이식스/윤도운] Happy New Year3 01.01 23:59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 ss2_0118 1억 01.01 22:17
준혁 씨 번외 있자나30 1억 12.31 22:07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나의 타격_0318 1억 12.29 23:13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213 1억 12.27 22:46
[이진욱] 호랑이 부장님은 나의 타격_0118 1억 12.27 00:53
이준혁 [이준혁] 내게 비밀 남친이 있다_end22 1억 12.25 01:21
이진욱 마지막 투표쓰11 1억 12.24 23:02
[배우/이진욱] 연애 바이블 [01]11 워커홀릭 12.24 01:07
전체 인기글 l 안내
5/23 18:36 ~ 5/23 18:38 기준
1 ~ 10위
11 ~ 20위
1 ~ 10위
11 ~ 20위
단편/조각 인기글 l 안내
1/1 8:58 ~ 1/1 9:00 기준
1 ~ 10위